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0 KST - Kyodo News Service - 전시 일본제국군 위안부 성노예, 난징 대학살, 조선인 강제징용, 오키나와 군국주의에 의한 현지인 집단자결 등, 전후 80년이 되어가는 동안 일본에서 살아있는 증인들은 점차 사망하는 가운데 역사왜곡, 역사수정 등 과거 “가해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주장들이 늘고 있습니다. 교도통신은 역사수정주의 주장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지만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일본인들을 조명하는 연재 르포기획 “마주하는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의 역사”를 타전합니다.
[아사히신문/사설] 군마현은 조선인 추도비 철거 폭거를 즉각 중단하라!
[아사히신문/사설] 육상자위대의 야스쿠니 참배. 자위대는 일본 제국육군을 따르려는가?
“과거를 기억에 새기고 반성하며 우호로 이어간다”
지난 20년간 일본의 반성을 보여주는, 일본어,한글,영어로 새겨진 “조선인 강제징용 추모비”는 2024년 2월 군마현의 행정대집행으로 철거되었다. 어디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양심과 지각을 품은 목소리는 지울 수 없다.
태평양 전쟁당시 강제징용당해 전시생산체제에 동원된 조선인들이 동원되었던 “군마의 숲”. 이제 풀과 식물들이 우거진 가운데 역사의 증거는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장을 방문하는 일본인들, 그리고 시민 단체 회원들의 노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추모비는 철거되었지만 과거 (조선인들에게 행해진) 가해의 역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군마현 마에바시 도심에서 차로 북쪽으로 2시간, 온천관광단지도 훨씬 지나 황폐한 산속에는 황화수소 냄새가 풍기고, 녹색 이끼가 아름다운 신비로운 장소가 있다. 안내를 맡은 가와우치 마사이키씨. 추모비 철거와 함께 시민단체 해산결정과 함께 단체는 해산했지만 그는 남았다. 조선인 추모비 및 추모행사 공동단체 대표였던 가와우치 씨는 여전히 자발적으로 “현장안내원” 역할을 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방산기업 “군마철강” 자리였던 자리에서 가와우치 마사이키는 역사의 준엄한 사실을 여전히 증언하고 있다. 1944년 조선인들은 480여명을 시작으로 강제징용에 동원되었으며 이중에는 60세가 넘은 고령자들도 포함되었다.
“현이나 지자체는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어요. 하지만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되어서 이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했다는 것은 일절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조사를 통해 진실을 후세에 알리는 것은 지자체의 책임이지만 조선인 강제징용공의 역사를 알리는 것은 여전히 뒷전입니다.”
- 가와우치 마사이키 -
“사람이 일할 곳이 아니었습니다. 끌려온지 1주일도 못버티고 도망쳤어요.”
-나카지마 항공기 제작소 공장 조선인 강제징용자 재일교포 증언 -
민간의 조사활동, 그리고 일본 정부의 기록등을 포함해 군마현에 강제징용된 조선인 강제징용공은 적어도 4607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시 일본제국 내무성의 기록은 1944년 종전에 가까운 시기 총 2946명이라고 공식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러나 실제 강제징용 규모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강제징용 조선인들은 만성적인 기아 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가혹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사망자는 속출했다. 공식 기록된 중국인 사망자들도 43명이 있다. 이러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탈주하는 조선인, 중국인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일본제국 내각 기록에도 남아 있다.
조선인 강제징용공 대부분은 성명, 출생, 및 공식기록에 남아있지도 못했다. 그나마 기록에 있는 이들도 대부분 창씨개명 이후 기록이다. 본명은 아예 공식 기록에 있지도 못한다. 사망 이후 수습한 유골들도 신원을 파악못해 군마현 소재 사찰들에 나눠져 아직까지 이르고 있다. 그들은 죽어서도 조국에 돌아가지도 못했다.
군마현 시민들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려는 노력은 2001년 군마현 의회에 추모비 건립을 청원했고 다수당인 자민당을 포함한 전원 일치로 추모비 건립이 결정되었다. “종교 및 정치적 색채를 띈 행사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2004년이었다.
군마현 시민단체는 애초에 “강제연행”이라는 문구를 넣으려 했다. 그러나 군마현과 자민당은 완강히 반대했다. 결국 협상과 타협을 통해 “전시 노동에 동원된 조선인 희생자들을 추모하여” 라고 문구가 변경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일본의 양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2년 이후 “추모비가 반일본이다”라며 철거를 주장하는 전화,팩스 그리고 민원들이 늘기 시작했다. 보수단체들의 거리 선전도 늘어갔다. 2014년, 추모비 철거를 주장하는 보수단체가 정식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 만장일치로 추모비 설치를 허가했던 군마현 의회는 2014년, 철거를 압도적 다수로 승인했다.
추모비에 새겨진 “(전시)강제징용에 희생된 조선인 희생자를 진심으로 추모합니다.”라는 문구가 문제시되었다. 시민단체들은 추모비 철거는 과거 일본의 부정적 역사를 회피하는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군마현은 강제철거 방침을 굳혔다. 시민단체 등이 추모비 설치 장소를 매입하여 민간공원으로 운영하고 매년 추모 행사도 아예 중지하겠다고 호소했지만 군마현은 듣지 않았다. 그리고 기나긴 법정공방이 이어졌다.
1심 판결은 비록 시민단체측이 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지만 그렇다고 공원내의 시설물을 공론화하지 않고 철거하는 것은 재량권 이탈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과 대법원 판결은 강제철거가 합법이라고 판결, 2024년 2월, 추모비는 강제 철거되었다.
군마현 공원의 추모비는 비록 철거되었지만, 군마현에는 또 하나의 추모비가 남아있다. 오타시 사찰에 건립된 “태평양 전쟁 당시 전시 징용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가 그것이다. 나카지마 항공기 제작소 산하 공장에 징용된 조선인 희생자 11명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비록 해산된 “조선인 강제징용 추모비”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가와구치 씨는 말한다.
“앞으로도 일본의 과거 부정적인 역사도 함께 역사의 진실을 알려나가야 한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