가볍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
늦은 오후 집에서 일을 보고 있는 와중에 더위가 코앞까지 왔다 싶었다. 한밤중에도 찬 바람을 부르려 창문을 열어야 했는데,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여름이면 채비를 한다. 타오르는 불덩어리와 싸울 채비랄까? 여름 옷을 꺼내기는 당연하고, 에어컨 필터도 말끔히 청소한다. 선풍기도 묵은 먼지를 불어내고 몸 구석구석을 닦아준다. 여름에도 정장을 피할 수 없다 보니 시원한 원단으로 지은 셔츠를 꺼내 세탁한다. 이렇게 여름을 보낼 준비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시곗줄 바꾸기다.
사람을 챙겨줄 만큼 똑똑한 스마트 워치가 대세인 세상이지만, 나는 아날로그시계를 좋아한다. 동전만 한 작은 시계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채워진 글자를 보는 재미가 있고 그 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는 핸즈(시침과 분침 초침을 말한다)를 감상하는 맛도 있다. 남들은 지위나 재력을 보이려고 시계를 찬다고 하지만, 나는 그러기엔 벅차다보니 시계를 몇 점 가지고 있지만, 값 비싸지는 않다.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에 맞게 아니면 차림새에 걸맞는 정도로 구색을 갖추고 있다
평소에는 주로 다이버 시계를 찬다. 이름대로 바다에 잠수하는 잠수부들을 위한 시계다. 수압을 견디는 능력은 다이버 시계 능력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만큼 두툼한 남성미를 자랑하는 시계들이 보통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계는 다이버 시계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두루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이코사의 SKX007이다. SKX007은 200미터(20기압) 수압을 견딜 정도로 견고하면서도 기계식 시계하면 떠올리는 오버홀(완전분해조립, 정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직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진흙탕 속에 넣었다 꺼내 쏴도 멀쩡하다는 구 소련의 AK47 소총과 비슷하달까? 이 정도로 믿을 수 있고 신경 쓸 필요도 없으며 담백하게 생기기까지 해서 시계 애호가 하면 한 점쯤은 가지고 있거나 가졌을 법한 시계다.
나 역시 SKX007을 가지고 있는데, 겨울이면 스테인리스로 된 시곗줄을 쓰지만, 여름이면 땀이 차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해서 가죽 줄로 바꿔준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곗줄을 바꾸며 여름을 시작했다. 이왕이면 기분을 내는 샘으로 묵혀둔 가죽 줄을 꺼내들었다. 줄 바꿈질을 하는데 특별한 가술은 필요가 없다. 전용 도구로 줄과 시계 몸통을 이어주는 봉을 빼고 그 봉을 바꿔줄 줄에 넣어 다시 시계에 달아주면 그만이다. 그렇게 새 줄을 입혀준 시계를 손목에 올려보니 생각보다 어색했다. 시계와 줄이 어우러진 모습은 제법 보기 좋았는데, 내 손목과는 따로 놀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어울림의 문제는 아니었다. 시계와 줄 그리고 손목은 궁합이 잘 맞아 보였지만, 영 불편했다. 시계를 풀어보니 아직 가죽 줄에 길이 들지 않아 아직 뻣뻣한 것이 문제였다. 줄이 구부러지며 손목을 휘감으면 좋으련만, 오래 모셔둔 탓인지 운동을 게을리한 중년 아저씨같이 뻣뻣했다. 이렇게 길이 덜든 줄로 시계를 차면 손목이 아프기도 한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찬다. 본래 생명을 담던 그릇으로 만들어진 줄이니 차다 보면 내 손에 맞게 변하리라고 믿으며 말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시계를 차고 있으면 아무리 뻣뻣한 줄이라도 길이 들기 마련이다. 늘어나고 휘어지며 사람 손목을 편안하게 휘감게 모습이 변한다. 길이 드는 데까지 불편함은 있지만, 감내할만 하다.
생각해 보면 사람 사는 것도 다 이런 일의 연속인 것만 같다. 무엇을 배울 때도 그렇다. 처음에는 단어 뜻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생각을 물리고 보고 또 보다 보면 익숙해져 다음 의미가 이해되기도 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처음에는 유치한 문장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쓰고 또 쓰다 보면 익숙해지고 은유법니 구성이니 하는 기술들도 얻는다. 연애도 그렇다. 처음에는 좋아한다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지만, 관계를 만들고 이어가다 보면 자기와 꼭 맞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도 수월히 꺼내게 된다. 다만, 누군가는 그 고비를 넘을 때까지 묵묵하게 걸어보고, 누군가는 ‘난 본디 재능이 없으니까 안됨’하고 단념하기도 한다. 묵묵히 걷는 사람은 결국 얻지 못할지언정 어떤 계기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두 번 해보고 그만두는 사람은 왜 그것이 되지 않는지 이유도 알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니까 모든 건 때가 올 때까지 묵묵히 해보기가 득되지 않을까? 시곗줄을 바꾸자마자 아프다며 집어 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아! 그래서 내가 요즘 평양냉면을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맛이 없던 음식에 맛이 느껴지니 말이다. 역시 알 수 있을 때까지 무르익기를 기다리기가 나는 좋다.
오늘의 생각이었습니다.
-------------------
지난글
'역경을 마주하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23246
'상상력은 큰 두려움을 만든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29312
'나다워서 좋더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31362
'사람이 태어날 때 우는 건, 이 바보들의 무대에 끌려나온 것이 슬퍼서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37879
‘가르치기 전에 자기 눈에 감긴 수건부터 풀어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39094
'인간은 결점이 있기에 나아간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41236
’인간의 가치는 죽음을 맞이할 때 정해진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46128
“너도 그랬잖아, 애밀리한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49035
프로답게 말하고 싶다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51626
'천하무적? 한낱 말일 뿐이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53654
'여러분은 돈 못벌겁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55304
'사람은 웃고 있으나 그런데도 악당일 수 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57567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라고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59519CLIEN
'자신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호언장담은 그만두자'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62779CLIEN
'슬퍼해도 되는데, 슬퍼만 하지 말라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68057
'나 사용 설명서'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70203
'그렇게 일하고 손가락 잘리고 퇴직하니, 싸구려 금딱지 시계하나 주더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71374
'저승에 가면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한다고 옛날 이집트 사람이 말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73965
'가족이니까, 남 대하듯이 해보자'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77270
'삶은 혼자서 달리기에 참 어려운 길이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79493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살아남고 싶나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80987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83991
'음악이 사랑의 양식이라면 계속해주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85488
'매력적인 말씨의 그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87789
'이사람 또라인가봐 눈빛을...'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91482
'저는 제 일이 손님의 아침을 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93212
'두려움은 너를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94958
'아빠 아침이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97690
'최적화 되지 않은 삶'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99701
'오늘 배운 표현은 오늘이 가기전에 꼭 써먹어 보세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05269
'내게 필요한 경험을 주세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07525
'공공성은 엿바꿔 먹은 걸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09449
'양체로 살지 맙시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11821
'존 맥클레인... 영원히..'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13131
'오즈의 마법사를 기억하세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18855
'끼어드는 얌체와 베끼는 얌체'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20928
당신은 댕댕이와 고양이 어떤 쪽인가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22555
'생일 축하해요 시드'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24321
'아빠 물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26597
'크라바트를 아시나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30538
'쥐새끼를 털어내야 잠도 편안하게 잘 수 있는법'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32786
'이미 글렀어'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37869
'ㅈㄹ어렵지만, 행복한'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39339
'연애, 교환의 순간'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44601
'해결을 하랬더니, 문제를 더 만들었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46869
글쓰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54531
할매 손이 고와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56886
멍청한게 아니라 도전했던게 아닐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60047
지금부터 당신을 전문가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90850
'남의 회사를 먹어버린 사람의 이야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95173
'크림은 빼고 드릴까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96304
'ㅈㅅ덕분이었습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002635
'서울 구경에 여길 빼먹으면 섭할지 모릅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004083
'A와 B 당신의 선택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021691
'고치는 언제 만들 수 있으려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030928
'다 보여주니까 생각을 하지 않게 되더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036322
'네 멋대로 하지 마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042638
'신언서판 따지면 꼰대일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044535
'병신소리'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046876
‘E’와 ‘I’ 아빠 엄마, 그리고 쌍둥이.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048804
'꿈 깰 시간이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059870
'요리 잘 하는 비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082424
매번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름이면 땀이 차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해서 가죽 줄로 바꿔준다. 이 부분은 잘 이해가 안가네요 ㅎㅎ
이 글을 읽고 애플워치에 쓸 가죽스트랩을 찾아보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