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전두환때가 좋았지 하는 분들은 어쩌다 그렇게 된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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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2·12 군사반란
1979년 상관인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불법 연행하고 군을 장악했습니다. 1997년 대법원이 반란 수괴죄로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② 5·18 광주 유혈 진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광주에서 시민을 무력 진압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대법원은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을 인정했고,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이 확정됐습니다.
③ 헬기 사격 부인과 사자명예훼손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썼다가 사자명예훼손으로 기소됐습니다. 1심 법원은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항소심 중 2021년 사망해 재판이 종결됐습니다.
④ 삼청교육대
"사회악 일소"를 명분으로 수만 명을 영장 없이 잡아들여 군부대에서 가혹한 순화 교육을 시켰고, 사망자도 다수 나왔습니다. 최근에는 국가배상 판결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⑤ 언론 통폐합과 보도지침
1980년 언론사를 강제로 통폐합하고 비판적인 언론인을 대량 해직시켰습니다. 정부가 매일 보도 방향을 지시한 "보도지침"은 1986년 폭로됐습니다.
⑥ 체육관 선거
국민 직선이 아니라 간접선거로 대통령이 됐습니다. 1987년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 여론을 4·13 호헌조치로 거부한 것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⑦ 고문과 인권 탄압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김근태 고문 사건 등 수사기관의 고문이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이후 조사로 확인됐습니다.
⑧ 녹화사업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강제로 군대에 보내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문사한 사람들도 있으며,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⑨ 비자금과 추징금 미납
재임 중 기업들에게서 막대한 비자금을 거둬 2,205억 원 추징금이 확정됐습니다.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고 버텼고, 상당액을 내지 않은 채 사망했습니다. 국민 정서상 가장 반감이 큰 항목입니다.
⑩ 끝까지 사과하지 않음
5·18에 대해 생전에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았고, 회고록에서는 오히려 광주 시민 쪽에 책임을 돌리는 서술을 해서 출판금지 판결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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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안타깝네요. 지구의 자원이 저들에게 쓰인다는 것이.
댓글 1
무얼해도 사업(장사)가 달되었다고
그 시절을 그리워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