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보장한 통신의 자유, 지방의 한 복지법인 사무실에서 칼날 아래 무너졌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세 차례의 우편을 내용증명의 형태로 발송했습니다.
한 지방의 여성쉼터의 정확한 주소를 알 수 없었기에, 늘 그 쉼터를 운영하는 한 지방의 복지법인 앞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복지법인은 해당 지역에서 손꼽히는 종교단체가 운영하며, 지역 내 주요 복지시설 상당수를 위탁받아 관리·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체국 기록에는 앞선 두 차례 모두 ‘도달’이라고 찍혔습니다.
저는 그 기록만 믿고, 아내가 편지를 읽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5월 7일.
저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30분 만에 벌어진 일
내용증명은 우체국 기록상 ‘도달’ 처리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30분 뒤 ‘수취인 불명’ 도장이 찍혀 반송 처리되었습니다.
도달과 반송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제 눈앞에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장면.
봉투는 예리한 칼이나 가위로 찢겨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강제로 개봉된 흔적이 선명했습니다.

우연일 수 없는 정황
복지재단과 쉼터는 차로 30분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각,
① 도달 기록이 남고,
② 수취인 불명 처리로 반송되며,
③ 봉투는 칼로 찢겨 돌아왔습니다.
저는 우체국 직원과 함께 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집배원과의 통화, 카카오톡 기록까지 모두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우편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개입’이 있다는 것임을.
경찰의 답변, 그리고 법의 무력화
저는 곧바로 고소했습니다.
“제3자에 의한 사전 검열 가능성이 있다.”
이 점을 담당 수사팀장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경찰의 대답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 위험한 물건이 있을 수 있으니까…”
이 내용은 지금도 전화기 속에 녹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언제부터 대한민국은 헌법 위에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군림하는 나라가 되었습니까?
헌법은 명확히 말합니다.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형법도 규정합니다.
“봉함 우편물을 개봉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우편법도.
“누구든 봉함된 우편물을 개봉해서는 아니 된다.”
그럼에도 고소한지 두 달 반이 지나 경찰은, 봉투가 칼로 찢겨 돌아온 사건을 두고 단 한 마디로 끝냈습니다.
“고의가 아니었다.”
칼로 쑤셔 열어봐도 ‘실수’면 무죄라는 나라.
그 순간 저는 이 나라의 법치주의가 얼마나 가볍게 무너질 수 있는 지를 보았습니다.
사라진 두 통의 행방
여기서 더 큰 의문이 떠오릅니다.
세 번째 내용증명조차 칼에 찢겨 돌아왔다면,
앞선 두 통의 내용증명은 과연 제 아내에게 제대로 도착했을까요?
우체국 기록에는 ‘도달’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그 기록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가 열어보고, 차단했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저는 이제 의심합니다.
세 번 보낸 내용증명 중, 단 한 번도 아내의 손에 닿지 못했다는 것을.
저는 지금 묻습니다
칼에 찢겨 개봉된 내용증명이 “고의가 아니었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습니까?
앞선 두 건의 내용증명까지 모두 제3자의 손에 의해 가로막혔다면,
이것은 단순한 우편 사고가 아니라 조직적인 검열, 그리고 헌법적 권리의 침해 아닙니까?
이건 지방 호족시대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저는 지금, 검열의 그림자가 제 삶을 뒤덮고 있음을 느낍니다.
저는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칼에 찢겨 돌아온 한 장의 편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 속에는 법치주의가 무너진 자국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내용은 제가 그동안 글을 올린 글들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9032273CL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