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 탐구해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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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권 시절에나 태어난 저로써는 변절자로 욕먹는다는게 이해하기가 많이 힘들긴 하네요.
저는 종합적으로 봤을 때 대단하신 분으로 보여져서요.
칼럼 개재 이전의 행적은 말할 것도 없이 위대하시고,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칼럼을 통해 분신 파동을 비판하여 노태우 정부에게 간접적으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아무래도 이것이 변절자라 욕먹고 후배들한테 따돌림당하게 된 계기로 보이는데요.
분신파동이 시대상을 감안해도 91년도였으며, 열사분들의 나이도 너무 어렸잖아요?
정도가 지나친, 잘못된 투쟁 방식임을 지적하셨던거죠. 생명존중 사상을 가지고 있으셨던 분이었으니까요.
솔직히 전문을 읽어봐도 그리 반동적인 주장인가 싶습니다;;
요즘 세대인 제가 보기에는 "91년도"에 분신이 투쟁에 필요한지도 모르겠으며, 오히려 악영향을 지대하게 준 것으로 보이고요. "분신 자살"이라는 방식을 택한것은, 집단 동조의 영향을 받아 새파란 청춘들이 행한 감정적이고 잘못된 선택으로 보여집니다. 투쟁 자체의 의의와 별개로요. 엄연히 민주화운동이고요.
그때 당시 국민 대다수의 여론도 부정적이였고요.
제 아버지는 91학번이시고 대학 기자 출신이신데, 분신 자살을 영웅시하고 부추기는 기조 자체는 있었던 게 명확히 맞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생명존중하자는 칼럼 하나를 개재한 것이 왜 변절인지 이해가 전혀 안갑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바로 제명되신 것도 좀 황당하고요.
그것이 과라고 해도 그분의 공에 비해 매우 미미한 과라고 보여집니다.
심지어 일련의 과정속에서 이득을 얻으신것도 없고... 오히려 입지가 매우 위태로워지셨던데요. 김문수가 변절한 과정과 비교해봐도 정반대입니다.
받았던 고문의 정신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요, 명예가 실추되고 존경받던 수많은 후배들에게 손가락질당하며 정신적으로 몰리셨던 과정을 보니 오히려 어떻게 살아있으셨는지 싶어요. 황당한 이유로 변절자 낙인을 찍고 사람 한명 제대로 괴롭힌 것 아닌가요.
그렇게 10년 넘게 매도당하고 따돌림당하는 과정을 정신적으로 거쳐오신 분이, 말년에 박근혜 지지 선언 한번 하셨다가 철회한 걸로 크게 평가절하되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변절자라고 하는 쪽의 주장을 받아들여도... 공이 과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시며, 저평가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백낙청 교수님 또한 김지하 시인을 그러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았고요.
그 시절을 살아오신 분들이 이 곳에 많으실 듯하여, 다른 의견도 듣고 싶어 글 올려봅니다.
댓글 28
그게 실수든 아니든 말이죠.
하지만 여전히 신념을 잃지않는 위대한 분들을 생각하면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빼먹었네요;;)
하지만 그는 변절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김지하 시인 말씀대로 어느 날 눈 떠보니 민주투사가 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뭔가 희망을 보고 있는데
그것을 저버릴 수는 없었겠죠.
그래서 고생도 많이 하셨고...
세월이 흘러 되돌아 보니
나이 들어 바라보는 세상은 ...바뀐 세상은 또 달라 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 책을 내셨고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고 하셨죠.
인간의 사상..가치관이라는게
자신에게 주어지는 이득을 따지는 관점이 아닌 순수한 측면에서도
언제든...얼마든지 생각은 바뀔 수 있는거죠.
왜 하필 조선일보에?
이게 컸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조선일보는 그때에도 이미 보수 성향이었던 건가요?
다만 그것을 감안해도 이해가 안되는 점은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요.
그것에 실망한 것도 맞고요.
그래도 암울했던 시기에 목소리를 높였던 용기는 높이 삽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청년에 인간다움을 부르짖었으나 약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노인" 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본인이 지지선언을 철회하기도 했고, 생명존중 칼럼 하나로 변절자라고 매도당하시고 정신병원까지 갔다오셨으니 진보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신 상황도 이해가 되어, 공에 비해 턱없이 적은 참작 가능한 과가 아닌가 해서 글을 올려봤었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친구가 분신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고자 했던 이유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내 목소리를 알리고 무관심한 사람들이 이 학생이 왜 이래야만 하는가 한번쯤 생각해 보라는 거였죠.
자기가 죽으면 적어도 신문에는 날 수 있다 생각했죠. 그래서 찾아간 곳은 대학신문사였습니다.... (이하 생략)
글쓴이의 질문의도하고는 조금 옆길로 샜습니다.
91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기고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거라 민주진영에서는 당연히 반발할 수 밖에 없었죠. 더더군다나 그 시절 노태우 정권이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벌이는 등 분신정국이 마치 민주진영의 기획인 양 오도되던 시점이라 반발은 더 컸구요.
당시 분신을 영웅시 하는 기조가 있었다고 하셨는데 열사분들을 애도하는 것과 영웅화 하는 것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때 민주진영은 어떻게든 이어지는 희생을 막고자 했지 결코 분신을 장려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 와중에 김지하 시인의 기고가 조선일보에 실렸으니 시인의 시를 돌려 읽고 그의 행적을 전설처럼 전해들으며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의 배신감은 말도 못하게 컸던 것입니다.
김지하 시인이 빼도박도 못할 배신자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궤적에 이해할만 한 부분이 있듯 그에게 실망한 사람들 역시 이해가는 측면이 있다는 말씀을 드려보고 싶었습니다.
다만... 분신 파동이 엄연히 잘못된 투쟁 "방식"이었을뿐, 그것을 기획이라 하는 것은 왜곡이지만, 열사 분들의 나이가 고작 만 20세이었으니, "분신 장려"가 아니더라도 심리적 효과로써, 사회/집단적 동조, 감화, 부채의식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김지하 시인의 칼럼에 더더욱 공감을 하였던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모든 인간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존중"할 뿐이죠.
오직 "신"만이 경외되고 존경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컬럼을 실은 곳이 조선일보라는 점, 그 컬럼이 정부의 학생탄압의 근거로 쓰였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적절한 행동이었나 하는 아쉬움은 많이 남습니다.
자살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심지어 개독들에게도 거부되는 패륜입니다. 분신을 조장하는 운동권이 존재했었다면 당시의 학생운동은 절대 정당화된다거나 역사적 가치를 절대 가질 수 없었을 것이고 오늘날의 민주세력은 절대 존재할 수 없는 패륜입니다. 권력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인 역사는 변명되고 법적 관용을 받는 반면에민주화를 위한 희생은 이렇게도 왜곡되고 철저하게 짖밟히고잇는 현실을 증오합니다.
그리고 2찍들의 역사왜곡은 분신자살에 배후가 있다, 기획이었다겠죠. 이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계속해서 엄연히 민주화 운동임을 강조하며, 의의가 있었다고 썼습니다.
그 어디에도 민주화 운동에 대한 폄훼는 없고요.
그 당시 벌어졌던 분신 파동에 대해 잘못된 방식이었다라는 비판적인 의견을 남기며, 연쇄적인 분신 자살에서는 사회적인 영향, 즉 부채의식, 집단 동조, 감화 등의 심리적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씀드린거였습니다.
https://marx21.or.kr/article/395
진보주간지에서도 잘못된 투쟁방식이라고 명확히 하네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 운동권 출신이시고, 1번만 뽑아오셨습니다. 증언을 그대로 옮긴게 다입니다.
부추기는 사회적 기조가 있다와 운동권의 사주라는건 아예 다른 차원의 이야기고요.
전자는 그저 그 당시의 흐름에 대한 주관적 증언에 불과합니다. 역사왜곡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제 의견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도 아니고요.
당시에 분신사건이 사회면의 교통사고 기사처럼 그냥 이름없이 사라져 버리게 되는게 안타까워 운동권에서 자세히 공유되었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 본인도 분신에 동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는 했겠지만 그건 본인의 치열함의 결과물이지 조장하는 분위기탓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으로 문학계 위상이 그런 친일 군사유신 문학으로 부터 모처럼 벗어나는 시점에서 김지하를 존경하자는 의견이 제시되는 상황이 너무나 저주 스럽습니다.
백낙청 교수님도 잘못말씀하고 계신건가요?
대체 어떤근거로 그 두분의 과를 같은 층위에 놓으시는건지요. 이미 글에서 언급한 바가 있긴 하지만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82095
당시에도 분신대기조가 있다는 말들이 존재했었기도 하고요.
학보사 기자들의 대부분이 운동권과 가까웟다는것은 사실이나 당시 대공과 113수사본부 요원들이 학교 사찰시 학생회 보다 학보사를 먼저 찾았습니다. 사찰 수단으로서 학보사에 가치 있는 정보가 더 많았으니까요. 김지하의 분신에 대한 조선일보 칼럼은 지면이 조선일보였을뿐 아니라 김시인의 민주인사들에 대한 태도가 의심스러워 보이기에는 충분햇었습니다. 김지하 공부에 많은 응원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