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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행태는 이철우 지사의 말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다. 이 지사는 “세계 각국을 돌아봤을 때 선진국일수록 영웅들의 동상이 우후죽순 많이 서 있다”며 “그분들이 다 공만 있고 과가 없느냐? 공과가 다 있다. 그런데 공이 크고 과가 작으면 공을 위주로 그렇게 동상을 많이 세운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공이 크면 과는 덮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공과 중 무엇이 더 큰가를 평가할 기준이 없다.
해당 논리대로라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하루아침에 평가를 바꿔도 문제될 것이 없다. 기념관, 동상에 집착하는 것 역시 정치적 의도를 의심케 한다. 개인적 기억이 집단의 기억, 즉 역사가 되는 데는 사회적 의미를 매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기념관, 동상 등의 존재다.
1인 독재 체제의 북한, 역사적 인물을 신격화한 군국주의 일본에서 이러한 장치들을 정치에 잘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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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친일 행적
▷전우용 :
백선엽 씨 스스로가 자기가 간도특설대 활동했다는 걸 인정을 했어요.
백선엽의 창씨명이 시라카와 요시노리였거든요.
근데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누구냐면
윤봉길에 의해서 폭탄에 맞아죽은 일본인 장군이에요.
그때는 뭐 1931년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됐기 때문에 시라카와 장군이 이제 그 상해에서 폭탄에 맞아죽었다고 하는,
▶김어준 : 자기가 그 사람처럼 되고 싶은 거 아니에요.
◍류근 : 계승한 거죠.
중략
민중의 힘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이
정신 세탁으로 이어져
- 그래서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을사늑약 하기 전에 동학농민운동부터 정리했잖아요. 저는 4.3, 5.18 광주민주화운동, 동학농민운동 이 모든 것을 지금 다시 같이 평가를 절훼하고 폄훼하고 있는 이 상황도 이 민중의 힘에 대한 두려움이 저는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정부에서도.
- 그런데 그 무의식적 두려움 역시도 이 민중의, 우리 계속 얘기했던 여론이라든가 민중의 힘이라든가 그리고 집회의 힘이라는 것에도 두려움은 저는 분명히 있다고 보고 일본도 판단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일본이 판단한 것에 대한 경외심은 저는 있다고 봅니다.
반민족 행위에 대한 정신적 세탁 후
뉴라이트 사관을 심기위해
- 그렇기 때문에 이 역사 바꾸기라는 것이 과거에 대한 학습에 대한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서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이 교정이 없이는 그래서 한 번에 일종의 정신적 세탁이 없이는 소위 말해서 역사적 재규정, 지금 하고 있는 제대로 된 친일, 제대로 된 뉴라이트 사관이 자리 잡기 힘들다 생각해서 이런 것들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요.
▶김어준 :
제대로 친일하기 위해서?
▣강유정 : 그렇죠. 그러면 민족행위라는 것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이거를 저는 의도적 행위라고 생각을 합니다. 보훈부로 바꾼 행위부터 저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제 짐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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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일가 사학과 신군부 커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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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막식 당일 윤 대통령은 화환과 함께 강승규 사회수석을 보내 메시지를 전달했다. “6·25전쟁 당시 한·미 두 나라 정상의 동상은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의 표상”이라며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야말로 역사의 원동력이라 확신했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해 이 나라가 나아갈 비전과 전략을 마련한 선각자셨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한·미 두 전직 대통령을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 정치적 동반자로 여기는 모양새다. 정말 그럴까.
이승만·트루먼 동상이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은 알고 보면 진풍경이다.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한국전쟁 중에 여러 차례 정치파동을 만들었다. 1952년의 부산정치파동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하는 ‘발췌개헌안’ 통과가 핵심이었다. 본인의 집권 연장이 목표였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은 5월 25일 0시를 기해 임시수도 부산을 포함한 영남과 호남 지방에 잔여 공비 소탕을 명분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또 50여명의 국회의원을 국제공산당과 관련이 있다는 명분으로 연행했다. 이어 최종 8명을 구속했다.
당시 미국 트루먼 행정부는 방미 중이던 존 조지프 무초 대사를 한국으로 급히 귀환시키고, 5월 30일 계엄령의 조기 해제를 촉구하는 입장을 이승만에게 전달했다. 이승만은 미국이 내정에 간섭한다고 화를 냈다. 결국 미 국무부는 같은날 계엄권을 유엔군이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 당시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장군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빨리 회신하라고 지시했다. 31일 클라크 장군은 미 합참에 전문을 보내 이승만 정부를 대신할 과도정부를 수립할 방안을 검토한다. 1952년 이후 주요 국면마다 계속해서 나오는 미국의 ‘이승만 제거계획’의 시작이다.
트루먼 역시 이승만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6월 2일 이승만은 국회가 24시간 내에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국회를 해산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미 대사관 대리대사 라이트너는 트루먼이 이승만에게 발송한 친서에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트루먼의 승인을 받아 첨가했다. 결과적으로 클라크 장군이 1952년 7월 5일 ‘비상계획안’이란 이름으로 미 행정부에 보고한 이승만 제거계획은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1953년 이른바 ‘에버레디’ 계획 등을 준비하며 미국은 지속적으로 이승만 제거를 염두에 뒀다. 반공포로 석방을 비롯한 휴전문제가 엮인 1953년 이후 상황을 배제하더라도 트루먼과 이승만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에 가깝다. 윤 대통령이 말한 한미동맹의 표상이 상대국 지도자를 제거하는 작전까지 포함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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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애치슨 전 미국 국무장관은 1950년 1월 12일 미국 전국기자클럽(NPC)에서 발표한 ‘아시아의 위기’라는 연설에서 한반도의 역사를 바꾼 중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의 극동방위선을 알류샨 열도와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으로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애치슨 라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해당 방위선에 한국과 대만이 빠져 있었다.
이 때문에 애치슨 라인은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6.25 전쟁의 주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미국의 방위선에 한반도가 빠져있는 사실을 확인한 김일성이 이후 소련의 스탈린을 찾아가 설득해 남침을 주도했다는 이야기다. 미군이 없는 한국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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