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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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짧으니 양해부탁드립니다.
* 문득 생각난 달리기와 관련된 짧은 에피소드들
ep1. 고수는 어디에나.
- 한강 변을 달리는데 나보다 연배가 높은 분과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혼자 뛰는 러너가 우연히 만난 러너와 함께 뛰는 일은 거의 없다. 애초에 아는 사람도 아니고....
그분은 내게 흥미를 느꼈는지 비슷한 페이스로 달리다 인사를 건넸고 곧 대화도 하게 되었다. 한강 다리 2개를 지나칠 정도의 거리를 함께 뛰었던 것 같다. 달리기에 관한 얘기를 주로 했다. 그분이 자기 훈련법을 말해주셨는데 전문적인 용어(언덕 달리기, 스피드 런, 장거리훈련, 벤치마크, 등등)는 잘 모르셨지만, 스스로 터득해서 그런 것들을 다 하고 계셨다. 그리곤 내가 풀코스 첫 도전에 4시간이 넘었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하셨다. 본인은 첫 도전에 서브 3를 했고, 아는 러너들이 비슷한 수준인 듯 했다. 하긴 달릴 때 보면 그룹이 확연히 다르니까..... 역시 고수는 어디에나 있다.
ep2. 러너스 하이
- 몇 번 경험했다. 대부분 달리기를 하면서 느꼈고, 딱 한 번 크로스핏을 하는 중에도 느껴봤다. 아마 고반복의 역도 동작이었을 것이다.
잘 모르는 사람은 이걸 오르가슴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짧고 강렬하지 않다. 잔잔하고 길어서 묘한 미소가 머금어지는 그런 느낌이다. 물론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솜털들이 긴장할 정도는 된다.
쾌감이 있으니 ‘하이’란 단어는 적절하다. 진짜로 도파민이 뇌 속에서 흘러나와 몸 전체를 적셔서 나를 붕 뜨게 하는구나- 싶은 감각이다. 확실히 기묘해서 어떤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 얘길들어보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어쩌면 여성들의 오르가슴과는 약간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단박에 ‘아닌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ep3. 도촬 할아버지
- 여의도에서 나이키 트레이닝런을 할 때 있었던 일. 여름이고 주말 오전이라 트레이닝에 참가했던 여성들-주로 20대 대학생-은 대부분 러닝용 숏팬츠를 입고 왔다. 그런데 어떤 할아버지(라고 하긴 젋은, 60대 초중반)가 디카를 들고 슬쩍슬쩍 여학생들 사이를 누비며 사진을 찍었다. 누가 봐도 수상했다. 나야 덩치 큰 남자니까 아무 거리낌 없이 할아버지를 붙들고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내가 할아버지를 붙들자 찜찜하지만 무서워서 항의를 못 하고 있던 여자들이 다가와 따졌다. 할아버지는 그냥 사진 좀 찍은 거라고 했다. 내가 디카를 보여달라고, 거절하면 경찰을 부를 거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꽤 당당히 카메라를 줬다. 사진을 확인했더니 예상대로 초점도 잘 맞지 않는 숏팬츠 차림의 여자 다리 사진이 가득했다. 순간적으로 대체 이런 걸 보고 흥분할 수 있나? 란 생각이 들 정도로 화질이나 구도가 엉망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할아버지는 자기가 뭘 잘못했냐는 태도를 보였다. 어차피 다 드러낸 다리, 그거 좀 찍었다고 뭐가 문제냔 식이었다. 물론 자긴 길바닥을 찍었는데 우연히 여자들 다리도 같이 찍힌 거라는 식으로 애둘러 말하긴 했지만... 나는 심각한 문제라고 했고 주변 여학생들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사진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지우고 한번 더 걸리면 그 땐 안봐주겠다고 하고 마무리했다. 행사주최측에도 얘기해서 다음번부터는 진행요원들이 신경써서 챙기기로 했다.
세상엔 보통 남자들은 상상하기 힘든 변태들이 존재한다.
2. 새로운 달리기

'본 투 런‘은 출간 당시 미국에서 긴 기간 베스트셀러였고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회현상을 일으킨 책이다.
음모론 종주국에서 나온 책답게 논픽션 주제에 스릴러적으로 ’러닝‘에 접근한다. 그래서 책 초반에는 살짝 짜증이 났다. 문장이 길게 복잡한 데다 원치 않는 복선을 자꾸 깔면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의 의뭉스러움과 달리 후반부는 떡밥들을 모두 회수하고 가슴 뭉클한 감동의 드라마로 마무리된다. 꽤 여운이 커서 한동안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달리기에 관한 관심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여겼던 점은 책이 (장거리) 달리기의 원초적인 속성과 영적인 측면을 다루는데, 현실 세계에선 그것들이 매우 상업적인 형태로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책에서 언급한 후라아치 샌들은 그 재료에 비해 상당히 고가로 팔리고 있으며, 엔딩의 감동적인 울트라마라톤 참가자 중 한 명은 베어풋슈즈 브랜드를 만들었다. 역시 자본주의 총본산답다.

* 멕시코 오리지날

* 제품화 된 후라아치 샌들
책의 저자는 나처럼 러닝을 하며 다리에 통증을 느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것은 잘못된 러닝 주법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법은 나이키 같은 대형스포츠 브랜드의 잘못된 제품과 소비자 기만적인 마케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나이키가 더 괘씸한 대목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한동안 숨겼다는 정황증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걸 전부 나이키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본다. 달리기는 자신에 대한 탐구인데 그것을 게을리한 주자들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에 대한 고민과 탐색, 다양한 실험을 대형 스포츠 브랜드에 떠넘긴 것이다. 그것이 건강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는 장·단거리 구분할 것 없이 발의 앞쪽(최소한 중간이상)으로 뛰어야 한다. 이게 구구절절 근거를 대면서 설명하면 복잡한데, 간단히 말해 인간은 원래 그렇게 달리기를 하게 생겨 먹었다. 맨발로 뛰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단거리 전력 질주를 하던, 슬렁슬렁 조깅 정도로 뛰던, 맨발로 달리면 무조건 발 앞쪽을 먼저 땅에 딛게 된다. 푹신하고 뒷굽이 높은 운동화를 신으면 반대다. 그런 운동화는 뒤꿈치부터 바닥에 닿게 만든다. 뒤꿈치 달리기를 통한 피로가 누적되면 수많은 러너가 겪는 무릎 통증이나 족저근막염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책을 덮고 맨발로 한강을 달렸다. 그때의 나는 그야말로 괴짜였다. (지금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글쎄...) 당시 같이 일하던 미국 시민권자(뉴욕 출신)가 나에게 뉴요커 같다고 했다. 아마 거지 같은 옷을 입고 요가, 채식(패스코)에 후라아치 샌들을 신고 맨발로 한강을 뛴다고 하니까 그랬던 것 같다.
맨발로 달리고 있자니 별생각이 다 든다. 일단 예전과 같은 속도가 나오질 않는다. 10km 대회에선 4분대로 달렸고, 혼자 뛸 때도 5분대였는데 처음 맨발로 뛸 때는 8분이 넘어갔다. 빨리 걷는 것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랄까? 맨땅을 밟으니 어색하고 불편했다. 혹시나 돌이나 쇳조각을 밟아서 다칠까 봐 걱정도 됐다.
맨발로 다 뛰고 벤치에 앉아서 쉬는데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발바닥이 더러워져서 신발을 다시 신는 게 찜찜했고, 뛰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게 꼭 화장실에서 똥을 누려다 실패한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언제쯤 신발을 신었을 때의 속도로 뛸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았다....
밤에 누워 곰곰이 생각했다. 달리기의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다. 하지만 다치는 것도 싫다. 방법은 맨발로 계속 달려보는 것뿐이었다. 많은 걸 내려놓기로 했다. 다시는 ’리즈‘시절의 기록을 달성하거나 넘지 않아도 좋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라고.
누드비치에 가본 적이 있다. 구글 어스에 내 성기가 찍힐지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스친 후, 대단히 큰 해방감이 찾아왔다. 바닷바람이 자연 그대로의 내 몸을 스쳐 지나가고, 햇살이 팔다리와 얼굴처럼 사타구니에도 공평하게 내려왔다. 반짝이는 모래가 묻는 내 성기를 태양 아래서 보는 건 독특한 느낌이었다. 문득 옷을 입는 것만큼 벗는 것도 자연스럽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맨발달리기도 비슷한 감동을 주었다. 나는 이전까지 맨발로 우리가 사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흙길과 트랙을 단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다는 것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두려워서 신발 없이는 바닥을 밟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까? 촉감은 실체적이고 물리적인 동시에 인간의 정신에도 여러 가지 자극을 준다. 발바닥으로 내 주변 땅바닥을 디딘 그 감각은 내 정체성(도시인, 러너, 예술가)을 일깨우고 내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숙고하게 해줬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매우 충만한 경험이었다.
맨발로 달리지 않는 지금도 나는 신발 밑창 아래 콘크리트가 있고 그 밑에 흙이 있다는 걸 느낀다. 여름엔 뜨겁고 물러지며 겨울엔 차갑고 딱딱해지는 그 감각을 내 발이 안다. 그 느낌은 이유 없이 감동적이다.
맨발로 6개월쯤 달리기를 했던 것 같다. 부수적으로 감각기관이 예민해졌다. 바닥에 떨어진 이물질을 미리 감지해 피하다 보니 ’스파이더센스‘ 같은 것이 생겼다. 귀신같이 돌이나 뾰족한 물건을 피해 다녀서 한 번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눈이 중심이 되어 찾지만 음... 실제로 해보면 오감으로 바닥을 살피는 기분이다. 상당히 원초적인 감각인데 꽤 즐겁다.
발 앞쪽으로 딛는 게 익숙해지고 속도가 올라가면서 후라아치 샌들을 비롯한 최소주의 신발을 신고 달렸다. 최소주의 신발 덕에 평생 인연이 없을 것 같던 ’해외직구‘란 것도 해보았다. 최소주의 신발은 그냥... 얇은 밑창만 있는 신발이다. 미드솔이니 쿠션이니 아무것도 없다. 폐타이어를 밑창으로 만든 후라아치 샌들과 다를 바 없다.
1년 가량 맨발과 최소주의 신발로 달리자 6분대로 연습할 수 있게 되었다. 무릎은 이제 아프지 않으며, 어떤 신발을 신어도 앞꿈치로 달리는 게 자연스럽게 되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만족한다. 나에겐 즐겁게, 아프지 않게 달리는 게 속도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참고할만한 맨발 달리기 영상
쿠그젤라 박사님의 달리기는 매우 아름답다.
인간이 원래 가진 육체를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로 움직이면 예술에 가까워지나보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가장 자신이 없던 것은 런닝이었는데, 여러 책과 강의를 쫒아 다녔습니다. 아무래도 몸무게도 있고 해서 무릎에 무리가 가기도 했고, 주행법이라는 것을 따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개념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10km 뛰는 거라 대충 뛰어도 되지만, 뛰고나면 무릎이 힘들어하는 것을 느끼겠더라고요. 저는 미들런으로 뛰니 무릎이 덜 무리가 가더라고요. 맨발로 뛸 생각은 못 해 봤습니다. 본투런을 읽어 봐야겠습니다.
그랬는데..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다시 몸무게가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이 글 읽으니, 다시 운동하고 싶어요.
무릎, 연골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달리고 나면 무릎이 아프네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