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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과강좌

생활상식 (철학) 믿으려는 의지 / Will to Believe 15

11
2020-09-24 04:35:57 수정일 : 2020-09-24 04:41:22 68.♡.206.175
할벌말슬

안녕하세요

하루하루 체력이 고갈되어가는 대학원생입니다

아마도 윌리엄 제임스의 가장 유명한 강의록이 아닐까 싶은 믿으려는 의지를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영어 원전으로 읽기보단 '실용주의'로 번역된 책에 수록된 버전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윌리엄 제임스의 경우엔 원전을 읽기보단 차라리 2차 문헌들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국내에선 연구가 많이 되지 않은 학자라서 논문의 수가 적지만 오히려 그래서 읽기가 편한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


믿으려는 의지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증거가 부족하더라도 믿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그 믿음이 너의 인생을 좋게 만든다면 믿는 것이 정당하다'입니다


1. 

제임스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종교적 가설들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입니다. 

그가 강연을 한 19세기 후반만 되더라도 이미 다윈의 진화론이 퍼져있었고, 그 이전까지 기독교적 세계관이 계속해서 흔들려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교적 믿음을 갖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던 때였죠

종교적 믿음을 갖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런 믿음의 증거가 없다는 거였고요

그래서 제임스는 묻습니다, 과연 증거가 없다면 믿지 않아야하는가? 아니면 증거가 없더라도 믿을 수 있는 경우가 있는가?

제임스는 증거가 없더라도 믿을 수 있는 경우가 존재한다고 대답합니다


2. 

물론 언제든지 증거 없이 믿어도 된다고 하면 그건 상당히 어리석은 결론이겠죠

그래서 제임스는 세 가지 조건을 붙입니다

만약 내가 선택해야하는 선택지들이 살아있고, 다른 선택지가 없고, 중요한 것일 경우, 나는 충분한 근거가 없어도 믿을 수 있다는 겁니다


2.1. 살아있는 선택지 (live option)

어떤 선택지가 살아있다는 건, 그게 내게 유의미한 선택지라는 겁니다

가령,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너 이슬람 믿을래 아니면 불교 믿을래' 이런 선택지를 제시한다면, 그 사람은 그냥 '나 선택 안할래' 같은 식으로 대답할 수 있겠죠 

자신에게 아무런 정서적 의미가 없으니까요


2.2. 다른 선택지가 없음 (forced option)

양자택일을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지금 절벽에서 떨어지기 직전인데, 점프하면 반대편에 닿을지 아니면 닿지 않을지 모르지만, 뛰거나 뛰지 않거나 두 선택지밖에 없는 경우가 하나의 예겠죠


2.3. 중요한 선택지 (momentous option)

그 선택을 내리는 것이 내게 중요해야합니다 

가령, 내가 어떤 선택을 내렸지만, 그게 그 선택을 내리지 않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그 선택은 중요한 게 아니겠죠


3. 

이런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선택지를 마주했을 경우, 우리는 비록 증거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어떤 선택지가 옳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제임스는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고 오류를 피하려는 건, 우리가 그런 삶을 살고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물론 오류를 피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 둘 다 중요하죠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면서 차라리 여러번 오류를 범하는게,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보다 낫다는 거죠

다만, 이 조건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진리의 창조자(maker)일 경우에만 해당합니다

가령, 자연과학적 믿음의 경우, 우리는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사실들을 진리로 기록(record)할 뿐 우리가 직접 그 사실을 만들지는 않기 때문에, 자연과학적 믿음을 믿으려는 의지를 통해 믿으면 안되겠죠

(물론 자연과학적 탐구의 목적을 설정하거나, 연구대상을 설정하는 등, 단순히 주어진 사실을 기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전히 믿으려는 의지를 통해 무엇을 믿을지 결정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 삶에 관한 믿음들, 가령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무슨 믿음을 가진채 살 것인지, 어떤 식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지 등등 이런 물음들은 자연과학적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가 가진 진리에 대한 열정을 따라 믿음을 선택할 수 있죠

특히 제임스가 강조하는 건, 그것을 믿음으로써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것을 믿음으로써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 가치가 옳다고 믿으며 인생을 살아가라는거죠

만약 내 인생이 그 가치를 믿지 않을 때보다 더 행복하거나 더 가치있을 수 있다면, 그것을 믿을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믿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보다 더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지 않겠냐는거죠


4.

제임스의 강의록은 Fitz-James Stephen이라는 사람을 인용하며 끝납니다. 몇 문장만 재인용해보겠습니다 (의역이 있습니당)

"모든 중요한 인생의 순간들에서 우리는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야한다"

"우리는 어떤 길이 올바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강해지고 용기를 가져라'.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기대하되, 결과를 받아들여라."




---------------------------------

예전에 간단하게 올려드렸던 제임스 윤리학 글도 링크 올려놓겠습니당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325722?po=0&sk=id&sv=han2000s&groupCd=&pt=0CLIEN







할벌말슬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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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
디엔_Doc
IP 95.♡.59.44
09-24 2020-09-24 04:53:21 / 수정일: 2020-09-24 05:00:55
·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요즘들어 다시 전공을 고르라고 하면 수학, 경제학, 그리고 철학중에서 선택할 것 같다고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철학적 질문과 그 방법론을 멀리서 보다보면 배우는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자연과학 역시 설득과 믿음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할벌말슬
IP 68.♡.206.175
09-24 2020-09-24 07:32:18
·
@디엔_Doc님 저도 학부 때 전공은 엄밀히 말하면 철학은 아니긴 했습니다 ㅎㅎ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철학적 관점 같은 건 언제가 됐든 이런저런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습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취미 삼아서라도 책을 계속 보시면 나름 지적인 만족(?) 같은 걸 원하시는 만큼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고마워마고
IP 27.♡.236.4
09-24 2020-09-24 07:33:54
·
솔깃합니다. 감사해요. 찾아봐야겠어요!
할벌말슬
IP 68.♡.206.175
09-24 2020-09-24 09:32:19
·
@PAUL360님 원전보단 2차 문헌을 추천드립니당 ㅋㅋ
avalokiteshvara
IP 68.♡.174.35
09-24 2020-09-24 08:53:41
·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도 요약해주실수 있나요??ㅠ
할벌말슬
IP 68.♡.206.175
09-24 2020-09-24 09:32:03
·
@avalokiteshvara님 ㅋㅋㅋㅋ죄송하지만 제 능력밖입니다...ㅋㅋ 중간 챕터 중에 sick soul에 관한 부분은 읽어보긴 했습니다만..ㅜㅜㅋ
avalokiteshvara
IP 68.♡.174.35
09-25 2020-09-25 02:26:42
·
@할벌말슬님 감사합니다 ㅎ
할벌말슬
IP 68.♡.206.175
09-26 2020-09-26 00:58:56
·
@avalokiteshvara님 화이팅!
차라투스트라
IP 118.♡.209.13
09-24 2020-09-24 09:31:41
·
재미있는 의견이네요. 저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할벌말슬
IP 68.♡.206.175
09-24 2020-09-24 09:32:39
·
@차라투스트라님 행운을 빕니다!
니로네
IP 210.♡.34.177
09-24 2020-09-24 09:56:55
·
타인의 해석 (-말콤 글레드웰) 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중요한 포인트로 등장하죠. 진실을 디폴트값으로 두는 것.
Dromedary
IP 39.♡.231.155
09-24 2020-09-24 15:17:01
·



항상 기도하는 것은 '그러니까' 가 아닌, '그렇기 때문에' 로 하려 하는데 잘 안되네요.
lcoy
IP 222.♡.174.74
09-25 2020-09-25 13:41:05
·
"만약 내 인생이 그 가치를 믿지 않을 때보다 더 행복하거나 더 가치있을 수 있다면, 그것을 믿을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믿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보다 더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지 않겠냐는거죠"
이렇게 보면 꽤 실용적인 접근인 것 같네요.
옳다 그르다 따질 거 없이, 박정희를 찬양하거나 이만희나 정명석, 예수 등을 신으로 숭배해서 내가 행복하다면 충분하다는 거겠죠.
할벌말슬
IP 68.♡.206.175
09-26 2020-09-26 01:00:44
·
@lcoy님 초기 실용주의 트로이카 중의 한 명이기도 하고 실용주의(pragmatism)라는 말을 퍼뜨린 당사자기도해서 무척 실용적이죠 ㅎㅎ
팁게 한 페이지에 제가 글을 여러개 쓰면 안 좋을 거 같아서 안 썼습니다만 조만간에 제임스의 윤리학하고 다시 합쳐서 짧은 글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당 ㅎㅎ
John_Bogle
IP 125.♡.181.13
09-26 2020-09-26 14:28:52
·
제가 그래서,
나스닥에 투자중입니다.
늘 우상향 이라고 믿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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