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개인(가족)이 국가로 자연스럽게 발달하는 과정을 설명하죠
간단히 말해 그에게 국가의 존재는 마치 사과 씨앗에서 궁극적으로 사과가 나오듯 자연적인 현상인 것이죠
그럼 국가는 그렇다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의 정치체제 즉, 민주주의는 그럼 자연스러운가?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겠죠
'자연스러움'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인간은 동물처럼 사는 게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죠
폭력을 독점한 자가 나머지를 지배하는 관계가 어쩌면 더 동물적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지 않냐는거죠
만약에 민주주의가 이렇게 자연스러움을 역행하면서 존재하는 제도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 제도가 정당한가,
즉, 왜 1인에 의한 통치나 소수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다수에 의한 통치를 선택해야하는가 물어볼 수 있겠죠
실제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마키아벨리, 홉스, 스피노자, 루소 등, 우리가 생각하는 고전 정치사상들은 모두 민주정, 왕정, 귀족정 등을 놓고 비교하곤 합니다
일부 사상가들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루소)은 왜 다른 정치체제가 아닌 민주정을 선택해야하는가 논합니다
현대에 오면 이 논의들은 단순히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정(다수에 의한 통치)이 아닌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사상(평등한 자들의 자치)으로까지 확장되어 크게 두 입장으로 나뉩니다
1) 도구주의
: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삼는 정치체제를 택해야한다
2) 내재주의
: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어떤 '그 자체로 옳은' 가치들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삼는 정치체제를 택해야한다
한 번 가볍게 각 입장들을 살펴봅시다
1. 도구주의(instrumental approach)
1.a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이익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함
- 다른 정치체제와 비교해서 민주정은 왕이나 귀족, 엘리트 등, 전통적으로 권력을 가진 집단의 이익에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시민 개개인 또는 전체 시민의 이익에도 반응한다는 거죠
- 가령, 민주주의가 존재해야 최저임금 등을 통해 자본가의 권력을 상대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이런 생각들이 대표적인 예겠죠
: 시민들의 이익에 반응할 필요가 없다면 (즉, 그들이 정치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단지 통치자들이 내린 결정에 복종하기만 할 뿐이라면), 그들의 이익이 정치에 반영되는 건 단지 통치자의 아량이 넓을 때 뿐이겠죠
1.b 민주주의는 상대적으로 좋은 법과 정책을 만든다
- 매우 간단하게 말하면, 다수가 모여서 정치적 결정을 내리면 더 좋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 집단지성 같은 걸 많이 얘기하곤 하죠 보통 Condorcet jury theorem 이나 diversity trump theorem 같은 걸 얘기하는데, 결국 핵심은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내린 의사결정은 옳거나 적어도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이 내린 것보다 더 낫다는 겁니다
- 미국 고전 실용주의 3인방 중 한 명인 존 듀이의 경우, 그는 민주주의 하에서만 사회 내에 존재하는 최대한 많은 관점들이 공공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봅니다
: 충분히 많은 정보를 가져야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떄문에, 기존에 무시되던 관점/정보 등을 정치적 결정을 위한 토론 속으로 끌고들어와야한다는 겁니다
: 가령, 평생 농사일만 해온 사람은 정치에 대해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그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농업관련 정책을 내리는 것보다, 그들의 목소리도 정치적 결정 과정에 포함시켜야 농업에 관한 더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런 식인거죠
1.c 민주주의는 시민들을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교육시킨다
- 애당초 자신의 관점이 원칙적으로 무시되는 다른 정치체제와 달리, 민주주의 속의 개인들은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관점을 정책에 반영시킬 수도 있겠죠 따라서 시민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행동한다는 겁니다
: 간단히 말해, 누군가의 신민이나 노예로 머물기보단,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냄으로써 자기자신이 자기자신의 주인이 될 거라는 겁니다
- 또한, 현대 민주주의에선 흔히 숙의(deliberation)라고 부르는 의사소통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관점을 내세울 수 있는 기회는 동시에 타인의 관점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죠. 이때 '나만 옳아' 같은 태도로 의사소통할 수는 없으므로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보다 도덕적 태도 또한 함양할 수 있다는 겁니다
* 도구주의적 반론들
- 이전에 작성한 Against Democracy 요약한 걸 보시면 민주주의에 대한 도구주의적인 반론의 대표적인 예를 볼 수 있죠
- 고전 사상가들 중 플라톤, 밀, 홉스 등도 도구주의적 반론을 펼칩니다
a) 플라톤
: 옳은 정책 하에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지만 민주정은 뛰어난 통치자들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민주정은 오히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죽었나 생각해보면 납득이 되는 생각이죠)
b) 밀
: 밀의 공리주의 원칙은 간단히 말하면, 전체의 최대행복이죠. 그리고 이 원칙을 충족하는 결정은 바로 옳은 결정인 거고요. 전체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원칙을 실현하려면, 간단히 말해 '모두에게 좋은 것'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정책결정을 해야겠죠. 단지 자기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고통이 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전제 하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만, 공리주의적으로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겠죠. 이런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높은 지식 수준이 필요하기에, 그는 대학학위가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투표권을 가져야한다고까지 주장합니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 선거 민주주의는 아닌 셈이죠.
c) 홉스
: 자연상태에 대한 그의 걱정의 핵심은 사람들은 서로 불신하고, 서로 경쟁하고, 또 각자가 상대보다 더 뛰어나다는 착각을 한다는 점이죠. 민주정은 이런 자연상태를 극복하지 못하지만, 왕정 또는 귀족정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모두가 복종하도록하는 강제력있는 법이 있다면 그런 자연상태가 극복될 수 있지만, 그런 강제력은 각자가 권력을 나눠갖는 민주정이 아니라 한 명이나 소수가 독점하는 곳에서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거죠.
2. 내재주의(intrinsic approach)
2.a 민주주의 속에서만 각자는 자유로운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다
- 왕정이나 귀족정을 생각해봅시다. 여기서 다수의 시민들은 왕 또는 귀족의 명령에 복종해야한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않죠. 반면 민주정 속에서 시민들은 남이 아닌 자신의 명령을 따른다는 점에서 자유롭다는 겁니다
* 근데 이런 생각의 기본적인 문제점이 있죠. 만장일치의 경우엔 정치적 결정이 내가 원하는 것과 일치하겠지만,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에 의한 결정의 경우, 내가 소수입장을 갖는다면, 나는 내가 원치 않는 결정에 복종해야겠죠. 그럼 나는 과연 자유로운가? 물어볼 수 있겠죠
-->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정말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20세기 중반의 민주주의 논변들은 이런 다수결과 소수의 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하죠. 가령 Wollheim paradox). 하나의 대답은 바로 시민 개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 차원에서 다수결을 이해하는 겁니다. 루소가 했듯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 (공공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적 결정은 궁극적으로 그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익을 가져다줄거라는 거죠. 그리고 또다른 널리 알려진 대답이 바로 2.b에서 언급할 공적정당화입니다.
2.b 민주주의 속에서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정책이 만들어질 것이다
- 롤즈에 대한 글에서 간단하게 얘기했었지만, 공적 정당화(public justification) 또는 공적 숙의(public deliberation) 또는 공적 사고(public reasoning)라고 불리는 개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하나의 사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간단히 말해서, '모든 이성적인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공적인 것이며, 따라서 어떤 정책을 '모든 이성적인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내리는 것은 비록 그 정책에 동의하지 못하는 자들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을 평등한 존재로서 존중하며 이뤄진 것이기에, 다수결 하의 소수들이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 하지만 당연히 이런 관점에도 한계가 있죠. 간단히 짚으면, 어디까지가 '이성적'이냐는 거죠. 롤즈식으로 이해하면, 자유민주주의 헌법에 담긴 핵심 가치들을 받아들인다는 걸로 '이성적'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죠. 하지만 설령 우리가 기본권 개념에 동의하더라도, 그 기본권 해석에 따라 다수와 소수가 나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이성적이면서 동시에 다수의 의사를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는 거죠. 만약 내 관점이 이 사회 속에서 영원히 소수의 관점으로 머물게 된다면, 나 또한 영원히 소수로만 머물게 되겠죠. 물론 다수에 속한 자들은 '공적으로 정당화된 결정이다'라고 대답하겠지만, 이성적인 소수의 입장에선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겠죠.
2.c 민주주의는 시민들을 평등한 존재로 대하는 제도다
- 앞서 언급한 공적 정당화 개념에 담겨있는 핵심 가치가 바로 평등이죠. 소위 정치적 평등 또는 공적 평등이라고 불리는 민주주의 하에서 시민들이 누리는 평등한 관계가 바로 민주주의만이 실현하는 가치라는 겁니다. 가령, 법앞에서의 평등이라고 부르는 것들. 즉, 내가 재산이 얼마든, 사회적 지위가 뭐든, '시민'으로서는 '시민 전체'가 입법한 법 앞에서 평등한 존재라는 것. 이런 게 가능한 제도는 왕정이나 귀족정이 아니라 민주정이라는 거죠.
- 이런 평등의 관점에서는 다수결에 불복하는 것이 불평등을 주장하는 걸로 이해될 때도 있습니다. 가령, 동물윤리로 유명한 싱어는 다수결을 받아들이지 않는 건 나를 특권적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며, 이것은 정치적 평등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다수결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주장하죠.
- 지난 글에서 간단히 언급했던 관계적 평등주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정치체제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관점도 있죠. 관계적 평등은 간단히 말해, 서로 다른 두 사람 사이에 평등한 관계가 성립한다는 겁니다. 민주주의의 시민들은 권력을 나눠갖는다고하죠. 대표를 선출할 수 있는 힘을 나눠 갖기 때문이죠. 그리고 각자가 나눠가진 권력은 원칙적으로 동등합니다. 하지만 왕정이나 귀족정의 지배층들은 다수 시민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겠죠. 따라서 민주정의 시민들은 서로가 평등한 권력관계를 갖는 반면, 다른 정치체제에서는 시민과 지배층 사이에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형성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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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제임스
윤리학: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325722CLIEN
믿으려는 의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415994CLIEN
결정론의 딜레마: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460115?od=T31&po=0&category=&groupCd=CLIEN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있는 것:
논고 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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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신존재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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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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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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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regist?boardCd=lecture&boardSn=15886973&mode=updateCLIEN
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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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일반
세 가지 정치적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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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도덕적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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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반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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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으로서의 정의/정치적 자유주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6296731?po=0&sk=id&sv=han2000s&groupCd=&pt=0CLIEN
무엇을 평등하게 만들 것인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6314490?po=0&sk=id&sv=han2000s&groupCd=&pt=0CLIEN
조금은 '대의민주주의' 관련 내용과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들이 추가되었으면 어떨지 의견을 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는 선/악이나 옳고 그름의 개념이 없는 제도라 생각합니다.
헷갈리시면 그냥 참여 민주주의나 숙의 민주주의 정도를 전제하고 얘기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근데 적고 보니까 위에서 말한 장/단점이 '내가 직접 정책을 결정할 때'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참여민주주의에서의 '참여'는 내가 꼭 정책을 결정할 때에만 의미하는 게 아니니까 그런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도구주의/내재주의(?)는 민주주의 일반에 대한 얘기고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하위 분야니까 위에서 언급한 장단점들이 어떤 식으로 대의민주주의에서 드러나는지를 얘기해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굳이 비교하면, 대의민주주의의 어떤 부분이 잘 되고 있고 어떤 부분이 잘 안되고 있고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 정도를 설명한 거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당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아무도 직접민주주의에 관심도 없고, 언급도 안해서...
그나마 비슷한 건 lottocracy라고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랜덤하게 뽑힌 소수에 의한 통치가 가장 민주적(치자와 피치자의 일치)이라는 관점인데, 이것도 직접 민주주의는 아니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직접 민주주의에서 '직접'과 '민주주의'가 서로 negative feedback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단순히 '투표'만 할 수 있으면 직접민주주의라면, 그건 '직접'은 설명해도 과연 그게 어떤 점에서 '민주적'인가, 만약 어떤 제도가 '민주적'이기 위해서 단순히 모든 결정을 국민투표방식으로 결정하면 되는거라면
1) 얼마나 현실성있는지
: 대의민주주의 하에서도 사람들은 별로 정치에 관심이 없음 (기술접근성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콩스탕이 말하듯 그냥 사람들은 가치관이 바뀜) -> 결국 기존 대의민주주의 문제점 그대로 답습.
2) 얼마나 민주주의가 실현하고자하는 이상들을 실현하는지
: 가령, 민주주의는 단순히 치자와 피치자의 일치가 아니라 사람들의 선호/이익을 모으고 반영함으로써, 그렇게하지 않을 때보다 양질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도 포함한다고 생각하면, 국민투표방식이 과연 민주적인가...
뭔가 이런 잡다한 문제들이 있어서 직접 민주주의는 어떤 점에선 뒷방으로 밀려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기술의 발전이 보완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되고요.
추가로 간접민주주의는 국민들괴 결정을 하는 사람들 간의 괴리가 생긴다는 점이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나 요즘은 결정권자들의 이해관계도 더욱 복잡해져서 결정된 사안들이 더욱더 국민들의 의중과는 동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져 보이고요...
간단히 요약만드리면
기술&비용의 문제
: 현실적으론 이쪽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민주주의 문제라는 게 단순히 '국민의 뜻' 같은 걸 확인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게 보통 생각이라, 기술비용 말고도 다른 문제가 있지 않을까...하는 얘기
의사결정권자와 일반 시민간의 괴리
: 이건 현대 민주주의의 고질적인 문제라서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도들이 있죠 참여 민주주의처럼 '참여'의 범주를 넓혀서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거나, lottocracy처럼 아예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려하거나, 아니면 숙의민주주의처럼 일종의 가상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려하거나..
근데 제 생각에 직접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직접민주주의는 기껏해야 국민투표민주주의에 불과한데, 국민투표도 결국은 다수결이고,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다수결 속에서 소수가 동등한 존재로 취급받을 수 있는가, 특히 문화적, 인종적 소수자들은 단순히 국민투표 민주주의 하에서 영원한 소수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직접 민주주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 않나...싶습니다
근데 소수를 그냥 '소수'에 불과한 존재로 생각하면, 그때부턴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 중 하나인 '정치적으로 평등한 자들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것'을 어기는 거라...사실 더이상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는 아니겠죠
근데 여튼 직접민주주의를 언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어떤 점에선 잊고있던 민주주의였는데 왜 잊혀졌는지 생각해볼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거의 언급만 하고 넘어갔지만, 민주정과 민주주의를 구분해볼 수 있겠죠
정치체제로서 민주정은 그냥 다수에 의한 통치 (1명, 소수에 의한 통치와 대비되는 개념이고 이게 가장 원형적인 민주주의 개념이죠),
이념으로서 민주주의는 여기에 '평등'이라는 개념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단순히 다수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평등한 모두가 자기자신을 통치하는 것)
그리고 현대에는 더이상 민주정이 아니라 이념으로서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것 같고요
이런 점에서 보면 과연 직접민주주의가 무슨 문제가 있는가...
1) 고대 아테네에서도 엄밀히 말하면 여자, 노예, 미성년자, 외국인 아테네 거주민이면서 주권자가 아님
-> 이런 점에서 고대 아테네는 민주정이었을지 몰라도 (1명, 소수가 아니라 다수에 의한 통치라는 점),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는 아님 (평등하지 않으므로. 즉, 성인 남성과 나머지를 차별하면서 운영되는 정치체제이므로)
2) 직접민주주의는 민주정으로서는 충분할지 몰라도, 민주주의에 기대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충족하기 어려울 수 있음
장점1) 다수의 의사가 훨씬 쉽게 드러남. 그리고 거의 모든 정치적 결정을 그 다수의 의사에 따라 내림으로써 중간 매개물(?)에 의한 왜곡이 최소화됨.
장점2) 어쩌면 시민들이 좀 더 정치에 관심 가질 수 있음.
장점 3) 흔히 말하는 정경유착 (capture라고도 불리는...)의 문제를 좀 더 쉽게 해결가능 (모든 시민이 특정 자본과 유착되긴 어려우니까. 이건 lottocracy의 장점이기도 함)
장점 4) 전반적으로 정치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쉬워짐.
단점 1) 중간 매개물 (대표자들)이 사라짐으로써 다수에 의한 폭정에 쉽게 노출됨
단점 2) 시민들이 오히려 더 정치에 무관심할 수 있음 (월드컵이 매일, 매주 있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지 않겠죠)
단점 3) 복잡한 정책일 수록 상당한 탐구과정이 필요한데 매번 정책을 투표해야하므로 저질 결정이 나올 가능성 높아짐
단점 4) 기타 전형적인 문제들 (해킹, 보안, 조작 등등)
저는 헤겔의 정반합 형태로 세상이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은 반을 이끌어내고 정과 반이 충돌하여, 또 다른 정이 되는 이러한 행위는 2차원으로 보면 단순히 원과 같은 무한굴레처럼 보이지만 3차원적으로 보면 버텍스를 이루며 회전하는, 그래서 과거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금의 세상은 과거와 닮았지만 그보다 좀 더 진보한 세상인 거죠.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태양과 태양계 안의 행성들이 버텍스 운동을 하는것 처럼요.
독재정권은 과거의 유산이었지만 현재는 대중에겐 비판의 대상입니다.(북한 예외) 그 말은 역설적이게나마 과거에는 독재가 필요했다는 말일 수 있겠죠.
이념이라 불리우는 무슨무슨주의는 단일 평면 형태가 아닌 시간과 함께 성장해온 입체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정반합에 기초하여 생각하면,
우리가 충분히 민주주의의 당연성을 인식하고 있는 어느 순간이 온다면 민주주의에 반하는 어떤 주의가 또 다시 생길것이고 그것은 다시 원 운동과 같이 예전의 독재주의 형태로 귀결될 수 있을거라 봅니다. 하지만 독재와는 확연히 다른 세상일수 있죠.
민주주의는 집단 지성의 결정체이고 숙의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런 더 나은 세상을 독재의 형태로 만들어 낸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자발적으로요
현재의 기술을 발판삼아 예를 들면 이런 걸겁니다. 수많은 데이터인 빅데이터와 그것을 처리하는 A.I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판단하고 계산하여 더 나은 세상을 제시한다면?
작게는(이것도 크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데이터 화하여, 오늘은 7시에 일어나고 어떤 교통을 통해 길을 나설지 권유받고, 스스로의 재능과 적성에 맞는 어떤 취미생활을 제시받고, 어떤 음식을 추천받고.. 그런 모든것들을 제시해주고 더불어 그것을 따랐을 때 우리의 삶이 매우 행복하다면요?
제시받은 동선에 따라 움직였더니 길가다 돈을 줍고, 음식은 영양소에 꼭 맞아 건강하며 재능과 적성을 한 번에 맞춰 시간의 낭비와 지루함 없이 취업에 성공하고 재능을 꽃피우고....
그래서 이것을 크게 바꾸어 국가 단위로, 국가에서 어떤 정책을 내세우고 어떤 산업에 투자하며 어떤 일들을 진행하는 것이, 어디에 철도를 낼지 수도를 민영화할지 원자력을 어떻게 운용할지 등등이, 치열하게 사회적인 숙의를 거친 민주주의의 결과와 동일하거나 혹은 그보다 훨씬 더 나은 사건을 미래를 제시한다면, 하나 둘 씩 사람들은 그 A.I의 말을 믿을거고 따르게 될 겁니다.
과거엔 선지자라는 이름으로 민중에게 했던 그러한 것들처럼 말이죠.
어쩌면 현재의 민주주의를 정당화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는데 훌륭한 도구이지만, 이보다 더 나은 시스템이 제시된다면 언제든 뒤집어질수 있다고 보니까요.
막연하게 민주주의가 왜 옳은지를 생각하다보니 왜 과거의 독재가 나쁜지를 사유하게 됐고 그 사유 안에서 정반합으로 세상의 변화를 상상해봤습니다.
좋은 글에 너무 파격적인 생각을 적어 죄송스럽습니다. 글 잘 봤습니다.
철학자가 통치해야한다, 왜? 철학자는 진리를 이해하므로 '옳은 결정'들을 내릴 것이니까
그럼 왜 옳은 결정에 의해 통치돼야하는가? 옳은 결정을 내려야 사람들이 행복하니까 (경제부흥을 위한 옳은 정책을 택해야 경제가 부흥되겠죠)
AI는 아마 이런 '옳은 결정'을 내리는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구주의적 접근이 바로 이런 걸 염두에 둔 접근이기도 하죠
민주주의가 좋은/옳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대로 냅두되, 그렇지 않다면 다른 제도 (똑똑한 소수, 심지어 AI?)의 가능성도 열어둬야한다
왜냐하면 그 옳은 결정(저는 더 나은 결정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무튼)은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다만, 우리가 배웠듯 독재국가나 철혈통치는 인간에 의해 수행되고, 인간은 필연적으로 부패를 불러오죠.
결국 독재나 철혈통치는 인간의 부패로써 종말을 맞는 거인데 A.I 그것도 우리의 거의 모든 데이터를 입력하여 더 나은 결과를 출력해주는 A.I가 있다면 그리고 A.I는 부패라는 개념과는 전혀 무관하므로
어쩌면 우린 그 존재를 따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지성이 있다면 그게 더 나은 결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