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현재 평택에서 숙식 노가다를 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계시고
쪽지들도 보내주셔서 좀 더 자세히 적으면서 연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글은
(1)평택 고덕 삼성반도체 건선현장 숙식 노가다 체험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784024
(2)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숙식 노가다(2)-고덕의 하루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16539
(3)평택 고덕 반도체 공장 노가다(3) - 하나도 못 알아 듣다, 언어의 전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7824903
이곳을 참고해 주세요: )
글을 연재하면서 많은 분들의 응원과 위로의 댓글과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트위터에서는 아예 제 글을 링크 중계(?)하는 분까지 계시네요-_-와우..
무엇보다 많은 분들이 쪽지로 더 구체적인 정보들을 여쭤보십니다. 어떤 분은 대뜸 얼마 버냐, 자기소개도 없이 무작정 일 소개해 달라는 분이 계시고 반대로 본인의 소개와 함께 굉장히 정중하게 물어보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제 4개월 된 노린이(?)로서 직종을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부정확한 정보를 포함할 수 있기에 소개해 드리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대신 몇몇 분들은 제 고인물 친구를 동원해서 알아보면서 도와드리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제일 먼저 하는 일
만약 여러분이 이제 밴드나 지인을 통해 고덕으로 오게 되면 맨 먼저 하는 일은 당연히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입니다. 대부분 사무실이 평택 지제역 근처에 몰려있습니다. 그곳에서 컨테이너박스에 모여 옹기종기 앉아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상용 일용직 계약서 한 장짜리를 작성하는데 원래는 복사본을 줘야 하지만 주지 않습니다-_-; 뭐 그런 거 따지는 사람도 없고요.
그리고 신체검사를 받습니다. 여기서 주의하실 것은 고혈압 유무입니다. 고혈압인 경우(제 기억에 130 정도였습니다) 삼성 엔지니어링에 소속될 수 없습니다. 대신 삼성물산의 산하 업체에 들어가야 합니다. 둘의 차이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물산이 좀 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이 많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이 온다는 것이죠.
이후에는 교육이 있는데 보통 다음날에 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때부터 1 공수로 계산해 줍니다. 교육은 오전 중에 끝나고 오후에는 업체에서 기본적인 장구류를 지급합니다. 하이바, 안전화, 절연화, 고글, 생명 벨트 등 기본적인 업무가 가능한 상태의 아이템을 지급합니다. 이렇게 5시가 되면 1 공수로 계산합니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것 같습니다. Lv.1의 캐릭터, 기본적인 무장만 한 채로 게임을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일하다 보면 고레벨들은 온갖 아이템으로 무장한 걸 보면서 점점 장비 욕심도 생기곤 합니다^^
일에 점차 익숙해지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되었어요?”
“이전에 무슨 일 했어요(어쩌다 여기에)?”
입니다. 가로 안의 ’어쩌다‘는 실제로 말하지 않지만 뉘앙스는 동일합니다. 그만큼 이곳은 사람들이 원해서 오는 곳은 아닙니다. 물론 처음부터 건설에 뜻을 품고 팀장을 꿈꾸거나 기술자가 되려고 온 사람들도 있자만 99%는 다양한 사연들이 있습니다.
초반에 남는 시간에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나’ 토크쇼가 벌어집니다. 몇 가지 소개를 하자면,
센과 치히로 유형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해 이곳에 온 케이스입니다. 생각보다 은근히 많습니다. 부모님의 사업이 망하거나 잘못된 투자를 해서 집안에 막대한 빚이 쌓인 경우입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일을 겪어봐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제일 안타까운 케이스입니다.
돈을 아무리 벌어도 대부분을 집에 송금하고 본인은 물건 살 때도 하나하나 신중히 사고 최저가로만 구입하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정말 잘생기고 성격도 좋은데 빚만 아니면 얼마나 신나게 인생을 즐기며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멋진 친구도 있었습니다.
사업실패로 인해 복구자금 만들기
이 부분도 많습니다. 제 주변뿐만 아니라 ‘시사기획 다큐’를 보니 많은 분들이 코로나로 인해 폐업하거나 다시 시드머니를 모으기 위한 분들도 많이 오십니다.
투자 실패
뭐,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코로나 시절 ‘벼락 거지’라는 말이 유행했던 만큼 너도 나도 주식, 코인, 공모주, 부동산 투자를 안 하는 것이 비정상인 시대였습니다. 이미 주식 게시판이나 코인판에 ’ 고덕‘으로 검색해도 한강 가기 전 마지막 보루로 고덕이 나오는 실정입니다-_-
재미있는 건 여기 일하는 분들도 무엇하나 들어갔다 물린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90%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다들 아무 말 안 하다가 친해지고 돈 얘기가 나오면 결국...
아이러니한 건 삼전에 투자했다 물린 사람들도 상당히 많습니다-_ㅜ ㅋㅋㅋ
(물린 돈을 여기서 되찾는다?!)
학비 충당, 학자금 갚기
고덕에 와서 놀란 점이 일반 공사현장과는 다르게 20대 비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특히 군대 다녀와서 학비를 벌려고 오는 케이스도 많고 졸업 이후에 학자금을 갚을 목적도 많습니다. 실제로도 상당히 매력적인 방법입니다. 일반 직장에 들어가서 생활비 충당하며 학자금을 갚으려면 꽤 오래 걸리지만 이곳에 와서는 몇 달 걸리지 않으니까요. 우리 팀원 중 한 명도 불과 세 달 만에 학자금을 다 갚고 더 일하고 있습니다.
취업 실패 또는 취업자금(?) 준비
경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몇 달 일하고 그 돈으로 신림동으로 간 친구도 있습니다. 제 룸메 중 한 명도 계속 부모님 용돈 까먹으면서 취업준비 하느니 차라리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까지 이곳에서 일하겠다 결심하고 왔다고 합니다. 예전에 장교 전역 후 퇴직금 까먹으면서 전전긍긍 취업준비를 했던 저와는 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대견하고 부러웠습니다.
결국 다들 스토리가 있습니다.
사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왔습니다. 최근 들리는 얘기로는 금리인상과 경기 침체로 여기로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주식게나 코인판에서도 ‘안 되겠다 고덕 가야겠다’ 류의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옵니다.
그만큼 여기서는 가장 큰 목적은 돈입니다. 저 또한 실업급여를 위해 처음에 들어왔고 또 지금도 계속 일하게 하는 원동력 중 큰 부분은 돈입니다. 자아실현을 위해 직장을 다니는 분들의 눈에는 어쩌면 안타까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목적이 분명해서 오히려 불편함이 없습니다.
왠지 돈이 목적이라면 서로 내 돈! 내 돈! 거리면서 발버둥 칠 것 같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깔끔합니다. ㅈ소기업의 어설픈 비전보다는 얼마동안 일해서 얼마를 벌어야지라는 비전이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누구나 돈 때문에 온 곳이고 돈 때문에 일한다는 게 너무나 당연해서 어설프게 직업의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일을 잘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단가를 올려주고 나중에 팀장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너도 나도 돈 때문에 여기 왔다 ‘라는 게 기본 생각입니다.
이게 왜 좋냐면 서로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여기가 평생직장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어느 날 그만두어도 이해하고 다시 들어와도 이해해 줍니다. 다들 ’ 그럴만한 사연이 있겠지..‘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습니다.
또 돈에 따라 팀을 옮기거나 팀이 업체를 옮기는 일도 흔합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악몽 같을 수 있지만 철저하게 스스로 몸값을 올리거나 일이 많은(공수가 많이 나오는) 곳으로 옮겨가도 누구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인터넷에 떠도는 ㅈ소기업에서 강요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요받지 않습니다.
몸과 몸이 부딪혀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팀원의 퇴사와 입사에 대해 다들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럼 서로 관계가 굉장히 차가우냐? 그건 또 아닙니다. 매일 12시간, 14시간씩 서로 ’ 몸으로‘ 일하다 보니 안 친해질 수가 없습니다. 일반 사무직과 다르게 이곳은 자신의 몸으로 돈을 법니다. 배관공은 컷쏘(Cut Saw)로 한 명은 자기 몸만 한 배관을 잡고 한 명은 자릅니다. 컷쏘의 진동이 고스란히 잡고 있는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8 미터 천장까지 닿는 T/L(Table Lift)에 탑승한 사람들은 흔들리는 바구니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천장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앵커를 박습니다. 서로 의지를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잘 맞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있으면 당연히 싫겠죠. 일반 사회와 같습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몸과 몸이 서로 닿고 의지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인간적인 유대감이 훨씬 쉽게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훈련소의 동기를 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는 까닭과도 같습니다. 함께 몸을 구르고 고생하면서 친해지니 말이죠.
제가 이곳에 온 지도 이제 4개월이 되어갑니다. 이제 슬슬 제 아래 후임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하나같이 어린 친구들입니다. 당연히 돈 때문에 왔을 겁니다. 삶의 밑바닥이든 어디든 간에 용기 내서 이곳에 온 친구들이 대견합니다. 어설픈 비전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직시한 친구들이 멋집니다. 전전 긍긍하며 돈 때문에 작아지고 급하게 아무 곳에나 가려는 제 과거의 모습과 비교됩니다.
돈, 어떻게 보면 안타깝지만 현실을 직시한 사람에게는 고덕은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의 사람들이 좋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매일 4시 30분에 일어나 하루 12시간, 14시간 일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참고로 공장 내 사진은 보안으로 촬영할 수 없기에 근처 다른 곳의 크레인을 찍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소위 쿵짝 잘맞는 분들끼리 반도체 공사현장만
돌아다닌다고 하더군요
반도체단지가 365일 내내 공사를 하거든요
끊임없이 일이 있어서 아예 팀을 꾸려 돌아다니신다는거
같습니다
유튜브 이과장님 느낌으로 재밌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고덕의 여건이 좋고(막노동보다 안전함) 남학생이 하기엔 패스트푸드나 고깃집 알바보다 훨씬 낫습니다(알바 비하가 아니라 제가 학생때 해봐서..ㅎㅎ)
겨울철 날씨조심하시고 몸 조심해서 일하십시요.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내가 본 경우는 베트남에서 가이드하면서 가족까지 두고 생활하다가 모국에 부모님 걱정에 들어왔다가 국가봉쇄로 1년 넘게 못넘어가고 매일 카톡으로 화상통화하는 전직 베트남가이드남자.
브라질에서 꽤 크게 의류도매업으로 돈 잘 벌다가 역시 코로나사태로 한국에 피난온 가족.
브라질에서 25년을 살았다 함.
재산과 기반이 브라질에 있는거죠.
부부가 같이 아파트전세로 살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오랜외유생활로 마인드나 여러가지 문화충돌이 있었음.
한두해 더 벌다가 브라질 가서 하던 거 청산하고 콜롬비아로 넘어가서 즐기며 살겠다고 함.
올겨울은 유난히 추워서 3~4개월 쉬면서 동남아 여행을 즐기고 있음.
날 따셔지면 다시 현장 들어온다고...
중국에서 사업체를 굴리다가 역시 봉쇄령에 한국으로 들어온 50대 미모의 이모.
조만간 중국으로 넘어가서 사업적 모색을 한다 함.
건강하시고 다음 글 기다리겠습니다.
직장/일자리 라는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네요.
응원합니다~!
저를 비롯한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알게 되어 많은 것을 배웁니다. 소위 막노동이라 불리는 곳을 '제대로' 알게 되니 출근길마다 보이는 건설 현장과 일하는 분들이 달리 보이네요.
돈 아니었으면 몰랐을 인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인연짓기 위해 돈이라는 매개체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GM 공장안에서 설비 설치 혹은 설비 제거 같은일을 주로 했는데 제가 고용된 회사는 GM이 아니고 IICC라는 다른 업체 였습니다.
글을 참 밝게 잘 쓰시네요. 부러운 재능이십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래요.
저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일요일에 공사판을 다녔었습니다.
당시는 용돈벌이 였는데 어려서인지 주변에 같이 가신 어르신들이 잘 챙겨주셨고 나름 즐거웠던 추억이었어요~
(당시 학생에게는 하루벌이가 꽤 큰돈이었구요~ㅎㅎ)
여러가지 삶의 이야기를 들었고 인생공부도 되었기에 좋은 경험으로 현재의 저를 만드는 양분이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몸 건강히 원하시는 바 이루시길 응원합니다~!!
뭣보다도 잘 아시겠지만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보면서 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막 퇴사하고 현장에 가고 싶은 그런 충동이 잠깐 스쳐지나간달까요. (일이 재밌어보여서 아니라..온전히 글로 매료 됐네요)
항상 안전하고 건강 잘 챙기시길요.
오랜만에 뭔가 시원하게 읽히는 글이었던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화성 현장에 삼성엔지니어링 하도급 업체로 들어가 현장소장으로 근무했었는데
너어어어어무 힘들어서 머리가 왕창 빠졌던 기억이 있네요.
새벽같이 출근해서 체조하고 작업내용 발표하고 TBM하고 작업시킨후 돌아와서 서류 작성하고 또 서류 서류 서류 ㅠㅠ
안전 부적합 사항 나오면 안전팀 찾아가서 빌고, 작업자 교육시키고.... 작업 효율이 안나와서 너무 스트레스 받았어요...
필력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