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진지하게 일독을 권합니다.
최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정말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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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배신하는가?(1편)_윤석열과 검사들의 경우] by 최동석 교수님 : 클리앙 (clien.net)
[왜 배신하는가?(2-1편)_김명수와 법관들의 경우] by 최동석 교수님 : 클리앙 (clien.net)
[왜 배신하는가?(2-2편)_김명수와 법관들의 경우] by 최동석교수님 : 클리앙 (clien.net)
[왜 배신하는가?(2-3편)_김명수와 법관들의 경우] by 최동석교수님 : 클리앙 (clien.net)
[왜 배신하는가?(3편)_언론사와 그 종업원들의 경우]
언론사와 그 종업원들의 개소리에 대하여
2019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언론사와 그 종업원들의 행태는 가히 역대급이었다. 온통 개소리로 도배를 했기 때문이다. ‘개소리’라는 용어는 막말이나 욕설이 아니다.
스탠퍼드대 철학과의 노(老)교수 해리 프랭크퍼트(Harry G. Frankfurt, 1929~)는 《개소리에 대하여 On Bullshit》라는 소책자을 출간했다. 미국에도 워낙 개소리가 많으니까, 분석철학자답게 이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정밀히 분석한 에세이다.
개소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진실이나 거짓에 관심을 갖지 않고 마구 내지르는 언행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소리는 진실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거짓임이 곧 들통 나는 것에도 관심이 없는 허튼 수작을 의미한다.
영어표현에 의하면, 개소리는 정말 똥(shit)과 같다. 우리는 똥을 그냥 본능적으로 내지르는 것일 뿐, 그 모양을 멋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신경 쓰지도 않고 아까워하지도 않는다. 특정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아닌 한, 똥의 모양이나 내용을 위해 정성스럽게 공들이는 사람은 없다. 정성을 들인다고 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언론사 종업원들, 윤석열과 그 측근들, 국힘당 세력, 전광훈과 이만희를 따르는 광신자들이 내지르는 언행은 대부분 개소리에 해당한다. 진실과 거짓에는 관심 없고, 그냥 내지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개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간다.
심지어 멍청하기 짝이 없는 민주당 의원들 상당수가 이런 개소리에 심정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개소리에 동조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보면 그들은 종종 개수작을 부린다.
개소리는 어떤 효과가 있는가?
개소리/개수작은 사태의 진실이 뭔지 알고 싶어서 끊임없이 탐구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그냥 바람에 떠도는 얘기만 들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잘 먹힌다.
상속세나 종합부동산세를 전혀 걱정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 그 세율을 높이는 것에 극구 반대한다. 언제나 그렇다. 이 정도로 생각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다. 기득권자들의 개소리가 이들에게는 먹히는 것이다.
개소리의 다른 예를 보자. 윤석열의 처 김건희의 재산축적과정에 많은 의혹이 제기되자, 윤석열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게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확실한 증거라도 있습니까?” 아주 큰소리로 개소리/개수작을 부린다.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는 데는 개소리/개수작이 좋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개소리에 따르면, 조국 법무장관을 낙마시키기 위해 아무 상관이 없는 정경심 교수에 대해서는 부부 일심동체라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수십 군데 압수수색을 하고 구속수사를 했다.
2019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박지원 의원이 윤석열에게 물었다.
“정경심 교수의 공소장에 일시, 장소, 방법 등이 완전히 잘못 되어 있고, 소환조사도 없이 기소한 것은 과잉기소 아니냐? 나아가 패스트트랙에 걸린 의원들은 전혀 기소도 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
“의원님은 국감장에서 지금 특정인을 보호하시는 겁니까? 조금 기다리시면 결과가 나올 겁니다.” 윤석열의 답변이었다. 개소리는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사악한 묘수다.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1년이 넘도록 수사와 재판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정경심 교수의 이렇다 할 불법적인 행위는 아무 것도 나온 것이 없다.
탈탈 털린 조국네 가족의 실상을 온 국민이 알게 된 지금, 나는 모든 공직자가 조국네 가족만큼만 도덕적 성실성을 유지했다면 우리나라는 벌써 선진국이 되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윤석열의 말이 개소리였다는 것이 넉넉히 증명된다. 돌이켜 보면, 윤석열과 검사들은 철저하게 사태의 진실을 거짓으로 덮어씌운 사악한 묘수로 일관해왔다. 그것을 받아쓴 언론사 종업원들 또한 개소리/개수작으로 뉴스를 도배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자신들의 언행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반드시 밝혀진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의 개소리/개수작은 시간의 문제일 뿐 다 밝혀졌다. 역사는 개소리/개수작을 결코 적당히 넘기는 법이 없다. 윤석열의 경우도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윤석열이 개소리를 통해 그때그때의 위기를 모면하면서 헤쳐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개소리가 자신들의 이익과 관계되지 않는 한, 별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개소리가 자신들에게 단기적으로라도 이익이 된다면 언론사 종업원들은 그걸 그대로 받아들인다. 뉴스가 개소리로 도배가 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생각 없는 일반인들에게 선전선동이 먹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사 종업원들의 관행에 대하여
그래도 나는 언론인이라면 조금은 깨어있는 사람들 아닐까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경영실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회사의 영업과 재무를 제외한 업무들, 즉 인사조직을 포함한 나머지 부문을 맡고 있었다. 홍보, 법무, 전산 등도 내가 책임져야 했다. 물론 각 분야마다 임원들이 따로 있었지만, 가장 성가신 업무는 언론사 종업원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거의 주말마다 골프를 쳐줘야 한단다. 홍보팀 간부들이 자기들이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았다. 주말에 쉬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내기골프를 쳐야 했단다. 끝나고 돌아갈 때는 과일 한 상자씩 차에 넣어주는 게 관행이었단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고마워한 적이 없었단다. 여기까지는 눈감아 줄 수 있었다. 나도 가끔은 골프를 쳤으니까.
그런데, 회사홍보를 위해 철철이 커뮤니케이션 세션을 기획해서 봉투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몇 차례 그 행사를 눈여겨 관찰했다. 이들은 절대로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오랜 관행이었다.
갑자기 이런 관행을 없애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여러 핑계를 대면서 행사를 점차 줄였다. 그러자 신문들 저녁가판에 회사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거짓기사로 괴롭혔다. 결국에는 밤늦게 신문사 편집국에 달려가 네고를 해야 하는 일들이 생겼다. 이렇게 몇 년을 시달렸다. 가판이 없어지면서 그 일도 사라졌다.
언론사 종업원들의 빈곤한 삶을 아는가?
왜 이런 불합리한 현상이 관행으로 나타나는지 그때부터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그 원인을 대강 알았다. 언론사 재무상태를 보면, 종업원들에게 일반 대기업만큼 급여를 줄 수 있는 형편이 못되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들은 종업원들에게 체면을 세워줄 만한 여력이 전혀 없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종업원들이 앵벌이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때부터 언론사 종업원들이 불쌍해 보였다. 이건 우리나라 언론계의 구조적인 문제였다. 그러다 그 회사를 떠나 대학으로 옮긴 후, 언론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몇 년 후, 대학을 떠나 내 생애 마지막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고 협동조합운동을 시작했다. 이때 몇몇 언론인들을 다시 만났다. 이들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언론인들이 얼마나 빈곤한 형편인지는 그때 확실히 알았다.
그들은 항상 돈 얘기를 했다. 모든 일을 돈과 연결시켜서 생각했다. 협동조합운동은 철저한 사상운동이요 정신운동인데도 말이다. 협동조합운영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사업을 하려고 했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협동조합 운영방식의 근본원리와 조합원 교육보다는 항상 지엽말단적인 일에 매달렸다.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의미 없는 일을 계속할 수는 없어 협동조합운동을 떠났다. 당시 함께 했던 분들의 프라이버시도 있어서 여기서 더 이상 얘기하진 않겠다. 이런 경험을 끝으로 공식적인 나의 모든 대외 활동을 접고 은퇴했다. 내 나이도 예순이 넘어서고 있었다. 그 때가 2014년 봄이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칼 마르크스의 주장은 옳다
대학에 있을 때, 인도출장을 두 차례 다녀왔다. 보름이 넘는 기간이었다. 갈 때마다 빈부의 양극단을 보는 것 같았다. 벵갈루루에 있는 Indian Institute of Science나 마드라스에 있는 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Madras에는 수재들이 모인다는 인도 최고의 이공계 대학들이었는데 우리의 평범한 시골 대학풍경이었다.
그러나 휴양지의 으리으리한 리조트와 세계적인 기업들의 거대한 캠퍼스를 방문했을 때는 시설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하는 원칙과 태도가 매우 현대화된 것에 놀랐다.
하지만, 바로 그 경계선을 넘어서면, 내가 겪었던 1950년대와 60년대의 강원도 산골보다 못했다. 아니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어린 아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돈 달라고 내미는 손을 보면 내 몸의 반응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을 안내하던 현지인은 절대로 돈을 주지 말라고 가르쳤다.
빈곤은 인간에게서 부끄러움을 제거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동남아 여행을 자제하는 편이다. 그곳을 다녀오면 오랫동안 불편한 여운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떤 환경조건에 있느냐의) 존재가 (그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는 칼 마르크스의 말이 옳다.
가난한 언론사 종업원들이 부끄러움을 알겠는가?
앞에서 언급했던 프랭크퍼트 교수에 의하면, 거짓말쟁이는 진실이 뭔지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진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공을 들여야 한다. 왜냐? 진실이 들통 나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언론사 종업원들은 가짜(거짓)뉴스를 쓰거나 퍼 나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개소리를 하는 것이다. 내일이면 거짓임이 들통 난다는 사실 따위에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실이나 거짓에 관심이 없고 오직 하루살이처럼 그날그날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 검찰조직에 짝 달라붙어야 한다. 인도 아이들이 나에게 달려들어 손을 벌리는 것처럼 말이다. 검찰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얼마든지 단독과 속보를 낼 수 있다. 검찰은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다.
검찰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것이 들통 나지 않도록 언론사 종업원들을 앵벌이로 부리는 것이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법조기자단에 가입되는 게 얼마나 큰 기득권이겠는가? 검찰이 법조기자단에 떼어주는 음양의 자투리들은 그들에게 결코 작은 혜택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검찰에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마구 쓸 수 있는 돈이 꽤 많다. 영수증 필요 없이 현금으로 쓸 수 있는 특수활동비 말이다. 놀랍게도 언론사 종업원들은 자신들이 앵벌이 신세라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다. 검찰의 개소리/개수작에 놀아나는 앵벌이들 말이다. 이들에게 독자와 국민을 배신하고 있다는 의식이 있을 리 있겠는가?
강조하거니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며 가난은 부끄러움을 제거한다.
언론개혁을 위하여 두 가지를 유념해야
첫째, 언론개혁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개소리/개수작, 나아가 가짜(거짓)뉴스에 대해서는 1건당 벌금을 부과하되, 정도와 빈도에 따라 그 기관의 매출(유튜버 등 개인의 경우에 수입)의 최소 10% 최대 50%에 해당하는 벌금을 매기면 된다.
현재의 언론개혁 방안들을 보면 너무 약하다. 언론사들은 항상 돈에 목을 매고 있기 때문에 잘못에 대해서는 돈으로 해결하도록 하면 된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면서 신성시 하는 것이 돈이기 때문이다.
언론사들이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검찰이 제대로 역할을 하면 결국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가 될 것이고, 그러면 언론사와 그 종업원들은 먹고살 수단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기본소득제도를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직업유무에 상관없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을 누구나 향유할 수 있도록 조세구조를 빨리 바꿔야 한다. 세입세출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언론사 종업원들을 빈곤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방법이 없다. 부조리한 언론지형을 그대 둔 채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겠는가?
모든 국민을, 특히 언론사 종업원들을 프랑스 작가 비비안느 포레스테가 쓴 《경제적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어야 “생각하는 시민들과 기자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대정신(Zeitgeist)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는 힘을 가진 시민들과 기자들”이 나올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회차에는 [왜 배신하는가?(4편)_진중권과 주진우의 경우]에 대해 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