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8살 때쯤의 일이다.
지금도 아들이라면 눈이 밝아지는 어머니는, 어딜 가더라도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시장은 어머니와 자주 가던 곳이었다.
해가 산을 타고 넘어가던 시간 즈음 되면 어머니와 시장을 함께 가곤 했는데,
어린 눈에 시장은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별천지와 같았다.
특히 사람 구경이 재미났다.
한 번은 어머니가 상추를 사며 흥정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500원이 대수인가 싶었지만,
당시에는 할 수 있는 게 제법 많은 돈이라서 그랬는지 어머니는 물건값을 깎았다.
깎았다고만 표현하면 요즘 말하는 진상이었나 싶지마는 깎는 만큼 주는 것도 있었다.
“사장님 얼굴이 고우 시네” “할머니는 할머니 안 같은데” 따위의 칭찬이 깎는 만큼의 답례였다.
별것 아닐지 모르는 가벼운 말이 상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값을 깎아주기도 했고, 깎아줄 수는 없지만, 더 주기도 했다.
말을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기분과 태도가 바뀌는 게 나는 신기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콩나물을 사 오라며 천 원짜리를 줬다.
내심 나는 머리를 굴렸는데, 콩나물 500원어치를 사되 많이 받고 남은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동내 시장 입구에서 몇 걸음 더 들어가면 있던 콩나물 좌판에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콩나물을 사려는 듯이 기웃대다가 콩나물 오백 원어치를 달라고 했다.
할머니가 알았다며 콩나물을 담는데 손이 보였다.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라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이고 할머니 그런데 손이 참 예뻐요. 우리 할머니보다 예쁘시네”
할머니는 뭐 이런 꼬마를 봤냐는 듯이 “아이고 뭔 꼬마 놈이 이렇게 넉살이 좋노”라고 했다.
이어서 내게 건네준 검은색 콩나물 봉투는 제법 묵직했다.
“할미가 좀 더 넣었다 맛있게 묵으라"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나는 엄마 심부름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뒤 나는 곧잘 실험을 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볼지 가정하고 말을 하기 시작한 셈이다.
때로는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기도 하고 아닐 때도 있었지만,
이 실험으로 언변에 자신감을 조금씩 쌓아갔다.
그리고 원하는 걸 얻으려고 의도를 담아 장기 두듯이 말하는 법도 알아갔다.
이런 상황이 참 재미있었다.
그 재미가 행동을 부르고, 그 행동이 다시 재미를 낳았다.
이걸 반복하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데 당당한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감을 갖는다는 건 단순한 일이라고 본다.
재미를 얻을 수 있는 행동을 하고 반복해 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긴다.
반대로 말로만 자신감을 갖자며 다짐하기는 별 소용이 없었다.
해보지 않으면 자신감을 쌓을 수 없었다.
제법 나이가 차고 세상을 들여다볼 눈이 생긴 뒤로는 세상일이 다 그렇게 보였다.
자신감이 없다는 건 ‘몰라서’가 아니라 ‘안 해봐서’라는 걸.
그러니까 해보면 안다는 걸.
-----------------------------------
지난글
'역경을 마주하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23246
'상상력은 큰 두려움을 만든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29312
'나다워서 좋더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31362
'사람이 태어날 때 우는 건, 이 바보들의 무대에 끌려나온 것이 슬퍼서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37879
‘가르치기 전에 자기 눈에 감긴 수건부터 풀어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39094
'인간은 결점이 있기에 나아간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41236
’인간의 가치는 죽음을 맞이할 때 정해진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46128
“너도 그랬잖아, 애밀리한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49035
프로답게 말하고 싶다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51626
'천하무적? 한낱 말일 뿐이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53654
'여러분은 돈 못벌겁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55304
'사람은 웃고 있으나 그런데도 악당일 수 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57567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라고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59519CLIEN
'자신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호언장담은 그만두자'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62779CLIEN
'슬퍼해도 되는데, 슬퍼만 하지 말라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68057
'나 사용 설명서'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70203
'그렇게 일하고 손가락 잘리고 퇴직하니, 싸구려 금딱지 시계하나 주더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71374
'저승에 가면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한다고 옛날 이집트 사람이 말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73965
'가족이니까, 남 대하듯이 해보자'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77270
'삶은 혼자서 달리기에 참 어려운 길이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79493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살아남고 싶나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80987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83991
'음악이 사랑의 양식이라면 계속해주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85488
'매력적인 말씨의 그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87789
'이사람 또라인가봐 눈빛을...'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91482
'저는 제 일이 손님의 아침을 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93212
'두려움은 너를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94958
'아빠 아침이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97690
'최적화 되지 않은 삶'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899701
'오늘 배운 표현은 오늘이 가기전에 꼭 써먹어 보세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05269
'내게 필요한 경험을 주세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07525
'공공성은 엿바꿔 먹은 걸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09449
'양체로 살지 맙시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11821
'존 맥클레인... 영원히..'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13131
'오즈의 마법사를 기억하세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18855
'끼어드는 얌체와 베끼는 얌체'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20928
당신은 댕댕이와 고양이 어떤 쪽인가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22555
'생일 축하해요 시드'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24321
'아빠 물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26597
'크라바트를 아시나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30538
'쥐새끼를 털어내야 잠도 편안하게 잘 수 있는법'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32786
'이미 글렀어'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37869
'ㅈㄹ어렵지만, 행복한'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39339
'연애, 교환의 순간'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44601
'해결을 하랬더니, 문제를 더 만들었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46869
글쓰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954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