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한낱 말일 뿐이야
만화 배가본드 중에서
다케히코 이노우에 작가의 대표작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슬램덩크일 겁니다.
80년대를 영챔프를 끼고 살던 세대인 만큼 정말 좋아하는 만화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인 배가본드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
선문답식의 알 수 없는 말이 오가는 만화라며 혹평도 있지만,
'자신의 길'을 가는 인간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보기 때문이죠.
만화 전반부 실존 인물 미야모토 무사시는 '천하무적' 검사가 되길 원합니다.
무모하게 도장에 뛰어들어 생사를 넘나들고 자신의 실력을 압도하는 달인을 뒤로하고 도망치기도 합니다.
그런 그에게 검성으로 칭송받던 야규가의 당주가 그에게 전합니다.
천하무적은 한낱 말일 뿐이라고 말이죠.
미야모토 무사시는 그 말의 진의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가 표현한 대로 베고 또 베는 살육의 길을 걷습니다.
그 과정에서 요시오까 일문 70명을 베고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절게 됩니다.
70명을 베었고 일본 전국에서 천하무적이라 칭송받으며, 원한대로 천하무적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공허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천하무적의 경지에 올랐지만, 예전과 같은 싸움을 할 수 없게 된 자신을 보며 그는 깨닫습니다.
천하무적이 되고야 말겠다는 일념이 그를 만든 게 아니라.
싸움 그 자체가 너무나도 즐거웠기 때문이었던 거죠.
신기하게도 주인공의 깨달음을 얻을 즈음
작가의 화풍도 인간의 경지를 넘는 것만 같은 변화를 보입니다.
연재 초반에 주인공은 어설픈 살기를 주체하지 못해 촌뜨기처럼 보입니다.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화풍도 슬램덩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화풍이었죠.
주인공이 성장하는 동안 작가의 화풍도 달라집니다.
펜을 사용하다 붓을 사용하게 되고 어느새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만 같은 혹은 물과 같은 화풍이 되죠.
마치 작가가 만화를 연재하며 또 다른 경지로 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 느껴집니다. '이 사람은 그림 그리길 정말 즐기는 구나' 라고요.
패턴 그리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자기 작품에 온갖 패턴을 그려 넣기 좋아하는 작가 '모리 카오루'처럼 말입니다.
정말 좋아하는 행위에 몰입하다 결국 달인의 경지에 이르기는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나 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결국 인생 최고의 즐거움을 얻으려 다시 결투의 길을 떠납니다.
숙적 사사키 코지로를 만나러 말이죠.
이 이상 연재가 되고 있지 않아 팬 입장에서 아쉽습니다만,
집중이 잘되지 않거나, 생각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종종 꺼내 봅니다.
그리고 스스로 물어봅니다.
'그래서 네가 가는 길이 즐겁니?'라고 말이죠.
이 말에 항상 그렇다고 답할 수 있기에 그래도 살만하구나 싶습니다.
한낱 말에 사로잡혔던 때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의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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