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니까, 남 대하듯이 해보자.
-YHC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엄하다 못해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언제나 굳은 얼굴로 퉁명스러운 말투로 가족을 대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도 대화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대화는커녕 차린 음식을 정신없이 입에 넣을 뿐이었죠.
그래서인지 기억납니다
어머니가 힘들어하시던 걸 말이죠.
부모는 만들어지는 것이지, 완벽한 사람이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부모든 부모 역할을 처음 해본다는 소리죠.
그래서 꽤 많은 사람은 '우리 부모님 같은 부모는 되지 않겠노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나요?
사람이 배우는 기본 방법은 '모방'입니다.
말하기도 부모를 모방하며 배우듯이 부모노릇도 부모를 모방하게 됩니다.
우리는 거부하지만, 머릿속에 남아있거든요.
'자식에게는 저렇게 하면 되는구는구나'라고 말입니다.
저는 부족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사람이라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돼보려고 노력하고 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분히 쌓았으니 결혼생활도 잘 하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연애할 때는 그렇게 똑같다며 서로 좋아하던 아내와 저는 결혼하고 3개월 동안 정말 미친 듯이 싸웁니다.
동거를 1년이나 했음에도 그러더군요.
이유는 별것 없었습니다.
'여자친구는 가족이 아니기에 지켜야 할 선'을 지켜 관계를 유지했지만
'가족은 그 선이 없었기에' 가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줬고
그 모습은 '남자친구'일때와 차이가 있었던 거죠.
그 사실을 제가 깨달았을 때 어찌나 소름 끼치던지...
그렇습니다, 제가 정말 싫어했던 아버지가 하던 대로 '언제나 굳은 얼굴로 퉁명스러운 말투'로 아내를 대했던 겁니다.
그러니 아내도 저를 보며 생각했을 겁니다. '오빠가 왜 저러지?'라고 말이죠.
제가 그토록 싫었던 아버지의 모습은 제 몸 구석구석 들어와 있었습니다.
말투, 행동, 관점 모든 것들이 말입니다.
닮고 싶지 않았던 모습조차 고스란히 재현하는 저를 보며 '아.. 아.. .정말 아주 멀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제가 아버지의 다른 모습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충남지방경찰청에 근무하시던 때였어요.
저는 대학생 때였죠.
학교를 마치면 대전 시내 중심부를 통과해 집에 가야 하는데, 경찰청이 대전 중심부에 있었기 때문에 종종 그곳으로 갔습니다.
차 얻어타러 말이죠.
그런데 그곳에서 제가 아는 아버지와 다른 모습을 마주합니다.
아버지는 정말 유쾌하고, 말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는 매너도 좋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타인을 대할 때는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가족을 대할 때는 '매력적이지 않은사람' 이었어요.
아버지가 타인을 대하는 행동 반이라도 집에서 했다면 더 화목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불우했던 건 아닙니다.)
아버지 심은 데 아버지가 나왔듯이 제가 그랬습니다.
대외적인 자리에서 저는 유쾌하고, 즐겁고, 능력도 있어 보이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니 말하는 게 직업이겠지요.
집에서는 반대인 겁니다.
대외적인 모습을 보고 연애했던 아내가 결혼생활 시작한 뒤에 저를 보고 서운했을 수밖에 없지요.
변했다고 봤을 겁니다.
사실 저는 변한 게 아니라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지만요.
이걸 바로 볼 수 있게 된 뒤에, 가족을 대할 때 기준점을 새로 잡습니다.
가족이니까 이해해 주겠지가 아니라
가족이니까 타인보다 더 선을 지킨다는 기준 말입니다.
아직은 잘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다잡지 않으면 제 행동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이어져
아이들도 똑같은 우를 범하겠지요....
제 아버지가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
엄하고 무서웠던 할아버지의 행동을 따라하며 저를 대했듯이 말입니다.
'가족이니까, 남 대하듯이' 해보자.
오늘의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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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버니가 딸같은 며느리를 원한다고 하시면,
진짜 딸같은 모습을 보여주세요(?)
저도 가끔 비슷한 생각을 하곤 했는데 실행으로 옮기는데는 힘든것 같아요
거래처 사람들에게 하는 절반이라도 가족에게 하려고 노력해봐야겠네요
저도 근래에 비슷하게 알아차리게 된 지점이랄까요..
저도 소중하기에 남처럼 대해 보겠습니다
흔히 깡패들이 집에선 잘한다는 말처럼 내가 대하는 사람이 일반적인 편견과 다른 경우 많이 겪거든요
물론 그 이유가 본문같은 경우일수도 있구요.
사실 그래서 가족이라고 해도 어느정도 기본적인 거리감과 예의는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좋은 경험인듯 합니다,,,개인적으로는 어릴때 딱 1번 밖에 못봤는데
처음이자 마지막 희미한 경험이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네요,,,
가끔 아들을 일할때 데려가서 일당주면서 도움을 받는데,,,좋아하는것 같아요,,,(돈,,,,을요,,)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해 봐야겠어요.
저는 남편이 변했다고 생각했어요. 애가 태어나니까 더 돌변.
이제 나를 안사랑하냐고 물으니, 딱히 그런건 아니라길래 꾸역꾸역 결혼생활을 유지해 오긴 했지만, 내내 버려진 기분이었어요.
한번은, 연애시절이랑 왜 이렇게 다르냐고 물었더니, 글쓴분처럼 자기 감정을 말로 잘 정리하지 못하는 제 남편은,
"잡은 물고기한테 먹이 주는 거 봤냐." 라고 말하더라고요. 그게 이런 뜻이었군요. 그날, 내 내면은 파탄이 났는데.
이해는 되지만, 그래서 더 불쾌하네요. 그렇게 마음대로 태도 전환해도 된다고 저는 동의한 적 없는데, 너무 오만한 결정아닌가요.
무뚝뚝하고 투덜거리는 시아버지 아바타랑 살으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 차라리 가족이 되지 말걸 그랬다는 후회가...
욕하면서 닮은 본인의 모습을 성인이 된 후 인지하고 나서 수정해나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화로의 실천은 또 다른 문제인데.. 많은 성장 있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