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전]
- 우리 애 운전가능 진단서 하나 뽑아주세요.
- (진단서가 자판기 음료수냐 아니면 주민등록등본이냐..) 음, 일단 신경인지검사 몇 가지 예약해드리고 결과 따라 작성해드리겠습니다
- 면허시험장에서 '의사한테 운전 가능하다는 소견서 받아오면' 면허 가능하다고 했다구요. 검사 꼭 해야 하나요? 그냥 왜 안써줘?
- (그렇게 말했을리가, 니가 듣고 싶은것만 들은거겠지) 제가 쓸 수 있는 것은 ..질환으로 ..증세에 대해 치료를 받았고 현재는 ..한 상태이며, ..검사에서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볼 때 현 시점에서 ..질환으로 인해 운전능력에 제한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정도 써드릴 수 있는데, 검사 내용이 없으면 제가 마지막 말을 써드릴 수가 없습니다
- 자기 환자가 필요하다는데 왜 못해줘요? 너같은 게 어떻게 주치의야? 국민신원고에 민원 넣는다?
- (한숨) 죄송합니다, 제 능력이랑 권한 밖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납득이 안 가시면 민원 공식적으로 제기해 주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
- (분노)...
[오늘]
아, 12시 넘었으니 어제인가요.
- 검사결과 잘 나왔고 그동안 진료내역이랑 경과를 봐서도 지난번에 말씀드린 내용으로는 써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작성해서 발부해드릴까요?
- .. 돈벌이해서 좋으세요? 쯔쯔.. 돈만 알아가지고
- (한숨) 여기는 국립병원이고 검사건수 늘어난다고 해서 저한테 1원도 더 돌아오는 건 없습니다.
- 그말을 믿으라고요. (비아냥) 뭐, 아쉬운 사람이 을이지. 이야기한 대로나 써줘요.
- (타닥타닥, 클릭) 제가 지난번 말씀드린대로 작성했습니다. 제증명창구에서 받아가시면 됩니다.
참, 이걸로 해서 운전면허 취득하시게 되면 다음번 장애등급 연장심사에는 불리하게 작용하실 수 있습니다.
- (도끼눈) 뭐라고? 아니 내가 뭐라고 몇마디 했다고 우리 지금 우리 애 장애 탈락시킨다고 협박하는거야?
- 제가 탈락시키는 것은 아니고요, 다음 번 장애진단서 작성할 때 첨부되는 의무기록에는 해당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장애 판정은 제가 하지 않습니다.
- (높은 언성) 의사선생들 어차피 다 한통속이잖아욧! 하씨 미치겠네. 진단서 취소해. 처음부터 진즉 이야기해주던가! 비싼 검사비만 받아처먹고. 내가 가만두나 봐라.
- (모니터 상 간호사 메시지) 보안요원 보내드릴까요? (답변) 아뇨 아직 괜찮아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 내용은 다른 진료장면에서 짜집기하거나 표현을 일부 수정하는 방식으로 각색하였음을 말씀드리며, 전체 내용이 특정 보호자를 지칭하는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
평상시에는 단련이 된 정도의 상황인데, 비보 듣고 밤새 거의 못자고 눈이 부은 상태에서 지친 몸으로 오전 출장 다녀왔다가 겨우 출근한 상태에서는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너덜너덜해지는 걸 완전히 방어해내기가 어렵네요.
오늘도 진료실은 평화롭습니다. 사고보고 사례 0건, 근무중 이상 무.
이번 주말엔 당직근무는 없으니 핸드폰 꺼놓고 쉬어야겠습니다.
정말 안타까운데 해결책이 없어요.
나 하나라도 잘하자는 생각하며 삽니다.
사람들이 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느낌....
우리나라가 신뢰가 부족한 사회라고 많이 언급되는데 솔직히 이것도 다수의 국민 스스로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수고하십시요.
직업상 위험이라 생각하시고 털어버리세요 ㅎㅎ.
물론 상처는 수습되어도 흉터는 남지만..
평온한 주말 보내세요.
'선생이 의사면 다야? 능력이 없으니 이런데서 일하고 있지, 내 세금으로 월급받아먹고 사는 주제에'도 떠오르네요. ㅠㅠ (이건 다른 분)
지나가겠죠.
세상은 넓고 진상은 많으니...
"저도 이게 밥벌이라 원하시는대로 해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맙니다.
"이거 말씀대로 해드리면 제가 쇠고랑 찰 수도 있어서요.."
의약품회사 직원입장에서...감사드립니다..
운전은 해야되고 장애등급은 갱신해야하고... 뭐 어떻게든 더 받을려고 하는게 사람 본성이긴 한데 너무 노골적이네요. 근데 장애등급 유불리 여부는 꼭 통보해야하는건가요? 왜 검사 받기 전에 그런 얘기 안해줬냐 이런 식으로 나오면 복잡해질거 같아서...
아직도 저런 인간들이 있군요.
법에 저촉되는거 아닌가요?
단순히 스트레스 주는것도 아니고, 불법적 요구를 하는것은 또 별건으로 처벌...?
국립병원이면 영리병원(?)이랑 다르게 환자=손님=왕=돈줄=수익 공식이 그나마 옅을것 같은데,
노동자가 참으라고 하기보단 저런 감정노동자 보호법 저촉되는건 칼같이 짜르면 좀 좋겠네요.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사업주를 처벌하는 법이고 고객은 보통 피해가죠. 고객이 왕인 나라이니..
감정노동자보호법 시행‥병원종사자들도 큰 기대
http://m.medipana.com/index_sub.asp?NewsNum=223732
이 같은 소식에 전공의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보건의료업종의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병원의 조치도 기대되고 있다.
이거보고 좀 나아지나 싶었는데
헬피엔딩이군요..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법도 겨우 작년에 강화되었지만 반의사불벌죄 유지로 유명무실..
뜬금없지만 의사 멱살잡는 드라마 장면은 좀 덜봤으면 좋겠어요..
뭐 니들이 성역이냐 하시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저런환자 하나가 나머지 99명에게 필요없는 여러가지 일들을 만들어 사회적인 비용을 상승시키는데...
저런 인간들 블랙리스트 만들어서 점수화 했음 좋겠어요.
선생님 힘내십시요!~
그런데 보호자 입장이 아예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네요.
작성자 님의 글 내용 중
'참, 이걸로 해서 운전면허 취득하시게 되면 다음번 장애등급 연장심사에는 불리하게 작용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을 2개월 전, 운전 가능 진단서 요청왔을 때 이야기 했다면 당시에 보호자가 진단서 요청과 진단검사를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돈도 아깝고 시간도 아까울 거 같네요.
추후 유사한 일이 발생한다면 장애등급 판정관련 내용을 사전에 보호자에게 공유하면 서로 좋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조언 드립니다.
구차하자면 5분 진료 (5분도 할애 못 해 드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핑계를 댈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 검사가 운전면허 전용 검사도 아니고, 질환의 진행/회복 상태나 일상기능에도 참조가 되기도 하고요.
다만 @돌아홉개님 @theDentalist님 이 말씀주신 것처럼, 장애판정의 최종 칼자루는 진단서를 발부하는 의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장애연금공단(의 자문의사들)이 판정합니다. 그 판정 알고리즘을 완전히 알려주지 않습니다. (만일 그 알고리즘이 다 노출되면 장애재판정 시점에 들어와서 의무기록 중 무슨무슨 문구 빼고 새로 넣어달라고 요구하시는 분들 나오겠죠. 예를 들어 나 대리운전 아르바이트 시작했다는 거는 적지 말아달라거나.. ) 즉 이거 진행하는 순간 장애탈락 확정! 이런게 아니고 (경험상) 이런 분들 중 (다른 이유로 설명되지 않게) 탈락되신 경우가 있어서 혹시 몰라 알려드린다 정도의 내용이니까요.
배려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알아요.
이러니 소극적이고 안전한 진료만 보는 분들이 많아지죠.
의료서비스가 나빠진다고 찡찡될 이유가 없습니다..
의료서비스의 질을 올리는 방법?
환자 스스로의 더 나은 사람이 되면 됩니다.
환자가 아무리 좋지 못하다고해서 의사나 의료진이 나쁘게 진료를 하거나 처치를 하진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필요한 처치를 하지요.
그래서 하고싶은대로 하셔도 됩니다.
사람 몸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구요.
단, 나는 좋은 치료를 받고싶으시면 그저 상식선안에서 상대에 대한 존중을 마음에 품고 사시면 됩니다.
그러면 의사가 아니라 모든 이들이 당신에게 따듯할 겁니다.
의사가 진료 및 처치 후 환자 상태가 나빠진 경우,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의사가 의도한 바가 아닌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선의'에 의한 모든 행동이 면책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남용되지 않는 범위에서 부과되는 주의 의무와 설명 의무는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현실에는 매일이 살얼음판이긴 하지만요)
물론, 그런 중에서도 존경스러울 만큼 의연하게 대처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좋은주말되세요 ~
수고하셨습니다..
진료거부금지 (의료법 15조)
진단서교부 거부금지 (의료법 17조 3) ...
뭐 그렇습니다 (먼산)
나중에 법적 문제 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물어 보면 짜증내면서 갑니다.
......
정말로 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걸 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요...
서류때문에 스트레스 받는건 본말전도니까요.
서류에는 되도록 보수적으로 접근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 철학은, (검증할 방법이 없는 다른 방법이 경우) 환자의 진술을 기본적으로 믿되, 적어도 한 환자에 대해서 앞뒤가 안맞거나 진료내역과 안 맞는 경우만 만들지 말자.. 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이해관계가 걸린 내용에 대해서는 더더욱요.
보통 허위진단서 범주에 들어가지 않지만 (재량범위라는 게 있으니까요) 내심 '최대한 유리하게'를 기대하거나 요청하는 분들에게는, 지금 내용을 강하게 써 드리면 이 내용 때문에 나중에 손해를 보실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면 많이들 수긍하십니다.
가끔 법원 가보면 공항이나 해외 박물관에서 보이는 금속탐지형 보안검색대가 있어서 부러울 때는 있습니다.
그래도 규모가 크신 전공분야 병원이니 다른 병원에 비해서는 비교적 시설이나 보안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역 로컬에서 조무사가 환자한테 찔려서 그 이후 방검복을 입고 일하시는 분을 뵌 적이 있어서 말씀드린거구요.
항상 조심하시고 고생하시는 만큼 보람도 가지시기 바랍니다.
특히 저희처럼 졸업시키기 힘든 분야에서 졸업시킬 때 기분..
상주 보안요원 및 안전벨, 비상문 등을 확보하는게 레지던트 선발정원 배분에 반영되기 시작했거든요.
그래도 제도적 장치가 생겼다니 없는것보다는 다행입니다!
저는 그냥, 몸집이 큰 아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냥 보호자도 환자와 마찬가지 기준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애가 아픈데 부모가 정신적으로 말짱하면 그게 더 이상하고 섬뜩한거라는 생각도 하고요
그 공장에서 나온 물품 때문에 제가 편히 누리는 생활도 분명 있겠지요. 거기 묻어있는 땀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