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과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6295628
2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6300964CLIEN
말이 짧으니 양해부탁드립니다.
풀코스 완주 후 어느 날, 나는 철인3종 경기를 뛰겠다고 마음먹었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는 자연의 섭리처럼 특별한 계기나 이유는 없었다.
철인 3종 경기는 수영-사이클-달리기의 순서로 진행되며 코스의 길이에 따라 6가지 공인종목이 있다. ’진짜‘ 철인 3종은 수영 3.9km, 사이클 180km, 달리기 42.195km다. 나는 당연히 진짜 철인이 될 생각(뿐만 아니라 능력)이 없어서 올림픽 코스 완주를 목표로 했다. 올림픽 코스는 수영 1.5km,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며 제한 시간은 3시간 40분이다. 시간을 넘기면 개인적인 완주의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공식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나는 이 도전에 날짜를 정하진 않았다. 당시에는 막연히 몇 년 후 대회에 참가하면 좋겠다,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게 나는 자전거를 서른 살 무렵에 배웠고, 사이클은 타본 적도 없다. 수영 역시 생존을 위한 (평형이 아니다!) 개구리헤엄 수준이었다.
그래서 여러 고민을 하면서 수영장을 골랐다. 마침 다니던 크로스핏 체육관이 문을 닫을 무렵이어서 근력운동을 같이 할 수 있는 곳을 원했다. 또 달리기와 궁합이 좋은 요가도 계속 하고 싶었고. 마침 그 조건에 해당하는 스포츠센터가 지하철, 네 정거장 거리에 있었다. 자전거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상담을 받는데 높은 등급의 회원권을 사면 하루에 여러 번 이용하는 것도 가능했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내가 수영장을 다닌 기간은 1년이 조금 넘는다. 초급반 음~파! 부터 시작했다. 내 허벅지는 내 것임에도 뜻대로 잘 움직이지 않아서 25미터 풀을 한 번에 가는 것도 힘들었다. 아니, 풀코스도 완주한 허벅진데, 왜 코딱지만 한 풀도 끝까지 못가니?? 하루에도 여러 번 이런 자책을 했다.
애초에 이 스포츠센터를 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일일 다회 이용이 가능해서였다. 나는 수영을 하루에 1번 이상 하려고 애썼다. 주 3회 수업이었는데 수업 외에 자유 수영을 1시간 이상하고, 수업이 없는 날에도 웨이트나 요가를 하고 수영 연습을 했다. 이렇게 쓰니까 무슨 열혈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 당시에도 나이가 적지 않았고, 주변에서 뭐 하는 짓이냔 타박도 많이 들었다.
시작하고 몇 개월 동안 기대만큼 실력이 늘지 않아 답답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연습뿐이었다. 물장구를 치고 놀더라도 수영장에서 놀았다. 수영하다 힘들면 주변 사람을 관찰했는데 신기한 것도 많이 봤다. 할머니(70대인 걸로 기억함) 한 분은 느릿하게 배영으로 수영을 쉬지 않고 계속했다. 가끔은 자유형을 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수영을 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얘길 들어보니 몇 년 전에 수영을 처음 배웠고 물밖에서는 관절염 때문에 거동이 약간 불편하신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무척 평온해 보였고 물에 떠서 움직이는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문득 나도 저 나이가 됐을 때 운동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취미든 일이든 그 의미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기록이나 목표 달성을 위해 운동을 한다. 하지만 노화가 와서 더는 기록을 경신하지 못하거나, 목표를 설정할 수 없을 때도 운동을 즐기고 싶다. 그 할머니의 느릿하고 긴 수영은 내 마음속 바램을 실현한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수영하면서 만난 사람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몇 있다. 그중 두 사람이 철인 3종과 관계가 있어 소개한다.
한 명은 딱 한 번 만났음에도 무척 인상적이라 지금도 이미지가 선명하다. 내가 초급반 말미거나 중급반 초반이었을 것이다. 여느 때처럼 자유 수영을 하러 갔는데 쉬지 않고 자유형으로 왕복을 하는 분이 있었다. 빠르지 않았지만 아주 느리지도 않았고, 페이스를 조절해 오래 수영하는 게 목표인 듯했다. 나는 50분쯤 자유 수영을 했는데 그분은 내가 풀에 들어가기 전부터 헤엄을 쳤고, 내가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수영을 마치고 나왔다.
그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골고루 검게 그을려있었고, 상당한 근육질이었다. 온 몸에서 ‘야외에서 (엄청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 포스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불빛에 이끌린 나방처럼 그분 곁으로 가서 물었다.
“아까 보니까 수영 굉장히 오래 하시던데…?”
“아. 예.”
“혹시 철인 3종 하세요?”
“네. 맞아요.”
아아, 뭔가 굉장한 기분이었다. 연예인 보는 느낌이랄까? 물론 나는 직업상 연예인을 꽤 봤고, 봐도 아무런 감정이 없는 편이다. 다만 이재용을 실제로 보고 쓸데없이 두근거렸고(대체 왜!?), 그 이후에 정말 오랜만에 콩닥콩닥 동경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물론 깊이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그분은 장시간 수영으로 매우 지쳐있었고, 둘 다 샤워실에서 홀딱 벗은 상태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건 꼭 물어봐야 했다.
“그렇게 안 쉬고 한 시간 넘게 수영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그분은 잠깐 고민하셨다.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는 듯했다. 그리곤 “1년?”이라고 했다. 그쯤이면 충분하다고까지 덧붙였다. 대답을 듣자 나는 미래가 선명해진 느낌을 받았다. 서너 달 했으니 이제 8~9개월만 버티면 된다! 힘내자!
또 다른 인상적인 분은 수영 고급반 때 만난 사람이다. 자주 보지는 못했다. 나는 수영 수업에 꼬박꼬박 나왔지만, 그분은 어쩌다 한번 나왔고, 늦은 시간에 혼자 자유 수영을 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수영 실력은 나보다 월등히 좋았다. 자세가 완벽한 게 타고난 스포츠맨이었다.
그분을 분명하게 기억하는 건 여태까지 운동을 하며 봤던 사람 중에 몸매가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내가 꽤 여러 운동을 했는데 그 사람처럼 완벽하게 다듬어진 몸을 본 적이 없다. 다비드상의 개선판을 떠올리면 된다. 물론 주관적인 평가다. 개인적으로 근육이 거대하게 부푼 몸보다 기능적인 몸이 좋다. 턱걸이부터 마라톤까지 완수할 수 있는 날렵한 몸매 말이다. 그분은 딱 그런 이상적인 형태에 선명하게 발달한 근육을 갖고 있었다. 과장하면 근육 모양 설명하는 그림에 그대로 갖다 써도 될 정도로 완벽했다. 미남에다 신체 비율도 좋아서 키가 좀 컸으면 피트니스 모델을 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분은 허리를 손으로 받치고 가만히 서 있을 때가 많았다. 심지어 샤워장 바닥에 누워있을 때도 있었다.
늦은 밤 그분이 허리를 감싸 쥐며 샤워를 할 때 나는 그것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그분은 꽤 어린 시절부터 디스크로 고생을 했고, 최근 철인 3종 대회 당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허리통증이 오는 바람에 참가를 포기하고 며칠을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분은 꽤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고 허리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당시는 발달한 근육이 몸을 지탱해주는 상태였다. 어린아이가 있었고, 직장이 멀어서 차로 출퇴근하면서 겨우 밤에 짬을 내 운동을 하는 형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언급한 운동들이 동호회 사이클과 마라톤, 야외수영대회와 철인 3종 경기였다. 간신히 최소한의 운동만 한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언밸런스하지만..... 나 역시 비정상적으로 운동에 몰두하던 상태라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분은 머잖아 몸을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경고를 들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고, 이래저래 나의 운동관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본다. 허리에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할 수 있는 게 운동뿐이라서 계속 운동을 하는 것이다. 허리를 지탱하는 근육의 힘이 부족해지면 그분은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된다. 달리는 기차를 멈추고 수리를 해야 하는데, 멈추는 순간 철로를 이탈할 게 뻔해서 멈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금도 가끔 그분 생각을 한다. 그분이 여전히 일상을 유지하고 있길 진심으로 빈다.
1년째 되는 어느 날, 나는 1시간을 넘게 수영했다. 25m 왕복 횟수로 따졌을 때 2km는 헤엄쳤으니 오픈워터 1.5km는 너끈하다고 생각했다. 대회에서 전신 슈트를 입으면 부력의 도움을 받으니 훨씬 쉬울 거란 얘기도 들었다. 이제 철인 3종에 가까워지나 싶었다.
4편(아마도 마지막)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편 마지막을 보니 왠지 수영장에서만 수영 배우고 하신 분들이 개방수역 나가셔서 패닉오시는 것이 생각이 나네요.
수영장에선 25m 한시간씩 왕복 하시던 분들이 실제 강이나 바다에 처음 나가시면 차가운 수온과 안보이는 시야때문에
많이 포기하시거든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