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부족한 실력으로 학부생들을 가르쳐야하는 대학원생입니당
마침 애들 과제가 데카르트 신존재 증명이어서 한 번 간단하게 요약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데카르트 전공자가 아닙니다 ㅜㅜ 틀린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ㅜㅜ)
1.
데카르트하면 가장 유명한 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말이 등장하는 책이 성찰(Meditation)이죠
여기서 아마 데카르트에 관한 웬만한 유명한 것들은 다 등장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신존재 증명인데요 저의 부족한 철학사 지식 때문에 이 증명들의 기원은 제가 잘 알지 못하지만 최소 1개는 예전부터 있던 증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2.
간단한 배경부터 짚고 넘어가죠
데카르트의 증명의 목표는 간단히 말해, 증명하려는 대상이 '확실(certain)'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가령, '나는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무엇인지 묻고,
신 존재 증명의 궁극적인 기반을 확실한 지식에서 찾고 그런 겁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확실한지 어떻게 아느냐?
데카르트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어떤 것을 명백한 관념(clear and distinct idea/vivid and distinct idea)으로 갖고 있다면, 그것은 확실한 지식이다
가령 내 오른손을 위로 들어올렸다고 해보죠
데카르트식으로 보면, 내가 그 대상이 바로 거기 있다고 의식할 수 있다면, clear idea.
그 대상에 대한 내 머리 속의 관념이 다른 인식들과 구분되면서 그런 clear idea만을 갖고 있다면, distinct idea인 겁니다
간단히 말해, 내 머리 속에 '내 오른손이 여기 있다'는 생각이 있다고 할 때,
그 생각이 내 머리 속에 존재하고
동시에 그 생각이 다른 생각들과 구분된채로 (여기에 책이 있다, 저기에 사람이 있다 등등 같은 다른 종류의 생각들) 머리 속에 존재한다면,
내 오른손이 거기 있다는 관념은 명백한 관념이고, 따라서 확실한 지식입니다
(참고로 이런 감각경험의 경우는 언제나 오류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명백한 관념은 아닙니다 그냥 예를 들려고..)
3.
신존재 증명으로 넘어와봅시다
"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총 세 개의 신존재 증명을 설명합니다
하나하나 제가 대략적으로 재구성한 버전으로 봅시다
3.a
A1) 나는 완벽한 존재(perfect being)의 명백한 관념을 갖고 있다
A2) 이 관념의 원인은 완벽한 존재여야한다. 왜냐면 결과가 원인보다 더 높은 실재성을 가질 순 없기 때문이다
A3) 완벽한 존재는 신이다
C)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나름 기발한 증명이죠
내 머리 속에 완벽한 존재의 명백한 관념이 있고, 어떤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원인이 있어야하므로, 내 머리 속에 그 관념이 존재하기 위한 원인이 있어야한다
근데 열등한 원인에서 우월한 결과가 인과될 순 없으니, 완벽한 존재의 관념이 불완벽한 존재로부터 나올 순 없다
그러므로 완벽한 존재는 존재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명백한 관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왜냐면 데카르트식으로 보면, 어떤 기만자가 내 머리 속에 거짓으로 '완벽한 존재'의 관념을 넣어놨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내 머리 속에 존재하는 완벽한 존재의 관념은 명백하다고 보는거죠
대신, 그 완벽한 존재의 내용물을 뜯어보진 못합니다
비록 그 관념은 갖고 있어도 그 관념을 가진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단지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 뿐, 그것의 내용은 인간의 영역 밖인거죠
실재성의 개념은 제가 형이상학을 별로 안 좋아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못드리지만 대략 이런 겁니다
단지 가능하기만 한 대상과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비교할 때, 우리는 전자가 후자보다 어떤 점에선 열등하다는 걸 알죠
가능하기만 한 건 그것이 실제로 이뤄지기 전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거나, 가능한 건 단지 가능하기만 할 뿐이고 그것이 실제로 이뤄질지 말지는 너무나도 많은 우연한 요소들에 달려있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난 것보다 부족한 점이 있다, 뭐 이런 생각들이요
그런 의미에서 실재성의 차이가 발생하는 거고, 완벽한 존재는 불완벽한 존재보다 그런 의미로 더 높은 실재성을 갖는다고 보는 겁니다
3.b
B1) 내 존재의 원인은 나 자신이거나 아니면 다른 무언가다
B2) 만약 내가 나 자신의 원인이라면, 나는 나를 아무 것도 결여하지 않은 존재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결여하지 않은 존재는 바로 신이다.
B3) 만약 내가 아닌 무언가가 내 존재의 원인이라면, 그 무언가는 완벽한 존재여야한다. 왜냐면 내 머리 속엔 완벽한 존재의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C)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자기자신이 원인이자 동시에 결과인 존재에 대한 얘기는 고대-중세 철학에서 절대자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개념이죠
제 기억이 맞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과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그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며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움직이지 않는 동력자(immovable mover)가 있다는 걸 이성으로 알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죠
신플라톤주의에서는 The One이었나, 그런 최고의 존재가 자기자신은 아무런 변화도 겪지 않지만 (자기자신은 원인으로만 존재하는거죠),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넘쳐서 다른 존재자들(플라톤식 형상들)을 분출(emanate)한다고 했고요
여튼, 그래서 만약 나의 원인이 나 자신이라면, 나는 신이라는 생각은 놀랍지 않습니다
근데 이 논증에서 살짝 재밌는 부분은 데카르트가 자신의 존재의 방식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인데요,
시간적으로 볼 때 인간은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무한히 쪼개진 부분들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지속(duration)하는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마다 존재할지 존재하지 않을지의 여부가 결정되는 존재라는거죠
비교하자면, 애니메이션 같은 거겠죠
겉으로 볼 땐 마치 하나의 움직임 같은 애니메이션도, 알고보면 각 프레임을 빠르게 넘긴 거에 불과한거죠
인간도 일정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매 순간마다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 생각은 중세 철학으로 보면 occasionalism이라고 해서, 신은 모든 존재의 원인이라는 걸 주장하는 입장에서 온 것 같습니다
occasionalism은 간단히 말해서, 신이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를 만들어놓고 더이상 인간에게 관심이 없는 상태를 반박하기 위한 주장인데요 (이런 관점의 대표적인 게 위에서 나온 신플라톤주의죠, 인간 세계를 신이 직접 만든 것도 아니고, 단지 완벽한 신에게서 넘쳐흘러나온 것이 그보다 열등한 존재들이고, 신은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에 유한자에게 관심이 없다고 보니까요..혹시 플라톤 향연을 기억하시면 거기서 에로스의 의미에 대해 얘기했던 거랑 연결될 수도 있겠죠, 사랑은 열등한 존재에 대한 게 아니라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에 대한 것이다..완벽한 존재인 신이 사랑할 수 있는 건 자기자신밖에 없게되겠죠 이런 관점에선)
인간은 무한한 순간으로 구성된 존재이며, 매 순간마다 인간의 존재는 신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즉, 언제나 신은 인간의 원인으로 존재하는거죠 따라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아주 밀접해지는 효과가 생기죠
3.c
C1) 내가 신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완벽한 존재의 명백한 관념을 갖는다
C2) 완벽한 존재는 모든 성질을 갖는다
C3) 그 성질들 중 하나는 존재다
C)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이 논증은 안셀무스가 만든 걸로 알고 있는데 존재론적 증명이라고, 서양철학사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증명입니다
'존재(existence)'를 어떤 실체(substance)가 가질 수 있는 성질(attribute)들 중의 하나로 봄으로써, 완벽한 존재는 완벽하기 때문에 존재해야한다는 논변이죠
제가 알기로는 '존재'는 성질이 아니라는 식으로 논쟁이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네요
4.
간단하게 데카르트의 신존재 증명을 요약해봤는데요
다 읽어보셨으면 눈치채셨을 수도 있지만, 굉장히 자명해보이는 문제가 있죠
데카르트 논변은 "어떤 존재가 명백한 관념으로 존재한다, 명백한 관념은 확실한 것이고, 이것은 틀릴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을 기저에 깔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가 볼 땐 인간 수준에서 확실하다는 것에서 객관적인 존재의 증명을 이끌어내긴 어렵죠
확실하다고 믿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거짓인 경우가 아주 많잖아요
데카르트의 해법은 간단하지만 이 간단함 때문에 순환성에 빠져버립니다
바로, 완벽하게 선한 신은 피조물을 만들 때 피조물의 정신능력이 거짓되도록 만들지 않았을 것이므로, 인간 마음 속에 명백한 관념으로 존재하는 것은 거짓일리가 없다
결국 데카르트의 논증들의 궁극적인 기반은 '명백한 관념'이었는데, 그 명백한 관념이 신의 전선함(veracity)에 의존했다는 게 밝혀지는거죠
특히 데카르트가 명백한 관념을 통해 신존재 증명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넘나 순환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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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제임스
윤리학: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325722CLIEN
믿으려는 의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415994CLIEN
결정론의 딜레마: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460115?od=T31&po=0&category=&groupCd=CLIEN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있는 것:
이 부분을 이렇게 넘어가시면 안 될 것 같네요. 옵션이 clear and distinct 이렇게 두 개인데 하나로 번역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clear → 명석, distinct → 판명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79033
완벽한 존재라기 보다는 우리 이상의 초월자라는 개념에서는 무언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한편으로 명석 판명함은 데카르트가 진리를 판명하는 궁극적인 기준이기 때문에 이때 명석을 vivid라고 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명석/판명과 관련된 논의는 아래 링크의 5번 항목을 참고하세요.
https://plato.stanford.edu/entries/descartes-epistemology/#CaDRuleRoadPerfKnow
참고로 저는 절대로 한쪽 번역 (clear냐 vivid냐 사이에서)을 지지하는 건 아니고용 (저는 그런 내공이 없사옵니다..) 제가 읽은 버전의 역자의 의견을 전달해드리는 것이니 그냥 정보(?) 정도로만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ㅎㅎ 여튼 이 역자(Jonathan Bennett)는 데카르트가 'clarus et distinctus' 외의 맥락에서 'clarus'를 쓸 땐 영어로 clear 와 거의 일치하게 쓰지만, 'clarus et distinctus'라는 맥락 속에서 쓸 땐 'clarus'라는 라틴어 단어의 보편적인 의미인 'bright', 'vivid' 같은 식으로 쓴다고 합니다 가령 clara lux = broadly daylight 이런 식으로 쓴다고 합니다
(참고로 성찰을 읽어보셨으면 CD 만큼이나 의구심 가득한 시선으로 봐도 될 'natural light'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죠..그런 맥락에서 봐도 '빛'이라는 개념과 clara를 연결시켜서 이해하는 게 맞지 않나..싶기도..)
다시 제 생각으로 돌아와서 보면, 영어 표현으로 vivid는 보통 우리 말로 하면 어떤 경험이 굉장히 리얼하게 느껴진다, 어떤 고통이 진짜로 느껴진다, 어떤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느낌에서 쓰이는데요 clear는 굳이 얘기하면 어떤 것이 다른 것의 방해 없이 또렷하게 보인다, 어떤 생각을 애매함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느낌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데카르트가 C&D의 역할로 기대하는거나, "성찰" 속에서 계속 발견되는 용례를 보면, 제 생각엔 흔히 어떤 mental phenomena가 '생생하다' 같은 식으로 이해하는 게 맞지 않나 싶긴 합니다 왜냐면 어떤 명제를 명확하게 이해한다는 식으로 C를 쓰는 게 아니라, 어떤 경험을 생생하게 느낀다 같은 식으로 쓰기 때문이죵..ㅎㅎ
댓글 달기 시작하니까 계속 길어지네요 가독성 안좋게 달아드려서 죄송합니다 일어나자마자 밥 먹기 전에 다는거라 ㅜㅜ 그리고 링크 걸어주신 백과사전은 혹시 다른 분들도 보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약간의 영어 능력이 요구되긴 하지만 저도 아직까지 새로운 철학을 배울 땐 저거부터 읽고 시작할 정도로 안정적으로 쓰여있고, 무엇보다 실제 학자들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위키 같은 거나 인터넷에 떠도는 sparknotes 같은 거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신뢰할 수 있고요..제가 외국에서 학부 다닐 땐 2학년 철학사 수업 때 보조자료로 추천되기도 했고요 ㅎㅎ; 그리고 저도 1학년 애들 가르칠 때 원전 읽고 2차 문헌읽기 귀찮을 땐 항상 SEP부터 찾아서 해당 부분에 논쟁될 만한 거 있나부터 찾아보곤 합니다 ㅎㅎ 마지막으로, 만약에 데카르트에 관심이 있으셔서 SEP찾아보시는 거면 위에 링크 달린 데카르트의 인식론 말고, Rene Descartes라고 개괄해놓은 페이지 있는데 그게 더 쉽고 좋습니당..
A1 전제가 주관적이라 시작부터 오류이긴 하지만..
이 어구는 철학적 견지에서 보면 clear는 무엇이고, 그 성립 조건의 필요충분은 무엇인지,
반면에 distinct는 무엇이며 어떻게 구분짓는다는 말인가 등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유사한 어구 구조를 언어학적 견지에서 보면 매우 뚱딴지 같은 '혼동'의 헤맴에 불과합니다.
(넵, 저는 60대 언어학자이니 이 분야만 40년은 했네요.^^)
가령 매우 흔하게 쓰이는 어구
nice and slow 놓고 보면 nice의 실체와 조건 vs. slow의 조건을 따지는 것은 바보짓이거든요.
왜냐하면 영어나 특히 Latin어 파생 언어들은 비슷한 논리적 궤에서,
Nice and slow = nicely slow로 해석하고 이게 바로 '강조'의 방법이지 별개의 개념이 아닙니다.
'The idea is clear and distinctive'라고 말하면
언어학 견지에서는 'very clear' 'clearly distinctive'라고 해석하지 별개로 보지 않습니다.
Clear는 '논리적 이성적 증명이 필요없는 관념'이어야 하는데,
믿고 싶은 충동(=감정)이나 믿고 싶은 감성 등 emotion이 있고
이를 통한 clear는 그 토대가 이미 부실합니다.
데카르트는 이런 충동도 인간의 rational mind에서 온 것이라고 믿었으나
이게 어찌 이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되는지, 감성에서 기인할 가능성이 더 많죠.
감성이 적당한 지식과 짝지어 knowledge로 착시를 하게 하고
이를 확대하면 emotion --> truth로까지 비약가능해집니다.
그의 어록 'I think, therefore I am'은 '생각과 존재'의 성립 조건을 주장한 것인데
I think, All thinking things exist, therefore I exist' 식으로 풀이하면 조건 성립은 쉽지만
그 성립된 결론이 맹탕이라는 헛점도 있습니다.
에고, 참...
철학도 '언어'로 공유하고, 법, 행정, 정치 등도 언어로 하는 것인데
'생각'을 볼 수 없지만 표현된 언어를 역추적하면 그 철학 사고의 흐름과 틀은 보입니다.
자고로, 통달한 사고, 깨우친 결론은, 간결명료해야 하는 것이고
긴 말과 긴 설명을 요하는 명제나 결론은 아직 정리되지 못한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데카르트는, 적어도 제 눈에는, 어설픈 사람이 혼돈의 사고를 하며 바느질 열심히 했지만
결과물은 누비 이불도 아니고 옷도 내놓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 옛날에는 '관념'과 '주장' '설득력'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이제는 창작과 감성의 영역까지도
인문과학, 사회 과학 처럼 '과학'이라는 ' 절차와 방법의 객관성 논리성'이 필수가 되고 있고
그림 노래까지도 인공지능으로 창작하는 것이 더 많은 공감과 인정을 받는 이유도 있다 봅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추구한 것도 이런 것이었는데, 세월 지나고 보니
이성적 판단의 토대가, 사고의 토대가 논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그 결과도 견실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지성'의 척도를 IQ로 계량화하니, IQ의 정확성과는 별도로, 나름 기여도가 있었고
철학도 계량화는 아닐지라도 좀더 실체적 논증 증명이 쉽게 되고, 쉽게 이해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지나다가 적는다는 게 길어졌네요.
다만, 지적하신 지점 중에 emotion에 관한 부분은 데카르트가 언급한 부분인데요, 아시다시피 데카르트는 의지(volition)와 지성(intellect)을 구분합니다 둘 다 인간의 마음의 영역이기에 '나'라는 실체가 갖는 능력/기관(faculty) 에 해당하고요 그리고 의지의 경우 인간의 의지와 신의 의지는 그 자체로 똑같이 무한한 반면, 인간의 지성은 신의 지성과 달리 유한하고 제한돼있다고 하고요 그리고 지적하신 부분, 에러에 관한 부분도 정확히 이 지점에 발생한다고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죵 인간의 의지는 무한하기 때문에 앞서가지만, 인간의 지성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간단히 말해서 둘의 속도가 맞지 않는다는거죠 그래서 가령 지성이 담당하는 인식(perception)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지가 담당하는 판단(judgment)이 먼저 일어나게 된다면, 우리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거고 오류에 빠지는거죵 흔히 알고 계시는 6번째 성찰에서 나오는 몸과 마음의 이분법에서 몸이 담당하는 건 이런 의지가 아니라 감각경험이고용 ㅎㅎ
그리고 말씀하신 "I think, All thinking things exist, therefore I exist'" 이 부분은 매우 흥미롭고 아마 더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싶긴합니다 ㅎㅎ 하지만 데카르트의 철학이라는 제한된 맥락 속에서만 놓고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의 핵심은 내가 어떤 의식행위를 하든 '생각하는 나'가 존재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는 거라서 여기서 'all thinking things' 같은 건 나올 수가 없겠죵 왜냐면 내 '마음'이 존재한다는 걸 부정할 수 없는 이유가 나의 1인칭 경험에서만 성립하는 거라서 다른 마음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해선 같은 방식이 적용될 수가 없겠죠 그러니까 '모든 생각하는 존재들' 같은 건 적어도 데카르트 철학 속에서만 놓고 보면 같은 논증방식으로 증명될 수 없겠죵 ㅎㅎ 다만, 익히 알려졌다싶이 이런 식의 other minds problem은 서양근대철학이 가진 대표적인 문제점 중의 하나기 때문에 데카르트 이후에 정말 수없이 많이 비판받은 것이라 만약 데카르트 맥락만 벗어나서 얘기할 수 있다면, 앞서 말씀하신 "I think, All thinking things exist, therefore I exist'" 이런 부분이 굉장히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ㅎ
지금과 같이 논리전개를 위한 조건을 규정하는 상황에서는 want와 need가 함께일 때 한쪽이 다른 한쪽의 부족한 의미를 보충하여 필요충분조건을 완성하듯 clear and distinct 역시 조건을 규정하는데 있어 의미상 상호보완적 관계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clear하다고 해서 distinct한 것도 아니고 distinct하다고 해서 clear하다 볼 수도 없으니까요.
다만, 데카르트의 전반적인 언어학적 소견이 매우 빈약합니다.
철학이 수학의 도식이라면 수학자가 색다른 관조를 하겠지만
철학 소견의 범위와 한계를 논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규정'과 '정의'이고
이것은 오늘날 현대 학문의 방법학에서 제1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철학자들은 이를 미처 살피지 못했고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들도 마찬가진데요,
그 당시에는 '언어'의 기능과 용도, 언어라는 도구가 하는 역할 등을
철학자들은 인지 하지 못한 이유로 용어 정리를 못하면서 드러난 파생적 '난해, 애매, 에둘러 가다 혼동의 카오스'
지경으로 빠진 것이 너무나 많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참여하겠습니다만, 저보고 데카르트의 주장이나 논지를 반박하라면
매우 쉽고 간결하게 그 허당과 비논리성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철학은 인문학인데, 옛날에는 주장하고 설파를 하면, 그게 어록이 되고 이론이 된 적이 있지만
언어학은 '언어의 과학'이지 인문학의 어학이 아닌 것이고,
법조문이든, 철학적 사상이든, 그 모든 것이 언어라는 도구로 표현되고 그 그릇에 담겨 소통되기에
법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 거의 모두를 언어학자들이 쉽게 반박할 수 있는 이유도 따로 있습니다.
생로병사, 질병의 증상을 보고 치료를 찾는 의사도 있지만, 염기서열의 DNA 변이나 손상을 안다면
훨씬 더 쉽게 근본적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철학의 소통 도구, 내용의 그릇인 그들의 언어를
파악하면 그 사람의 함량, 지성의 척도, 헤매는 건지, 설파를 하는 건 지, 알 수 있는 이치 개념입니다.
얼굴에 황달이 보이니까, 소화기 내과 의사가 보는 진단과
내분비 내과, 신장 내과의가 보는 진단은 다를 것이고, 전혀 다르게
Gilberts syndrome일지도 모르니까요.
정리하자면, 논리 설명을 할 때 clear and distinct같은 병렬 구조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그 두뇌가 명석한 것은 아니라는 소견입니다.
증명과 논증의 방법학에서 유사어를 나열하고 이들 두 가지는 다른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뛰어난 지성은 아니라고 판단입니다. 혼동해서 내놓는 장황한 주장에 뛰어들어
고전 철학자의 생각과 과정, 결론을 분해하며 참여하는 것이 현명한 고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위에서 한 대학원생의 열의에 찬 탐구와 사색을 통해 많은 분이 참여하고 성찰해 보는 것은
좋은 시도인 반면, 젊은 여러분은 각 자 위치와 생각의 각도에서 다른 고찰을 하면 될 듯 합니다.
이 책이 나온 이후로 1000년간 논쟁이 벌어졌거든요.
수업하기 전에 내가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 한 번 정리해본 거라 느낌 오는 대로 적은 게 티가 나네용..ㅜㅜ
읽으신 분들께 심심한 사과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_ _)
음 그래도 한발한발 나아간 건가요...
12년차 직장인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ㅠ
데카르트 신존재 증명에서 살펴보아야할 점이 그의 논증에 대한 정확한 의미 이해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갖는 의의를 찾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문학으로써 철학은 결국 인간 그 자체를 말하는 학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데카르트의 철학적 신존재 증명에서 말하고 있는 인간은 이성적 인간을 의미합니다. 이성적 인간이란 언어를 쓰는 인간, 다른 말로 주체를 말합니다. 즉, 데카르트는 인간이 주체로서 어떤 것을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인간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데카르트는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을 신존재 증명을 통해 보여주고 있구요. 주체의 탄생,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의 출현, 이러한 의미에서 데카르트의 철학은 중세와는 구분되는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논증에 담긴 정확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데카르트가 신존재 증명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갖는 한계까지 논의가 된다면 그의 논증이 갖는 의의까지 논의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주체로써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 실제의 인간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말이죠.
본문에 "명백한 관념"이라 번역한 명석 판명함은 추후 현상학이나 실존철학에서 많이 논의되는 내용입니다. 단순히 "명백한 관념"이라 표현할 경우 '명석하지만 판명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기존 연구들에서 '명석 판명'이란 용어로 주로 언급된다면, 그와 다른 표현을 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각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치만 이렇게 댓글을 달아주시는 건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댓글까지 꼼꼼히 읽어보시는 분이 어람나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댓글에서 지적하는 점들을 아예 모르는 것과 의식은 하고 있는 것이 차이가 있을테니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