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mp Isn’t Interested in Fighting a New Cold War. He Wants a New Civilizational War.
By Thomas L. Friedman
몇 년에 한 번씩 나는 저널리즘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 가운데 하나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코끼리가 날아다니는 광경을 보게 되면 웃지 말고, 기록하라는 것이다. 코끼리가 난다는 건,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전혀 다른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이며, 그것은 기자인 나뿐 아니라 독자들 역시 반드시 이해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난주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의 33쪽 분량의 국가 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이 냉전 이후 어느 때보다 격화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트럼프 2025 국가 안보 독트린’이 이 두 지정학적 도전자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주목된 바 있다.
보고서는 전 세계에 걸친 미국의 이익을 폭넓게 다루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흥미롭게 느낀 대목은 그 보고서가 유럽의 동맹국들과 유럽연합(EU)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이다. 보고서는 미국의 동맹인 유럽 민주국가들이 정치적 자유와 주권을 훼손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며, 그들의 이민 정책은 대륙의 모습을 바꾸고 사회적 갈등을 낳고 있으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검열과 정치적 반대세력의 억압, 급격히 추락하는 출산율, 그리고 국가 정체성과 자기 신뢰의 상실 같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덧붙인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유럽 대륙은 20년도 채 되지 않아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바뀔 것이다.”
실제로 이 전략 문서는, 유럽의 동맹국들이 이민을 억제하는 데 전념하는 보다 ‘애국적인’ 민족주의 정당들을 선출하지 않는 한, 유럽은 ‘문명 말소(civilizational erasure)’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암묵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 우리는 당신들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한가로 당신들을 판단하지 않겠다. 대신, 유럽 남부로 유입되는 무슬림 국가 출신 이민을 얼마나 엄격하게 차단하느냐로 당신들을 평가하겠다.
이것이야말로 누구도 외면해서는 안 될 날아다니는 코끼리다. 이는 과거 그 어떤 미국의 국가 안보 보고서에서도 볼 수 없던 말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이 말이야말로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본질을 드러낸다.. 즉, 이 행정부가 권력을 잡은 목적은 서방의 새로운 냉전을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세 번째 내전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내 판단으로 우리는 지금 ‘본향(Home)’이라는 장소를 둘러싼 새로운 내전 속에 있다.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잠시 ‘본향’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돌아보자. 요즘 우리는 모든 위기를 경제 지표라는 건조한 수치로, 혹은 정치, 군사 작전이라는 체스판의 계산으로, 아니면 이념적 선언이나 구호의 문제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들 모두 나름의 의미는 있다. 그러나 기자로 일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출발점으로는 심리학과 인류학이 더 적절하다. 이 학문들은 우리 국내 정치, 나아가 세계 지정학을 움직이는 원초적 에너지와 불안, 그리고 열망을 훨씬 더 잘 드러낸다. 사람들이 겉으로 무엇을 원한다고 말하는지만 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은밀히 기도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기 때문이다.
나는 1860년대의 남북전쟁엔 존재하지도 않았다. 1960년대의 두 번째 거대한 내전, 곧 시민권 운동과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이 이어지던 시기에는 아직 소년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세 번째 내전은 지금, 내가 한가운데서 겪고 있다. 이 내전 역시 앞선 두 번의 내전과 마찬가지로, 결국 다음 두 질문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의 나라인가?” 그리고 “누가 이 나라를 자신의 본향처럼 느낄 수 있는가?” 이번 갈등은 앞선 두 번의 내전에 비해 폭력의 정도는 낮다. 그러나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다.
인간에게 ‘본향’은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필요다. 본향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기대설 수 있는 기준점이자 삶의 방향을 가늠하게 해 주는 도덕적 좌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는 정확하게 말을 했다. “본향만 한 곳은 없어.” 사람들이 이런 본향의 감각을 잃게 되면 — 전쟁이나 급격한 경제 변화, 문화 변화, 인구 구조의 변화, 기후 변화, 기술 변화 때문이든 — 중심을 잃기 쉽다. 그들은 마치 토네이도 속에 던져진 것처럼 느끼며, 붙잡을 수 있을 만큼 안정되어 보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움켜쥐려 한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는, 설령 그 인물이 얼마나 사기꾼이든, 그 가능성이 얼마나 비현실적이든, 자신들을 다시 ‘본향’이라 불리는 곳에 연결해 줄 것처럼 보이는 지도자도 포함될 수 있다.
지난 40년 동안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취재해 온 내 경험으로 보건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질문을 던진 적은 없었다. “이 나라는 과연 누구의 나라인가?” 혹은 2022년 이스라엘 총선 당시,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이스라엘 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선거용 현수막에 히브리어로 내걸었던 표현을 빌리자면, “여기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이런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수는 인류 역사상 최고치에 이르렀다. 현재 전 세계 이주민은 약 3억 4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는 일자리를 찾아 이동한 사람도 있고, 교육을 위해 국경을 넘은 사람도 있으며, 내전에서 벗어나 안전을 찾는 이들도 있다. 가뭄과 홍수, 산림 파괴를 피해 떠난 사람들도 있다. 우리 반구만 보더라도, 미국 세관국경보호국은 미국 남부 국경에서 적발된 이주민 수는 2023년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퓨 리서치 센터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 내 불법 체류 인구 수는 1,400만 명으로 늘어나, 약 10년간 이어졌던 상대적 안정 국면을 깨뜨렸다.
그러나 이것은 이민자 문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세 번째 내전은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한 전선에서는, 백인이며 대체로 기독교인인 미국인들이 백인 출산율 감소와 히스패닉, 아시아계, 다인종 인구 증가로 인해 2040년대에 현실이 될, 소수 인종 다수 국가로서의 미국의 등장을 거부하며 맞서고 있다.
또 다른 전선에서는, 흑인 미국인들이 여전히 ‘본향’이라 불릴 수 있는 공간으로부터 자신들을 밀어내려는 새로운 장벽들과 싸우고 있다. 그와 동시에,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미국인들 매주 달라지는 듯한 문화적 흐름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정체성, 화장실 사용, 심지어 어떤 글꼴을 쓰느냐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요구되는 기준들, 그리고 공적 공간에서 서로를 어떻게 호명하고 대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변화들 때문이다.
또 하나의 전선에서는, 인공지능이 이끄는 기술 변화의 강풍이 사람들이 적응하기도 전에 기술 변화가 일터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전선에서는, 인종과 신념, 배경을 막론한 젊은 미국인들이 최소한의 집 한 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과 씨름하고 있다. 오랫동안 미국적 꿈을 떠받쳐 온 물리적이자 심리적인 안식처가 점점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지금 미국에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사회적 행동의 규칙이 무엇인지, 올라갈 수 있는 경제적 사다리가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사는 ‘집’에서 어떤 문화적 규범이 허용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나 있다. 이들은 심리적으로 홈리스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가 첫 대선 캠페인에서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일을 핵심 구호로 내세웠을 때, 그는 그 구호가 수백만 미국인에게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장벽(wall)’은 무분별한 이민을 막기 위한 물리적 장벽을 뜻했다. 그 이민은 미국 사회의 인구 구성이 소수 인종 다수로 바뀌는 과정을 앞당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단어는 동시에, 변화의 속도와 범위에 맞서는 장벽이기도 했다. 일상의 모습을 바꾸어 놓고 있는 문화적, 디지털, 세대적 소용돌이에 대한 장벽 말이다.
내게 보기에, 이것이 바로 트럼프의 국가 안보전략을 떠받치는 근본적인 배경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경계를 지키거나 확장하기 위해 냉전을 다시 치르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이 미국의 ‘본향’이며 무엇이 유럽의 ‘본향’인가를 둘러싼 문명적 전쟁이다. 그 전쟁은 인종과 기독교-유대교 신앙을 중심에 두고, 그 안에서 누가 동맹이고 누가 아닌지를 가르는 싸움이다.
경제 칼럼니스트 Noah Smith는 이번 주 자신이 운영하는 서브 스택에서, 이것이 바로 MAGA 운동이 서유럽에서 점점 등을 돌리고 Vladimir Putin의 러시아에 더 가까워지기 시작한 핵심 이유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에게 푸틴은 EU 국가들보다,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와 전통적 가치를 지키는 데 훨씬 더 적극적인 수호자로 보인다는 것이다.
스미스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인식 속에서” 유럽은 오랫동안 바다 건너에 있는, 변함없는 동질성의 공간이었다. 백인 다수가 오래전부터 그곳을 차지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인들은 그런 신성하게 여겨지던 유럽의 이미지가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노동 인구가 줄어들자 유럽 국가들은 중동과 중·남아시아에서 온 수백만 명의 무슬림 난민과 이민자들을 받아들였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들만큼 원활하게 동화되지 못했다. 그 무렵부터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오갔다. “파리는 더 이상 파리가 아니다.”
스미스는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날 MAGA가 주도하는 미국 우파는 민주주의 자체에도, 동맹 관계에도, NATO에도, 유럽 통합이라는 프로젝트에도 본질적으로 관심이 없다. 그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오직 ‘서구 문명’이다. 유럽이 무슬림 이민자들을 대규모로 추방하고, 기독교적 유산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하지 않는 한, 미국의 공화당이 유럽의 어떤 문제든 돕기 위해 선뜻 손을 내밀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인종과 신앙을 중심에 둔 ‘서구 문명 보호’가 미국 국가 안보의 핵심 과제가 되는 순간, 가장 큰 위협으로 떠오르는 것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미국과 서유럽으로 유입되는 이민이다. 그리고 국방 분석가 Rick Landgraf가 국방 전문 매체 War on the Rocks에서 지적했듯이, ‘미국 문화’, ‘‘도덕적 건강’, ‘전통적 가족관’을 지키는 일이 핵심적인 국가 안보 요건으로 제시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 안보전략 문서는 우연의 산물도, 몇몇 변두리 이념가들의 작품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행정부가 국내외에서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단서다.
https://blog.naver.com/asnever/224108343584
https://www.nytimes.com/2025/12/11/opinion/trump-europe-security-strategy.html
결국은 종교전쟁을 치르려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기도 합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9103735CL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