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우엘베크: “프랑스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것은 불만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이상 경찰과 사법부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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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우엘베크: “프랑스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것은 불만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이상 경찰과 사법부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페인 ABC | 브루노 파르도 포르토 | 빌바오 | 2026년 10월 30일 (10월 31일 수정)
2026년 빌바오에서 열린 ‘하!(Ja!) 페스티벌’의 특별 초청 인사인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베크가 프랑스의 현 상황과 유럽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각성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미셸 우엘베크가 실내에서 입는 외투와 데님 셔츠, 검은색 앵클부츠 차림으로 방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우엘베크다운 복장이다. 모든 일에 다소 무관심해 보이는 남자.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작가는 언제나처럼 몽롱하면서도 깊고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다. 그는 도전적일 만큼 길고 긴 침묵으로 대화의 리듬을 조절한다. 마치 자신이 하려는 말을 심연이나 기억, 혹은 상상 속 어딘가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결국 같은 것은 아닐까?
그는 너무나 유명하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를 오해하기 쉽다. 그의 동료 작가 프레데리크 베그베데르가 오래전에 경고했듯이, 그를 그의 그림자와 혼동하기 쉽다는 것이다.
베그베데르는 이렇게 말했다.
“우엘베크는 거의 기독교인에 가까운 낭만주의적 도덕주의자인데, 사람들은 모두 그를 퇴폐적인 허무주의자로 여긴다.”
— 이러한 묘사에 동의하십니까?
— 그렇다. 기독교에 관한 부분만 제외하면 베그베데르의 말이 옳다. 나머지는 모두 사실이다.
— 그런데 사람들은 왜 당신을 허무주의자로 생각할까요?
— 자기 시대의 가치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허무주의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를 그다지 믿지 않는다. 건강이라는 가치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나는 우리를 둘러싼 가치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언젠가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기만 해도 사람들이 당신을 허무주의자로 취급한다고. 그런데 이 말이 갈수록 더 사실이 되고 있다.
— 오늘날 흡연자는 의심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의심받는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 지금 사회에는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려는 대단히 강력한 의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전자담배의 경우를 보면 더욱 분명하다. 전자담배는 주변 사람들에게 해롭지 않다. 적어도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그런데 왜 지금 전자담배를 일반 담배만큼이나 금지하려 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내 생각에는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코로나19 시기에 이미 그런 현상을 목격했다. 많은 사람이 정말로 기뻐했다. 이웃이나 가족이 무엇을 하는지 감시하고 알아낸 뒤 그들을 고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사회 전반에 통제하려는 의지가 존재한다.
[몇 가지 질문이 더 오간 뒤, 우엘베크는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전자담배를 꺼내 피운다. 그러자 마치 우리가 다시 20세기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 우리는 기묘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담배를 금지하려는 사회 가운데 상당수가 안락사는 허용하고 있으니까요.
— 나도 똑같이 생각한다.
[그는 잠시 침묵하며 생각에 잠긴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책을 쓰는 사람이지만, 지금 시대를 충분한 힘을 지닌 단 하나의 단어로 규정할 능력은 내게 없는 것 같다.
안락사 문제는 내가 사회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안이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프랑스 정치의 특이한 사정 때문에 해당 법안의 통과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러 일이 벌어졌고, 법안은 진전되었다가 후퇴하기를 반복했다.
국민의회에서는 세 차례 표결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표결할 때마다 안락사에 찬성하는 의원의 비율이 줄어들었다.
그 과정이 2년만 더 지속되었다면 국민의회는 이 법안을 부결했을 것이다. 실제로 상원도 나중에 법안을 거부했다.
그 문제에서 나는 실패했다. 안락사 반대자들은 실패했다. 하지만 정말 근소한 차이로 실패했다.
“프랑스인들은 폭력에 익숙해졌다”
— 당신의 소설에서 사회적 폭력이나 거리의 폭력은 결코 낯선 주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이지요. 현재 프랑스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외국에서는 놀랐을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인들은 폭력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거리에서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약탈이 벌어진다.
시위든, 국경일 축제든, 축구 결승전이든 상관없다. 언제나 약탈이 일어난다. 매번 그렇다.
그래서 최근 벌어진 일도 내게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다.
슬픈 이야기지만, 우리 프랑스인들은 폭력에 익숙해졌다.
— 어떻게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 사법제도가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체포되는 것을 점점 덜 두려워한다. 그러니 이런 일이 갈수록 빈번해지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 그렇다면 폭력의 원인은 사회적 불만입니까? 아니면 단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까?
— 불만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법부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 언제부터 그렇게 된 것일까요?
— 사실 나도 모르겠다.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기만 해도 허무주의자로 취급받는다. 이런 경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유럽의 종교적 각성
— 세월이 흐르면서 종교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종교가 죽었다고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종교가 유럽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의 힘이라고 주장하십니다.
— 통계가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통계를 믿는다.
세례받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솔직히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 몇 년간 나타난 놀라운 현상이다. 바로 이 영적 각성이라는 현상 말이다.
— 어떤 지식인도 이러한 현상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단 한 사람도, 정말 아무도 말이다.
교회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교회가 지금 일어나는 일에 가장 먼저 놀라고 있다.
— 이러한 영적 각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직감적으로라도 짐작하시는 바가 있습니까?
— 이 현상은 젊은이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런데 나는 젊음과는 너무나 멀어진 사람이다.
어쩌면 젊은이들이 무슬림들의 본보기를 따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슬림들을 보면서 신앙을 갖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그다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가톨릭교회는 그 덕을 본 셈이다.
— 피난처가 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필요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그렇다. 그렇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역시 하나의 이유다. 물론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공동의 의례가 없는 개인적 종교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런 종교를 알지 못한다.
— 당신 자신은 신앙을 갖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신앙이라는 것을 삶에서 완전히 배제하셨습니까?
— 조금 두렵다.
게다가 나는 이제 변하기에는 너무 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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