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정권이 장기집권하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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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정권이 장기집권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이 있더군요.
일단, 일본의 고도 성장기에 집권하던 세력이라서, 일본 사람들은 자민당 정권이 집권해야 경제가 성장한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민당 정권은 의외로 우리나라 극우적 보수 정당과 달리 상당히 중도 우파적이랍니다.
극우적 색채가 있지만, 그보다 더 강한 게 관료주의적이고 지역 파벌같은 색채라는 군요.
일본은 아직도 지방 토호세력이나 다이묘같은 전통이 남아있다네요.
1989년 일본 거품 경제 시기 직전 자민당은 소비세를 인상해서 지지율이 급락했었다네요. (인상이 아니라 신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 진보진영은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당시 소련 붕괴로 괴멸상태에 있었고,
자민당은 거품을 그저 방조하는 정책을 펴고, 방치했답니다.
그러자, 거품이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자민당 지지율이 다시 회복했고, 그로 인해 자민당이 다시 과반수를 획득했다고 하네요.
그 다음 일어난 일은 자민당은 그 지지율을 기반으로 부동산 거품을 잡기 시작했답니다.
대출규제와 금리인상을 동시해 전격적으로 실시하고, 그 결과 거품이 붕괴했지요.
어쩌면,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거 같네요.
자민당의 지위를 획득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자민당 처럼 구조적 다수를 만드는 거긴 합니다.
그게 이번 정부의 목표라면, 어쩌면 아예 틀린 길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다만, 그럴려면, 최대한 중도 우파적인 정책으로 부동산 거품을 키워줘야 하는데, 그게 어떤 경제에 충격적 결말을 가져다 주는지는 이미 역사가 보여주고 있지요.
자세한 건 출처 참고하세요.
댓글 15
그냥 풀린 돈 만큼 우량 자산에 돈이 몰리는 것 뿐입니다.
우리도 사상 최대 예산 편성하는 등 돈 열심히 푸는데.. 그러고 가격 오른다고 하면 안되는 거죠.
그렇게 돈 푸니.. 당연히 현 한은총재 성향상 금리야 올라갈 거고...
36년전 거품경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소비세 인상은 자민당이 아니라 민주당이 원전 터진거 수습한다고 증세한거죠
위 글은 36년전 일본 거품경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소비세 인상하고 20년이나 집권했는데 무슨 소비세때문에 과반수를 획득합니까?
자민당이 과반수 실패한게 거품경제 실패와 정치자금 스캔들때문이었습니다.
자민당이 36년전 1989년에 지지율 대폭락이 있었고, 그 때 소비세 신설로 과반수 지지율 달성에 실패할 뻔 했다는 글입니다. 2009년 잠깐 민주당이 집권한 건 여기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어떤 부분이 취사선택 되었을까요?
일본 거품 경제(バブル景気)의 정확한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 엔고 불황. 이를 막으려고 일본은행이 1986년 1월~1987년 2월까지 5차례 금리를 내려, 1987년 2월 공정금리 2.5%(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이 장기 완화 통화정책이 거품 형성의 직접 원인입니다 (일본은행 IMES, 재무성).�
1988년 리크루트 사건 폭로 → 다케시타 총리 사임 등 파장 (나무위키).
1989년 4월 1일 소비세(3%) 도입. '인상'이 아니라 '신설(도입)'입니다.�
1989년 5월 30일 1차 금리인상(2.5%→3.25%) → 긴축 전환. 이는 소비세 도입 불과 한 달 뒤입니다.�
1989년 7월 23일 참의원 선거 → 자민당 창당 이래 처음으로 참의원 과반 확보에 실패. 원인은 리크루트 사건 + 소비세 + 농산물(쇠고기·오렌지) 자유화 반발입니다 (UPI, IPU).�
1989년 12월 닛케이 평균 사상 최고(38,915엔). 주가는 금리인상 시작 후에도 약 7개월간 계속 올랐습니다.
1990년 2월 중의원 선거 → 자민당 20석 감소했으나 과반 유지. 배경은 ① 닛케이 고공 ② 1989년 12월 소련(동구권) 붕괴로 좌파 정당의 이미지 악화 ③ 리크루트 사건 이미지 쇄신 등입니다.�
1990년 3월 부동산 대출 총량규제, 1990년 8월 공정금리 6% 정점 → 거품 붕괴.�
글의 논리적 문제점
1. 인과 순서가 뒤바뀌어 있습니다.
글은 "소비세 인상 → 지지율 급락 → 거품 방치로 거품 폭발 성장 → 지지율 회복·과반 획득 → 그 지지율 기반으로 거품 잡기(대출규제+금리인상) → 붕괴"라는 인과 체인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금리인상(긴축)이 1989년 5월에 이미 시작됐습니다. 즉 소비세 도입(4월) 한 달 뒤이고, 참의원 패배(7월)보다도 앞입니다. "지지율이 회복된 뒤 그 지지를 기반으로 거품을 잡기 시작했다"는 설명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긴축은 지지율 회복 이전에 시작됐고, 거품은 긴축이 시작된 뒤에도 한동안 더 부풀었습니다.
2. '소비세 인상'이라는 표현이 틀렸습니다.
1989년은 세율 인상이 아니라 소비세 '신설(도입)'입니다. 3%→5%로의 첫 인상은 1997년 하시모토 내각 시절입니다.
3. '거품을 방조·방치했다'는 단순화입니다.
거품의 근본 원인은 플라자 합의(미국 압력) 이후의 장기 완화 통화정책입니다. 일본은행은 1987년부터 긴축 전환 시기를 놓고 내부 고민했지만, 미국 주가 폭락·달러 급락 우려 등 국제적 조정 때문에 2.5% 저금리를 2년 3개월이나 유지했습니다. 즉 단순한 '방치'라기보다 대내외 구조적 요인이 얽힌 결과입니다.�
4. '지지율 회복·과반 획득'도 과장입니다.
1990년 2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20석이나 잃었고, 단지 과반을 '유지'했을 뿐입니다. 참의원은 여전히 과반 미달(네지레 국회) 상태였습니다. '지지율 회복'이라는 표현은 실상과 거리가 있습니다.
자민당 장기집권 원인 분석의 문제
"고도성장기 집권 세력이라 경제 성장 = 자민당": 부분적 사실이지만, 자민당은 1991년 이후 '잃어버린 30년' 동안에도 집권했으므로 '성장 = 자민당' 공식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장기집권의 진짜 원인은 ① 55년 체제(보수는 단일 정당, 좌파는 분열) ② 농촌 과대대표 선거제도 ③ 파벌·관료·재계의 '철의 삼각'·아마쿠다리(天下り) ④ 야당의 분열과 정책 경쟁력 부족 등 구조적 요인입니다.
"중도우파적이고 극우가 아니다": 대략 맞지만, 자민당은 빅텐트(catch-all) 보수정당으로 중도파부터 민족주의 우파까지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아베 파벌·일본회의(日本会議) 성향의 우파, 역사수정주의 흐름도 존재해 '중도우파'라는 깔끔한 규정은 과소평가입니다.
"다이묘·토호세력 전통이 남아있다": 과장된 은유입니다. 다이묘라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 다나카 가쿠에이의 니가타 기반처럼 지역 후견인·정치 기계(지역투표·관료·건설업자 유착)는 실제로 존재하며, 자민당 파벌(派閥) 문화도 사실입니다. '관료주의적·지역 파벌적 색채가 극우보다 강하다'는 지적 자체는 타당합니다.
장기집권은 '연속'이 아닙니다. 1993년 호소카와 연립으로 55년 체제가 붕괴했고, 2009~2012년 민주당 정권으로 야당 정권이 들어선 적도 있습니다.
종합
글은 흥미로운 해석이지만, 시간 순서를 재배열해 인과를 만들어낸 측면이 큽니다. 실제로는 긴축(금리인상)이 소비세·지지율 하락과 거의 동시에 시작됐고, 거품은 긴축 후에도 한동안 더 부풀었다가 1990년 대출총량규제·금리 6%로 붕괴했습니다. '소비세 인상', '지지율 회복 후 거품 잡기' 등은 사실과 다릅니다. 자민당 장기집권 원인에 대해서는 구조적 요인(선거제도·파벌·관료·야당 분열)으로 보는 것이 '고도성장 기억'보다 더 정확합니다.
예리한 분석이군요
지지율 회복 후 금리를 3.5%에서 6%로 인상한 건 사실입니다. 제가 위 인공지능 요약과 다르게 보는 건 금리 3.5% 인상을 거품을 방조하는 수준의 조치였다고 본다는 것 뿐이네요.
네, 그게 자민당 지지율 폭락으로 이어졌지요.
그때, 더 대출규제와 금리인상을 더 많이 했어야 했어야 했는데, 지지율이 폭락하자 미적지근한 정책으로 거품을 방조했다는 게 제 시각입니다.
저 당시 자민당은 철저한 친미였습니다. 오히려 미국이 우리나라에 플라자합의 요구하려면 우리나라가 친미 정권일 때 더 가능성이 클 거 가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