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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배신하는가?(1편)_윤석열과 검사들의 경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많은 사람들이 배신했다. 우리는 윤석열과 검사들, 김명수와 법관들, 언론사 종업원들, 최재형, 진중권, 주진우 등 여러 사례를 본다. 이들이 배신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배신(背信, betrayal)이란 무엇인가?
배신은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하리라는 기대와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말한다. 크게 보면, 과거 독립운동을 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친일행각을 벌였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들을 민족과 국가를 저버리는 행위자로 '매국노'라고 불렀다.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린 명백한 배신이다.
작게 보면, 사랑한다면서 결혼한 후 상대방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태가 심해지면 서로 신뢰가 무너져 헤어지기도 한다. 이것 또한 배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배신행위를 경험한다. 정치인들이 공약한 대로 실행하지 않는 경우에서부터 중고차의 가격을 속이는 경우, 홈쇼핑에서 산 물건이 당초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 논문표절의 경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신행위를 접한다. 명백한 위법행위도 있지만 단순한 실수나 도덕적 해이도 있다. 이렇게 배신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신뢰(信賴, trust)란 무엇인가?
한국어에서 광의로 보면, 상대방의 흠결을 책잡아 그를 곤궁에 빠뜨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곧 신뢰다. 신뢰는 압도적인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의 평가가 진실한 경우 믿음직스럽다 또는 신뢰할만 하다는 의미(credibility)로도 사용된다. 약속한 대로 또는 기대한 대로 실행되는 반복된 경험을 우리는 신뢰성(reliability)이라는 용어로도 사용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신뢰를 저버리고 배신하는가? 인간이 배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배신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을 먼저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칸트의 철학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스스로 진선미성(眞善美聖)을 분별하여 종합·판단할 수 있는 내적 속성(underlying characteristics)인 이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옳고 그름,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거룩함과 속됨을 분별할 수 있는 기능을 타고난다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칸트의 말이 옳다. 애완견들은 낮은 수준이지만 생각하는 능력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진선미성을 분별할 줄 모르며 생물학적인 욕망의 틀 안에서만 움직인다.
짐승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인간은 동물적 욕망을 초월하여 이상적 세계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진선미성을 분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성의 기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실, 교육이란 이런 이성의 기능이 활성화되도록 돕는 활동이다. 이렇게 인간은 이성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면 타인이나 공동체를 배반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서 이러한 이성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도록 자기기만(自己欺瞞, self-deception)이 먼저 일어나야만 타인과 공동체를 배신할 수 있다. 먼저 자기를 스스로 속여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에게 이런 자기기만 현상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인간이 스스로 짐승과 같은 차원으로 떨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자기를 스스로 속이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은 돈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나는 것처럼 내면화된다. 돈 없는 인간은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버려진 물건이나 다름 없다.
하버드대의 노(老)신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는 시장이 신(神)이 되었다고 선언했다.(《The Market as God, 신이 된 시장》, 유강은 옮김, 문예출판사 2018 참조) 돈이 곧 신이라는 말이다.
창조주가 된 자본은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좌지우지한다. 자본의 존엄성은 신성불가침의 지위를 갖는다. 사람들은 자본을 찬양하고 숭배한다.
물신숭배에 빠진 개신교 목사들을 보라.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에 대면예배는 생명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 대면예배를 해야 헌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좀비 같은 목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들에게 자본은 생명과 같은 것이다.
이제, 윤석열의 배신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처와 장모를 포함한 가족사기단을 이끌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처와 장모가 수십억 원의 돈을 축적하는 과정에 석연찮은 거래들이 있었다는 보도가 끊임없이 나왔다.
그는 '인간에게 타고난 이성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이성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의 처 김건희가 재산을 축적하던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면, 윤석열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책상을 치면서 큰 소리 친다. 그의 행동을 보면,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석열은 자신에게 닥칠 사회적 정의를 철저하게 막아내고, 무사히 퇴임하면 자본을 더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 받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명예도 쪽팔림도 다 필요 없다. 현대판 매관매직인 전관비리를 지켜내야 한다.
검사들에게는 죄와 돈은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일 뿐이다. 높은 지위에 있었다면 더 큰 돈을 만질 수 있다. 그래서 승진에 목을 맨다. 검사들이 상명하복 문화에 순응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윤석열뿐 아니라 검사들에게 자본은 숭배해야 할 신이다. 자본(신)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려면 검찰조직이 개혁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윤석열과 검찰조직이 조국 전 장관을 낙마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이유다. 조국에 이어 다시 검찰개혁의 기치를 들고 취임한 추미애 현 장관을 쓰러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국네 가족을 살인적인 수사기법을 동원해 멸문지화의 상태가 되도록 했다. 그러나 아무리 파도 불법행위의 증거는 물론 이렇다 할 도덕적 흠결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자 검사들이 떼로 몰려가 재판정에서 샤우팅을 하는 등 법관들을 위협하는 일이 벌어졌다. 법관들은 검사들을 제압하기는커녕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재판부가 바뀌었다. 검찰은 법관들까지 사찰했다. 그러나 이도저도 자기들 마음대로 되지 않자, 아예 문재인 정부를 무너뜨리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약간 민감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윤석열의 말과 행동을 자세히 관찰했다면, 윤석열이 과연 인간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동물적 본능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칸트에서부터 사르트르까지의 철학적 사유를 조금이라도 알고, 이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법률가라는 타이틀로 살아간다는 것은 적어도 동물적 본능에서 벗어나 실존하는 한 인간으로 반성적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제도와 판검사 선발제도가 매우 원시적이어서 시험성적으로 경쟁하면서 타인을 짓밟지 않으면 출세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모두들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는 줄 알고 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승자독식, 각자도생의 야만적인 문화가 윤석열과 그 복제품 같은 인간들을 양산한 것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자본의 존엄성'에서 '인간의 존엄성'으로
윤석열이 원하는 것은 돈이다.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명박, 박근혜와 다를 바 없다. 모두 ‘인간의 존엄성’이 아니라 ‘자본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 저 광란을 벌이는 것이다. 이것은 윤석열 한 사람 내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자본을 신으로 모시는 정신은 학교에서부터 언론과 법원을 거쳐 종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자본의 존엄성’에서 ‘인간의 존엄성’으로 대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전제’(basic assumption)를 바꿔야 한다. 정치인들과 시민사회에 ‘패러다임’(paradigm)의 대전환을 위한 각성이 일어야 한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를 사용하는 국가들과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은 소위 ‘게르만 모형’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이런 국가운영의 기본전제는 자본을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자본을 찬양하거나 숭배할 수 없는 사회구조와 제도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런 나라들이 더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실현한다.
나는 민주당의 주류를 이루는 늙은 정치인들에게서 어떤 비전도 어떤 정치철학도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정치적 비전을 가진 정치인들을 보고 싶다.
김명수와 법관들에 대해서는 (2편)에 이어서 계속됩니다.
남일 경우 많은 대화가 필요하고,
자신일 경우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설명하신듯한데,
실용주의 차원에서 한마디로 실리와
권력(기득권)때문이죠.
자본 곧 돈보다는 ,권력에 대한 맛에
중독되버리면,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고 권좌를 차지하려는예가
있듯이..또한
그 권력으로 자신의 치부를
보호받는 이득, 명예욕 그리고 미래안정성...
그래도 하늘이 우리나라를 버리지않아서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게 정말.
한동훈 검언유착 발각되고,윤짜장은
무소불위의 아성이 무너지기 시작..
추다르크 라는 전무후무한 여성 카리스마앞에
한계를 드러내게 되는데,
춘장의 볼살이 요사이 많이 빠졌더라구요.
징계받고 해임되면, 아무리 절차따져봐야
끈떨어진 연 신세..
다음은 공수처가 기다리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