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고 싶다면 음악과 시 그리고 춤을 추라던 말입니다. 시는 어려워 내외했고 춤은 생각만 했지 스텝을 밟아보지는 못했습니다. 다행히 음악은 곁에 두었네요. 즐겨 듣기도 하고 연주도 했습니다. 연주를 했다는 말은 악기를 다를 줄 안다는 소리지요.
제게는 평생 함께하고 있는 벗이 있습니다. 바로 기타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제 곁을 지켜왔으니 친우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 기타란 놈은 신통한 구석이 있습니다. 즐거울 때면 흥을 돋우어줬고 슬플 때는 위로를, 썸녀 눈을 사로잡는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타는 피아노만큼 사람들이 사랑하는 악기지만, 익히기 쉬운 악기는 아닙니다. 건반을 누르기만 해도 소리가 나는 피아노와는 달리 기타는 올바르게 잡기부터 등용문입니다.
잠시 기타 가족을 소개해 보죠. 크게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할아버지인 클래식 기타입니다. 클래식 기타는 나일론으로 된 줄이 매여져있습니다. 몸은 크지 않은 편인데 목은 넓고 두텁습니다. 오래전 서양에서부터 사용되어 왔지요. 기타의 이명이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하는데, 이 말처럼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데 좋습니다. 클래식 기타를 즐겨 사용하는 음악가라면 이병우 씨가 있네요. 두 번째는 아버지인 어쿠스틱 기타입니다. 통기타라고도 하지요. 모양새는 할아버지와 비슷하지만 몸은 더 큽니다. 목은 가늘고 얄팍하며 쇠줄이 매여져 있습니다. 클래식 기타보다 명료하고 큰 소리가 납니다. 연주하기에 따라 날카로운 울음소리도 냅니다. 어쿠스틱 기타를 보고 있으면 밥 딜런이나 김광석 씨 같은 음유시인이 떠오르네요. 마지막으로 아들인 전자기타입니다. 이 녀석은 반항심이 많은지 생김새가 제멋대로입니다. 조상을 그대로 닮은 녀석도 있고 알파벳 ‘A’처럼 생겨먹은 녀석도 있습니다. 목은 아버지처럼 가늘고 쇠줄이 매여져 있습니다. 전자기타는 혼자서 소리를 내기보다는 전기를 먹는 친구들과 어울려 소리를 냅니다. 친구가 누구냐에 따라 울음이 다릅니다. 끈적한 소리를 내기도 하고 소 울음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신기하게도 전자기타를 좋아하는 사내 음악가들 중에서는 머리를 길게 길러 상모 돌리듯이 휘두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기타는 친해지기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닙니다. 때로는 피를 보기도 하니 말이지요. 먼저 기타와 친분을 나누려면 정확히 안아줘야 합니다. 기타 몸통을 내 몸 안쪽까지 바싹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타줄을 퉁기는 오른손과 줄을 짚는 왼손이 자유롭게 놀 수 있습니다. 잘 안아주지 못하면 쓸데없이 힘이 양손에 들어가 예쁜 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다음은 왼손입니다. 왼손 엄지손가락을 계란을 짚듯이 기타 목뒤에 댑니다. 나머지 손가락은 기타 줄을 짚습니다. 손가락 하나에 줄 하나가 원칙입니다. 줄을 짚을 때는 다른 줄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잡을 줄을 제대로 짚지 못한 채 다른 줄을 건드리면 소리가 나지 않거나 지저분한 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니 줄 하나를 정확히 짚어야 하지요. 그런데 왼손을 자유분방하게 놀리기가 쉬운가요? 심지어 힘주어 누르면 손가락 끝이 아프기까지 합니다. ‘기타리스트는 이런 고통까지 참으면서 하는 건가?’ 싶을 정도지요. 많은 이들이 이 고개에서 주저앉곤 합니다. 기타줄을 짚기도 어려운데 손가락을 자유롭게 놀리기까지 해야 하니 말이죠. 적어도 손가락 끝에 두툼한 굳은살이 앉을 정도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럭저럭 연주할 수 있게 됩니다. 피가 나기도 하고 못난이 손가락이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손톱을 길러 예쁘게 가꿀 생각일랑 일찌감치 넣어둬야 하지요.
고비가 또 있습니다. 소리를 내려면 오른손을 휘둘러 줄을 퉁겨야 합니다. 여섯 줄을 한 번에 때리면 리듬이 되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뜯으면 멜로디가 나오지요. 누구나 기타를 처음 사들고 집에 올때면 제이슨 므라즈 같은 싱어송라이터를 꿈꾸곤 하지만, 현실은 떴다 떴다 비행기를 연주하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경험해 보니 이 두 고개만 넘으면 좋아하는 노래를 얼추 연주할 정도가 됩니다. 그럼 재미가 생기니 기타와 시간을 자주 나누게 되지요. 실력도 따라 오르고 말입니다. 그래서 기타 배우기를 요리에 비유한다면 슬로푸드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당장 먹고 싶은 마음일랑 집어넣고 천천히 익기를 기다려야 진국이 되는 요리 말입니다. 기타와 저는 이 고생길을 넘으며 친분을 쌓았습니다. 이제는 좋아하는 곡을 연주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불혹이 될 때까지 우정을 나눴으니 문자 그대로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 기타가 제게 선생 노릇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야 고백하는데 저는 인간관계를 썩 좋게 쌓지 못했습니다. 대놓고 말하면 ‘싸가지를 밥 말아 먹었다’거나 ‘눈치가 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배려할 줄 모른다’는 밥 먹듯이 들었지요. 친구나 직장동료는 물론이고 마음을 나누던 짝에게도 듣던 말입니다. 정말 견디기 어려웠던 사실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배려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갈피조차 잡기 힘들었던 제 식견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었습니다. 쓴소리 한 바가지를 듣고 자격지심에 씩씩대며 집에 틀어박혀 있었지요.기분이라도 달래려고 거울 앞에 앉아 기타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곤 기타줄이 끊어질 정도로 후려치며 연주했는데, 소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휘둘러도 마대자루 뜯는 소리에 짜증만 커졌지요. 제 성에 못 이겨 기타를 내팽개치려던 찰나에 거울을 보니 기타를 탓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기타를 엉뚱하게 안고 있었거든요. 바르게 앉아 기타를 바싹 끌어안아야 하는데 그러든지 말든지 제멋대로 기타를 안고 아무렇게나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감정을 추스르며 기타를 다시 안았습니다. 왼손과 오른손에 힘을 빼고 가볍되 분명한 손짓으로 퉁기니 좋은 소리가 울렸습니다.
이내 머릿속에서 ‘배려는 네 멋대로 하는 게 아니라 남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거라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기타를 내 멋대로 다루기보다 기타가 원하는 대로 다뤄야 좋은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처럼요. 그런데 기타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면 제 몸통은 물론이고 양손도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시간과 노력이 들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타인을 배려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그들을 살피는 노력과 시간이 필연인 셈입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그런 노력을 해본 적이 없었고 말입니다. 저는 그 뒤로 남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제멋대로 살기를 그만두고 남들과 발을 맞추기 시작했지요. 신기하게도 배려심이 없다는 말은 점점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음악이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다던 누구의 말이, 제게 현실이 된 모양입니다.
오늘의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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