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 KST - Kyodo News Service - 전시 일본제국군 위안부 성노예, 난징 대학살, 조선인 강제징용, 오키나와 군국주의에 의한 현지인 집단자결 등, 전후 80년이 되어가는 동안 일본에서 살아있는 증인들은 점차 사망하는 가운데 역사왜곡, 역사수정 등 과거 “가해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주장들이 늘고 있습니다. 교도통신은 역사수정주의 주장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지만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일본인들을 조명하는 연재 르포기획 “마주하는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의 역사”를 타전합니다.
[아사히신문/사설] 군마현은 조선인 추도비 철거 폭거를 즉각 중단하라!
[아사히신문/사설] 육상자위대의 야스쿠니 참배. 자위대는 일본 제국육군을 따르려는가?
[교도통신] 조선인 강제징용공. 일본의 어두운 과거. 진실은 숨길수 없다.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제국 치하의 '만주국'(현·중국 동북부)에서, 세균병기 개발, 포로에 대한 인체실험을 비밀리에 실행한 구 일본제국 육군의 731부대 - 만주 제659부대 관동군 방역 급수부(満洲第659部隊 関東軍防疫給水部本部). 국제 조약에 반하는 그 소행 때문에 '악마'라고 칭해졌다.
80년 전, 14세에 입대한 나가노현 미야타의 시미즈 히데오 씨(94)는, “내가 본것만, 한것만”을 맹세하며 공개적으로 증언해 왔다. 그러나 인터넷을 비롯하여 우익들의 비판은 악랄하다. “거짓말쟁이”, “날조를 일삼는 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지인들과 친척들의 반대이다. “일본을 망하게 하려는 거냐?”, “중국만 이롭게 한다.”, “별것도 아닌것에 남은 생을 망치지 마라.”
그리고 2025년 2월, 시미즈 히데오는 도쿄의 한 고등학교 강단에 섰다. 그리고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가 전쟁에 끌려나온 비슷한 나이의 일본 학생들에게 그의 마음과 진실을 증언했다. 그리고 그는 이때까지 밝히지 않았던 속내까지 증언했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3월, 미야타촌의 국민학교 고등과를 졸업한 시미즈는 731 부대에 '견습 기술자'로 채용되었다. 담임교사의 추천이었다. 부대 본부가 있던 만주·하얼빈에 도착하자, 교육부에 배속되었다. 병원균의 기초 지식을 습득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는 상관에게 이끌려 소위 “표본실”에 들어갔다.
눈을 찌르는 듯한 포르말린의 자극적인 냄새가 가득한 실내에서, 눈물을 참으며 본 것은, 유리 용기 안에 담긴 인체 장기들이었다. 여성의 복부장기에 담겨진 태아, 두개골의 일부를 잘라낸 뇌. 상관은 인체 실험한 '마루타’의 표본이라고 시미즈에게 가르쳤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 이후 소련의 대일 참전 이후 731부대는 만주국에서 철수를 감행한다. 8월 12일. 시미즈 씨는 “마루타”를 수용하고 있던 '특설감옥'에 들어가 살해되어 불태워진 마루타의 뼈를 주워 모았다. 감옥을 폭파하기 위한 폭약도 옮겼다. 폭약 설치 중 감옥 내부 벽에 피로 적힌 것으로 보이는 글자를 보았다. 시미즈는 1945년 8월 14일, 전용 열차편으로 하얼빈을 떠났다.
일본으로 돌아온 시미즈 히데오에게 일본 정부는 세 가지 조건을 강요했다. 군복무 사실을 숨길것, 공직에 취직하지 말 것, 731부대원 간에 연락을 취하지 않을것 이었다. 1980년대 이후,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논픽션 ‘악마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등으로 731부대의 실상이 알려지게 되어도, 시미즈는 그 명령을 계속 지켰다.
그가 증언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2015년, 나가노현 내에서 열린 731부대에 관한 전시회를 방문했을 때이다. 되살아난 기억을 어렵게 아내에게 털어놓자 아내는, 주최측에게 고백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의 증언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넷우익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거짓말쟁이 할아버지의 망언”
“731부대원의 증언은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거짓말이다”
“한국의 선전선동에 빠진 할애비의 망상”
그리고 일본 우익성향의 언론도 한 몫 거들었다. 시미즈 히데오의 복무경력 기록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시미즈 히데오는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제국육군 만주군 복무기록이 엄연히 존재한다.
일본 국립문서보관소가 공개한 731부대 소속 대원들의 명부. 시미즈 히데오 씨의 이름도 기재되어 있다..
시미즈 히데오는 이후 증언에 있어 한층 더 신중함을 기했다. 대중 발표에는 항상 사전 연설내용을 작성해서 읽었다. 내용의 불일치, 오류는 거듭 확인했다. 그래도 넷우익의 도발은 여전했다. 그리고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진살외면은 더해갔다. 2022년 5월 나가노현의 이다시 평화기념관 전쟁자료사관 발표회에서 731부대의 전쟁범죄를 증언하는 시미즈 히데오의 증언자료 전시를 기획했지만 개관직전, 나가노현 교육위원회는 시미즈 히데오의 자료를 모두 철거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공공전시 및 자료의 성격을 감안할때 적절치가 않다.”

2025년 4월, 중등1년부터 고등2학년 학생들에게 시미즈 히데오는 자신의 731부대 복무경험 및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강연을 시작했다. 14살 시미즈 히데오가 학병으로 731부대에 파견되어 복무하는 나이와 같은 학생들에게 그는 그의 끔찍했던 증언을 말한다.
“(731부대의) 끔찍했던 악행은 악행, 나쁜 일은 나쁜일,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걸 일본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인을 포함, 심지어 가족들도 나를 원망했다. 너무 안타까웠다.”
“전쟁이 없는 국가, 전쟁이 없는 세상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 시미즈 히데오 -
교도통신 취재원인 필자는 학생들에게 시미즈 히데오의 강연이후 소감을 물었다. “마음이 아프다” 부터 “태평양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라고 말한 학생들까지 반응은 다양했다. 시미즈 히데오는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그당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당시에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않고 명령에 순응했다. 그러나 그러면 안된다. 스스로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스스로 알아나가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전쟁이나 주변국과의 싸움도 없어지지 않을까 해서…..”
“나의 증언이나 강연요청이 있으면 계속 응할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바가 있으면 다행이다. 아이들은 나쁜 것은 나쁜 것이라고, 진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신념이다.”
일본 '정부'는 만악의 근원이죠.
정확히는 나쁜 국가가 나쁜 국민을 양산하고 있는거죠.
나쁜 체제하에서는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도태됩니다.
그 나쁜 국민이 투표를 통해 나쁜 국가 체제를 유지하게 하죠. 특별한 사건이 없다면, 저 나라는 저렇게 구렁텅이로 빠지는 역사를 가질 것이고,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을 비롯하여 어느 국가의 국민들도 피해를 입지 않기를 그저 바랄 뿐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얘기인데,
그런 얘길 하려면 전제는 해당국가가 민주국가여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일본이 민주화된적이 사실상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후에 미국이 들어가서 주무른 나라중에 민주주의 같은 민주주의를 가진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합니다. 미국이 원했던것은 자신들의 괴뢰정권이었고, 그결과 수많은 아시아 독재국가들의 뒷배가 되었습니다.
일본역시 전후처리가 똥싸다 만것마냥 저따위로 흐지부지된것도, 궁극적으로 미국이 소련을 견제 하겠답시고 그 일본 역사의 죄인들을 자기 수하로 삼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봉건세력이 권력을 노나먹는 사실상의 귀족정 국가로 아직까지 남아있는겁니다. 선거는 사실상 형식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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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잘린 엽기적인 모습으로 숨진 여인(2번 사진). 그의 이름은 응웬 티 탄(당시 21살·앞의 증언자와 동명이인)이었다. “아오자이를 즐겨입는 젊고 예쁜 처녀”였다고 마을 주민들은 기억했다. 사진을 촬영한 미군이 “가슴이 도려진 채 아직도 살아 있는 여자”라고 설명을 달았듯, 그는 다낭병원에 후송돼 하룻동안 생명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여동생 응웬 티 호아(46)는 아직도 언니의 얼굴이 생생하다며,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언니는 한쪽 가슴이 완전히 도려져 있었고, 또다른 가슴은 반쯤 베인 상태였어요. 그래서 가슴이 덜렁덜렁거렸죠. 왼쪽 팔은 잘려 있었고, 몸에 총상이 있었지만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있었어요. 병원에서 언니는 계속 ‘엄마’만을 불렀습니다. 엄마는 죽었는데 말이에요. 언니가 숨을 거둘 때의 모습도 기억나요. 눈을 뜨고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아빠’하고 나지막하게 불렀지요. 그리곤 고개를 떨구었어요. 마지막이었습니다.”
응웬 티 호아의 가족은 당시 고향인 퐁니촌으로부터 세 시간여 떨어진 항구도시, 다낭에 살고 있었다. 대보름 제사를 앞두고 향불을 올리기 위해 큰언니인 응웬 티 탄과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 등 4명이 고향을 찾았다. 4명 모두에게 그 길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이 되고 만 셈이다. 당시 집단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마을주민 쩐 티 투언(42)은 ‘목격자’였다. “한국군이 마을사람들을 한 지점에 모아놓고 총을 갈겼습니다. 저 역시 그곳에 있었지만 다행히도 맨 밑에 깔렸지요. 기어나와봤더니 한국군이 응웬 티 탄 언니를 강간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대검으로 장난을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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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학살행위는 물론이고 침략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거 아닙니까? 사과도 안하고.
https://www.khan.co.kr/article/201803232142005
https://v.daum.net/v/20250416075302612?fbclid=IwY2xjawK9kUlleHRuA2FlbQIxMQABHlFWDlU-RNYeJxp8OkWH1d9sYOsnnMcNh0gGhiZa-rV3kjz9PBWoh4aPziAD_aem_jzXVbf_CwJ91yp_dZzBP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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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우리나라하고 일본을 동일선상에 놓는건 이해가 안 됩니다.
전 일본과 우리나라를 동일선상에 둔 것이 아니고, 가장 먼저 지적한 댓글의 논리적 오류를 지적란 것입니다.
과거 악행과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집단과, 금기시하지 않고 반성의 기회로 삼는 집단의 차이인데, 일본보다는 우리가 좀 더 많이 후자에 가깝다고봅니다.
일본인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말씀대로 과한 얘기이나, 전체적으로 이런 면에서 아쉬운 면이 큰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때 일본 차관 받는 댓가로 위안부 문제 퉁쳤다면, 그래서 당시 일본인들이, 대한민국 정부가 괜찮다는데 왜 자꾸 그 때 일을 언급하냐고 일본 내 양심의 목소리를 억눌렀다면, 그건 괜찮게 보시겠어요? 아닐 겁니다.
마찬가지 논리로, 베트남 정부가 괜찮다고 해서, 베트남전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외면되거나 부정되어선 안 되는 겁니다.
박정희때 일본 차관 받는 댓가로 위안부 문제 퉁쳤다면, 그래서 당시 일본인들이, 대한민국 정부가 괜찮다는데 왜 자꾸 그 때 일을 언급하냐고 일본 내 양심의 목소리를 억눌렀다면, 그건 괜찮게 보시겠어요? 아닐 겁니다.
마찬가지 논리로, 베트남 정부가 괜찮다고 해서, 베트남전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외면되거나 부정되어선 안 되는 겁니다.
단지 우리 잘못이 있다고해서 일본의 이상한 짓이 희석되는건 아닌거죠.
죄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 그런 논리는 반대합니다. 면죄부론에 가깝다고 보거든요.
죄지은만큼, 반성안하는 태도만큼 공평하게 돌을 맞는거죠.
일단 순서는 저 일본인의 태도에 호응을 하고, 그다음 순서로 우리 자신도 뒤돌아보자..가 되는것이죠.
그런 개인이 모인 집단은,
그리고 그 집단이 큰 집단일수록 더 잔인(?)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명이 있을 때보다 뭉쳐다니면 더 무례한 짓들을 하기 쉬워지고,
국가간의 외교를 보면 거의 사이코패스들의 게임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더 큰 집단인 인류가 다른 종에게 하는 행위를 보면 더 하고 말이죠.
"왜 착한 개인들이 모이면 오히려 집단은 더 잔인하거나 비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방관자 효과, 동조압력, 내집단/외집단을 구분하는 진화적 본능 등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
어떤 집단 전체는 맘에 안 들더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그 안에 있는 개인과는 친밀할 수 있죠.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 생각합니다.
일부 한국인(인지 의심스러운..)들은 대체 왜 위안부도 없고 생체실험도 없다는 일본극우들의 주장을 내제화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대체 어떤 논리적 흐름인지 머리로도 모르겠어요
이 이슈는 정말 크게 다뤄야할 역사적인 문제 입니다.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100년전 우리 조상들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