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톺아보기

동학농민 운동을 토벌하셨던 안중근 선생님

망고주스바나나 · · 수정

조회 6,980 · 공감 2 · 댓글 20

아버지와 같이 동학농민운동 토벌 하셨는데 역사는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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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log.naver.com/yellow921024/222950878553. 블로그


출처: https://www.timenews.co.kr/article/1328524. 타임뉴스



댓글 20

  1. 하겐다즈신제품 ·
    친 동학파와 친 안중근 파 로 나눠서 싸울거 같습니다. 친동파 와 친안파 재미있습니다 .
  2. vsmadm ·
    오늘 잘 몰랐던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보니 생각보다 흥미롭군요
    역시 역사란.. ㅎㅎ 재밌어요
  3. 5년은짧아요 ·
    출처라도 달아주세요.
  4. 망고주스바나나 ·
    @5년은짧아요님 네 달았습니다.
  5. 어리석음에관하여 · · 공감 3
    프랑스 혁명도 폭주한면이 있었죠 단두대로 대표되는 자코뱅파의 공포정치로 이어지기도 했었고요

    불의에 저항해서 일어난 프랑스 혁명도 혁명대의 불의에 저항한 사람들도 다 용감하고 가치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6. 우리최고 · · 공감 1
    안중근 의사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 않나요?

    당시 시대상과, 동학 특성을 감안하면... 서로 결이 많이 다르긴 했을거고, 꽤 많이 부딪혔을거 같네요.
  7. 추달호 ·
    질문은 아질게로
  8. 망고주스바나나 ·
    @추달호님 아질게로 가야 하는군요. 수정하였습니다.
  9. Doctorwho666 ·
    일단 어떤적이든 싸우고 본다...는게 군인정신이죠.
  10. 굴단 · · 공감 1
    저 시대 살았던 사람 입장에서 봐야죠.
    안중근 의사는 양반이었던 분으로, 피지배층과 경험과 사고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11. CIRRUS ·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에서 손꼽히는 유력 집안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분 입니다 황해도 내에서도 대지주 집안 이었고 동학동민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현재와 당연히 다를 수 있습니다
  12. 포톤84 ·
    신흥 종교의 현실정치 참여와 통치... 일부 이슬람권이 떠오릅니다
  13. 사과못먹는남자 · · 공감 2
    이때 안중근 의사 아버님이 동학군이었던 김구 선생님을 구해서 집에서 머무르게 해주셨다고 들었네요
  14. 100번하자 ·
    저땐 동학운동정신을 잘 몰랐서 그런걸로 압니다
  15. JIOOI ·
    이때는 민주정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국가에 충성으로 누군가는 혁명으로 볼수도 있죠
    동학을 현재기준으로 동학운동을 평가할때 민주자유의 가치에 부합하는 면이 있기에 긍정평가를 하는것이죠
    이것으로 독립운동에 대한 안중근의사의 업적이 훼손되는것도 아니고 또한 동학을 나쁘게만 볼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굳이 민족이 자부심을 가질수 있는것에 대해 폄훼하는것이 더 악질이라 보입니다
  16. 망고주스바나나 ·
    @JIOOI님 그렇군욤
  17. 스윙체어 · · 공감 5
    이걸 이해하는 하려면, 동학농민운동은 백산에서 발표한 4대 명의에서
    사람을 죽이지 말고 재물을 손상하지 말라.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
    라고 했습니다. 타도의 대상은 임금님의 눈과 귀를 멀게하는 간신배들이었습니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임금을 바라보는 농민군과
    유교적 세계관에서 농민군을 반역자로 보았던 안중근.
    둘다 같은 시대의 상식을 스스로 보인것 뿐입니다. 역사는 지금의 상식과 기준으로 보면 어렵고 당시 기준으로 보면 쉽습니다
  18. 우푸 ·
    @스윙체어님
    "사람을 죽이지 말고 재물을 손상하지 말라.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
    는게 동학운동의 지도층의 아젠다였겠지만
    군은 물자를 빨아먹는 괴물이며
    삼국지의 황건적이나 유럽의 십자군같이 국가 단위의 병력이 아닌경우
    백성들의 민중봉기가 그 보급을 이어가는건 약탈 이외에 방법이 없었을겁니다
    민중봉기는 초창기에는 정당한 명분으로 들불처럼 퍼저가지만
    아주 빠른시간내에 거의 없다 시피한 보급으로 인해 도적화 되어 갑니다
    자연적으로 약탈이 성행했을것이고 거기에 피해를 본 지주층의 입장이 안중근 의사 집안이었겠죠
  19. james_ ·
    아미도 신앙과 유교적 사관이 그 당시 생각을 달리한거죠
  20. ckoscar ·
    그래서요? 과거 문재인 정부의 동학에 대한 명예회복 정책에 불만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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