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벚꽃이 지고 있나 봅니다. 많은 분들이 아쉬워 하겠네요... ^^
우리에게 언제부터, 왜, 어떤 계기로 벚꽃놀이 열풍이 불게 되었을까요?
물론 그 이전에는 먹고 사는 것에 바빠 봄놀이, 꽃구경 같은 게 대중적이지 못했던 탓도 있겠지만, 어쨋거나 우리 겨레 정사상 벚꽃은 그다지 관심 밖의 꽃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혹은 어떤 계기로 벚꽃구경이 대세, 열풍이 된 것일까요?
옛날에는 벚꽃은 일본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창경궁을 놀이시설로 만들면서 벚꽃을 대량으로 심었고 그 벚꽃을 보며 지들 고국을 그리워 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벚꽃에 느끼는 특별한 감정, 정서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럴 기회가 온다면... ^^;;)
1980년대 말 여의도 개발을 하면서 창경궁의 벚꽃을 윤중로에 집중적으로 옮겨 심으면서 윤중로의 벚꽃이 유명해 졌고 이것이 나중에 벚꽃축제의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즈음 진행 해군항도 일부 개방이 되면서 남쪽에서는 진해 군항제의 벚꽃이 유명해 졌고 온 나라에 벚꽃 열풍이 풀기 전에는 '벚꽃'하면 '진해 군항제', '진해 군항제'하면 '벚꽃'일 정도일 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진해 군항제와 윤중로 벚꽃 축제가 성황을 이루자 여기저기서 비슷한 곳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발굴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직 충분한 자료를 모으지는 못했습니다만, 제가 알기로 우리 겨레 정서에서는 '진달래'가 으뜸꽃이었지 않을까 싶습니다.(물론 자웅을 겨루는 꽃이 몇몇 더 있기는 합니다만...)
일단 '진달래'는 옛날 민둥산에서는 꽤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햇볕만 좀 들면 우리나라 산 같이 약간 척박한 땅에서도 잘 삽니다.)
그리고 정서적으로는 아무래도, '진달래'를 보았다는 것은 혹독한 겨울을 버텨내었다는 안도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진달래는 잎에 앞서 꽃이 먼저 피어 봄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옛날 민초들이 먹고 살기 위해 산을 오르면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생명의 징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진달래에 '참꽃'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나 봅니다. ^^ (꽃 중에 참이라니 이 정도면 상당한 편애 아닌가요? ^^;)
비록 아직 춘궁기가 남기는 했지만 적어도 진달래가 피었다는 것은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의 겨울이 지났고 이제 산과 들에 뜯어 먹고 캐어 먹을 거리들이 생겨났다는 뜻으로 어쨋거나 굶어 죽을 걱정은 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정월 대보름을 지나면서 봄농사 준비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본격적인 봄농사 철은 아닌지라 가끔 짬을 내어 꽃놀이를 가거나 화전을 부쳐먹고 좀 사는 집에서는 두견주를 담그기도 했습니다.
얘기가 잠시 옆으로 샜습니다만, 어쨋거나 우리 겨레에게 봄꽃놀이는 단순히 보는 행위가 아닌 화전 같은 경험과 맞닿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봄마다 벚꽃 구경 열풍이 불게 된 이유나 계기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또 여러분이 보시기에 우리 겨레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꽃으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혹은 여러분은 벚꽃놀이 열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봄꽃놀이 열풍의 중심에 벚꽃이 있을 뿐 저는 벚꽃에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습니다. ^^ 하지만 씹타냐후와 트싸패에게는 감정 많습니다. ^O^)
* 다음에는 특정 계급이 아닌 우리 겨레 민중 일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꽃은 무엇인지를 얘기 나눠 봐도 재밌을 것 같네요. (혹은 어느 분이 그런 얘기를 들려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80년대부터 가로수를 벚꽂으로 갈아 심은 것과 90년대 중후반 일본 문화 개방. 2004년 주5일제 시행 따른 주말 레져 수요 증가. 2000년대 지자체들의 축제 유도 등이 겹쳐진 것도 원인일 듯 해요.
그런가요?? 일단 제가 살던 동네 뒷산은 봄에는 온통 진달래밭이었습니다만...
초봄에는 개나리. 그다음은 진달래가 봄의 상징이었어요...
지금 벚나무는 80년 독재정권시절 부터 가로수로 집중 심기시작한겁니다.
80년대면 반일감정이 극에 달할때라,
그 당시에도 국민정서에 크게 어긋난 벚나무만 독재정권이 가로수로 주구장장 심는것을 두고,
일본의 작품이라는 소문이 많았습니다.
80년대 상황을 보면 당시 당시 일본이 자금줄 쥐고 있던 시절이라,
한국에 정치 외교적 영향력을 대단히 크게 행사할때입니다.
벚나무를 심어서 반일감정을 죽이는 취지로 일본이 뒤에서 조종하고, 정부는 그것을 들어준다는 식의 소문이 많았습니다.
80년대 심기 시작한게 지금 커진겁니다. 그 이전엔 벚나무는 흔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혐오하던 나무였습니다.
향기도 없고 금방 저버리는 모습을 보면 정이 안가는 꽃이긴 합니다.
며칠전에 마누라님에게 한 말이네요.
90년대만 해도 일본에서 좋아하는 꽃이다 보니 꽃놀이 한다고 하면 고깝게 보는 시선이 있었죠.
그런데 00년대, 10년대를 넘으면서 일본이 넘기 힘든 '극일'의 나라에서 그냥저냥한 이웃나라로 격하되면서, 좋은게 좋은거라고 사람들이 마음놓고(?) 즐기게 된거 아닌가.... 합니다.
그게 일제시대 욱일기 모양으로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더군요.
요즘도 로터리 많은지 몰라도요...
진해에 로터리가 많은 건 독일인이 도로 설계해서 그렇다고 알고있어요
지구에 생겨난 생명체에 소유권을 주장하고 국가 상징이니 하는 건 솔직히 이해가 안 됩니다. 일본이 그걸 주장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고, 반일 감정이나 민족까지 확장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나라든, 어떤 누구든 자연에 생겨난 생물을 두고 우리 상징이니 우리 것이라 하거나, 그런 이유로 배척하고 기피하는 건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도 기껏 자연의 한 부분이고 공존하는 존재입니다. 벚꽃이 예쁘고 인기가 좋으니 많이 심은 거고, 덕분에 동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된거죠. 대중이 또 다른 꽃을 좋아하면 도시 개발할 때 그걸 심겠죠.
좋아하는 걸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한도에서 즐기면 그만입니다. 벚꽃도 그냥 그렇게 보면 됩니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이 운율과 호흡을 따라갈 수 있는 시는 극히 드물죠. 김소월....
1990년말까지만 해도 사쿠라라고 해서 부정적인 인식 + IMF 후유증으로 꽃놀이 즐길 여유는 없었던거 같아요.
제가 어릴때 imf이전에도 벚꽃과 목련을 보러 다니기도 했으니, 벚꽃이 최근에 인기가 많아진건 아니라고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