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톺아보기

생활상식

슬기로운 마음생활 - 목표를 이루면 정말 행복해질까?

자유^^ ·

조회 88 · 공감 0 · 댓글 2

261016_1.png

<들어가면서>

안녕하세요.
최근 글을 쓰다보면 항상 주장이라는 것은 반대의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올리버 버크먼의 『합리적 행복』에는 목표를 달성하는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느 한 가지 모습의 미래를 구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인생이나 조직, 사회의 한 측면을 분리해낸 다음 나머지 측면을 희생해가며 그것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처음 만났을 무렵 마라톤을 위해 격렬한 훈련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결국 그 사람은 목표를 이뤘지만, 여러 가지로 심하게 부상을 당해 몇 주 동안 집에서 꼼짝 못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 우리는 흔히 목표를 기준으로 시간을 씁니다.

  • 연봉, 집, 승진, 시험 합격 같은 지점을 정해두고 거기에 닿기 위해 지금의 다른 것들을 미뤄두는 걸 당연하게 여깁니다.
  • 이렇게 보면 목표를 위해 모든 걸 내려놓는 것보다 지금 해야 할 일에 충실한 편이 스트레스가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다만 이 질문을 ‘목표냐, 현재냐’로 놓으면 답이 너무 쉽게 나옵니다. 버크먼도 목표를 전부 버리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 실제로 따져 봐야 할 것은 목표를 삶의 어느 자리에 두느냐입니다.


목표에 도착해도 행복이 오래 머물지 않는 이유


☐ 하버드에서 긍정심리학을 가르친 탈 벤 샤하르는 이것을 ‘도착 오류’라고 불렀습니다.

  • 목표를 이루면 행복해질 거라 기대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기쁨은 금방 사라지고 다음 목표가 그 자리를 채운다는 것입니다.
  • 행복을 도착 시점으로 미뤄두면 거기까지 가는 과정 전체가 견뎌야 하는 시간이 됩니다.
  • 그리고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게 됩니다.


☐ 오래 바라던 시험에 붙거나 집을 사고 나서도 생각보다 허전했다는 이야기는 드물지 않습니다.

  • 그 시간 동안 결과 말고는 어디에도 의미를 두지 않았다면, 도착하고 나서 남는 것이 없습니다.


목표가 사람을 붙잡을 때


☐ 버크먼은 1996년 에베레스트 참사를 다룹니다.

  • 에베레스트에는 정해진 시각까지 정상에 닿지 못하면 어디에 있든 돌아서야 한다는 ‘하산 시각’ 규칙이 있습니다.
  • 그해 여러 등반가가 이 시각을 넘기고도 계속 올라갔고, 폭풍이 덮치면서 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조직 행동을 연구하는 크리스 케이스는 이를 ‘목표 집착’으로 설명했습니다.

  • 반대 증거가 쌓여도 목표를 놓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 목표가 정체성의 일부가 되면 목표를 의심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일이 됩니다.
  • 그래서 성공이 불확실해질수록 오히려 원래 전략에 더욱 매달리게 됩니다.
  • 2009년 리사 오르도녜즈 등의 연구도 비슷한 그늘을 보여줍니다.
  • 구체적인 목표를 받은 사람들은 부정 행위를 많이 했고, 목표 바깥의 위험이나 기회를 보지 못했습니다.


☐ 그날 사망한 등반가들은 정상에 올랐습니다.

  • 문제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데에 있지 않았고, 목표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데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목표를 버리면 편해질까


☐ 반대 방향의 연구도 있습니다.

  • 테레사 애머빌은 직장인들의 업무 일지를 분석해, 사람들이 일에서 가장 좋은 기분을 느끼는 순간은 의미 있는 일에서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었을 때라고 정리했습니다.
  • 진전을 느끼려면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 방향 없이 해야 할 일만 처리하다 보면, 목표가 주던 스트레스가 사라진 자리에 막막함이 들어옵니다.


☐ 그래서 목표는 나침반으로만 쓰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 나침반은 북쪽이 어디인지 알려주지만, 오늘 몇 km를 걸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재즈 연주자는 악보 대신 코드 진행을 봅니다


☐ 버크먼은 목표 설정에 반대하는 컨설턴트 스티븐 샤피로를 만난 이야기도 합니다.

  • 샤피로는 도착지에 집착하지 않고도 방향 감각은 가질 수 있다고 말하며, 이를 즉흥 연주를 하되 방향성은 잃지 않는 재즈에 비유합니다.


☐ 재즈 연주자는 악보를 음 하나하나 따라가지 않지만, 곡의 코드 진행은 알고 있습니다.

  • 곡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알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 의도와 다른 음이 나와도 다른 음으로 해결에 연주의 일부로 만듭니다.
  •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을 곧바로 실패로 확정하지 않을 여지가 남습니다.
  • 다른 연주자의 소리를 들으며 반응한다는 점에서 계획보다 지금의 상황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까지 담깁니다.


☐ 다만 재즈 즉흥 연주는 엄청난 연습량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 그래서 이 비유는 ‘편하게 하자’가 아니라 ‘방향과 기본기는 단단히 두되, 순간에는 유연하게’로 읽어야 정확합니다.
  • 이 구분이 없으면 현재에 충실하자는 말이 흘러가는 대로 살자는 말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이라면


☐ 버크먼은 사라스 사라스바티의 연구도 소개합니다.

  • 회사를 상장시킨 경험이 있는 창업자 45명을 인터뷰해 보니, 이들은 목표를 먼저 정하기보다 지금 가진 수단에서 출발했고, 다음 걸음을 판단할 때는 성공했을 때의 보상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의 잃을 크기를 먼저 물었습니다.
  • 사라스바티는 이를 ‘감당 가능한 손실 원칙’이라고 부릅니다.

“그 손실이 감당할 정도라면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은 없다. 그다음 단계를 실행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라.”


☐ 틀린 음을 다음 음으로 수습할 수 있다는 걸 알면, 어디로 해결될지 몰라도 일단 음을 낼 수 있습니다.

  • 에베레스트 하산 시각도 일종의 손실 상한선이었습니다.
  • 이 원칙은 그 선을 미리, 냉정할 때 그어두는 방법입니다.


☐ 다만 시간, 체력, 관계, 신뢰 같은 손실은 돈보다 작게 잡히기 쉽고, 작은 시도가 쌓이면 합계가 감당한 수준을 넘기도 합니다.

  • 선은 그을 때보다 지킬 때가 어렵습니다.
  • 그리고 ‘지켜본다’는 뒷부분이 빠지면, 그건 시도가 아니라 그냥 저지르는 일입니다.


☐ 목표는 연주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려 줄 뿐이고, 실제로 무언가를 배우게 되는 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음을 내보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입니다.

출처 : https://nodin.kr/posts/261016-1/

댓글 2

  1. 오라질 ·
    불교에도 같은 얘기가 있습니다. 즐거움은 멈추는 순간 괴로움을 수반하기 때문에 즐거움을 추구하면 고통이 따르고 물질 뿐만 아니라 욕구에 대한, 더 나아가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행복에 대해서도 즐거움/만족 이런 것이 아니라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행복한 상태라고 합니다. 집착이 없고 미련이 없고 깨달아서 괴로움이 없는 상태, 더 크게는 아무것도 없는 열반이 최상의 행복이고요
  2. 꽃길만걷자! ·
    '행복의 기원'는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뭔가를 이뤘을때 느끼는 희열감은 오래가지 않지요. 이게 만약에 오래 지속된다면...반대방향의 충격도 오래갈 거기 때문에 아마 다 미쳐죽을듯..

팁과강좌 최근 글

팁과강좌 목록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