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베넷의 '지능의 기원'을 읽고 있는 중에 제 생각을 정리해본 내용입니다.
이전에 썼던 만화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를 읽고 쓴 글과도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8959299

애초에 우리의 뇌는 '사실을 알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몸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생존하고 번식하기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온 것일 뿐이지요.
(비록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자기 아이가 예쁘다고, 자신의 짝짓기 상대가 매력적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번식하기 유리하고, 우리는 대를 이어 그런 과정을 겪어온 조상들이 낳아온 후손입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사실이 아니거나 불합리하더라도 진화적으로 유리한 쪽으로 인식하는 존재가 되어온 거죠.
여성은 열등한 존재라거나, 사람의 신분에는 차이가 있다거나, 신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생각들도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그들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렇다고 인식하는 쪽이 생존하고 번식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믿게 된 것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이 인간은 평등하다는 등으로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현대문명이라는 환경에 적응한 결과일 수 있겠구요.)
뇌라는 건 생물이 움직이고 반응할 수 있도록 진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가장 원시적인 뇌는 그저 신경망이었습니다.
자극 -> 반응 이라는 단순한 스위치 같은 것이었죠.
이 기능을 더 효과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뇌가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후에는, 예전의 경험을 저장하고 다음 행동에 활용하는 '기억'이라는 기능이 생겼습니다.
더 나아가, 이 기억을 조합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측하거나 상상하는 능력, 즉 '사고'가 등장합니다.
특히 인류은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을 겪으며 상징적 사고, 언어, 예술 등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사고 기능을 다른 종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능력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진화의 산물인 뇌가, 이제는 스스로 진화라는 과정을 이해하고,
그 흐름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특이한 분기점이었는지를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 한편으로 인류는 진화시스템의 일반적인 방향에서 벗어나
출산 없는 섹스, 정신적인 만족을 위한 금욕, 자살, 약물, 의미 창조 등 진화시스템을 해킹(!)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
우리는 지금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의 등장을 앞두고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말을 쓰지만,
자연(혹은 진화시스템)은 이미 한 차례 그 특이점을 겪은 셈입니다.
바로 의식을 가진 종 – 인간이 등장했을 때 말입니다.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your-brain-evolved-from-bacteria/
이렇게, 자극에 대한 반응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뇌는
아이러니하게도 미래를 상상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반성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운동 도구였던 뇌가, 어느 순간부터 의도되지 않은 기능인 '사고'를 실행하기 시작한 겁니다.
오류를 무릅쓰고 말해보자면 '사고'라는 건 뇌를 비정상적으로, 일탈적으로 사용하는 행위인 셈이겠습니다.
(물론 진화에는 정상/비정상이라는 게 없으니 틀린 표현이긴 합니다.)
이런 인류 뇌의 사고 능력은 놀라운 문명을 만들어낸 동시에,
우리에게 다른 어떤 종도 겪지 않을 심리적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의미 중독, 불안, 죽음에 대한 자각 등.
이것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된, '사고'를 하게 된 대가입니다.
인류는 사족보행에서 이족보행으로 진화하며 여러 이점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척추 질환이나 출산의 고통 같은 새로운 문제들을 감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족보행의 부작용을 스트레칭이나 생활 습관 교정, 물리치료, 수술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사고라는 능력이 가져온 고통 역시 이족보행의 부작용들처럼 인류가 관리하고 견뎌야 할 조건일 겁니다.
뇌과학자들, 의사들, 생물학자들 중 많은 수는 명상을 권하고,
우울하거나 머리가 복잡하면 계속 그 생각에 잡혀있지 말고 산책이나 운동 등 몸을 움직이기를 권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줄이고 움직임을 많이 하는 것, 그것이 아마 뇌의 원래 쓰임에 맞는 것일 테니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마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온 수많은 종교, 철학, 사상들도
이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다스릴 수 있을지를 고민한,
진화적 적응을 위한 결과물이었겠지요.
그런 노력들을 대략 보자면 이런 것 같습니다.
1. 서양의 '신 숭배' - 사고를 중단하라
간단히 말해 '(생각하지 말고) 믿으라'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언 3:5)'라는 식입니다.
신이 정해준 길을 벗어난 사고는 의심이고, 의심은 곧 죄입니다.
선악과, 바벨탑, 이카루스의 날개, 판도라의 상자, 프로메테우스의 불 등이 그런 경고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지식과 판단력을 갖추려는 시도 자체가 신의 권위를 넘보는 죄가 되는 셈입니다.
즉, 사고를 멈추고 신이 이미 정해준 질서에 복속함으로써 구원에 이르려는 방식입니다.
진리, 즉 정답은 이미 경전의 텍스트로 주어져있으니,
사고 기능은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암송하고 받아들이는 것에만 사용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2. 동양의 自然, 空 사상 - 사고를 초월하라
서양의 '신'은 이 세계 외부에서 이 세계를 만든 무언가인 반면
동양에는 자연(自然 ; 스스로 그러함) 그 자체가 질서이며
그 질서에서 벗어날 때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노자는 "지(知)를 끊으면 근심이 없다(絕學無憂)",
"도(道)는 말할 수 없고(道可道 非常道), 이름 붙일 수 없다(名可名 非常名)"이라 하며,
도(道)는 '앎'으로 닿는 게 아니라 직관, 무위(無爲)로 체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불교는 지혜(반야)는 생각(念)이 멸한 곳에서 피어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사량즉괴(思量即乖), 분별심에 대한 경계 등을 이야기합니다.
즉, 사고는 실재를 왜곡하고, 깨달음은 오히려 그 사고를 벗어남으로써 온다는 것입니다.
명상에서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알아차리라'고 합니다.
요컨대, 동양 사유에서는 사고가 실재를 밝히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가리는 장막으로 여겨졌습니다.
3. 철학, 과학 - 더 치열하게 사고하라
이 방식들은 위의 방식들과는 다르게 사고를 멈추거나 초월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이미 신이 내려주었다는 사고방식과 반대로,
소크라테스의 선언처럼 '나는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통의 원인인 사고를 거부하는 대신, 그 사고 자체를 고도화하여 고통을 뚫고 나가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아직 사고의 고통을 완전히 해결할 방법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족보행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말이죠.
인류가 이족보행에 완전히 적응하려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동안 진화를 더 해야 하겠듯이,
사고 기능에 완전히 적응하여 편해지도록 우리 몸이 진화하는 것도 짧은 시간 내엔 불가능하겠지요.
저는 한편으로는 조만간 AI가 그동안의 인류가 해온 많은 고민과 갈등, 탐색, 성취 같은 것들을
(해결이라기보다는)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사고의 기능 자체를 AI가 완전히 떠맡거나 하게 된다면,
'생각한다는 것의 고통'이라는 이 오랜 문제도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이 떠안을 이유조차 사라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에 언급하신 AI가 인간의 뇌처럼 기능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제공하는 튜닝된 자료가 아니라 자극을 수용하는 센서를 장착해야겠죠. 그동안은 외부를 사람들이 만든 자료로 인식해온바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몸과 자극수용체를 달아야하지 않을까요. AI에게 몸과 오감센서를 추가하면 인간과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지...
육상에서 빨리 이동하기 위해서는 사람 같은 다리가 아니라 바퀴가 유리하듯,
AI가 어떤 기능을 잘 하기 위해서 사람처럼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처럼' 작동하는 AI를 만들려면 뇌와 감각기관, 내장까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내장은 뇌와 미주신경으로 연결되어 있고 '제2의 뇌'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감정은 내장에서 올라온다'고 표현을 하는 거 같기도 하고...)
AI는 사람과 같은 몸이 없기 때문에 내장같은 것들은 글쎄요.. ^^ 전기를 뽑아먹는 놈들이라... 거기에 무슨 감각기관이 있으면 되려나요?
제 생각을 확장해보면, 우리가 SF에서 흔히 접하듯 로봇과 홈어플라이언스들이 이미 센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접근을 허용하고, 혹은 공공에 개방된 센서들이나 기기들, 이를테면 CCTV나 기상청관측기 같은 것들을 열어서 스스로 계속 데이타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그 자극에 자율적으로 반응을 하면서 세상을 해석하는 거죠. 그러다보면, 인간이 텍스트로 전달한 튜닝된 지식과는 다른 실제경험을 습득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실제 물리적인 몸에 해당하는 제어나 실행권한이 없이 반응을 보인다는 건 있을 수 없겠지만, 우리의 행동이 이미 실행되기 전에 마음 속에서 가상의 자아로 사전예행연습이나 모방을 하고 있기도 하쟎습니까. AI에게 가능한 영역이란 수집된 데이타를 가지고 반응으로 보이는 영역을 가상으로 시공간의 제약없이 자기 안에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 후에 여차저차해서 현실의 제어권한을 쥐어주는 순간이 스카이넷이 현실화되는 순간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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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과 뇌는 장-뇌 축(Gut-Brain Axis)으로 직접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고,
세로토닌의 90% 이상이 장에서 생성된다는 등
감정과 직관, 본능적인 판단의 상당 부분은 내장의 신경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의식이라는 게 뇌만으로 생기는가, 아니면 전체 생리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가,
사고 능력은 인지적 연산 결과인가, 아니면 감각적/신체적 상태에 기반한 통합 결과인가,
그렇다면 AI의 '몸'은 어디까지 구현되어야 인간과 같은 사고와 감정을 흉내낼 수 있을까 라는 점에 대해
저로서는 말씀대로 'AI가 인간의 뇌처럼 기능하기 위해서는'
내장까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긴 합니다.
(인간과 다른 식으로 작동하는 AI라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근데 어차피 뇌도 소프트웨어로 구현하려는 건데, 센서는 하드웨어로 만들어야겠지만
내장 등도 말씀하신대로 '시뮬레이션' 같은 걸로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하면 되겠군요 :-)
인간의 뇌도 생물학적 신경망이고 AI의 뇌도 전기적인 신경망으로 생각하면
이전 인간이 자극에 반응하듯 지금의 AI는 프롬프트에 응답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AI도 자의식이 생기는 순간이 오겠군요.
어떤 방식으로든 시간문제일 거 같습니다.
밖에서 찾지말고 내 안에서 찾아라구요.
저도 수행중인데..제 스승님께서 공 , 도, 반야는 과거부터 내노라하는 학자들이 떠드는 말이나 글도 아니고 현존하는 문자로도 표현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부처님 수준까지 오른 사람이 단 한명도 없고 발가락 때 수준도 안됩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
전 싯다르타가 했던 작업이 결국 마음을 공부하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그가 지금 태어났으면 심리학이나 뇌과학을 공부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
보더랜드 3였나 어떤 게임 중에 갑각류 괴물인데 지능이 발달해 자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너무 괴롭다고 자의식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하는 퀘스트가 있었습니다.
필립 K 딕의 단편 중에도, 미래 예측 능력을 가지면서 그냥 예측에 따라 반사적으로 반응만 하면 되니 쓸데없는 자의식 따위는 없는 신인류가 등장하는 것도 있었죠.
자의식은 결국 신경망의 부산물일 뿐이고 고통을 안겨 준다는 관점에 동의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불교의 가르침이 이와 상통하는 것 같구요.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가지는 건 시간 문제라고 보고, 사실 외부에서 보기에 자의식이 있는 것과 똑같이 반응한다면 내부에서 정말 자의식이 있는지 구분할 수도 없고 구분하는 게 의미도 없다고 봅니다. 극단적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자의식이 있다고 믿는 것도 합리적 추론일 뿐 증거 따위 없잖아요.
보더랜드 프리시퀄에서 펠리시티가 자아를 유지시켜달라고 했던 것 같긴 한데,
3편에서 그런 게 있었던가요... 왜 기억이 안나지 ㅠㅠ
어쨌든 보더랜드 얘길 들으니 반갑네요 :-)
보더랜드 2를 nn회차 플레이중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자의식이 있다고 믿는 것도 합리적 추론일 뿐 증거 따위 없잖아요."
=> 저도 종종 하는 생각입니다.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AI라면 내가 인간과 다르게 대할 이유가 있을까, 라고...
이렇게 기억이 안나다니... 어쩔 수 없네요. n+1회차 도전입니다...
개인으로써는 사고능력이 경쟁력을 갖게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를 것 같고, 집단으로써는 지구상의 가장 강력한 동물종이 되었으니까요. 결국 사고의 고통도 생명체로써는 적응 또는 진화의 결과물일테니 유리한 고통이겠지요.
우울, 불안은 아마도 우리의 몸이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 결과물이리고 봅니다. 몸은 선사시대와 다르지 않지만, 정보가 넘치는 지금의 환경이 우리의 뇌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고를 하게 만드는 상황. 혹은 세상은 너무도 안전해 졌는데, 우리의 뇌는 과거에 죽고 사는 문제를 접한 것처럼 과도하게 반응을 해서 힘들어지는 상황. 그래서 두렵고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판단해서 그에 적절한 대응을 해야하는데, 불안을 느끼는 대로 그대로 반응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생긴다고 봅니다.
말씀대로, 진화에 적응해가는 과정일 거 같습니다.
원시시대나 별 다름없는 몸을 갖고 현대의 음식들을 먹으면서 여러 성인병들이 생기는 것도 그렇고...
"세상은 너무도 안전해 졌는데, 우리의 뇌는 과거에 죽고 사는 문제를 접한 것처럼 과도하게 반응을 해서 힘들어지는 상황"이라는 표현도 꽤 괜찮은 것 같네요!
뇌과학 책들에서 자주 얘기하는, 시험 같은 긴장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식은땀이 나고 소화가 안되고 하는 등의 몸의 상황이라는 게 결국은 원시시대에 포식자를 만났을 때 효과적으로 도망가게 하려는 본능이 여전히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설명이 그런 거겠죠.
어떤 능력들에 있어 인간보다 뛰어난 AI를 만드는 것보다
'인간과 동일한' AI를 만든다는 게 훨씬 힘든 일이겠죠...
저 위 댓글에도 썼듯이 그러려면 뇌 뿐 아니라 감각기관과 내장 정도까지는 구현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오히려 AI의 한계점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얀 르쿤의 말을 인용합니다.
"LLM의 추론 능력은 약하지만 방대한 용량의 연상메모리가 그 약점을 부분적으로 보완해준다. 이들은 학습 자료를 단순하게 달달 외우기는 했지만, 그 밑바탕에 있는 실재에 대해서는 심오한 정신적 모델을 구축하지 않은 학생과 비슷하다."
LLM은 사람 한명이 1,000번 살면서 읽을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책과 글을 읽어서 상식적으로 추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천문학적으로 방대한 텍스트 말뭉치에서 패턴매칭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작동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하지만 바깥세상에 대한 내적모델이나 마음에 대한 다른 모델을 통합하지 않는다면, 다시말해 시뮬레이션과 정신화 라는 혁신을 통합하지 않는다면 LLM은 인간의 지능에 관한 본질적인 뭔가를 담아낼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지능의 기원 p.478 인용).
그러면서 언젠가 우리가 만들어낼 AI가 LLM이 아닐 것이라는 점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할 것이라고 하죠. 언어모델은 그저 인간의 지능, 그 밑바탕에 자리잡은 더 풍부한 뭔가를 들여다보는 창에 불과하다고도 합니다(p.479).
전 이 책을 읽고 나서 사고의 기능을 '완전히' AI가 떠맡게 될 날은 오히려 먼 미래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 기능에 있어서는 현재도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긴 하지만 닉 보스트롬이나 레이 커즈와일이 말한 그 '초지능' 또는 '특이점' 이 오려면 물리학, 화학, 생리학, 전자공학, 로봇공학 등 과학과 공학 전반적인 분야에서의 엄청난 혁신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책은 한번 읽기에는 너무 아깝고 두세번 읽어도 괜찮은 아주아주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LLM 정도만 해도 뻑이 가고 겁이 나고 하는데
계속 더 엄청난 것들이 나오겠죠... ㅠㅠ
chatgpt를 나름 재미있게 쓰고는 있지만
10년 후에, 20년 후에 과연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그런 얘기를 chatgpt랑 한 적이 있어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950209CLIEN
언젠가 AI가 인간에게 '너는 왜 존재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을 하게 될지도...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 3부작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어쩌면 인류는 AI나 그걸 가진 극소수의 인간들에게 (어떤 자원을 공급하는) 가축 취급을 받거나,
그럴만한 쓸모도 없으면 폐사;;되거나 할지도 모르겠어요.
감사합니다 :-)
결국 인간의 자아는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기위해 발달된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목적으로 발달된 인간 의식과 지능이 문화를 발전시키고 학문적 과학적 지식을 축적하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자아라는 것도 뇌가 생성한 하나의 기능일 거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자아가 이 뇌와 몸을 움직이는 것일지,
아니면 뇌와 몸이 자아를 움직이는 것일지가 궁금해요.
그에 관한 글을 써봤던 적이 있습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781735CLIEN
수천 년 전의 텍스트를 금과옥조로 만드는 후대사람들과는 별개로, 싯다르타의 직관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생각을 안하고 투자하나, 생각을 치열하게 하고 투자하나,,, 결국 성과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요.
투자에서 성공하려면 똑똑하거나 생각을 많이 하는 것보다 성품이 더 중요합니다. 자기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자기 생각을 결과에 따라 계속 수정하고 업데이트 하려면, 그리고 유혹이나 위기가 눈 앞에 놓였을 때 건강하게 반응하고 올바른 전략이라면 어려움을 이기고 실천하려면, 필요한 건 겸손하고 우직한 성품이죠.
모두가 AI를 활용해서 생각의 고통이나 부작용들을 줄이는 것이 가능해져도 사람마다 성과는 다르게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성품이 다르기 때문이죠.
저는 무지성 나스닥입니다... 저를 못 믿겠어요...
요즘 레이 커즈와일의 마침내 특이점이 온다를 읽고 있는데 10년안에 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가능하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인지를 관장하는 뇌의 신피질 부분만 연결하면 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인지혁명을 뛰어넘는 인지 추상 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네요.
그때도 본문에 언급하신 사고의 고통과 같은 부작용이 있을지 궁금하군요.
인류가 '인지혁명을 뛰어넘는 인지 추상 능력'을 가진 정도가 되면
아마 침팬지가 인류를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도 그렇게 된 인류를 이해할 수 없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쪽에서 보면 지금의 우리가 원숭이...
각 개체가 클라우드 같은 걸로 연결되든 소설 '유년기의 끝'처럼 통합되든 할 지도 모르고...
지금의 고통은 없어지거나 무의미해지거나 하고 그들 나름대로의 문제를 갖고 살게 되겠죠 아마.
도구와 같이 사고기능을 외재화하였기 때문에
진화와는 또 다른 양상이 출현한 것 같아요.
공동체가 만든 사고의 유산이 인간과 결합해 동작하고 있으니까요.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인류는 언어 도구 사회 같은 걸 만들어 그것들과 공진화하는 종이 된 거겠지요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그냥 여러 유인원들 중 하나였을테고...
요즘은 어디부터 사이보그라고 봐야하나 궁금한 생각이 들어요.
뇌- 인터페이스 컴퓨터
로봇 팔, 다리, 장기이식
인공지능 에이전트
스마트폰, 인터넷
자동차
학문 체계
사회 제도
언어
모두 인간의 능력을 증강시키는
공진화 매체인것 같아서요.
데이빗 차머스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이론'에서는
"마음은 두개골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종종 외부 도구와 환경을 통해 확장된다."고 한다던데,
언어는 생각을 물질화하는 사고의 외부화 장치,
컴퓨터는 기억과 연산 등을 확장해주는 외장 뇌 라는 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죠.
사이보그를 인간과 외부 시스템의 총합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미 넓은 의미에서 사이보그라 할 수 있을지도요.
인류는 유전자(gene) 뿐 아니라 meme까지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외부와 공진화하는 존재일 거구요.
물리적인 고통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정신적인 고통, 괴로움이라는 건 어쨌든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긴 할 테니...
같은 상황을 겪어도 그게 누군가에겐 괴로움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을 거고...
똑같은 곳을 사진으로 찍을 때
제가 찍으면 그냥 밋밋한 현장사진인데
누군가는 같은 카메라를 갖고도 예술사진처럼 예쁘게 찍기도 하죠.
저에게는 그냥 밋밋한 장면이,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는 예쁜 사진이 될 장면으로 보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객관적인 장면은 동일한데, 그 사람과 저의 차이는 안목, 혹은 마음이겠고,
서로 전혀 다른 장면을 보며 살고 있는 셈이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든 뭐든 무언가가 아름다운가 추한가, 즐거운가 괴로운가 등은 각자가 보는 눈, 각자의 마음 안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간단하게 정리가 되는군요!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
그러고보면 말씀하신 불안과 우울도 그렇고, 신체적 고통이라는 것도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몸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기제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고통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 ㅠㅠ 라는 원망도 생기고...
(라고 써놓고 보니 아파도 병원에 안 가고 버텼다는 글에
'너한테 병원은 죽어서 리스폰하는 곳이냐'라는 댓글이 달렸다는 것도 생각나고;;;)
어쨌든, 말씀하신대로 저도 좀 더 움직여야겠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