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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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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충무공은 이순신 장군만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충무 시호를 받은 이는 여럿이지만, 그중 가장 큰 이름을 떨친 이가 이순신 장군이고, 그 다음이 진주성을 지켜낸 김시민 장군일 겁니다.


  이순신 장군과 비슷하게, 1차 진주성 전투중, 총탄에 맞아 순국하셨습니다.


 진주는 과거 경상도를 대표하는 3대 도시였고, 경주, 상주에 밀려, 지방이름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지금도 경상남도 서부 청사 소재지이고, 거가대교 개통으로 위상이 떨어지긴 했지만, 거제, 통영, 사천, 고성의 길목에  있는, 행정중심도시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계속 패주하자, 진주목사가 도망가고 김시민이 임시진주목사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의병장 곽재우 등을 도와 고성, 창원 등에서 왜군을 무찔렀고, 나중에 정식으로 진주목사에 취임하였습니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정벌을 위해서 호남 점령이 필요하다고 보고 3만의 병력으로 진주성을 치게 했습니다.

 그러나 김시민 진주목사는 3,800명의 부족한 병력으로 2-3만의 일본군을 막아냈고, 전투 마지막 날 총탄에 맞아, 얼마 안가 30대 후반의 나이로, 순국하셨습니다.


 이 진주성 침공 좌절로, 육로를 통한 왜군의 호남진출은 좌절되었고, 해상을 통한 호남진출은 또다른 충무공인 이순신에게 좌절되었습니다.


 이 때의 패배가 왜군에 큰 상처가 되었고, 후에 2차 진주성 전투에서 10만의 병력으로 진주성을 재침공하였고, 진주성은 함락되었습니다. 당시 왜군은 여전히 진주목사가 김시민인 줄 알고, 당시 진주목사였던 다른 이를 김시민으로 착각해 효수하고, 목을 일본에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6만명의 조선인이 죽었다고 합니다. 물론 왜군도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논개 얘기도 2차 진주성전투의 연장선상에 있는 얘기입니다.


 진주를 가본지, 30년 가까이 되었는데, 그 때 진주성 전투와 김시민 장군에 대해 뭉클했던 기억이 나서 써봤습니다.

 1차 진주성 전투가 지금 시기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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