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두의공원에 미국의 선 넘은 팁 문화, 거부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라는 글이 올라와서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제가 생각하는 미국 팁 제도에 대해 적어봅니다.
팁 제도는 미국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편한 제도입니다. 저도 오래 전 한국에서 회사에 다니면서 미국에 출장을 두 세번 왔을 때 밥을 다 먹고 현금이 10불짜리하고 100불짜리밖에 없고, 팁은 1불이 적당한 상황인데, 팁을 어떻게 줘야 할지 몰라서 주변 미국 사람중 누구라도 계산할 때까지 20분쯤 기다렸다가 유심히 지켜보고 배운 시절이 있습니다.
저는 팁에 긍정적인 사람인데, 지난 2년 사이에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좀 더 상세하게는 지난 1년 사이에 크게 바뀌었습니다. 제 생각을 바꾼 네가지 요인은 이것입니다.
- 팁을 받고도 답례하지 않는 가게와 종업원의 증가
- 예전이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선불(!) 팁 시스템
- 외식 물가 급상승. 코로나 전에 비해 약 50%정도 올랐습니다.
- 물건 구매할 때도 요구하는 일부 뻔뻔한 팁
제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미국식 팁 제도는 처음 오는 손님도 단골 고객으로 만들 정도로 뛰어난 음식 솜씨와 진심어린 서비스에 대한 화답입니다. '내 음식과 서비스를 경험하면 다시 오지 않고는 좀이 쑤셔 견디지 못할걸?' 이라는 가게의 솜씨와, 그것을 칭찬하는 손님의 화답인 것이지요. 그 칭찬의 정도는 0% ~ 15% (제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였습니다.
저는 회사 사람들과 회사 근처 식당에서 0% 팁도 준 적이 있습니다. 우리 담당 서버가 우리 음식이 주방 카운터에 완성되어 나와 있는데도, 단골 손님의 테이블에서 수다를 떠느라고 10분 넘게 움직이지 않고 가져다 주지 않더군요. 그 때 한 번만 0%를 준 적이 있습니다.
팁은 당연한 징수 권리가 아니고, 감사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 주면 서버는 내가 뭘 잘못했나 뒤돌아봐야 하고 (위의 0% 사례에서 서버는 우리의 0% 팁에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20%를 받으면 환한 웃음으로 눈을 맞추며 감사하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사는 미국 식당이나 가게에서 직원들이 스몰토크를 좋아하여 손님과 재치있게 대화하며 손님이 뭘 원하는지 재치있게 발견해서 대응하는 상호관계를 아주 좋아합니다. 양이 많은 것을 꺼리는 고객에게 권하는 필살 메뉴가 있고, 고혈압이 있는 손님에게는 주방에 이야기해서 저염으로 요리해줄 수 있다고 제안하고, 아이가 있는 고객에게는 컬러 고무줄로 예쁘게 묶은 색칠놀이 종이를 줘서 아이가 웃도록(=부모가 편하게 식사하도록) 만드는 등의 감동인 것이죠.
그런데 모든 미국인이 타고난 서버는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팁 제도는 자연도태설의 한 종류라고 생각합니다. 위 문단에서와 같이 타고난 서버는 승승장구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서빙 말고 다른 직업을 알아보게 만드는 것이죠.
그런데, 최근에는 식당들이 커지고 체인화되고, 서버는 자주 사람이 바뀌며, 서버들은 고객의 필요성을 개별적으로 느껴서 재치있게 대응하기보다는 짧은 접객 시간에 고가의 메뉴를 더 많이 팔아서 수익성을 높이도록 교육받거나, 기계적인 서빙 멘트를 얼굴 표정 없이 말하거나, 아예 아무 교육도 없어서 기본기가 없이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서빙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20% 팁을 주기가 참 망설여집니다.
심지어 사전에 돈과 팁을 먼저 내고 음식을 서빙받는 식당인데 서비스가 그런 식이라면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요. 지난 2년 사이에 그런 경우가 여러 번 있어서 미국의 팁 시스템은 하나의 피곤한 의무가 되어 간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외식 물가가 오른 것은 팁 부담에 원-투 펀치입니다. 음식값이 올랐기 때문에 당장 제 주머니에 부담이 커졌고, 음식값의 일정 비율로 계산되는 팁도 외식 물가가 오른 만큼 (=50%) 덩달아 오르거든요. 이렇게 음식값이 많이 올랐는데, 팁을 주는 것, 거기에 더해 50% 더 증가한 팁을 주는 것이 합당한가? 라는 회의가 들곤 합니다. 그래서 제 반응은 외식 빈도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외식업 자영업자들에게는 힘들겠지요. 게다가 온라인 쇼핑이 대부분의 소매업을 대체해버리고 남은 것은 외식과 미용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자영업자도 힘든 상황이지만요. 상가 건물에 새로 여는 가게는 식당-커피-네일샵-물리치료 뿐입니다.
게다가 요즘들어 일부 몰지각한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POS기에 뜨는 팁은 뻔뻔함의 극치죠. 물건을 파는 행위는 판매가격에 노무비와 운영경비의 형태로 반영되어 있거든요. 그건 한국에서 삼류 나이트클럽에서 손님에게 팁을 은근히 강요하는 것처럼 뻔뻔한 일입니다. 미국에서도 물건을 팔 때 팁을 정말로 요구하는 집은 삼류입니다.
반면 일부 상점은 POS기에서 팁을 표시하는 단계를 건너뛰도록 설정할 수 없다고 솔직히 먼저 이야기하고 0을 누르라고 지도해주기도 합니다... 그런 이상한 POS기를 도입하지 않았으면 더 현명했을테지만요.
팁은 받았을 때 감사해야 하고, 개인적으로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팁은 변질된 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딸은 식당에서도 최소의 팁을 주고, 테이크아웃은 팁을 주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2020년대 들어서 미친듯이 발전한 팁에 대한 탐욕이 미국의 팁 제도가 막을 내리도록 야기한 것 같습니다. 팁의 순기능이 사라지는 것이 저에게는 아쉽지만, 순기능은 적은 비율로 쪼그라들고 대신 탐욕이 대부분을 차지해버린다면 팁 제도는 없어지는 것이 맞겠죠. 내일 당장 팁 제도가 없어지라는 뜻은 아닙니다만, 장기적으로 없어질 것 같습니다.
1시간 뒤에 아까의 10불짜리 구매 영수증을 들고 가서 잊어버린 맛차 라떼를 가지러 왔다고 하니, 기억하더군요. 아까 것은 버렸으니까 새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 새로 만들어진 맛차 라테를 받을 때 음료를 만들어준 직원에게 팁을 1불짜리 지폐 몇 개로 유료 음료 가격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후하게 주고 왔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20불정도 드렸었는데, 그땐 그 20불이 정말 안아깝더라구요.
미국식 팁의 큰 장점은 내가 팁을 주면서 다른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떳떳하게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신 정말 일 감동적으로 잘하는군요!"라고 큰 소리로 칭찬하는 것과 유사하지요.
그런 팁도 있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쉽습니다.
한번은 고기집에서 먹고 출장중이니 통크게 25% 줘야지 했는데 (팁도 회사에서 정산해줬습니다...) 일행이 있어서 계산서 두개로 스플릿 해달라고 했더니 서버 아줌마가 짜증을 확 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