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현재 평택에서 숙식 노가다를 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계시고
쪽지들도 보내주셔서 좀 더 자세히 적으면서 연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글은
(1)평택 고덕 삼성반도체 건선현장 숙식 노가다 체험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784024
(2)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숙식 노가다(2)-고덕의 하루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16539
(3)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3) - 하나도 못 알아 듣다, 언어의 전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24903
이곳을 참고해 주세요: )
(4)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4) - 어쩌다 이곳에? 당연히 돈 때문에 왔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38875
(5)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5) - 이모(E-Mo) 네트워크 이야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49953
(6)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 최근 소식, 이모(E-Mo) 네트워크가 특별한 이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63337
(7)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두 계단 위에 서 있는 사람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78405
(8) 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 이곳은 AI로부터의 피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93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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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굉장히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그동안 현장쪽 일이나 개인적인 일이 너무 바빠 고덕 이야기 연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또 글을 안쓰기 시작하면 계속 못쓰는 스타일이라... 어떻게든 주절주절 최근 근황부터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슬로우 다운
최근 삼성이 -95%라는 엄청난 적자를 보면서 몇달전부터 거의 모든 공정에서 슬로우다운, 즉 공장 짓는 속도를 늦추기로 했습니다. 사실 삼성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가 슬로우 다운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95%라는 수치도 사실상코로나 특수로 인한 매출을 올린 것이라 비교 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슈카 방송을 봐도 엄청난 현금으로무차입 경영(대출 없이 사업-_-...)을 하던 삼성이 오히려 대출을 받아가며 공격적으로 5배럭(5번째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증권가 소식을 봐도 반도체 산업은 사이클이 있고 지금은 잠시 소강상태일 뿐이다 하는 관점도보입니다.
그럼에도 현장의 분위기는 춥습니다. 일단 작년 11월 즈음과 비교에 사람이 굉장히 줄었습니다. 뭐든 고점에 물렸다라고하지요, 작년 말 까지만 해도 고덕 하면 원화 채굴의 성지랑 불렸습니다. 전국에 있는 노가다인들과 조선소의 인력들이모여들었습니다. 여기에 주식, 코인 갤러리에서도 ‘물리면 고덕으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습니다. 7시 업무 시작에 6시에 도착해도 게이트 통과만 20 분 넘게 걸린적도 많았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한산합니다. 특히 주 6일이 기본이었는데 일을 줄이면서 주5일로 전환한 업체들이 많아졌습니다. 토요일에 가보면 ’우리만 출근하나‘ 싶을정도로 조용하고 쾌적(?)해졌습니다.
일이 줄어들다 보니 그만큼 공수도 줄어들었습니다. 저와 같은 숙소를 생활하는 타업체 분은 아예 연장 없이 오로지 1공수, 주 5일만 근무한지 3개월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최근에 다시 주말 근무가 생기긴 했지만 과거의 영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공수입니다.
보통 연장 하면서 공수가 빠르게 늘어납니다. 연장이 없고 주 5일만 한다면 한달에 20공수 밖에 안됩니다. 여기에 기본일당을 곱하고 세금을 떼면... ’이렇게 일하려고 내가 고덕까지 왔나‘ 현타를 느낄 정도의 급여를 받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만두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혼이기 때문에 누구를 책임질 필요가 없지만 가정이 있으신 분들이나 매월 막대한 이자를 내고 있는 분들에게는 가혹한 시기일 수 있습니다.
같이 생활하시는 분도 가정에 보내는 돈이 지난번보다 -100, 200만원 줄어들자 집에서도 ’꼭 거기 있어야해?‘ 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예 와이프 분께서 ’주말에 쉬지 말고 차라리 쿠팡에 가는 건 어때?‘ 라고 말하기 까지 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결국은 주말 근무를 하는 다른 현장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어떤 분도 너무나 줄어든 공수에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숙식이 무상으로 제공되니 조금만 아끼면서 생활하면 어떨까요 라고 물었지만,
“저만 아끼면 뭐하나요... 집에서는 그러지 않는데”
라고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말 알바를 시작한 분들도 많이 보입니다. 편의점 알바나 쿠팡캠프, 배민 배달 등 말이지요. 여기서는 쉬는것이 또 하나의 죄가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줄어든 공수로 투잡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여기 온 대부분이 돈을 바라고 왔기 때문에 목적이 흔들거리자 당연히 이곳에 온 이유도 흔들리기시작한 것입니다. 가장 큰 손해를 보는 분들은 작년 말 이곳이 계속 일거리가 넘쳐날 줄 알고 대출을 받아 이곳에 주택을구입하거나 전세를 들어가신 분입니다. 일은 줄어들고 금리는 오르니 월급의 절반 이상이 원금이자로 나가버리거나 심하면 생활비조차 위협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괴로운 시기입니다. 여기에 가스비, 전기비도 오르니 어떤 팀장은 숙식하는 팀원들에게 어쩔 수 없이 월세를 걷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또 어떤 분들은 셋이서 아파트 월세를 얻었다가(월세가 높습니다) 한분이 나간다고 하자 월세를 둘이서 나눠 내야 하는데 굉장히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편으론 일이 없는 시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작년에는 조기 출근에 연장, 야간까지 하며 인간다운 삶을 내려놓고 돈을 벌다가 갑자기 9-6 직장인, 공무원이 되어버렸습니다. 재미있는 건 시간이 남아돌자 주변에서 보이는 삶의 변화입니다.
주 5일에 7-5, 직장인들 눈에는 너무나 평범한 삶의 패턴이지만 이곳 노가더들에게는 평소에는 경험하기 힘든 삶의 패턴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조금 무리가 있지만, 수용소 생활에서 자유민의 삶으로 돌아왔다고 해야 할까요. 가장 큰 변화는사람들이 취미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악기를 조금씩 배우기시작합니다. 또 항상 연장, 야간에 퇴근하던 사람들이 이제 저녁에 시간이 남기 시작하자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녁 이후의 삶’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지요.
시간이란 참 신기합니다. 돈을 벌게 해주기도 하고 이렇게 삶의 여유를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과거 학원 선생님이었을 때원장님과 합의해서 주 4일을 일한 적도 있습니다. 월급은 적었지만 그 당시 받던 스트레스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던 경험을 했습니다. 미술학원에 9년 가까이 일했던 것도 주 4일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만둘까 싶을 정도의 스트레스가 쌓이다가도 주3일을 쉬고 나면 금세 다시 수업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선생님 한분이 그만두면서 다시 주5일을 일하기 시작했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와 피곤함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주 6일을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인간관계의 많은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매주 나가던 독서모임은 아예 불가능해졌고 평소 지인과의 카톡도 너무나 피곤해서 대부분 피상적으로변하고 결국은 끊키게 되었습니다. 참 슬픕니다.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돈과 맞바꾸는 기분입니다. 친구들이 ’아 나도 고덕으로 갈까‘ 라고 하며 자신의 현재 직업을 한탄할 때 지금 너의 네트워크 절반 이상이 끊킨다고 생각해 보라고 권합니다.
슬기로운 슬로우 다운 생활
이런 와중에 주변에서 보이는 다시 주 5일로의 변화, 단 하루의 여유가 보여주는 삶의 변화들은 흥미롭습니다. 표정에는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남는 시간에 이전에 할 수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들이 신기합니다. 삶에 빈 공간이 생길 때 그곳에 무엇을 개인마다 다채롭게 채우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분명 과거 주 5일 할 때 있을 법한 모습이지만 여기서 다시금 주 5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과거 주 6일을 일하던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기억에는 매일 TV만 보고 나가기 귀찮아 하던 아버지 세대가 떠오릅니다. 어머니는 어디든 그렇게 가자고 해도 귀찮아하고 멀리가기 싫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주6일을 일하면 똑같이 행동할 거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런 아버지들이 주 5일, 4일을 일해도 똑같았을까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가족들과 새로운 시도를 했을 테고 더 풍족한 삶을 살았을것입니다.
세상은 여기서 한발 더 앞서나갑니다. 이제 주 4일을 이야기 하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주 4일을 몇년전에 미리 해본 결과, 근속연수는 당연히 늘어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돈을 소비합니다. 월급은 적었지만 행복이라는관점에서는 최고 수치였지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기업에서는 월급을 줄이지도 않고(!) 주 4일을 계획하고 있다니 직장인 입장에서는 최고의 축복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번 글에서 AI가 아직은 이곳을 점령(?)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두달이 지난 지금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점령당하고있는게 보입니다. 굳이 클리앙이 아니더라도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온갖 종류의 자동 생성 툴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렇게 빠르게 세상이 변하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우연히 친구들과 들린 파스타집에는 이미 서빙 로봇과 키오스크로2명의 종업원이 수십명의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1~2년 안에 기본소득이 실시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때가 되면 지금 고덕의 슬로우 다운 모습의확장판이 보여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군가는 투잡, 쓰리잡을 할 테고 또 누군가는 적게 벌지언정 하고 싶은 공부나 악기를 배울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결국 현실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입니다. 슬로우 다운이 꼭 인생의 슬로우 다운이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생긴 소중한 시간, 매일의 빈 공간을 소중한 것으로 채워가는 게 가장 지혜로울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기간 동안 안전히 마치시기를 기원합니다. :)
그래서 쿠팡으로 가시는분도 많습니다
연장근무 다 사라지고...원래 근무시간만 하더니...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더라구요...
숙소의 냉장고에는 식권과 맞바꾼 음식들이 항상 가득해 있어서...
먹는거에는 딱히 부족함 없이 지냈었네요....\
그때 당시 숙소가 궁리의 한 아파트였었는데...
고덕에서 일하는게...거제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편하긴 편하더라구요ㅎㅎ
이부분이 참 씁쓸하네요.
무슨 돈 벌어 오는 기계도 아니고;;;;
무슨 ATM 취급 하는거 같네요;;;
그럼 맞벌이라도 하던지
저렇게 노골적으로 말을 하다니;;;;
듣는 사람은 얼마나 속상하고 부담감 느끼고 힘들지;;;;
참 씁쓸하네요ㅜㅜ
아무래도 그렇죠.
근데 집 식구들도 나름 아낀다고 아끼는데도 부족한 경우가 있더라구요.
성인보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다는 것, 먹고 싶다는 것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고요.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상황을 듣고 나니 집사람은 말은 못해도 속 많이 힘들었겠구나 했습니다.
게다가 아이가 어찌 알았는지, 다니는 학원을 빼고 무료로 하는 곳으로 바꾼다고 하니
뭐랄까 내가 능력이 이것 뿐이 안되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여하튼 이런 상황에는 식구들이 서로 자주 상황을 공유하고 의견도 모아보고 해야지,
오해도 없고 큰 응어리가 없지 싶습니다.
아이들은 아빠 혼자 키우는게 아니고 부부가 함께 키우는건데 뭔가 금전적으로 불편하다면
해결책은 맞벌이 뿐이 없죠. 애가 아직 초등학생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요.
그냥 이해는 하지만 본문 글쓴이님이 썻던 거 처럼 와이프가 저렇게 대놓고 남편한테
노골적으로 저런 말을 하는것을 들으면 씁쓸할것 같아서 댓글 달았습니다.
차라리 기분 안 나쁜 방향으로 돌려 말하던가ㅜㅜ
그쵸.
나는 타지에서 죽을동 말동 고생하고 한푼 아낄려고 눈치 봐가면서까지 일하는데...
서럽다, 서글프다는 느낌도 들고...
그럴 때 느끼는 감정은 참...
주말에 쿠팡 물량도 없다는거죠…
쿠팡 전업도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잘 읽고 있슴니다
이 말이 너무 속상하네요...
일이 힘든은 없지만 보조공으로 일하면서 공수가 줄어들면 돈도 안되고 허망합니다.
그래서 전기나 배관 용접 보조공 일하시면 평택을 떠나기전에 많이 연습해보셔서 준기공이나 기공되면
계속 반도체일을해도되고 아니면 집에 내려가셔서도 먹고살만큼은 됩니다.
자기가 물건사서 연습하려면 돈이 많이드는데 해볼수있는건 다해보셔요. 항상 건강하십시오.
잘 읽었습니다. 몸 건강 마음 건강하십시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