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문제 상황
대부분의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죠
간단히 말해, 대표들(representatives)을 선거라는 일종의 '동의' 과정을 통해 뽑은 뒤, 그들이 정치적 결정을 하도록 맡기는거죠
여기서 대표가 선거구 시민들의 의사를 대표해야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관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지를 놓고 관점이 갈리기도 하죠
(고전 사상가 중 Pitkin은 대표적으로 전자, Burke는 대표적으로 후자)
하지만 이런 대의 민주주의 내의 규범적 문제를 떠나서, 대의 민주주의 자체가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수많은 문제들이 존재하죠
대표적인 게 자본에 의한 침식이죠
정경유착이라고도 불리고, capture라고도 불리는 문제인데, 이건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든 대의 민주주의 국가의 문제점일 겁니다
간단히 말해, 대표가 자신을 뽑아준 사람의 의사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하기에 정치적으로 옳은 관점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아니라, 자신의 사적인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민주주의에 기대하는 핵심적인 것들은 크게 보면 두 가지겠죠
1) 특정 소수의 관점이나 이익만을 실현하지 않고, 나를 포함한 평범한 다수의 관점이 반영된 의사결정을 통해 최대한 '좋은' 결정을 내린다.
-> 우리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정치를 원하지 않죠
2) 특정 소수만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공평한 기회를 통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한다.
-> 우리는 설령 모든 정책에 대해 국민투표 방식으로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그 모든 정책을 내리는 사람들을 직접 뽑죠. 이런 방식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우리는 우리를 지배할 사람을 우리가 직접 뽑음으로써 흔히 말하는 피치자와 통치자의 일치를 이룬다고도 볼 수 있죠.
대의 민주주의는 이 둘을 적당히 타협한 제도라고 볼 수 있죠 (역사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대표는 (국회의원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보다 정책 등에 대해 더 잘알겠죠 그들이 최고의 전문가는 아니어도, 정책을 만드는 게 직업이므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는 전문성을 더 갖겠죠 따라서 이들이 만드는 정책이 '좋은' 정책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겠죠
동시에 대표선출에는 모든 사람들이 (선거구에 따라 나뉘겠지만) 공평한 기회 (1인 1표)를 통해 참여하죠
하지만 정경유착된 대표들은 우리가 민주주의에 기대하는 것들을 배신하겠죠
대표의 사적이익에 따라 정치적 행동과 정치적 결정을 내리게 됨으로써, 자신이 대표해야할 사람들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지도, 그렇다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공적 이익에 해당하는 것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게 되는거죠
결국 대표의 사적 이익을 실현해주는 정책이 '좋은' 정책일 가능성은 낮고 (우연의 일치로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정한 선거에 의해 선출됐다는 이유로 자신이 만들어낸 정책이 누구의 이익을 실현하고 있든간에, 민주적으로 정당한 정책이라고 얘기하겠죠
결국, 우리의 이익을 실현하지도, 어떤 점에선 '우리가 가상적으로 동의할 법한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 우리가 '저건 내가 내린 결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같은 식으로 궁극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지도 않음으로써, 치자와 피치자의 일치라는 민주주의의 이상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거죠
극단적으로 보면, 정경유착/capture된 대표들이 가득한 대의 민주주의는 과연 민주주의인가 물어봐야할 정도겠죠
루소가 말하듯이, 시민들은 단지 선거날에만 자유롭고 나머지 시간들에는 노예로 산다는거죠
아무리 국민의 뜻이라든가 popular will 같은 게 모호한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대표의 사적 이익에 따라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게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상황은 분명 비정상적이겠죠
그러면 대의 민주주의의 대안은 없는가 물어봐야겠죠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죠
대략 이런 식입니다
임의로 선출된 자가 공직을 번갈아가며 맡으면, 설령 시민들 중에 지금 당장은 피치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 또한 언젠가는 통치자의 자리에 올라갈 것이므로, 그들의 자유는 침해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하에서 시민들은 어떻게 자유로운가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대답은 이거죠
통치자와 피치자가 일치하기 때문에, 민주적 결정은 '우리'의 결정이지 다른 누군가의 결정이 아니다
타락한(?) 대의 민주주의의 문제는 정치적 결정이 어떤 식으로 보더라도 '우리'의 결정일 수가 없게 된다는거죠
그 결정을 정당화하는 '이익'이 결국 대표 개인의 사적 이익이 되니까요
1. 로토크러시(lottocracy)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는 모든 공직을 임의로 뽑힌 사람들로 채우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현대의 일부 대안적 이론들 중엔 lottocracy라고, 아예 대의 민주주의를 대체하려는 이론이 존재하죠
lottocracy의 핵심 근거들을 가볍게 살펴봅시다
1.1 치자와 피치자의 '통계적' 일치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젠가는 피치자도 통치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피치자가 영원히 피치자로만 머물지 않기 때문에 통치자와 피치자가 구분되지 않는다고 봤죠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비유하면, 어떤 자가 영원히 주인이 될 수 없고 노예로만 살아야한다면 그는 노예에 불과하겠지만,
언젠가 한 번은 주인이 될 수 있다면, 그는 노예이기만한 건 아니라는거죠
그리고 모두가 똑같은 확률로 '언젠가 한 번' 주인이 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특권을 가진채 주인행세를 할 수 없고, 지금 당장 주인인 사람도 다음 번엔 노예가 될테니 지금 노예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거죠
현대 로토크래시 이론은 이런 식의 동등한 기회를 강조합니다
모든 시민들은 언젠가 한 번 의사결정자가 된다는 거죠
그럼 이렇게 '언젠가 한 번 주인이 된다'는 것이 과연 민주적이냐 물을 수 있겠죠
Landemore의 경우,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를 평등(equality)과 포함(inclusion)으로 짚으며, 이 두 원리를 충족하는 제도는 민주적이라고 주장하죠
전통적인 이론들 (사회계약론에 기반하거나, 고대 아테네식 민주주의에 기반한 이론들)은 어떤 결정이 민주적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게 바로 '동의(consent)'라고 보죠
현대 대의민주주의에서도 대표 선출 과정에서 시민들의 동의가 이뤄진다고 보고, 거기에서부터 궁극적으로 국회에서 만들어낸 법안들의 민주적 정당성이 나오는거죠
하지만 Landemore는 동의가 민주적 정당성의 핵심이 아니라고 봅니다
간단히 말해, 민주적 정당성의 핵심은 '그 결정이 우리에 의해 내려졌는가'라는 거죠
흔히 self-government와 self-legislation이라고 불리는 두 개념을 구분하죠
스스로 통치하는 것(self-government)은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이념이죠
시민들 자신이 동의한 결정들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들은 설령 그 결정들을 본인들이 직접 내리지 않았더라도, 자기자신이 스스로를 지배하는 것이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지배되는 게 아니라고 보는 거죠
스스로 입법하는 것(self-legislation)은 루소식 공화주의 이념에서도 발견되는데요, 간단히 말해 결정에 대한 동의로는 불충분하고, 결정 자체를 피지배자가 내려야한다는거죠 오직 그때에만 피지배자들은 진정으로 자기자신의 지배자이며, 그때에만 진정으로 그들은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의 주인이라는거죠
Landemore 같은 식의 관점은 전자보다 후자를 더 강조하는 거죠
단순히 동의가 핵심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가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한다는 겁니다
근데 당연히 이 관점엔 문제가 있죠
왜 현대에는 고대 아테네처럼 아고라에 모여서 온갖 방식으로 언쟁하고 토론하고 자기변호를 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소수의 대표들을 국회라는 제한된 공간으로 보내서 그곳에서 정치적 결정을 하게하는가?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정치공동체의 크기가 커졌다는 거죠
루소만해도 소규모의 공화국에서만 자신의 사회계약론이 적용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죠
현대 국민국가는 더이상 작은 국가가 아니라 대형 국가이므로, 말 그대로의 self-legislation을 실현하기엔 무리가 있죠
여기서 현대의 lottocracy 이론가들은 앞서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디어를 현대에 적용해보려는거죠
과연 한 번에 모든 국민들이 직접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해야만, self-legislation이 이뤄지는가?
중요한 건, 대표가 아니라 '우리'에 의해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어떤 sampling 과정을 통해 어떤 집단을 임의로 뽑는다면, 그 sampling 과정만 올바르게 짜여질 수 있다면, 그렇게 임의로 뽑힌 사람들의 집단은 국민 전체와 통계적으로 같은 존재 아닌가?
즉, 전체로서의 '우리'와 통계적으로 같은 구성을 갖는 소규모의 '우리'를 만들고, 그 소규모의 '우리'가 의사결정을 내리게 한다면, 그건 대표라는 사적 이익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자에 의한 통치보다 더욱 '우리에 의한 우리의 통치'에 가까워지지 않냐는거죠
* 물론, 통계적 일치가 과연 진짜로 '같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느냐에 대해 논쟁이 있죠. 가령, 우리나라 안에서 성별, 직업, 소득, 지역 등등에 따라 세분화된 범주에 따라 각종 범주에 속하는 실제 사람들의 비율에 따라 비례적으로 해당 집단을 구성한다고해서, 과연 그 집단이 '우리'와 같냐는 거죠.
1.2 민주주의와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
예전의 글에서 간략하게 언급하기도 했습니다만,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흔히 말하는 유권자의 무지죠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그들의 이익에 관련된 중요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법안의 복잡성, 온갖 종류의 이슈들, 언론의 제한된 해석 등의 이유로 informed decision을 내리기에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갖지 못한채로 투표한다는 거죠
근데 이건 그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Constant이 말하듯 근대인의 자유가 더이상 고대인의 자유와 같지 않기 때문이고, 바꿔 말해, 현대인들은 비정치적 사회 영역(i.e. 경제)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아야하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 설령 그들이 더 나은 정치적 결정을 내리기 위해 후보에 대해 많은 조사를 하거나, 법안에 대해 많은 정보습득을 하더라도, 그들의 1표는 사실상 결과를 바꾸지 못할 정도로 낮은 가치를 갖죠
따라서 유권자들은 오히려 합리적이기 때문에 기회비용 계산 등을 통해 정치에 대해 무지하다는거죠
lottocracy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대략 몇 백에서 몇 천 정도 되는 사람들이 정책결정자로 뽑히고, 그들이 짧은 임기를 채우는 동안 적절한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명예가 간다면, 그들은 보통의 시민들보다 훨씬 더 정책 등에 대해 전문성을 갖게 될거라는 거죠
결국 다수의 유권자가 합리적인 이유로 정치에 무지한 반면, 임의로 뽑힌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잘 알아야할 합리적인 이유 (경제적 보상&사회적 명예)가 있기 때문에, rational ignorance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거라는 거죠
물론 여기서는 임의로 뽑힌 자들에 대한 전문가에 의한 교육 등을 전제하고 있죠
1.3 정경유착/capture의 문제
대의 민주주의에서 대표가 보다 쉽게 정경유착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이 소수이며, 임기가 상대적으로 길고, 꽤 높은 확률로 다음 번에도 대표로 뽑힐 것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죠
lottocracy는 이것들을 다 반대로 뒤집어놓습니다
1) lottocracy의 구성원은 임의로 뽑히기 때문에, 실제로 구성원이 뽑히기 전까지 누가 lottocratic body에 들어갈 것인지 알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거대 자본이 미리 의사결정권자를 포섭하려해도, 경제적으로 소수의 대표를 포섭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따라서 대의 민주주의에서의 정경유착보다 정경유착이 더 어려울 거라는 겁니다
-> 물론 여기서는 미국식으로 로비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 가령 광고/언론 등을 통해 특정 기업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형성시켜놓는 식의 간접적 유착(?)은 막기 어렵겠죠
2) lottocracy의 구성원들은 짧은 임기동안만 일합니다. 왜냐면 이들은 이것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할 수 없고, 또 다른 누군가가 뽑힐 기회를 줘야하기 때문이죠.
3) 그리고 한 번 뽑힌 사람들은 더이상 뽑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다음 선거를 위해 미리 작업을 해놓을 이유가 없겠죠.
1.4 문제점?
결국 lottocracy가 노리는 건 크게 두 가지인 셈이죠
1) 피치자와 통치자의 일치 (통계적이라는 우회적 방법을 통해)
2) 합리적 무지를 극복하고,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
한 마디로 하면, 통계적으로 '우리'와 같은 '우리'가, '우리'의 문제점인 합리적 무지를 극복함으로써, '우리'가 좋은 정책을 만든다
근데 여기에 약간 역설적인 상황이 존재하죠
가상적 동의(hypothetical consent)라는 개념을 살펴봅시다
내가 매우 이성적이고, 매우 상식적이고, 매우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생각해서 내린 결론은 단순히 나만이 동의하는 게 아니라, 나와 같이 이성적이고 상식적이고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다고 해봅시다
그럼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열심히 서로 토론해서 정책을 만들면 우리와 같은 수준의 상당수의 사람들이 동의하겠죠
설령 지금 당장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이 나와 같은 수준으로 이성적이고, 상식적이고, 건전한 사고를 하게 된다면, 그들도 결국 우리가 만든 정책에 동의할 겁니다
이런 식의 동의를 바로 가상적 동의라고 하죠
하지만 문제는 가상적 동의는 실제 동의가 아니라는 거죠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부모가 자식을 위해 결정을 내리면서 '네가 크면 지금 내 결정이 옳다고 생각할거야'라고 말했을 때, 자식이 수긍하고 따른다면 일종의 가상적 동의겠죠
하지만 자식이 성인이 되고나서 '그때 결정에 여전히 동의할 수 없다'고한다면?
이런 상황이 가상적 동의에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거죠
아무리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인간들이 모여서 토론해서 의사결정한다고해도, 그들이 놓치는게 존재할 수 있겠죠
시대적 상황이나, 시대적 편견 등이 대표적이겠죠
(가령, 칸트는 자신의 인류학 책(?)에서 인간의 범주를 서유럽인과 동유럽인으로 정해놨죠. 다른 인종들은 인간이 아니기에, 타인을 수단으로만이 아닌 목적으로도 대우하라는 그의 formula가 적용되지 않겠죠. 칸트는 분명 이성적이고 상식적이고 건전한 사고를 가졌을텐데도 한계를 보인다는 점을 보면, 이런 식의 자질에 기반한 가상적 합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건 놀랍지 않죠)
lottocracy에도 유사한 상황이 존재하죠
랜덤하게 뽑힌 사람들은 따로 전문가 등을 통해 교육을 받고, 특정 문제에 대해 정책 토론을 하는 게 일이므로 뽑히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지식과 정보를 갖겠죠
그 지식과 정보에 기반해서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lottocratic body에 의한 결정은 합리적으로 무지한 유권자가 투표로 결정한 정책보다 더 '좋은' 정책일 가능성이 높겠죠
근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죠
만약에 뽑힌 자와 뽑히지 않은 자 사이에 상당한 지식/정보 격차가 존재한다면, 과연 뽑히지 않은 대다수의 시민들은 과연 랜덤하게 뽑힌 자들에 의한 정치적 결정을 '우리'의 결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랜덤하게 뽑힌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겠죠, "여러분들이 설령 지금 우리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여러분과 같은 일반 시민이고 단지 조금 더 공부하고 토론한 것에 불과하므로, 여러분이 우리만큼 공부하고 토론하게 되면 여러분은 우리의 결정이 왜 옳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다른 종류의 가상적 동의와 뭐가 다른지 의문이죠
차라리 이럴 거면 epistocracy처럼 아예 뛰어난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정책을 결정하게 하거나, 아예 뛰어난 유권자들로 하여금 대표들을 뽑게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더 나아가, 만약 저런 지식과 정보의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문제겠죠
왜냐면 lottocracy가 해결하려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rational ignorance인데, 합리적으로 무지한 유권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지식/정보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의사결정을 한다면, 쉽게 말해 '좋은' 정책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존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한다는거죠
결국 임의로 뽑힌 자들이 내린 결정을 일반 시민이 따라가지 못하는 건 lottocracy의 관점에서는, 한편으론 정상적인 상황이지만,
'우리'에 의한 통치를 강조하는 lottocracy의 목표와 충돌하지 않냐는 거죠
2. 대의민주주의의 대체가 아니라 보완
lottocracy는 대의 민주주의의 보완이 아니라 대체제죠
반면, Fishkin 같은 사람은 대의민주주제의 보완제도로 넓은 의미로 lottocratic approach를 씁니다
deliberative polling이라고 부르는 건데, 간단히 말해 임의로 뽑힌 사람들이 특정 장소에 특정 기간 동안 모여서 특정 주제에대해 숙의함으로써 일반시민들의 의사결정을 얻는 거죠
(우리나라 고리원전 5,6호기 재개결정을 이걸로 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유사하지만 랜덤성이 사라진 게 deliberative day라고, 이번엔 모든 시민들이 풀뿌리 방식으로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상위 공동체로 그들의 질문과 의견을 모아서 궁극적으로 후보자에게 모든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질문과 의견을 던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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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제임스
윤리학: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325722CLIEN
믿으려는 의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415994CLIEN
결정론의 딜레마: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460115?od=T31&po=0&category=&groupCd=CLIEN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있는 것:
논고 후반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691064?po=0&sk=id&sv=han2000s&groupCd=&pt=0CLIEN
데카르트
신존재 증명:
https://www.clien.net/service/board/regist?boardCd=lecture&boardSn=15462921&mode=updateCLIEN
플라톤
국가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regist?boardCd=lecture&boardSn=15715279&mode=updateCLIEN
국가론 (2):
https://www.clien.net/service/board/regist?boardCd=lecture&boardSn=15839112&mode=updateCLIEN
아리스토텔레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regist?boardCd=lecture&boardSn=15886973&mode=updateCLIEN
홉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regist?boardCd=lecture&boardSn=15794909&mode=updateCLIEN
정치철학 일반
세 가지 정치적 자유:
https://www.clien.net/service/board/regist?boardCd=lecture&boardSn=15804608&mode=updateCLIEN
민주주의의 도덕적 역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regist?boardCd=lecture&boardSn=15947688&mode=updateCLIEN
민주주의에 반대하며: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6294266?po=0&sk=id&sv=han2000s&groupCd=&pt=0CLIEN
공정으로서의 정의/정치적 자유주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6296731?po=0&sk=id&sv=han2000s&groupCd=&pt=0CLIEN
무엇을 평등하게 만들 것인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6314490?po=0&sk=id&sv=han2000s&groupCd=&pt=0CLIEN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6333365?od=T31&po=0&category=0&groupCd=CLIEN
요즘처럼 인터넷 세상에서는 핸드폰 이용해서 국민투표를 수시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우리가 민주주의에 기대하는 게 단순히 국민에 의한 통치인가 아니면 국민에 의한 통치+양질의 결정인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lottocracy는 그 둘을 동시에 잡으려는 시도고, 국민투표방식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를 택하는 방식, 전문가/고학력 유권자에 의한 통치는 전자보단 후자를 택하는 방식인거죠
무지에 대한 대책으로 교육을 말하지만 랜덤하게 뽑힌 사람들의 수준 편차를 고려 않고 단기간의 속성 교육으로 정치질을 시킨다는것부터가 망상이죠.
또한 임기가 짧으면 짧을수록 정책의 질은 떨어지겠죠.
두리님 말씀대로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전국민이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서 자잘한 정책까지 국민투표로 하는게 오히려 현실적입니다.
사실 이 이론을 전개하는 대표적인 이론가가 Alexander Guerrero와 Helene Landemore인데 전자는 정경유착으로 인한 정치인의 부패를 척결대상으로 생각하는 이론가고, 후자는 공유지의 비극을 겪고 있는 국제적 문제 (e.g. 환경 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 사실 일반적인 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좀 많이 이상론처럼 들리죠 ㅎㅎ
일례로, 배심원 제도를 운영하는 미국의 경우, 배심원으로 사전 선택되어서 법원에서 1차 면접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걸 굉장히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안 가고 싶어하죠.
공동체를 매끄럽게 운영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일단 보통 대답은
1) 돈을 상당히 많이 준다 (보통 직장인보다 훨씬 많이)
2) 사회적 명예를 많이 준다 (잠시라도 자신이 국회의원급의 권력&명예를 누리는거니..)
이런 식인데요, Guerrero는 전자쪽, Landemore는 후자쪽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발적 사퇴하는 경우 때문에 lottocratic body의 각 범주들 (인종, 성별, 지역 등등)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1명만 뽑는 게 아니라 예비군도 뽑는다, 뭐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려고 시도하는 걸로 알고 있긴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Fishkin방식으로, 대의 민주주의의 보완책으로 쓰는 게 좋지 않나 싶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노동분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대표가 모든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배심원제처럼 일을 나눠서 국회의원이 할 일과 일반 시민이 할 일을 구분하는 게 좀 더 효율적이면서 여전히 민주적인 압박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지 않나싶어서요
물론 항상 이렇게 배심원제도를 끌고오면 항상 나오는 말은, '아무리 배심원단이 숙의하고 의사결정해도 결국 판사가 그들 위에 있지 않냐, 그러니까 배심원단은 절대로 '주인'이 아니다' 이런 식이라서..과연 어찌될지는 모르겠습니다 ㅎㅎ (판사와 달리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으니까 다르다고 생각은 하지만요)
1. 준비되지 않은 그리고 능력의 부재로 인한 문제로 정책 수준이 떨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1-2. 그리고 중장기적인 정책은 발현되기 어렵겠죠.
2. 시간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연결이라는 그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 그 과정의 매끄러움이 전제 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투표때마다 많은 좌절과 고통 그리고 답답함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3. 모든 이들이 정치를 하게 될 경우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자들 예컨대 범죄자 독재자 또는 우리가 리더로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도덕/윤리적 부재자들 에게 면죄부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금치산자 등에게도 우리의 미래를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4. 마지막으로 random select는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승계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버리는 것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결과와도 같아서 그 근간이 흔들릴 수 있어요.
일단 기본 전제는 lottocracy는 대의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만병통치약으로 제시되는 게 아니라, 현 대의민주주의보다 더 민주적이면서 & 인식론적인 문제들 (본문에서 언급한 무지의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동시에 주려는 거라는 걸 염두에 두셔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비교 대상이 대의민주주의라는 거죵
1. 이 부분은 이제 타협하는 부분이긴 하죠 왜냐면 높은 수준의 정치적 결정이 유일한 가치라면, 그게 누구에 의해 내려지는 지보다 '어떤 정책이 만들어지는가'라는 결과를 봐야하고, 이런 결과를 가장 잘 가져올 수 있는 건 뛰어난 유권자 아니면 전문가겠죠.
- 이런 식으로 가지 않으려고 lottocracy 옹호하는 쪽에선 임의로 뽑힌자들에 대한 집중 교육을 강조하죠. 뽑히자마자 정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특정 기간 동안 다양한 전문가들을 데려와서 이들을 교육해서 해당 정치적 이슈에 대한 보통의 유권자 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도록 한 뒤에 이들이 서로 숙의과정에 들어가도록 하는 게 기본 틀이니까요.
(이런 점에서 lottocracy는 '어떻게 하면 민주적이면서 동시에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타협안이라고 볼 수 있죠
1-2. 이건 좀 흥미로운 생각이네요. lottocracy가 대체하는 건 입법부 쪽이기 때문에, 행정부는 현재와 다르지 않을 것이므로 만약 현재에도 행정부 중심으로 임기 동안 특정 정책을 추진한다면, 그것 자체는 유지되겠죠.
- 제 생각에 lottocracy가 대의 민주주의를 대체한다면, 가장 먼저 물어봐야할 것 중 하나는 기존의 정당이 갖는 역할이 사라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아닐까 싶습니다. 독일 쪽에서 정당정치를 강조하는 걸로 알고 있고, 미국쪽은 시민과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등을 강조하는 걸로 알고 있고, lottocracy 이론은 주로 미국학자들에서 나온거라 정당 문제에 대해선 신기할 정도로 언급이 없더라고요.
2. 입법부 얘기기 때문에 정권이랑은 무관해보이네용.
3. 현재도 범죄자 등은 투표권이 제재되지 않나요?
4. 다른 전공인 친구들한테 lottocracy 설명을 해보면 꼭 이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임의로 뽑는 게 민주적이냐? 아마 이게 Manin 같은 사람이 로토크래시를 비판했던 말 때문인 거 같은데, lottocracy에서 핵심은 단순히 뽑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random body'를 구성하냐라서.. 단순히 임의로 뽑는 게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면 좀 이상하죠. 그건 마치 모든 사람들이 주사위 던져서 의사결정하면 '모든 사람'이 참여하니까 공정한 결정 아니냐는 거랑 같은 느낌이죠..
어쨌든 디테일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뭔가 좀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생각도 못했던 것들이지만 의식해야할 것들을 짚어주신듯 싶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