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민주당은 20대 남성(이른바 '이대남')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들을 포섭하거나 설득할 수 있는 정책이나 메시지가 부족한 게 문제 아닌가요?
답변:
지금 상황에서 단순히 ‘정책이 부족하다’는 식의 접근으로 이대남 문제를 설명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정치 지형은 갈수록 말초적이고 지엽적인 이슈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어, 기존 방식으로 대응하기가 매우 애매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이재명은 청년 정책과 공약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고 자극적인 ‘여가부 폐지’ 같은 프레임에 밀려버렸습니다.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갈라놓는 방식은 원래 정상적인 정치가 지향할 방향이 아니지만, 지금은 그런 갈라치기식 담론이 하나의 정치 트렌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과거 보수는 반공, 지역주의, 권위주의 같은 언어로 결집했지만, 최근 이준석과 한동훈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전엔 정치인이면 서민 흉내라도 내는 게 기본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자신이 ‘다른 세상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계급적 간극을 오히려 소비하는 쪽으로 전환된 셈입니다. 이준석은 ‘잘난 나’의 서사를 앞세우고, 한동훈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나는 당신들과는 다르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흐름이 단순한 개인 마케팅을 넘어 정치의 본질 자체를 흐린다는 데 있습니다. 정치란 자본주의적 흐름을 조정하고 사회 갈등을 완화하며 재화를 분배하는 행위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준석류의 정치 담론은 오히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 강자생존이라는 말초적 질서를 그대로 드러내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말초적 질서 속에서 자신이 선두에 서 있다고 자임합니다.
이런 담론에 경도된 사람들은 기존 정치의 설득이나 공약에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은 ‘공동체를 위한 정치’보다는 ‘내가 남보다 나아 보이고 싶다’는 감정에 더 반응합니다. 경쟁 질서에 익숙한 이들이고,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지원받는 것 같다는 데 강한 반감을 가집니다. 문제는 이러한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정치 본연의 역할 자체가 무너진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 흐름에 맞춰 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정책을 더 내거나 메시지를 다듬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은 오히려 이 정치 흐름의 본질을 드러내고, 비판적으로 밀어내는 전략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커뮤니티 공간에서 ‘일베’라는 정체성이 공공연히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 되었듯이, 이준석류 정치도 점차 ‘대놓고 지지하기는 민망한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여성 복지는 받아들여지면서 왜 20대 남성 복지는 거부당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지점에서 차별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핵심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도화된 경쟁 체제로 진입하면서 누구나 생존이 어려운 구조가 되었고, 그 속에서 여성 정책만이 유독 부각되어 보이는 심리적 불균형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대남 세대는 학업, 군대, 취업이라는 좁은 경험 영역 속에서 차별을 체감했고, 성평등이나 여성 정책이 어떤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체감할 기회가 부족했습니다. 저 역시 도시에서만 자라왔다가, 결혼 후 시골에서 농사일을 도우면서야 예전의 ‘아들 중심’ 문화가 왜 나왔는지를 몸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경험의 폭이 달라야 인식의 폭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의 남성우위적 요소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반면, 그동안 참아왔던 구조적 불평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가부장제를 비판하면서도 결혼 대상자로는 여전히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의지할 수 있는 남자'를 찾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한 것도 그 예입니다.
도전적이고 경쟁적인 남성성이 한때 사회적 장점으로 작용했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성들이 느끼는 소외감도 커지고 있죠. 이번 내란 국면에서의 집회도 여성 친화적인 문화였고, 팬덤 문화를 닮은 방식이 남성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도 거의 모든 집회에 참여했지만, 만약 일반 참여자였다면 몇 번 참석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협동과 공조의 가치가 점점 중요해지는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생산력 자체가 평가의 기준이 되지 않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내란 국면에서 효능감을 경험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 것입니다. 여성들은 연대와 공조의 경험을 통해 정치 의식을 키웠지만, 이대남들은 여전히 광장 밖에서 이준석만 추앙하며 현실 정치는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그 격차를 어느 누구도 메워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세대가 ‘히키코모리’로 도태됐고, 사회는 다시 활력을 찾았지만 그들은 결국 남겨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모두가 이준석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준석은 사실 자신 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를 도구로 삼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착각일 수 있습니다.
이상은 아랫 링크글의 제가 달은 댓글을 chatGPT에게 정리 부탁한 내용입니다.... 참 좋은 세상이네요. 대충 지껄이면 알아서 보기 좋게 만들어 주다니. 뭐 세세하게 고칠 부분은 보입니다만.
민주당도 20대 구워 삶는 스킬은 늘릴 필요는 있습니다. : 클리앙
힘이 민주당에 있다면..
유권자로서 표를 주고 정당하게 요구하든지
당원으로서 직접 참여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든지
해야죠..
"내가 뭘 원하는지 몰라?"식의 태도를 넘어서
조롱과 비아냥에 쩌들어만 있으면
헌실이 변할까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984956CLIEN
/Vollago
온라인 범죄 및 혐오표현 강경 대응해서 그쪽 헤비업로더들 다 잡는 수 밖에 없습니다.
설득이 필요없는 집단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 사막에서 냉장고도 팔아야 능력이고
부산 선거판에서 승리하는 게 정치능력이니까요. 준석이 탓만 하다보면, 5년 뒤에는요?
저는 3년전에 준석이한테 당한 게 내란으로 이어졌다는 게 분하고,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게 분합니다.
Q: 왜 이대남은 내란에 동조하는 세력이 되었을까?
ChatGPT의 말:
"이대남(20대 남성)"을 두고 "내란에 동조하는 세력"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사용하신 데는, 아마도 최근의 정치 양극화, 젠더 갈등, 극우화 경향, 혹은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도전과 같은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에 대한 강한 감정적 표현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표현을 냉정히 분석적 시선으로 전환해 보면, 질문은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왜 일부 20대 남성들은 현 체제와 기존 질서에 대한 반감을 넘어, 파괴적 선택에 기꺼이 동조하려는 경향을 보이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정당 지지나 젠더 담론을 넘어서, 정체성·구조적 소외·미래에 대한 불안을 다루는 문제입니다.
✅ 1. 왜 이대남은 ‘체제에 반대’하는 감정을 갖게 되었는가?
요인 설명
공정성의 붕괴에 대한 좌절 조국 사태, 채용비리, 정규직 전환 논란 등을 통해 “공정은 위선”이라는 감정 확산
역차별 경험 또는 인식 군 복무 보상 부족, 성별할당제, 여성 우대 정책 등을 개인 손해로 체감
소통 단절과 무시당한 경험 진보 진영에서 “반페미니즘 = 혐오”로만 규정하며 이대남의 감정을 정치적으로 지워버림
고립된 생존 경쟁 속 박탈감 취업난, 연애·결혼·주거 포기 등 전방위적 생존의 실패 → 기존 체제에 대한 반감
커뮤니티 기반의 감정 연대 에펨코리아, 유튜브, 디시 등에서 감정과 서사를 공유하며 반정치적 공동체 강화
➡ 이들의 정체성은 “보수주의자”라기보다, **“기존 질서를 신뢰하지 않는 탈이념적 개인주의자”**에 가깝습니다.
✅ 2. '내란에 동조'라는 감정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내란’이라는 표현은 비유적이지만, 현실에서 나타나는 체제 전복적 행동 양상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현상 해석
선동적 정치 콘텐츠 열광 “대한민국 망했다”, “모두 다 갈아엎자” 식 극단주의 담론에 반응
합리적 토론보다 혐오와 공격 중심 성별, 이념, 지역 기반의 분노 유발 콘텐츠에 과잉 반응
투표를 통한 ‘체제 심판’ 시도 기존 기득권(정당, 언론, 학계, 여성단체 등)을 심판 대상으로 설정
온라인 폭력의 현실화 위험 익명 기반의 조롱, 비난이 제도 밖 정치행동으로 연결될 잠재성 존재
이는 ‘내란’이라는 물리적 행위가 아닌, ‘정서적 체제 이탈’과 ‘디지털 정치 불복종’의 양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 3. 이들은 왜 ‘극우’ 또는 ‘정치 혐오’로 빠졌는가?
기성 진보 정치가 이들의 불만을 악의적으로 규정함 (예: ‘혐오 발언’, ‘가부장적 반동’ 등)
현실적 문제 해결(군 복무 보상, 채용 기회 확대 등)은 외면한 채, 이념 싸움에 끼워넣음
그 결과, 이들은 극우 유튜브, 남성주의적 탈정치 커뮤니티에 정서적 안정을 찾기 시작
기존 정치가 “나의 분노와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한다”는 절망감이 체제에 대한 적대감으로 변질됨
✅ 4. 어떻게 이들을 다시 ‘시민적 대화’로 이끌 수 있는가?
접근 방향 설명
정치적 훈계가 아닌 공감적 경청 “너희는 틀렸다”가 아니라, “왜 그렇게 느끼게 되었는가”를 묻는 태도
젠더 갈등 아닌 경제 생존 프레임으로 전환 고용, 주거, 사회적 인정의 문제를 중심으로 재해석
진영 논리 대신 정책 중심 대화 제공 예: 병역 보상, 남성 건강, 청년 소득 정책 등 실질적 의제 중심
극단주의를 비판하되, 전체를 싸잡지 않기 ‘이대남 전체’를 부정하거나 조롱하면 분노를 강화하는 악순환
🧾 결론 요약
20대 남성 중 일부는 자신이 구조적 피해자임에도 정치적으로 무시당했다고 느끼며,
이로 인해 ‘체제를 지지하지 않는 정서적 탈국가화’ 경향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내란 세력’이라 비난하기보다는, 왜 체제 밖에 서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다시 안으로 끌어들일 정치의 언어가 필요합니다.
저는 chatGPT에게 물어본 것은 아니고.. 제 댓글들을 정리해 달라고 한 것이긴 한데요..
결국 챗지피티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요... 젠더갈등으로 인한 편향된 주장을 들어주라고 결론 내리지 않잖아요. 시민적 대화로 이끌라고 하지요.
일베/메갈의 언어가 생긴 나름의 아픔과 이유가 있더라도 일베/메갈의 언어를 수용할 수 없고, 아이가 편식을 한다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있다면, 원하는 음식만 주는 것이 답이 아니라 물건을 집어 던지는 것이 잘못된 행동을 알려 주는 것도 함께 해야지요.
뭐 그런 차원의 이야기고요. 자신들이 문제지점을 어느 정도 깨우쳐야 지피티가 말하는 시민적 대화의 장에 그들을 끌어올 수 있겠죠.
마침 어제 이준석의 언어폭력이 터진 시점이라 예를 들자면...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깨닫지 못하거나, 깨달아도 프레임 전환으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자들이 이준석 지지자들 중에 많잖아요.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시민적 대화로 이끌 수 있을까요.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선을 잘 그을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