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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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과거의 저에게 힘내라고 또 현재의 저에게 응원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현재 너무 힘든 상황인데 제 글을 읽고 다시 한번 힘내 보려고 한다고 해주셨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는 힘든 순간은 좋은 글들과 노래로 버틴 것 같습니다. 아래는 제가 천 번도 넘게 들은 노래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힘드실 때 한번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제천에 살던 친척누나의 결혼식에 노라조가 축가를 부르러 왔습니다. 너무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사진을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찍어주셨습니다. (당연히 노라조가 이 글을 보진 않겠지만 좋은 음악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진 펑
그럼 이야기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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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이라는 신분으로 누군가 나를 대놓고 차별 하진 않았지만 자격지심인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느끼곤 했다. 명절뿐만 아니라 보너스가 나오는 시기에는 점심 먹으면서 이번에 나온 보너스로 뭐할 거냐고 서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보너스 그런 게 없어서 대화에 끼지 못했다.
나는 어떻게든 돈을 모아야 했다. 일단 책에서 본대로 고정지출을 먼저 줄여야 했다. 고정지출의 가장 큰 부분은 엄마에게 월세를 매달 35만 원씩 보내는 돈이었다. 다행히 친구 덕에 내가 서울에서 지내는 월세는 거의 들지 않았다. 친구가 여유가 생기면 줘도 된다고 하였다. 그래도 10만 원부터 시작해서 매달 1만 원씩 올려서 줬다. 당시만 해도 나는 전세를 구하려면 내가 그 모든 돈을 구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잘 알아보니 전세대출을 받는 조건이 되었고 이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원주로 내려가 엄마 휴대폰에 '직방'앱을 깔아주었고 앱쓰는 방법을 알려준 후에 시간이 되면 틈틈이 전세방을 알아보라고 하였다.
며칠 후 엄마는 괜찮은 집을 찾았다고 연락이 했다. 위치도 좋고 집도 마음에 든다고 꼭 이집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가격을 들어보니 3천만원 이라고 해서 대출을 받으러 신한은행을 갔다. 은행에 가보니 대출은 가능하지만 전세금의 70%만 된다고 했다. 2100만 원은 대출이 되고 나머지 900만 원은 내가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정말 아껴서 모았는데도 모은돈이 350만 원 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 돈을 빌렸다. 그래서 900만 원을 채워서 전셋집을 구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분이 월세에 살고 있다면 나는 적극 전세집을 구하라고 권하고 싶다. 전세대출을 낸 이자 대비 vs 월세로 계산하면 훨씬 더 저렴하고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
나는 엄마가 단칸방에서만 살다가 전세집을 가는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모든 돈을 털어 넣어서 전셋집을 구했기 때문에 또 이사가는 집이 그렇게 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리어카를 빌려서 직접 이사를 했다.
그렇게 무겁고 힘든걸 이틀에 걸쳐서 했는데도 엄마가 싱글벙글 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월세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며 정말 행복해하시며 춤까지 추셨다.
돈을 갚기 위해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재태크는 다했다. 뽐뿌에서 신용카드를 만들어서 30만 원 실적을 채워주고 10만 원을 받았고, 30만 원의 실적은 회사에서 점심 먹을 때 돈을 걷어서 내가 계산하는 방식으로 채웠다.
문화상품권을 구매해서 네이버페이와 티머니를 충전해서 중복할인을 받았고, 편의점에서는 1+1이나 2+1 같은 할인된 상품을 중심으로 사 먹었다. 네이버 밴드를 가입한 후, 엄청 저렴한 휴대폰이 나오면 폰을 구매해서 유지기간 이후에 파는 폰테크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여가를 보내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몸값을 올리려고 노력했다.
회사생활도 당시 팀내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나를 믿고 새로운 일을 주시고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더욱더 열심히 했다.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일이 점점 더 나에게 몰렸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도 출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점점 용인으로 출장 가는 날이 많아져서 평일은 용인에서 근무하고 주말엔 서울 본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는 매달 몇 백명의 인원과 수십개의 부서에 대한 전화요금을 정산해야 했다. 그 가운데는 해외, 국내전화 비용이 있고 부서별, 직급별로 나눠야 하는 옵션도 있었다. 분기마다는 금액 비교까지 해야 했고, 이걸 엑셀로 해야 하는데 엑셀이 서툴던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밤새서 이걸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땀을 뻘뻘 흘리며 손가락을 모니터에 두고 양쪽으로 비교해보던 나에게 엘리트 출신 차장님 한분이 오셔서 "Aiden 이거 이런식으로 하면 하루 종일 해도 못해. 함수 쓰도록 해봐. Vlookup이랑 여러 개 섞으면 금방 끝나"라고 일러 주셨다.
나는 점심시간 이후에 차장님께 혹시 어떤식으로 하면 쉽게 할 수 있을지 힌트 좀 받을 수 있을지 정중히 물었다.
차장님은 함수 Vlookup을 포함한 함수 서너개와 팁 몇 가지를 알려주셨고 처음엔 어려웠지만 며칠 후엔 어떤 데이터도 엑셀로 가공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엑셀로 매크로도 만들고 어디가서 엑셀 조금 할줄 안다고 당당히 말할수 있다.
그리고 용인 물류센터에서 수백대의 기기를 관리했어야 했는데, 가끔은 단순 반복 작업을 수백 번씩 해야 했다. 그때 프로그래머 친구가 오토 핫키라는 스크립트 언어를 알려주었고 내가 원하는 기능을 검색하여 공부한 후, 꽤 많은 양의 일을 자동화했던 기억이 있다.
바보같이 늘 손으로 눈으로 하던걸 이런 기술을 배우면 쉽게 할 수 있다는것에 놀랬다. 그 후 나는 생산성 향상에 대한 덕후가 되었고 어떤 기술이나 툴을 사용하면서 좀 더 생산성을 향상 시킬지 공부하였다.
그렇게 일년정도 지나자 회사에서 더 이상 일을 배운다는 생각보다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를 이야기 했을 때쯤 다른 부서로 정직원 제안도 왔지만 같은 일이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을 하고 퇴사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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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이 난다고 하더라도 원작자에게 갑니다.
이목구비 뚜렷한 훈남이셨군요.
이곳 클리앙은 오징어만 계신줄 알았는데 말이죠. ㅋㅋ
그담편 빨리읽고싶어요
성대 율전 기숙사 의관 출입구 앞인것 같네요.
종강하고 계절학기를 위해 새로 배정받은 기숙사로 이동하거나,
자취방으로 이동하는 학생들을 위해 빌려주던 리어카..
추억돋내요. 요즘도 저 리어카로 옮기려나요? ㅎㅎ
모두에게 계기가 있는거 같아요.
화이팅입니다!
응원합니다~!!
저랑 꽤나 비슷한 연배이신 것 같은데.. 제 삶을 뒤돌아보게 되네요
이미 아시는것 같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많은 가이드를 받을 수 있는 세이노님의 글을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이라고 아주 예전에 읽은 기억이 나네요. 직설적인 말투로 핵심만을 설명해준걸로 기억합니다.
그 분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눈물이 찔끔 났네요
저도 힘들게 힘들게 살아서 이제 좀
산다 싶은 상황이라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 ㅎㅎ
생산성덕후 괜찮은데요?ㅎㅎ
영화로 나와도 되겠네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멋진분의 좋은글 감사합니다!!
대단하십니다! 다음 편도 너무 기대되네요!!
저도 궤도를 바꿔보고자 나름 주경야독을 하고 있는데 님에 미치지 못합니다. 님은 두 개의 심장을 가지신듯 합니다..
제 경험에는 주변에 정말 흔치 않습니다.
님은 멋진놈이고 보통놈도 아닌듯 합니다..(노래가사 따라..)
재태크는 재테크로 사전에 등록되어 있답니다..
본문에서 오타를 찾을 수가 없어서 댓글을 달고 싶어서 짜내보았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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