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왈, 유작가왈
: 맹자를 사랑한 논객에게 맹자가 묻다
(기획,구성:휴먼 , 자료조사,편집:AI)
유시민 작가는 오래전부터 맹자를 읽었다.
1980년대 구치소에서도 맹자를 읽었고, 훗날 '청춘의 독서'에서는 맹자를 ‘진정한 보수주의자’, ‘아름다운 보수주의자’로 다시 읽었다.
그는 맹자의 羞惡之心(수오지심)을 이야기했고, 현실의 정치와 인간을 판단할 때도 맹자의 말을 인용했다.
맹자가 오늘날 다시 세상에 와서 유시민 작가와 마주 앉는다면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나눌까.
一. 상대를 악마화한다는 것
맹자왈(孟子曰)
惻隱之心 仁之端也(측은지심 인지단야).
남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이 仁(인)의 시작이라 하였네.
그대와 뜻이 같은 사람에게만 측은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내가 仁(인)이라 했던가? 그대와 뜻이 다른 사람도 사람이고, 그대를 비난하는 사람도 사람이며, 잘못된 판단을 하는 사람도 사람일세. 잘못을 꾸짖는 것과 그 사람 자체를 악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네.
유작가왈(柳作家曰)
나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2021년 나는 내 잘못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정치비평의 한계를 벗어나 정치적 다툼의 당사자처럼 행동했고, 상대방을 악마화했으며,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확증편향에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그 잘못은 다른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습니다.
내 책임이었습니다.
맹자왈(孟子曰)
그렇다면 그대는 이미 자신의 병을 보았군. 그러나 병을 아는 것과 병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리는 것은 다른 일일세.
二. 미움이 판단을 지배할 때
유작가왈(柳作家曰)
정치에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권력이 부당하게 행사된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사람들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퍼뜨린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도 화내지 말아야 합니까?
맹자왈(孟子曰)
내가 언제 분노하지 말라 하였는가.
義(의)를 해치는 것을 보고 분노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네. 그러나 생각해보게. 그대가 義(의) 때문에 분노하는 것인가, 분노하기 때문에 그것을 義(의)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이네.
유작가왈(柳作家曰)
그래서 나 역시 내 생각과 감정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감정이 사실판단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三. 확증편향
맹자왈(孟子曰)
나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네.
我知言(아지언). 나는 말을 분별할 줄 안다. 그리고 詖辭知其所蔽(피사지기소폐). 한쪽으로 치우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엇에 가려져 있는지를 안다고 하였지. 그런데 유 작가. 그대는 다른 사람의 편향을 발견하는 데 능숙한 사람처럼 보이는군.
한 가지 묻겠네.
그대 자신의 詖辭(피사)는 누가 찾아주는가?
유작가왈(柳作家曰)
그 질문은 아픕니다. 나는 2021년에 내가 단편적인 정보와 불투명한 상황을한 방향으로만 해석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의심과 맞는 정보들을 연결하면서그것을 사실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충분한 사실적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한 것을 사과했습니다.
맹자왈(孟子曰)
그러면 좋은 것을 배웠군. 그러나 知言(지언)은 남의 말에서 오류를 찾는 기술만이 아닐세. 자신의 입에서 나오려는 말을먼저 의심할 줄 아는 것도 知言(지언)일 것이네.
四. 反求諸己(반구저기)
맹자왈(孟子曰)
나는 이렇게 말했네.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행유부득자 개반구저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모두 자신에게 돌이켜 그 원인을 찾아보라고. 정치에서 일이 잘못되면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 저 사람이 문제다. 저 정당이 문제다. 저 언론이 문제다. 저 검찰이 문제다. 저 지지자들이 문제다. 그러나 그 말을 하기 전에 한 번쯤은 “혹시 나에게도 원인이 있는가?”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유작가왈(柳作家曰)
그 점에서는 나도 여러 번 책임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통합진보당 사태 때 공동대표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물러났습니다.
2013년 정치를 떠날 때도나를 지지해 준 시민들에게 충분히 보답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2020년 총선에서 180석 이야기를 했다가 비판을 받았을 때도민주당 사람들이 한 비판을 받아들였습니다.
2021년에는 검찰의 노무현재단 계좌 열람 의혹에 대해내가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맹자왈(孟子曰)
그것은 귀한 일일세.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내가 자로를 칭찬한 까닭을 기억하는가?
子路 人告之以有過則喜(자로 인고지이유과즉희).
자로는 남이 자기의 잘못을 알려주면 기뻐했다네. 잘못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것과 누군가 내 잘못을 알려준 것을 고마워하는 것은 또 다른 단계일세.
五. 舍己從人(사기종인)
맹자왈(孟子曰)
나는 우임금과 순임금을 더 높게 보았네.禹聞善言則拜(우문선언즉배).
우는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했고,
순은 舍己從人(사기종인) 자기 생각을 버리고 남의 좋은 의견을 따랐지. 그래서 내가 말했네.
君子莫大乎與人爲善(군자막대호여인위선).
군자에게 남과 함께 선을 이루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고.
유작가왈(柳作家曰)
나도 내 편이라고 해서 항상 옳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정부 정책을 비판했고, 2026년에는 내가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던 이재명 대통령의 검찰개혁 방향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맹자왈(孟子曰)
그렇다면 다시 묻겠네.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는 것과 그대가 싫어하는 사람의 옳은 말을 받아들이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
六. “촉법”
맹자왈(孟子曰)
그런데 듣자 하니 그대는 어떤 정치적 행태를 비판하면서 일부 사람들을 향해 매우 거친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
유작가왈(柳作家曰)
그들의 행동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정치문화에 대한 강한 비판이었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맹자왈(孟子曰)
물론이지. 그러나 내가 묻는 것은 비판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닐세. 그 사람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과 그 사람 자체를 ‘촉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같은 일인가?
그대가 2021년에 했던 말을 내가 다시 그대에게 돌려주겠네. “상대방을 악마화했다.” 그때의 그대가 지금의 그대에게그 말을 한다면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七. “신발 속 돌멩이”
유작가왈(柳作家曰)
최근에는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멸칭을 사용하는 일부 지지자들을 ‘신발 속 돌멩이’에 비유했습니다. 사람에게 멸칭을 붙이는 정치문화가 결국 자신과 대통령에게도 해롭다는 뜻이었습니다.
맹자왈(孟子曰)
취지는 알겠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군. 그대는 사람을 멸칭으로 부르지 말라고 말하면서그 사람들을 돌멩이라고 불렀군.
돌멩이는 대화할 상대가 아니네.
신발에서 털어내면 그만이지.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네.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八. 民爲貴(민위귀)
맹자왈(孟子曰)
나는 이렇게 말했네.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 여기서 내가 말한 民(민)은 누구겠는가? 어진 백성만 말하는 것인가? 현명한 백성만 말하는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백성만 民(민)인가?
유작가왈(柳作家曰)
아니겠지요.
맹자왈(孟子曰)
그렇다면 그대를 욕하는 사람도 民(민)이고, 그대가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한 사람도 民(민)이며,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드는 지지자 역시 民(민)일세. 정치의 어려움은 바로 거기에 있지.
좋은 백성을 골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백성을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것.
九. “필연적인 실패”
유작가왈(柳作家曰)
그러나 지식인은 잘못된 길이 보이면 강하게 경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이재명 대통령의 검찰개혁 방향을 비판하면서 ‘필연적인 실패의 길’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이라고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 아닙니까?
맹자왈(孟子曰)
그대 말에도 일리가 있네. 군주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은 義(의)가 아니지. 그러나 나는 그대가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것을 묻는 것이 아닐세.
‘필연적’이라는 말을 묻는 것이네. 정치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수많은 원인과 변수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어찌 필연이라 말할 수 있는가?
유작가왈(柳作家曰)
강한 경고를 위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맹자왈(孟子曰)
그렇다면 더욱 知言(지언)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과 추론과 전망을 구별하고, 내가 아는 것과 내가 추측하는 것과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서로 다른 말로 표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十. 羞惡之心(수오지심)
유작가왈(柳作家曰)
선생님의 말씀 가운데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羞惡之心 義之端也(수오지심 의지단야).
부끄러워하고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이 義(의)의 시작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실제 현실에서도 이 말을 여러 차례 인용했습니다.
맹자왈(孟子曰)
그렇다면 유 작가,
羞惡之心(수오지심)의 두 글자를 다시 살펴보게.
羞(수)는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惡(오)는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것일세.
그런데 사람에게 어느 쪽이 더 쉬울 것 같은가?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것인가,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인가?
유작가왈(柳作家曰)
아마 남의 잘못을 보는 쪽이 훨씬 쉽겠지요.
자기 잘못은 잘 보이지 않으니까요.
맹자왈(孟子曰)
그렇다면 羞惡之心(수오지심)을 말할 때
惡(오)만 크고 羞(수)가 작아져서는 안 되겠군.
남의 잘못에 분노하는 만큼
자기의 잘못에도 부끄러워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유작가왈(柳作家曰)
그렇겠지요.
맹자왈(孟子曰)
그러면 내가 그대에게 묻겠네.
그대가 2021년에
상대를 악마화했고,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으며,
확증편향에 빠졌다고 스스로 돌아본 것은
羞(수)였는가?
그렇다면 그 이후 다른 사람의 잘못을 꾸짖을 때에도
그때 발견한 자기 안의 잘못을 함께 살펴보았는가?
남의 잘못을 꾸짖는 惡(오)는 쉽네.
자기의 잘못을 돌아보는 羞(수)는 어렵지.
그래서 義(의)는
남에게만 들이대는 칼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향하는 저울이어야 하네.
十一. 2021년의 유시민이 2026년의 유시민에게
맹자왈(孟子曰)
나는 오늘 그대에게 새로운 말을 거의 하지 않았네. 그대가 이미 알고 있는 말을 그대에게 돌려주었을 뿐이야. 그대는 2021년에 스스로 말했네.
상대를 악마화하지 말 것.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히지 말 것.
확증편향을 경계할 것.
자기 생각과 감정에 비판적 거리를 둘 것.
불투명한 상황을 한 방향으로만 해석하지 말 것.
충분한 사실적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지 말 것.
좋은 말들이네.
그러니 내가 그대에게 물어야 할 것은
“그대가 맹자를 읽었는가?”가 아닐세.
“그대가 맹자를 좋아하는가?”도 아니네.
내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일세.
그대가 2021년에 깨달았던 것을
그 이후에도 실천하고 있는가?
유작가왈(柳作家曰)
선생님. 그 질문은 왜 나에게만 하십니까?
맹자왈(孟子曰)
옳은 질문이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묻겠네. 유작가의 거친 말을 비판하면서 그대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을 악마화하지 않았는가?
유작가의 확증편향을 비판하면서 그대가 보고 싶은 자료만 찾지는 않았는가?
유작가에게 反求諸己(반구저기)를 요구하면서
그대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유작가에게 與人爲善(여인위선)을 요구하면서
그의 말 가운데 옳은 것이 있어도
그가 싫다는 이유로 버리지는 않았는가?
유작가에게 知言(지언)을 요구하면서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과장된 말은 의심하지 않고 믿지는 않았는가?
맹자가 문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맹자왈(孟子曰)
남의 허물을 재는 저울을 들었거든 먼저 그 저울 위에 자신을 올려보게.
맹자의 핵심 사상인 仁(인), 義(의), 羞惡之心(수오지심), 知言(지언), 反求諸己(반구저기), 與人爲善(여인위선), 舍己從人(사기종인), 民爲貴(민위귀)는 맹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상입니다.
유작가 역시 오랫동안 맹자를 읽고 높게 평가해 왔으며, 자신의 저서에서 맹자를 ‘진정한 보수주의자’, ‘아름다운 보수주의자’로 읽었고 현실 정치에 대해서도 羞惡之心(수오지심)을 직접 인용해 왔습니다.
이 글의 결론을 “유작가는 맹자의 가르침을 따랐다.”또는 “유작가는 맹자의 가르침을 배반했다.”라고 미리 정해둘 필요는 없고 오히려 독자가 물으면 됩니다.
맹자를 좋아하는 것과 맹자처럼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같은가?
그리고 그 질문을 유작가에게 던진 뒤, 마지막에는 자신에게도 돌려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