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는 토론을 어떻게 다르게 만드는가
1편. 서론: 서로 다른 토론의 자세와 인식
2편. 서양의 문법: 결투에서 의회까지
3편. 동양의 문법: 한국의 ‘체면’과 일본의 ‘네마와시'(根回し)
4편. 같은 뿌리, 다른 가지: 중국, 인도, 그리고 불교
5편. 상호 인식: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오독하는가
6편. 결론: 혼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교함
글을 시작하기 앞서, 이 글은 추상적인 영역인 ‘문화’와 ‘정서’ 그리고 ‘인식’의 차이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것들은 ‘경향성’을 말하는 것이고 보편화, 일반화, 개념화 해서 하는 얘기이지, 이것은 반드시 이렇고 저것은 반드시 저렇다고 하는 게 아님을 먼저 밝혀 두고 싶습니다.(‘문화’ 같이 추상적인 것에 있어서는 당연한 것이기는 합니다만, ···.)
특히 여기서 말하는 ‘동양’이나 ‘서양’ 혹은 ‘서구’는 딱히 달리 표현할 수 없지만 개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그 개념을 빌려오기 위한 것으로 그것이 반드시 특정한 지역과 맞아떨어진다는 보장은 결코 없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아울러 견주고 일반화해서 ‘비교적’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으로 실제로는 그 속에서도 다양한 양상이 있음 또한 자명합니다. 혹시라도 이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인식이 없기를 바랍니다.
1편. 서론: 서로 다른 토론의 자세와 인식
꽤 옛날, 미국 대학에서 시험을 보던 한 아시아계 유학생이 부정행위 의심을 받았고, 결국 재판까지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학생은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지만, 재판에서 그의 유죄를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된 건 다름 아닌 그 학생 자신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한국말로 하자면 ‘죄송합니다만, 저는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려고 했던 “I am sorry, but···”, 이것이 학생이 부정행위를 인식하고 인정한 유력한 증거로 제시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사례는 꽤 있었다고 하고 그런 것이 결국 여러 가지 분쟁, 의료 분쟁까지도 일으키다 보니 의료계에서는 “sorry라고 말하지 말라”고 가르치거나, 미국의 여러 주(州)가 아예 사과 표현이 법적 책임 인정으로 자동 해석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조치로 ‘사과법'(apology law)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한국인-혹은 일본인- 등 에게는 그냥 의례적으로 붙이는 표현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인의 경우에는 여기서 조금 더 극단적이라, 다른 문화권이라면 사과의 표현을 쓰지 않을 상황에서까지 “すみません”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심지어 선물을 주는 사람이 ‘약소한 선물을 주어서 미안하다’는 의미로 쓰기도 하고, ‘고맙다’는 뜻으로 쓰기도 합니다.(그래서 정말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에는 ‘ごめんなさい’를 쓴다고도 합니다.)
국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다 보면 종종 서구 사람들의 직설적인 표현에 읽는 제가 깜짝 놀라곤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라고 그런 표현을 서슴치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체로 그렇게 예의없이 표현하는 사람은 논리도 없는 경우가 많은데 서양 사람의 경우는 논리도 있으면서도 말 표현이 꽤 날카로운 경우도 경향적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은 조금 길어지겠지만, ‘이왕이면 부드럽게, 이왕이면 친절하게 표현하면 되지 꼭 저렇게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말 앞에 서로 간에 신뢰를 쌓는 표현 하나만 덧붙여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참으로 좋을텐데···’ 싶은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논리로 이길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 기분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건가’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됩니다.(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이것도 저의 동아시아스러운 성향 때문이기는 합니다만,···)
그러고 보니 외국 어느 나라의 정치 토론을 보다 보면 ‘저렇게 모욕적으로 공격을 해도 되나’ 싶게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가 하면, 사회자조차도 거의 개입을 하지 않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한국의 경우라면 상대의 명백한 잘못이나 과실, 심지어 부정까지도 그 사실은 밝히되 그것으로 모욕을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여기거나, 그런 모욕은 오히려 공격하는 사람의 인성이나 수준을 드러내는 일이 되어 오히려 논리적 우위, 도덕적 우위를 갉아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양상은 조금 다르지만 영국 의회의 전통을 가진 나라들은 비록 말로만 하는 것이지만 정말 시끄럽고 소란스러울 정도로 언쟁을 벌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견줘 한국은 종종-어쩌면 ‘거의 대부분’?- ‘논리’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고, 거기에 은근슬쩍 ‘기분’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정면으로 공격 받거나 부정 당하는 걸 모욕적으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마음만 맞고 기분만 괜찮으면 상대 논리의 허점까지 포용하는 아량(?)을 베풀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에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상하기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말에는 낱말이나 표현 자체의 뜻에 더해 글귀[文句]에 여러가지 의미가 더해지는 언어이다 보니 자그마한 표현 차이에 수많은 숨은 정보나 속뜻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말은 맞는데···”라고 하면 동의의 의미와 단순한 접속사가 아니라 논리적으로는 맞는 걸 인정하지만 논리 바깥의 의미 전개나 논리 바깥의 의미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논리를 반박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의 결론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겠다는 논리 바깥의 논리를 펼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종종 서양이 상대의 논리적 허점을 (한국인의 시선에서는)모욕적일 정도로 파고 드는 것에 반해, 한국인은 그것을 때로는 ‘말꼬리 잡’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위에서 살핀 것처럼 그런 행동이 오히려 그 사람이 인정 없고 예의없는 것으로 평가받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홉스테드의 문화 차원 연구에서 한국의 개인주의 지수가 낮게 나온 것에서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연구에서 한국인의 개인주의 지수(IDV)는 100점 만점에 18점으로,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권(대만 17점, 페루 16점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반면 미국은 91점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태도나 정서 등 문화권에 따라 이렇게 다른 장면들이 펼쳐지는 까닭은 뭘까요?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해 보려 합니다.
그리고 모공 보다는 글이 더 오래 남을 수 있는 팁과강좌가 더 잘 어울리는 게시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오랫만에 보는 따뜻한 댓글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