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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하려다 보니 미쳐 말하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 좀 풀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던 이유는 어머니란 존재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참 자존심이 센 분입니다.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듣기 싫어서 부탁도 잘하지 않는 분입니다.
본인이 잘못해도 사과도 잘하지 않고 오히려 어쩔 때는 자기 방어 수단으로 상대에게 화를 내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아주 잘못된 거라 생각합니다. 상대가 논리적으로 옳은 소리를 해도 머리는 이해하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미안하다 너 말이 맞다 소리를 절대 하지 못하고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그런 성격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 극강의 자존심을 가진 저희 어머니에게도 늘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아들'이라는 존재였습니다.
어릴 적 내용에는 빠져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 후 한증막에서 일하셨습니다. (한증막은 여성전용 찜질방 같은 곳입니다.)
저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한증막에 있던 매점 뒤쪽에 연결된 방에 살았습니다.
한증막은 여성전용이다 보니까 대부분 나체로 돌아다니던 곳이었는데, 어린 저는 혼자 방이 너무 좁기도 하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몇 번씩 방에서 나와 엄마가 있는 매점에서 놀았습니다.
가끔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죄송하다고 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몇번씩 보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다 큰 아이가 왔다 갔다 하는 걸로 누군가 컴플레인을 해서 그때마다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저에게 밖에 나오면 안 된다고 했지만 저는 계속 말을 안 들었고 좁은 곳에 아들을 혼자 두는 게 미안해서 혼을 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늘 사과를 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초등학교 저학년도 엄마를 따라서 여탕에 가곤 했습니다. 저는 별생각 없이 여자들이 있는 곳을 왔다 갔다 했는데, 그게 문제였던 겁니다. (4학년이면 꽤 크니까.. 지금으로 치면 진짜 큰 문제겠죠..? )
또 제천에 와서는 식당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제천에 있는 봉양읍이었는데.. 완전 촌이었고, 아래의 장평식당 자리에 윤정식당이라는 가게를 운영하셨습니다. 하루는 제가 슈퍼에서 새콤달콤을 훔친 걸 걸려서 집에 전화가 갔습니다. "댁 아들이 지금 슈퍼에서 물건 훔치다가 잡혀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으니까 와서 데려가세요. "
어머니는 장사를 하던 중간에 꽤 멀리 있는 그 아파트 단지까지 오셔서 연신 사과를 하시고 저를 데려 오셨습니다.
저를 데리고 집에 오는 내내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어느 날은 술을 드시고 우시면서 엄마가 돈이 없어서 아들을 도둑놈 만들었다며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나고요.
겨울에 전기가 모두 끊겨 난방을 못했습니다. 형광등 조차 안 들어와서 촛불을 하나 켜놓고 제가 추울까 봐 두꺼운 이불과 함께 저를 꼭 안아 주신 기억이 납니다.
한밤중에 둘이서 자고 있는데 창문으로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던지고 파리채로 내쫓으시고 저를 꼭 안은 채로 한숨도 못 주무신 어머니 모습도 기억나고요. 아빠가 없었던 저는 우리 엄마는 슈퍼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컸습니다.
그렇게 자존심이 센 어머니도 제가 대학을 안 갈거라 협박하면 울면서 다신 안 그럴 테니 대학은 가라고 부탁하셨고,
엄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며 그냥 엄마는 없는 게 나을 거 같다는 말에 엄마가 미안해라며 그저 눈물만 흘리신 기억도 생생합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는 웃으며 말할 수 있었지만 어머니 기억을 하면 죄송스럽고 늘 보고 싶습니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어머니는 얼마나 무섭고 두려우셨을까. 나에게 얼마나 미안해했을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그런 소리를 했을 때 무슨 심정이셨을까? 생각해보면 너무 죄송스럽고 불효자라고 느낍니다.
일 년에 한 번 한국을 갑니다. 그때마다 늘어난 주름과 안 좋아지신 몸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제가 계속 해외에서 산다면 1년에 한 번씩 간다고 가정했을 때 기껏해야 25번 정도 뵐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저는 늘 휴대폰 카메라로 어머니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습니다.
어머니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셨을 거고 저에게 좋은 것만 해주고 싶으셨을 거고 너무 힘드셨을 거란 생각을 하니 가끔씩 눈물이 납니다.
그런 어머니를 살아계실 때 기쁘게 해 드리고 또 미래에 제가 가질 가정을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제 어머니의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서 몰입하면서 글을 읽었습니다.
저는 살면서 전기가 끊긴 경험도 없고 빚도 작성자님처럼 많이 가진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비교하는것은 어리석다고 하지만, 작성자님의 20대와 저의20대는 정말 많은 차이가 나네요.
건강하시기 위해 노력하는 저의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건강한 제 자신에게 감사하고 과거는 못 바꾸지만
앞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게되는 좋은 글입니다.
살아계실 때 부모님에게 더 잘해드려야 겠습니다.
저도 어머니 생각하면 항상 먹먹해져요.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싶고요...
그리고, 손주 보면 엄청 좋아하십니다.
물론, 손주도 1년에 한번 보시지만요 ㅋㅋ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