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에서 보낸 하룻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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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북촌에서 소규모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주거지 깊숙한 곳, 좁은 골목 안의 오래된 한옥이었습니다.
서울에 이런 동네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했고,
어릴 적 잊고 지냈던 동네에 돌아온 것 같은 묘한 평온함이 있었습니다.
골목에서 주민 몇 분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가는 분들은 대부분 연세가 지긋했고, 동네 사람들은 서로 거의 다 아는 사이라고 했습니다.
외부인은 주차 앱을 이용해도 저녁에는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은데,
주민들은 좁은 골목에 선착순으로 주차하거나 친한 이웃집에 차를 주차하기도 하더군요.
행사가 있어 조금 더 호의적으로 대해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낯선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자연스럽게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오랜만이었습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제게는 골목의 고양이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녁이 되면 관광객 출입이 제한되어 골목에는 주민들만 간간이 오갔습니다.
고양이들은 유유히 걸어 다녔고, 사람들도 고양이들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역시 사람을 크게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경계하지 않는 풍경이 이 동네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좁고 오래된 골목을 걸으며 70~8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살던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알고, 골목에서 마주치는 어른들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가 친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로 완전히 낯선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관여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 필요하면 도움을 주고받던 동네였습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면서 같은 층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활은 훨씬 편리해졌지만, 사람 사이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진 것 같습니다.
행사장을 들여다보는 주민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곳에는 기업인이나 작가, 예술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고 들었지만,
골목에서 마주친 분들은 그저 편안한 동네 어르신들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왔는지보다 그 동네에 오래 살아온 이웃이라는 사실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제가 본 북촌은 하룻저녁의 모습일 뿐입니다.
낮에는 많은 관광객으로 주민들이 불편을 겪을 것이고, 오래된 한옥에서 살아가는 일도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받는 존재가 아닐까.
평소에는 현대적인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도
이런 오래된 골목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조금 다른 태도를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굳이 가까워지지 않아도 적당한 관심을 갖는 관계 말입니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고,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골목에서는 사람들도 그 공간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장소가 사람의 태도를 만드는지, 그런 사람들이 오랜 시간 그 장소를 지켜온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날 저녁 북촌에서는, 오래전에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동네를 잠시 다시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댓글 2
눈내린 아침에 창문을 열면 여긴 이맛이지 싶긴하네요
그러나 역시나 눈내린 언덕길은 질퍽질퍽 망입니다
첫 사진 모서리 높은 건물은 어둠속의 대화?
어둠속대화는 아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