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검표라는 말이 심히 아재스럽죠? 요새는 E-Pass 라는, 버스 출입문 쪽에 설치된 기계를 이용해 검표합니다. 더 이상 표를 수동으로 뜯지 않아도 되죠.

(출처 - http://www.dailycc.net/news/articleView.html?idxno=220397)
이런 식으로 QR코드를 갖다 대면 됩니다.
하지만 이런 기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속터미널이나 센트럴시티 같은 규모가 크고 손님도 많은 곳은 검표원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고속터미널에서 검표원으로 3개월 넘게 일하며 겪었던 일들에 대해 썰을 풀어보려 합니다.
고속터미널 검표원 3일차 후기 ->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2024409CLIEN
처음 들어오고 1달 동안은 정신이 없었습니다. 모르는 걸 여쭤보시는 손님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검표 업무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손님도 응대해야 하는 일이더라고요. 알고보니 이 알바는 사실 서비스직에 더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검표하는 건 부수적인 일이고요.
지난 5월 어린이날 연휴 때 경부선/영동선 전체 노선이 거의 매진이였습니다. 서울-동대구 노선이 5~10분 배차였고 고속터미널에 관광차가 쉴 새 없이 들어왔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거의 이런 식입니다. (...)
이렇게 매진 행렬일 때는, 손님들이 일단 자리 빈 시간대 표를 끊어오십니다. 혹시 중간에 빈자리 하나가 나면 미리 끊어둔 표를 이용해 '당겨' 타기 위해서입니다.
연휴나 명절 때 당겨타고 싶어하는 손님들이 정말 많습니다. 기차는 입석이라도 되는데 버스는 그러질 못해서 발 묶인 손님들이 정말 많이 보여요. 저희도 다 태워서 보내드리고 싶지만 그러질 못해서 참 안타깝습니다.
간혹 자기는 병원 예약 잡혀있다고... 하면서 빨리 가고 싶어하시는 손님들이 계세요. 그러면서 먼저 빈자리 기다리던 손님들한테 양보를 강요하시기도 하고요.
(명절 연휴가 지나고 나면 좀 평화로워집니다. 뭐 여쭤보는 손님도 적고요.)
저희는 11시 정각 출발 차량이면 11:00:00에 차를 뺍니다. 가끔 11시 00분 20초 이럴 때 오셔서 이미 떠난 차를 가리키며 왜 11시 정각인데 먼저 출발하냐고 여쭤보시면 참 난감합니다.
또 10시 59분에 간신히 도착하신 분이 계십니다. 이제 표 찍고 자리에 앉기만 하시면 차는 출발할 겁니다. 근데 표를 안 찍고 출입문 앞에서 머뭇머뭇 거리시네요. 왜 그런가 봤더니 고속버스모바일 앱 찾으려고 스크롤 중이시네요.
손님은 차를 간신히 잡아서 마음 편안한 상태지만, 기사님은 11시 정각에 차를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신경이 쓰입니다. 손님과 기사님 사이에 낀 저만 난처해지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표를 찍고 짐을 놔두고 화장실 간 손님은 11시가 넘어도 안 오시네요. 뛰어오는 손님은 그래도 양심이 있습니다만. 걸어오는 손님도 계세요.
이제 문 닫고 출발한 차를 잡기 위해 고속버스와 100m 레이스 펼치는 분도 가끔 목격됩니다. 저는 뛰어가는 것 까진 봤는데 타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1시 안동 가는 손님인데, 11시 안성 차에 타고 앉아서 벨트까지 끝마친 손님도 종종 있습니다. 이름이 같아서 헷갈릴 만도 하지요.
버스 앞면에 "서울 -> 동대구 11:00" 라고 LED 잘 나와있는데도, 그거 보는 노력조차 안 들이고 그냥 저희한테 이 차 맞냐고 물어보는 분도 계세요.
또 모바일 앱에선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 필요 없이 그냥 중고생표, 어린이표로도 예매가 가능합니다. 이걸 악용해 중고생 표로 예매하시고, 저희가 확인 후 학생증 등을 요구하면 웃으면서 '그런거 없는데요'라고 화답하시는 손님도 있습니다. 저도 웃으면서 표 취소 도와드립니다.
반말하시는 손님도 있습니다. "여주 어디로 가?", "화장실 어디있어?", "이거 좀 봐줘"
여기서 저도 반말하면 싸움나니까 그냥 웃으면서 응대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부류의 손님들이 계십니다. 하나씩 응대하다보니까 서비스직이 참 만만치 않은 직업군이네요.
이렇게 느끼면서도, 저는 손님이 궁금해하는 것을 제가 해결해드리고, 고맙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손님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 제일 기분이 좋습니다.
서비스직의 매력이 이런 거였군요. 이러면 앞에 힘들었던 일들을 잠시나마 잊게 됩니다.
---------------------------------------------------------------------------------------------------------------------------------------------------------
저는 검표원으로서 클리앙 분들을 포함한 손님분들께 '제발 5분 전에 승차하세요' 란 말을 하기 위해 이런 사용기를 쓴 것은 아닙니다. 지금 시대에 이런 알바가 조금 이색적이다 라고 느껴지실 것 같아서, 클리앙분들에게 소개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에 쓰게 됐습니다.
(고속버스 이용하면서 궁금하신 것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최대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경우 없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마워 하실꺼예요 :)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요~ 첫 달 근무했을 때는 감정노동이였는데 어느정도 스킬이 쌓인 건지... 지금은 그때보단 유하게 처리하는 것 같습니다.
대답해주면 되지 않냐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그런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같은 내용을 하루에서 몇번, 몇십번 상대하다보면 인내심이 정말 바닥나죠..
특히 당연한 것이라던가 뻔히 나와있는 내용에 대해서 물으면요..
제13조 (운임의 환급)
② 회사의 사정에 의한 운임액의 환급 다음 각호의 기준에 따른다.
3. 운송도중 버스의 고장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인하여 지연도착 시간이 100% 이상일 경우에는 그 운임액의 20%를 환급하여야 한다.
고속버스 운송약관 중
제15조 (취소수수료 및 운임의 환급)
④ 회사의 사정에 의한 운임액의 환급은 다음 각 호의 기준에 따른다.
4. 운송도중 버스고장 등 운송사의 귀책사유로 인해 운행시간이 예상 소요시간 보다 50%이상 더 소요된 경우 그 운임액의 20%, 100%이상 더 소요된 경우에는 그 운임액의 40%를 환급하여야 한다.
검표원 분은 회사나 출발 터미널 측에 여쭤보시는 게 빠르다고 토스하면 될 일인데 괜히 화를 냈네요.
사실 검표원은 버스 지연에 대한 보상 안내 의무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여쭤보시는 손님이 많기 때문에 위와 같이 안내하면 됩니다.
출발 전에 보통 기사님들이 인원 수 체크하고 출발하는데 아마 그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출발하셨나봅니다. 그리고 터미널에서 배차표를 모른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보통 터미널에선 배차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운영(주) 에서 배차표를 받아 차를 보는 업무를 합니다.
근데 휴게소에서 환승 휴게소가 아님에도
버려지는 경우가 가끔있는데... 미안하단 말 외에는 없죠...
휴게소에서 버려지는 경우는 보상안을 마련해서 운송약관에 집어넣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 부분은 나는 처음 와봤고 아무리 봐도 여기가 맞는데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직원에게 묻는 경우가 있어서 이해가 갑니다.
저는 혹시 손님이 이 차량이 맞나 확인하는 눈치가 보이면 저도 '10시 천안입니다~' 하고 안내해드립니다.
(연령이나 사회적 매너 습득도 등이 제각각인) 여러 불특정 다수들이 '버스시간'이라는 심리적 압박감을 마음 한켠에 지니고 오가는 곳이라 아무래도 타인에게 날선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가봐요.
힘든 일일 듯 한데 섬세하게 잘 해나가시는 것 같아요. 멋지십니다.
저에게 너무 과분한 격려말씀입니다. 이 일이 본업이 아니지만은, 아직 사람 대하는 업무가 매끄럽진 않습니다. 멋진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평소에 내가 알던 강남터미널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한산할때가 없더군요
그래도 그시간에도 출근한 눈에 익은 검표원분을 보고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Vollago
터미널이 한산하면서도 막상 차 안에 타보면 승객들이 많습니다. 양복 입고 서류가방 들고 오신 분도 많이 계세요. 첫차 타러 오시느라 참 힘드셨겠다 라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론 9:42 였고요. 알고보니 그분 폰 시계가 느렸던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터미널 시계를 보여줘도 안 믿고 계속 우기시다가 매표소 초시계 보고 셧다운하신 적도 있네요. ㅎㅎ
고생하셨어요. (저도 직원모집하는글보고 응시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포기했다는...)
스마트폰도 없고 그냥 일반 핸드폰 쓸 때였는데 참 웃겼던 기억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