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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시대에도 남자는 같은 고민 했을겁니다.

상식이쵝오 · · 수정

조회 1,247 · 공감 0 · 댓글 6


매일  퇴사, 돈 고민 하는것처럼

그때에도 남자들은 비슷한 고민 했을겁니다.


오늘은  어디쯤에 들소떼가 있을까?

저번에  창던질때  팔꿈치가 삐끗해 빗나갔는데

이번에도 그러면 굶을텐데.

들소중에 나한테 돌진하는 똘개이가

있으면 누구뒤에 숨어야 하나..

사냥 간 동안  표범이 마누라, 아들 습격하진 않겠지?

뒷동굴의 그놈이 마누라 눈독 들이던데

이번 사냥할때 저걸  돌로 찍어버릴까?


아마도 이랬을겁니다

좋게보면 

자연의법칙 대로 잘 살아간다는 증거죠.


근데  힘들긴 합니다.




댓글 6

  1. liberal · · 공감 1
    원시시대엔 마누라 아들 개념이 없었습니다.
    일부일처제 개념은 기독교의 확장과 함께 생긴 근현대 문명의 산물이라고 봐야합니다.
  2. 상식이쵝오 · · 공감 1
    @liberal님
    네?

    일부일처는 기독교와 상관없이
    전대륙 인류의 공통문화 입니다.
  3. pcbd · · 공감 1
    @상식이쵝오님 언급하신 시기(구석기 쯔음?)라면 모계사회였을 가능성이 더 크죠....
  4. liberal · · 공감 1
    @상식이쵝오님
    '원시시대' 라고 하셨잖아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일부일처를 추구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그냥 현대사회의 구조에 일부일처가 적합해서 일부일처제가 자리잡았을 뿐이죠.
    지금처럼 남성권력이 강한 것도 농경시대 이후에나 그랬던거지 원시시대에는 모계혈통사회가 훨씬 많았습니다.
    '남자가 부인을 지킨다' 라는 개념 자체가 농경시대 이후의 산물 같은거에요.
  5. 세온 ·
    @상식이쵝오님
    서구권은 고대 그리스에서 기독교로 이어져 일부일처가 제도화 된 것이지요. (왕조차도 지켜야하는)

    다른 문화권은 일부일처가 제도적으로 강제된 것이 아닌 경제적 상황에 의한 자연스런 결과고요.
    (능력만 있으면 다처가 가능했지요.)
  6. apnetwork ·
    그래서 아담과 이브가 상징적인 신화로 비유가 되죠.
    뱀이 사과를 따먹기 전 : 수렵채집사회
    뱀이 사과를 따먹은 후 : 농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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