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필건 ㅣ 전 교육부 사학혁신위원
2020-07-15
첫 육군 대장인 고 백선엽씨의 현충원 안장을 둘러싸고 그의 친일 경력이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 백선엽은 단군 이래 최대 사학비리로 불린 선인학원 사태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는 인물이다.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 31평이 1847만5천원에 분양된 1980년. 약 5700명의 학생을 정원 외로 부정입학 또는 편입시키고, 졸업장을 팔아 61억원을 받아 챙긴 사학이 있었다. 학교를 짓는다며 월남 피란민 판자촌을 철거해 원성을 샀고 확장을 이유로 중국인 공동묘지를 불도저로 밀어 외교 문제를 일으킨 전설의 사학.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총 14개, 학생 수만 3만6400여명에 이르던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사학.
백선엽의 ‘선’ 자와 동생 백인엽의 ‘인’ 자를 따서 만든 학교법인 선인학원이다.
당시 신문이 ‘인천의 무법자’로 부른 백인엽은 1981년 3월23일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건축법과 중기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는 검찰에 선처를 구하며 본인의 처와 대한변협 회장이 입회한 자리에서 전 재산 9억원과 선인학원 소유 26만평 등을 모두 자진 헌납하겠다는 양도헌납서를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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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8월, 문교부는 백인엽의 형인 백선엽을 선인학원 관선이사로 추가 선임한다. 동생이 사학비리를 저질러 물러난 학교에 형이 관선이사로 온 것이다.
선인학원 학교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백선엽 쪽은 주장해왔지만 사실은 달랐다. 2년 뒤엔 전두환의 처삼촌인 이규승을 정이사로 임명하면서 국가 헌납은 없던 일이 됐다. 신군부와 선인학원 쪽의 커넥션을 의심해볼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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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동생 백인엽은 ‘선인학원에 헌납한 재산은 강박에 의한 것’이었다며 반환 소송을 제기한다.
그즈음 대학 운동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호교회는 백씨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을 못이 박힌 각목과 쇠파이프 등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분노한 학생 3500명이 자퇴서를 쓰며 밤샘농성에 들어가고 인천시민 7만명이 정상화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등 선인학원 문제가 사회문제로 확대되자 문교부는 종합감사에 돌입하고 대검찰청은 수사에 착수했다.
학교 14개를 세울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선인학원은 결국 1994년 해산된다. 모친 이름의 초등학교는 폐교되고, 백선엽 백인엽의 호(號)로 교명을 지은 고등학교 2개 등 중등교육기관은 인천시 교육청 관할의 공립이 되고, 고등교육기관인 인천대는 시립을 거쳐 국립대가 됐다.
- 1948년 10월19일치 <동아일보> 기사는 선인학원 같은 비리사학의 기원을 보여준다. 학교재단 소유 토지는 정부 수립 직후 만들어진 농지개혁법과 1951년 제정된 문교재단 소유농지 특별보상법에 따라 농지개혁 대상에서 제외됐다. 선인학원처럼 돈벌이를 위한 교육기관이 태어난 계기다.
그전에 떵떵 거리던 정치인들의 기반이 사학이었죠
물론 지금도 떵떵 거리고 있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