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얼마 전에 TCP형 인간과 UDP형 인간,
그리고 인간이 '생각'을 하게 되며 갖게 된 고통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9011752 ,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9015362 }
유시민 작가가 비슷한 이야기를 보수와 진보에 대입해서 이야기하는 영상이 있어 소개합니다.
뇌는 애초에 '운동'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실을 알기 위해서, 더 나아가서는 '생각'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몸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생존하고 번식하기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설사 사실과 반대되더라도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인식하도록 뇌는 작동합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짝짓기 상대를 매력적으로 여기는 것도, 자기 아이가 누구보다도 예뻐보이는 것도, 많은 착시현상도 그런 뇌의 작용인 거죠.
또한 그렇게 진화하는 과정에서 뇌는 정확성보다는 신속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사실이 어떨지 고민하기보다는 빠르게 단정하고 확신을 갖는 쪽으로 진화해왔습니다.
인류가 과학적인 탐구를 하는 등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흐름입니다.
인류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역사와 신화를 구분하지 않았고,
증거나 진상 같은 것보다는 권위나 신념을 중시해왔습니다.
영상에서 유시민 작가의 말을 요약하자면
"뇌의 본업은 생존이고, 이 생존 본능에 충실한 것이 보수이다.
이 쪽이 생물의 자연스러운 성향이다.
반면, 자기 이해를 하고 의미,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뇌에게 있어서는 '부업'인데,
이 부자연스러운 쪽으로 더 기울어진 쪽이 진보이다."라는 것 같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말을 좀 더 소개하자면
보수적인 사람들은 생존본능에 충실하여, 어떤 방법을 써서든 이기고 살아남아야 한다, 생존이 선이고 이기는 게 선이다, 라는 식으로 생각을 합니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런 본능적인 생각과 행동이 맞는 것인지 따져보는 쪽이구요.
보수적인 사람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주식, 부동산, 재테크 등 생존과 직접 관련된 분야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반면 진보적인 사람들은 인문학이나 사회적 이슈, 자아실현 등에 가까운 커뮤니티를 선호합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자신들과 달리) 이재명처럼 생존 뿐 아니라 공동체의 의미에 관한 활동을 하는 사람을 증오합니다.
저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건 meme의 일종이고,
gene(유전자)가 그렇듯이 meme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변화/진화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진리라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신분에는 차이가 있다, 남녀간에 우열이 있다, 신이 이 세상을 생성하고 운영하고 있다고 믿었었고,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그와는 반대로 생각하죠.
제가 요즘 생각하는 건, 과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건 그들이 무식하거나 비윤리적이라기보다는, 그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유리했다, 즉 그렇게 믿는 게 진화적으로 유리한 전략이었다는 것입니다.
신분제, 남녀차별, 신 등의 meme들이 해당 환경에서 적자생존한, 자연선택된 meme인 것이죠.
반대로, 저를 비롯한 많은 현대인들이 그와 반대로 생각하는 것 역시, 현대인이 더 똑똑하고 윤리적이 되어서가 아니라, 현대문명이라는 환경에서는 그와 반대로 생각하는 게 진화적으로 유리한 전략이기 때문일 거구요.
앞으로 또 환경이 어떻게 바뀌는가에 따라서 인간의 인식, 세계관은 또 바뀌어 가겠지요.
나와 다른 사람의 가치관이 다른 건, 그와 내가 적응해야 할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지 내가 더 잘나서가 아닐 것이고...
진화에는 옳고 그름이 없으니 어떤 meme, 어떤 생각도 궁극적으로 옳고 그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와 진보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옳고 그른 건 없으니 아무 것도 판단하지 못하는 것 또한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특정 공리계 내에서 어떤 명제가 참인가 거짓인가에 대한 논리적인 판단을 할 수는 있죠.
가령 대한민국은 '헌법'이라는 공리계를 만드는 사회계약을 한 사회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이 공리, 즉 헌법에 부합하는가 아닌가라는 논리관계는 판단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사회계약에 동의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지양해야 하는가는 판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진보교수님들이 자신이 적을 두고 있는 대학교 이사장도 진보人으로 분류될까요? 영화계는 좌파로 가득하지만 CJ엔터 회장님도 좌파인가요? 성균관대학교는 삼성꺼죠. 세종연구소는 설립자가 전두환입니다. 현재는 현대가가 많이 맡고 있고. 진보가 설립했고, 거기에 적을 두고 월급타먹는 교수/실무자도 진보인 기관. 그런건 잘 떠오르지 않네요. 뇌가 뇌를 먹여살리진 못하니까요. 위장이 뇌를 먹여살리지.
오오 뇌와 위장으로 비유하는 것도 그럴듯하네요 :-)
당연히도, 이전부터 있던 기관이 더 필수적일 것이고
나중에 생긴 건 부차적인 거라고 할 수 있겠죠.
뇌보다는 위장이, 진보보다는 보수가 더 필수적일 것이고
그러니 우리는 기본적으로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뇌나 진보는 그 위에 추가된 모듈이겠죠.
생물은 원래 복제가능한 분자로서 시작했지요.
먹고 살다가 번식하는 기계로서의 역사가 생물의 역사의 대부분입니다.
뇌로 '생각'을 하면서 생존 외의 것에 관심을 갖게 되며 다른 종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명을 만들게 된 건
고작 수천~수만년간의 인류에게만 해당되는 아주 예외적인,
유시민의 표현대로는 '뇌의 부업'이자 '자연스럽지 않은' 경향입니다.
더 호들갑스럽게 말해보자면 뇌로 생각을 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려고 하는 건
뇌를 비정상적으로 사용하는 거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물론 틀린 표현입니다만)
저는 이런 뇌의 사고기능, 그리고 허구를 믿는 것 이외에 사실을 파악하려는 경향이라는 게
진화의 새로운 전략으로서 등장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전의 뇌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집단의 규모가 커진 영향도 있지 않을까...)
인간은 뇌가 없어도 괜찮았던, 위장 같은 것만 있어도 충분했던 초기의 생물과는 너무나 달라졌어요.
(뇌가 없었을 땐 아무 문제도 갈등도 반목도 없었을텐데...)
사족보행하던 인류가 이족보행을 하면서 여러 신체적인 문제와 고통을 갖게 되었듯이
'생각'을 하게 되면서 갖게 된 문제와 고통도 많습니다.
이제 와서 이족보행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어려운 것처럼 뇌의 사고기능을 삭제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이족보행의 문제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관리하면서 살듯이
'생각'에 의해 생겨나는 문제와 고통, 진보적인 경향이 나타나 생겨나는 문제와 고통도
잘 관리하면서 지내는 수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게 아니고 빠르게 합리화 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인간의 판단력이라고..
비슷하게는, 심리학 실험 중에도 그런 게 많은 것 같아요.
피실험자가 선택한 걸 다른 걸로 바꿔치기하고서 왜 이걸 선택했는지 얘기해달라고 하면 잘만 설명을 한다고...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