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평택에서 숙식 노가다를 했습니다.
지난 글은
(1)평택 고덕 삼성반도체 건선현장 숙식 노가다 체험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784024
(2)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숙식 노가다(2)-고덕의 하루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16539
(3)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3) - 하나도 못 알아 듣다, 언어의 전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24903
(4)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4) - 어쩌다 이곳에? 당연히 돈 때문에 왔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38875
(5)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5) - 이모(E-Mo) 네트워크 이야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49953
(6)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최근 소식, 이모(E-Mo) 네트워크가 특별한 이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63337
(7)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두 계단 위에 서 있는 사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78405
(8)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이곳은 AI로부터의 피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932355
(9)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슬로우 다운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064741
(10)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공수지옥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071733
(11)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완벽한 잠을 찾아서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086088
(12)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완벽한 잠을 위해 한 일, 깨달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110282
(13)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정말 이게 다야? 이렇게 간단히 살이 빠진다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199842
(14)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저녁 식사를 아침으로 미루면서 체험한 효과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253832
(15)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삼성은 안전한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264633
(16)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돈을 모은다는 것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277955
(17)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밴드 공고 보는 법!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316321
(18)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호캉스? 노노 빌캉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462490
(19)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메가 스트럭쳐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494065
(20)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나의 몽골 도서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519888
(21)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멋진 책 소개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583266
(22)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불가리아의 100만달러 크리스틴(1)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747328
(23)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불가리아의 100만달러 크리스틴(2)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750082
(24)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대가리가 깨끗해 지는 곳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810118
(25) 가장 원초적인 형벌 - 평택 고덕 반도체 숙식 노가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824726
(26) 그레이카드 - 평택 고덕 반도체 숙식 노가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834309
(27) 영구퇴출 - 평택 고덕 반도체 숙식 노가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851112
(28) 고덕 아이돌 이야기 - 평택 고덕 반도체 숙식 노가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875598
(29) 현장에 답이 있다 - 평택 고덕 반도체 숙식 노가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893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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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쉬고 계시죠? 오늘은 샵장이라는 곳을 알려드리려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직접 그린 삽화를 준비했습니다.
많이 허접하지만...... 역시 직접 그리는게 제일 정확한거 같아 한번 그려봤습니다.
많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콘크리트 생태 도감
처음 온 날 팀장님은 기둥 근처의 허름한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는 기둥을 중심으로 2, 3개의 대형 공구함과 누군가 파이프를 휘어 대충 만든 옷걸이가 있었습니다.
“이곳이 우리 샵장이야. 앞으로 7시까지 이곳에 모여 체조하고 일 시작하니까 늦지 마.”
이곳은 P3 그린동.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너무나 거대하고 8미터 간격으로 기둥이 끝도 없이 이어진 풍경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나중에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이곳(그린동)은 반도체 공장에서 나온 폐수를 처리하는 곳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이곳을 ‘거대한 화장실’이라고도 했습니다.
샵장. 낯선 천장, 아니 낯선 언어들 때문에 무슨 뜻인지 간단한 유추만 할 뿐이었습니다. 샵장이니까 뭐 다양한 부품들이 있겠구나 추측만 할 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이곳이 우리 보금자리라고 했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의 샵장이 옆에 있고, 위치도 온통 뒤죽박죽 엉망이었습니다. 무언가 정해진 위치가 아니라 대략 기둥을 중심으로 ‘되는 대로’ 배치한 굉장히 거친 장소일 뿐이었습니다.
샵장의 하루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6시 즈음 게이트를 통과하고 졸음과 싸우며 멍때리며 걷다 보면 그린동이 나옵니다. 거기서 또 신발을 갈아 신고 올라가 우리 샵장을 찾아가면 대략 3, 40분쯤 됩니다. 이미 몇몇 반장님들이 출근해서 샵장의 거대한 공구함 위를 의자 삼아 옹기종기 앉아 있습니다.
6시 50분쯤이 되면 경쾌한 클래식 음악이 갑자기 울려 퍼집니다. 사람들은 느릿느릿 일어나 준비합니다. 마치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같습니다. 참가자들이 아침에 일어나 음악에 맞춰 계단을 올라가는 것처럼 수많은 반장님들이 엑스밴드를 메고 공구벨트를 착용하고 공장의 빈 공간으로 모입니다. 철그렁 철그렁 벨트에 있는 공구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옵니다.
정각 7시, 그 유명한 삼성체조가 울려 퍼집니다. 어린 시절 국민체조에서 약간 변형한 느낌의 체조입니다. 10분간 체조 후 전체 공지가 있고 그 후 다시 각 팀별로 각자의 샵장으로 돌아갑니다.
샵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일을 시작합니다. 10시 40분쯤 모두들 슬슬 샵장으로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합니다. 점심은 11시부터라 조금씩 나갈 준비를 합니다. 너무 일찍 모이면 소장이나 세클에서 “다들 일이 없으신가 봐요?”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기에 조금씩 서로 눈치를 보며 시간을 조정합니다.
점심은 2시간입니다. 이동시간을 빼면 일반 회사원의 1시간과 동일할 정도로 이곳은 거대하고, 걷고 버스를 타고 나가는데 많은 시간이 소모됩니다. 12시 40분 즈음 사람들이 다시 샵장으로 모입니다. 오늘 점심 반찬은 어땠는지, 오늘은 연장을 할지 안 할지, 휴일에는 뭐 할지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갑니다. 그리고 다시 오후 체조 후에 다들 각자 일을 시작합니다.

중간중간 일이 먼저 끝난 팀원들은 샵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공구함을 열어 누군가 사 놓은 간식을 꺼내 먹습니다. 사실 일터 내부에서는 취식이 금지되어 있지만 현장마다 다릅니다. 어떤 곳은 커피조차 금지되어 있지만 어떤 곳은 간식 정도는 크게 터치하지 않습니다. 또다시 팀원들의 스몰토크가 이어집니다. 누군가는 황급히 샵장으로 와서 공구함을 열어 필요한 공구를 찾습니다. 서로 공구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함께 일하러 갑니다.

오후 6시 40분, 이날은 연장까지 해서 다들 기진맥진합니다. 좀비처럼 터덜터덜 샵장으로 걸어옵니다. 먼저 끝나서 쉬고 있던 팀원은 뒤늦게 온 팀원의 공구 벨트를 대신 받아주고 걸어 놓습니다. 그 외 비싼 공구들은 공구함 속에 넣어 놓고 비밀번호 자물쇠로 걸어 놓습니다. 비밀번호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팀장의 생일일 때도 있고 정말 의미 없는 1234, 1004 등일 때도 있습니다.
팀장님 언제 오시지?
함께 나가기 전까지 잠깐 다들 공구함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어린아이처럼 앉아 있습니다. 마치 유치원 같기도 합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팀장님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바쁜 팀장님은 오지 않습니다. 50분쯤 되고 다른 팀은 퇴근을 시작하자 다급해진 팀원들은 부팀장급 에이스에게 전화해 보라 합니다. 팀장님은 바쁘다고 하면서 먼저 가라고 합니다. 다들 아이들처럼 신발주머니를 챙겨 수백 명의 퇴근하는 사람들 흐름에 합류합니다.
이런 생활을 몇 개월 하다 보면 샵장이라는 곳이 참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인간은 어떻게든 보금자리를 만들고 적응해 가는 존재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샵장을 보면 초기 인류가 동굴이나 초원에서 불을 중심으로 군락을 형성하고 서로 보듬어 주고 모닥불을 바라보며 서로 다음 날을 준비하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샵장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공구들을 넣는 공구함과 이미 퇴사한 어떤 반장님이 솜씨 좋게 쇠파이프와 엘보우(ㄱ자 파이프)로 만든 벨트 걸이, 그게 전부입니다. 여기서 다른 팀과 합류하거나 규모가 커지면 자재 상자들이나 어디선가 릴선으로 전기를 끌어와 공구들을 충전하는 구역도 따로 생깁니다. 또 다른 팀과 구분하기 위해 이미지 펜스(업체 이름이 적힌 임시 가림벽)가 생겨납니다. 전기가 들어오는 순간 ‘문명척도 +1’이 달성되는 순간입니다.
이쯤 되면 정말 따뜻한 보금자리처럼 느껴집니다. 아무리 밖에서 힘든 일을 겪어도 일단 샵장으로 들어오면 팀원들과 함께 이상한 반장이나 세클에 대해 뒷담화를 하고 공구함에 털썩 주저앉아(현장에 의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금지되어 있습니다) 평균 2만 보 이상 걸었던 다리를 주무릅니다.
무엇보다 팀원들과 함께 간식을 나눠 먹는 건 마치 원시인들이 신성한 의식을 치르고 난 뒤 제물을 나눠 먹는 듯한 숭고함까지 느껴집니다. 일하는 모든 사람은 식대를 따로 지급받습니다. 한 분은 자신은 식대는 필요 없다며 자신의 식대 카드를 우리 팀 막내에게 ‘매일 먹고 싶은 간식 사서 먹어’라고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 누군가는 카드로 팀원들을 위한 간식-과자나 음료수-를 사와 소중하게 공구함 제일 안쪽에 넣어 놓습니다.
어떤 날은 후레쉬베리, 어떤 날은 비타500, 또 어떤 날은 포카리 등 다양했습니다. 이때에 제로파와 설탕파가 서로 싸울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 팀장의 취향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때 누군가가 넌지시 샵장의 인테리어에 대해 지적합니다.
비밀의 카페
혹시 5층 ㅇㅇ업체 중앙 샵장 가봤어? 완전 카페를 차려 놨다니까?! 엄청 부럽더라. 우리도 의자와 테이블 놓으면 안 되나??
한 반장님이 너무나 부러운 나머지, 마치 신혼 초기의 와이프가 옆집 인테리어를 부러워하는 것과 같은 말투로 말합니다.
일하면서 슬쩍 가서 봅니다. 그 업체는 각 모터에 들어가는 전선케이블을 공급하는 업체입니다. 그러다 보니 거대한 케이블선을 둥글게 말아서 마치 요새처럼 주변에 쌓아두었습니다. 주변에는 은근슬쩍 안 보이게 펜스와 여러 자재들로 가려놓았습니다. 자재를 찾는 척하며 슬쩍 들어가서 보니 ‘비밀의 카페’가 있었습니다.
애초에 현장에 특별한 목적을 제외하고는 의자나 테이블 등의 ‘일과 관련 없는’ 집기류는 금지입니다. 그럼 어떻게 카페를 차렸느냐, 의자는 남는 알루미늄 판지를 구부리고 누군가 솜씨 좋게 기둥을 붙여서 무려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만들었고, 테이블도 남아도는 힐티(hilti. 공구 회사의 한 종류) 자재를 어찌어찌 만들어 그럴싸한 테이블을 만들었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다이소에서 사온 ‘싸제’ 테이블보를 그 위에 깔아서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주변 현장은 온통 회색이고 흙먼지 속에 살다가 비밀의 카페를 보니 눈이 돌아갔습니다. 정말 투썸이나 스타벅스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귀한 카페가 이런 누추한 현장에..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늑했습니다. 게다가 거기에는 이미 누군가 믹스커피를 마신 듯한 흔적의 종이컵이 놓여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코웃음 칠 수도 있지만 현장에 있는 자재들을 이용해서 비밀카페를 만든 모습을 보며 인간의 창의성과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탄이 나왔습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은 여유를 찾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구나. 어떤 사람은 빨리 퇴근하고 벗어나고픈 현장이지만 누군가는 애정을 갖고 자기만의 공간과 여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교육 쪽에 종사했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창의성이라는 게 화려하고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아닌,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든 원하는 걸 구현해 내는 능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사가는 날
이렇게 샵장은 제2의 집처럼 아늑해질 무렵, 그날도 어김없이 출근하고 체조 전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조만간 이사를 가야 할 거야.”
왜요?
“지금 장비 들어오는 거 보이지? 다른 팀도 장비 때문에 다른 층으로 이동했어.”
그러고 보니 미처 보지 못한 풍경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철골 구조물만 있어 바깥이 보이던 경치에서 벽이 세워지고 우리들과 옆에 있던 팀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다른 새 팀이 들어와서 마감작업을 시작합니다.
‘영원한 건 없구나’
처음 어리버리할 때에는 계속 헷갈리던 샵장의 위치도 몇 주일만 지나면 마치 철새의 회귀본능처럼 어디서든 찾아올 정도로 익숙해졌습니다. 그 자리, 그 위치가 영원할 거 같아 옷걸이도 설치하고 남는 스티로폼이나 보양재(은빛 얇은 스펀지 돗자리)로 구석에 나만의 누울 장소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끝났습니다. 옷걸이도 분해해서 자재로 되돌려야 하고(잘 만든 건 같이 가져갑니다 ㅎㅎ) 손때가 묻은 장소들도 사라집니다.
이사하는 풍경은 마치 개미들이 큰 먹이를 지고 가는 것 같습니다. 두 명이서 공구함을 밀고 다른 사람들은 장비들을 챙기고 모두 손에는 하나씩 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이동한 곳은 또 한적한, 아직 공사가 시작되기 전의 황량한 공간입니다.
다시 그곳에서 펜스를 설치하고 공구함을 놓고 바퀴를 고정합니다. 뒤를 돌아보니 다른 팀들도 하나둘 옮겨오기 시작합니다. 모든 게 낯섭니다. 이전의 보금자리가 그립습니다. 기둥 번호를 외워 놓기 시작합니다. 또 한동안 헤맬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젠 1주일 만 지나면 모든 게 익숙해집니다. 또 나만의 보금자리나 새로운 ‘가구(?)’를 제작합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너무 익숙해지지는 않습니다. 이곳도 몇 달이 지나면 결국 장비들이 들어오고 우리는 또 어딘가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포벽

이미지 펜스라는 게 있습니다. 각 팀별로 구역을 정하기 위해 펜스(fence)를 세우는데, 펜스와 펜스 사이에 각 업체의 마크가 있는 현수막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구역 설정을 합니다. 바퀴 달린 고무지주(지지대)에 펜스 파이프를 꽂고 최대한 넓게 구역을 정합니다. 옆자리에 팀이 들어오면 서로 구역에 대한 신경전이 잠깐 벌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몇 개월 후면 나갈 것을 알기에 서로 적당히 구역을 정합니다. 그리고 문까지 설치하면 완벽한 지붕 없는 게르(몽골식 텐트)가 완성됩니다.
다각형의 펜스로 둘러싸인 샵장을 보면 과거 생물 시간에 배운 세포벽이 떠오릅니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 최대한의 영역을 차지하는 세포들, 조밀조밀하게 각각 붙어 있는 세포와 육각형의 세포벽이 떠오릅니다. 그 어느 것도 정확한 육각형이 아닙니다. 각자 환경에 맞춰 둥글둥글 맞춰가며 세포들은 존재합니다. 세포벽에서 여러 영양소가 들락날락합니다. 우리 팀도 문으로 만든 펜스를 통해 사람과 자재, 테이블 리프트 차량까지 들어왔다 나갑니다. 더 많은 팀이 들어오면 펜스 개수를 조정해서 영역을 좁힙니다.
참으로 유기적입니다. 황량한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자연스러운 생물의 ‘대사 과정’을 목격합니다. 매일매일 우리는 미토콘드리아처럼 세포 안으로 들어와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샵장의 면역 반응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보면 개미들의 의사소통 과정이 나옵니다. 개미들은 페르몬 분비를 통해 어떤 계급인지, 같은 둥지의 개미인지 다른 곳에서 왔는지, 이 개미가 어딜 다치고 손상되어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우리도 비슷합니다. 다른 점은 페르몬이 아니라 안전모를 통해 대화합니다.
예를 들어 ‘동아 중공’이라는 업체가 있습니다. 처음 들어오면 안전모에 여러 스티커를 붙입니다. 왼쪽에 이름, 오른쪽에는 업체명을 크게 붙입니다. 멀리서도 반장의 이름이나 소속을 알 수 있기 위함입니다. 동아중공에서는 전기, 시설, 안전 등 다양한 공사를 맡았습니다. 팀장을 중심으로 여러 팀들로 나눕니다.
이 펜스만 보면 어디든 출입 가능! 물론 허락은 맡아야 합니다^^
안전모에 ‘동아 중공’이라는 스티커가 있는 한 우리는 모든 ‘동아 중공’ 펜스가 있는 샵장에 출입 가능하고 자재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A팀의 반장이 다른 팀 샵장에 들어가는 건 언제나 같은 업체일 때만 가능합니다. 저 또한 우리 팀에 없는 자재를 구하러 현장을 돌아다닙니다. 그때 원하는 자재가 있는 샵장이 있습니다. 순간 업체를 확인합니다. 같은 업체인 걸 확인하고 당당하게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다들 경계하지만 안전모에 붙어 있는 업체를 보곤 경계를 풉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재를 챙겨 나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다가오면 경계부터 하지만 같은 업체 소속이면 자연스레 자재들을 내어줍니다. 마치 면역 반응 같습니다. 누군가 세포로 접근해 올 때 항체가 형성되려다 같은 업체면 항체 대신 영양분을 공급하는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만약 다른 업체에서 다가온다면 일단 그 사람의 이름이나 업체, 팀장의 이름을 외워 놓고 도와줍니다. 타업체라고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곳은 변수가 워낙 많은 곳이라 저 또한 타업체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상당히 빠르게 이루어집니다. 말이 먼저 나오기 전에 서로의 안전모를 확인합니다. 안전모에는 업체 이름, 반장 이름, 팀장 이름까지 모두 적혀 있기 때문에 추적이 쉽습니다. 그래서 누구든 그 사람의 얼굴보다 안전모를 슥 보고 도와줄지 무시할지 결정합니다. 개미들에게 페르몬 체계가 있다면 우리 기술인들에게는 안전모 소통 체계가 있습니다.
모든 대사 과정의 끝은 사멸과 새로운 탄생
시간이 흐릅니다. 처음 왔던 그린 3동은 서서히 완성되어 갑니다. 처음 왔을 때는 황량한 골조만 있던 건물이 어느 순간 벽이 세워지고 전기가 들어옵니다. 비어 있던 층들에 빠르게 장비들이 들어옵니다. 거대한 펌프, 배수조, 수백 개의 모터들이 설치됩니다. 저는 거기서 개미처럼 이곳저곳을 누비며 장비들을 점검합니다.
한여름, 예전 같았으면 땀을 비 오듯 흘렀지만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며칠 전 점검한 공조기가 가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한여름에는 에어컨이, 겨울에는 히터가 나올 것입니다. 점점 환경이 쾌적해지기 시작합니다. 샵장은 계속 이동하면 조금씩 쪼그라듭니다. 팀들이 나가기 시작합니다. 세포 같았던 샵장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그때 즈음, 오랜 경력을 가진 반장님이 한마디 합니다.
“이제 슬슬 나갈 때가 되었구나.”
그렇습니다. 환경이 쾌적해지고 우리 같은 안전모, 노동복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 정식 근무복을 입을 사람이 ‘정상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우리는 떠납니다. 샵장도 자연스럽게 자재들은 창고로 돌아가고 공구함은 새로운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우리 팀은 23년 6월 즈음 그린3동을 끝내고 한두 명씩 옆 P4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던 샵장에는 새로운 펌프와 압축장비가 설치되었습니다. 샵장은 그렇게 사멸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골조만 있는 P4에서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그곳에 가니 또다시 우리 팀원과 새롭게 합류한 팀원들이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시설팀과 합류해 더 크고 쾌적한 샵장이 생겼습니다. 다양한 자재들과 전기, 무려 컴퓨터까지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삼성 래미안 못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거대하고 단단한 건물과 장비로 이루어진 현장 속에서 이런 유연함은 뭔가 인생과 삶의 아이러니와 조화를 깨닫게 합니다. 예전엔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라는 고집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팀이 들어와도 유연하게 펜스를 조정하면 됩니다.
이것이 샵장의 구조입니다.
그림이 좀 지저분하고 허접하지만 저에겐 참 아늑한 곳이었습니다. 샵장의 유연한 형태는 제 삶에서
'그럴수도 있지'
'바뀌어야 하는건 남이 아니라 나 자신' 등의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허접한 그림과 함께 적어봤는데, 여러분들에게 조금 재미있게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옷걸이는 항상 분쟁의 소재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편하고 홍대 니치마켓의 느낌이라 좋았는데 관리자들은 지저분해 보인다, 도난우려가 있다는 말로 계속 치우려 하더라구요.
나중에 책 발간 하시게 되면 뭔가 제목으로 좋아 보여요.
참 즐겁게 읽었습니다.
어릴때 알바는 노가다 잡부 인생이었어서..
더 정겹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