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1살로 시작했던 제 이야기가 28살까지 왔네요. 거의다 끝나갑니다.
댓글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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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전, 엄마에게 매달 보내던 35만 원의 월세는 전세가 되어 이자 5만 원 정도로 바뀌었다. 당시 연봉은 2700만 원이었지만 매일 출장비 4만 원을 받으니 많게는 200만 원 이상도 저축할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빌린 돈도 거의 다 갚았다.
대출금 원금도 갚고 있었고 하던 일도 꽤 적응이 되어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생각에 이직을 결심한 후 취업사이트를 둘러보았다.
독취사(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 같은 카페를 가입해서 기업의 연봉정보도 알아보고 지원서를 신중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 중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버스 쪽 담당하는 곳에 채용공고가 떠서 봤는데 연봉은 5천만 원 이상으로 적혀있었고 우대사항 조건을 보니 딱 나를 위한 조건이었다.
나는 실업계고등학교 자동차과를 나와서 차량 자격증이 꽤 있었다. 자동차 정비기능사, 금속도장기능사(차량도색), 지게차 운전기능사 등.. 군대에서도 차량 정비를 조금 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지원했다.
며칠 후 서류합격을 하고 인적성검사(?) 시험을 보러 오라고 해서 다니던 회사에 휴가를 내고 전주로 KTX를 타고 내려갔다. 정~말 많은 사람이 와서 시험을 봤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너무 오래돼서 무슨 시험을 봤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KTX 비용이 너무 아까웠지만 잔업을 많이 하면 지금 연봉의 2배까지도 받을 수 있던 터라 꼭 붙고 싶었다.
다시 얼마 후 인적성 합격이니 신체검사(?)를 하라고 전주에 지정된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라고 연락이 와서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최종면접까지 봤다. KTX 비용만 엄청나게 쓴 걸로 기억한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였는데, 면접관은 내 자격증이나 이력을 보고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당시가 목요일이었는데 나에게 "월요일부터 나오는데 문제없지?"라고 하였다.
"다음 주 월요일이요?" 묻자 "그래 월요일 와서 피복을 받고 일을 시작하면 돼"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상황을 설명드렸다. 현재 다른 회사에 소속되어있고 휴가를 내서 왔다고 그래서 그쪽 인수인계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늦춰줄 수 없냐고 물었다. 면접관은 답했다.
"야 너 말고도 지금 하고 싶다는 애들 많아. 못 봤어? "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었다. 나는 붙고 싶었기 때문에 회사와 이야기해보고 말씀드려도 되냐니까 면접관은 짜증이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월요일까지 나와야 하고 고용계약서 그때 다 작성할꺼야 그 때 다른 회사 소속이면 안돼. 법에 걸려. 그거 안될 것 같으면 지금 말해."
솔직히 고민이 엄청 컸다. 교대근무여서 피곤하겠지만 잔업만 뛰면 5500만 원 이상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연봉의 2배였다. 그렇다고 내일 당장 회사에 가서 퇴사해야겠다고 인수인계는 해드릴 수 없을 것 같고 퇴사처리는 월요일 오전 11시까지 꼭! 진행해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분들이 느낄 배신감을 생각해보니 절대 그렇게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입사를 포기하였다.
KTX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너무 아쉬웠고 그동안 사용한 왕복 차비가 너무 아까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 많은 사람들과 경쟁해서 합격했었다는 뿌듯함도 있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그 후 나는 같이 살던 친구의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고 무역회사에 퇴사를 말씀드렸다.
평소 나는 지옥철이 싫어서 출근을 일찍 하는 편이었다. 그걸 모르시고 일찍 출근하던 나를 성실하게만 봐주신 부사장님이 나를 불렀다. 퇴사하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셨고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비정규직이라 안정적이지 못한 점도 있고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부사장님은 연봉이나 편중된 업무 때문에 퇴사를 하는 건지 궁금했다고 물으셨고 큰 이유는 그게 아니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양한 경력을 쌓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퇴사가 결정된 가운데 나는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원주에 내려갔다. 쉬는 시간에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시간 될 때 전화 주게." 부사장님이셨다.
전화를 걸었고 부사장님은 나에게 아직 회사를 안 구했으면 친구 회사에 면접 볼 생각 없냐고 물었다.
그 회사는 유럽에도 법인이 있는 회사였다. 일을 하게 되면 독일에서 하게 될 거라고 알려주셨다. 연봉도 자세히 알려주셨고 연봉은 지금의 2 배지만 세금이 비싸서 잘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면접 기회만 주는 것이지 독일에서 같이 일하는 분들과의 면접까지 3차 면접은 본인이 통과해야 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셨다. (이 글을 보실리는 없지만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부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독일이면 캐나다 같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음 날 지원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나는 1차 기술면접, 2차 독일법인 면접, 3차 현업과의 영어면접까지 모두 통과했고 퇴사와 동시에 짐을 싸서 독일로 향하였다.
독일로 가는 내내 혼자 있을 엄마가 걱정되기도 하였고 독일어 한마디 못하는 내가 독일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나에겐 큰 기회라고 생각하며 자기 암시를 하고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니 벌써 독일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게 나의 독일 생활은 시작되었다.
-계속
이번 글에서는 설레임을 느끼게해주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파이팅 !
나이를 떠나 참 존경스럽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생각과 나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을 기대하면서
당신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자동차 협력업체는 돈 받는 것에 비해서 몸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쪽으로 안가시길 잘하셨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