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은건지, 요즘 제 지난 인생을 돌아보는 경우가 잦아지네요.
앞의 몇 개의 글에서 밝혔지만,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좋은 곳은 아니고, 그냥저냥 교육자로서 또 연구자로서 생활하기에 나쁘지는 않은 곳입니다. 아니, 곳이었습니다. 최근 학령인구 감소의 이슈로, 공대 내에서도 잘 나간다던 '전화기'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수년 전부터 빵꾸가 나기 시작했네요. 고등학교에 원서 받으러 다닌다는걸 말로만 들었지, 제가 그걸 해야할 것이라는 상상도 못했습니다만...
뭐, 속한 조직이 대학이던 기업이던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소속 기관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면 뭐든 해야지요. 입시 활동을 해야하는 것 자체에 불만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만(흠... 현 조직에 대한 불만이 이렇게 길어지면 안되는데요... 최적화된 삶에 대한 반성을 해야하는데요... 또 글이 뱀꼬리로 끝날까봐 벌써 걱정이 됩니다.) 실행부서인 학과에 기획도 하고 실행도 하고 책임도 지라고 하는 보직자들의 행태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목표는 100%를 채우는 것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원서를 많이 받아서 경쟁률을 높여야 해. 자~ 각자 학과에서 지원자 수를 높일 방법을 고안해서 보고해. 그리고 진행 상황도 매주 보고해. 그리고 결과 안 좋으면 폐과한다?!' 뭐 이런 식이지요. 저는 제 전공의 박사나 전문가지, 홍보나 입시 전문가가 아닌데 어떻게 뭘 하라는지 참... 권한도 안주고 책임을 지라고 하니 그것도 참 불합리하다는 생각만 들고요...
아무튼, 이직을 결심하게 됩니다. 나름 연구도 많이 했고, 논문도 적잖게 있으니 여기저기 지원해보기로 하고 지지난 학기부터 제 전공으로 나는 공고에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뭐 나이도 있고, 논문실적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다보니 주구장창 고배만 들이키고 있네요.
그러던 중, 학부 때 공부를 지지리도 안 했던 후배가 모교의 교수로 가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매우 친한 후배여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며 지난 수 년간의 후배 생활을 듣게되었습니다. 참 열심히 살았더군요. 유학 다녀와서 국립대로 갔다기에 만족하고 사는 줄 알았더니, 그 사이에 꽤 좋은 수도권 사립대로, 그리고 이번에 모교로 가게 되었더군요. 본인은 '모교로 가게 될 줄은 몰랐고, 그냥 딴것 안하고 논문만 열심히 쓰면 뭐가 되든 되겟지'라는 생각으로 논문만 줄창 썼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듣고는, 나는 지난 10년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되돌아보게 되었네요. 제목 그대로 '최적화된 삶'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열심히는 살았는데, 필요 이상의 것은 하지 않았지요. 재계약에 필요한 논문 수만 채우고, 연구과제에서 요구하는 논문 수만 채우면, 그 이상의 결과를 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0년이 아니라 그 전부터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았습니다.
대학에 갈 때도, 내 점수가 턱걸이인 대학과 학과를 골라서 지원했고 정말 턱걸이로 들어왔어요. 학부 때는 각 과목의 중간고사 점수를 확인하고 기말고사에 투자할 시간을 굳이 배분했고요. 목표도 A+은 아니었고, B+이나 A0 턱걸이 하는 정도로 설정했고, 대부분 그렇게 성적을 받았지요. 대학원도 제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연구실로 무난히 선택했고, 굳이 서울대나 카이스트 같은 타대학을 가는 모험은 하지도 않았어요. 물론, 유복하지 못한 집이어서 유학은 전혀 생각도 안(못?) 했고요. 생각해보면, 석사논문도 박사논문도 그냥 그 때 하던 연구들 모아서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처럼 내 평생 따라다니는 것이니 추가적인 연구를 수행해서 더 좋은 내용으로 쓰자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네요. 그래서 그런가 지도교수님도 'XX이는 할 때는 참 잘하는데, 평소에는 흐리멍텅해'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죠...
RPG에 비유하자면, 눈앞에 주어진 퀘스트만 클리어하고 그 보상만 챙기며 랩업을 했네요. 좋은 칼 찾겠다고 사냥을 다니지도 않았고, 전장같은 곳은 얼씬도 안한, 그냥저냥 평범한 랩업만 한 상태?! 레벨에 비해 아이템이 허접한 그런 캐릭이 아닌가 싶어요.
아마도 그 전에 썼던 '10분의 나태함, 3분의 고민, 5초의 지각, 그리고 1시간 15분 더하기 1시간...(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799832CLIEN)'이라는 글이 나온 것이, 이렇게 살아온 제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 10분 클량하고 출발하면 딱 맞춰 도착하겠다?! 뭐 이런? ㅎㅎ
현상유지를 위한 무던한 노력. 물론 '현상 유지', '무던함' 조차도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뭔가 판을 뒤집을 만한 투자를 전혀 하지 않은 결과로, 지금 이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데에까지 생각이 미치네요. 여전히 뭐가 답인지는 모르겠고(뭐든 제가 선택하면 그게 답이겠지만요), 판을 뒤집을만한 시간과 땀을 투자할만큼의 체력이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요 며칠 이런 생각이 들었네요.
간만에, 3시까지 '현상 유지'를 위한 '무던한 노력'을 하고는, 집에 가야할 시간에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너무 최적으로 살아왔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여기에 이런 글을 쓰고 싶었고 이제야 여유가 좀 있다고 판단되어 글을 쓰고 있네요. 그리고… 역시나 오늘도 용두는 아니었고 사미는 확실한 글을 끄적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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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일 마치고 갬성 터져서 쓴 글에 이렇게나 많은 호응이...
아무튼, 지금처럼 사는게 나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누구에게든 '현상 유지'는 그 자체로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자기 캐파에 따라서 더 하고 싶을 때 더 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다만 더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가늠해본적도 없이 당장의 이슈만 최소의 노력으로 해결하는데에만 집중했다는 것에 반성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체화되어, 더 하고 싶어도 더 할 수 없게 상황을 만들어버리곤 하지요. 예를 들어, 1주일 걸리는 일은 정확히 1주일 전에 시작하는 뭐 그런 상황 말이지요.
더 노력했어야 한다, 꿈이 커야한다 뭐 이런 개념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 것이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깊게는 모르지만, 대충 이런 느낌이 아닌가 합니다.
자본주의: 생산할 수 있는 만큼 생산해서 생산한 만큼 가져간다.
사회주의: 생산할 수 있는 만큼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
나란 놈: 필요한 만큼 생산해서 딱 고만큼만 가져간다.
이런게 아닐까 싶어요. ㅎㅎ
그리고, '비교'에 대한 말씀은, 제 표현이 부족했는지 오해가 조금 있으신 듯 하여...
각자 가진 기질도, 캐파도, 재능도 다른데 비교를 왜 합니까. 물론 경쟁이 없을 수는 없으니 비교 우위에 있고자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인정하지만, 남과 비교해서 내가 나으면 우쭐하고 못하면 괴로워하는 인생만큼 우울한 인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현재의 제 상황과 때마침 잘된 후배의 절묘한 타이밍 중첩으로부터 '너무 딱 맞춰 살아오지는 않았나. 이제는 조금 남게 해도 괜찮지 않은가. 조금 더 내 일에 순수하게 접근해볼 생각은 없는가' 뭐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중이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도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나서... (물론 그럴 일은 없지만) 지금의 제 상황이 갑자기 좋아져서, 그냥 살던대로 살아온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면 그게 제일 좋겠지요. ㅎㅎ
지금도 사실 사업결과보고서를 쓰면서 밤을 지새우고 있는데, 잉여력을 채우겠다고 교수님 글을 읽다
쓰고 있는 운영성과란, 교육결과물란을 쳐다보며, 한동안 멍 하고 있었네요.
저도 모든걸 최소로만 하자며 내가 너무 안일하게 했나 싶고 그러네요.
그냥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구나...합니다.
연구나 업무를 할 때 비교는 늘상 있는 일이지만
삶을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결말이 좋지 않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적화(?) 또는 최적화 수준에 조금 못치게 살아 왔거나 살아갈겁니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일이 닥치면 버티기 힘들어지죠
사회안전망이 그래서 중요하구요
딱 맞게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 재화/서비스의 희소성이 항상 골칫거리죠
좋은 글 한편 읽은 것 같네요
회사에서도 만날 야근하면서 공부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안하거든요.
나태하게 살고 있나 싶습니다.
/Vollago
그렇다고 경쟁에서 완전히 뒤쳐질 수도 업죠.
경쟁력에 올인하지 않으면서 그것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그 중간을 찾아야 하는데 말이죠
ㅜ.ㅠ
후회만큼 아픈건 없네요.
최적화된 정도만 하는것도 매우 힘들고요
열심히 했는데 최적화된 사람만큼도 성과가 안나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항상 최소의 노력으로 최소 효과를 내는것이 제 목표 입니다
효과는 커녕 부작용만 나거나 마이나스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최소의 효과만 나와도 감지덕지죠…
남들만큼 기준을 삼으면 내가 한없이 작아질 뿐입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최적화'를 기준으로 살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보다는 조금 더 했던 사람들이 나보다 멀리 앞서 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몇몇의 성실한 사람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서 다수의 피해자들이 잘 못 살아온게 되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이 각박한 세상에서 워크 & 라이프 밸런스를 맞출수 있으니까요. 물론 인생 가치관부분이라 자신이 생각하는게 답이죠 : )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으셔도 될 것같은데.. 교수님이시라니 제가볼땐 충분히 훌륭하신 분 같아서 큰 걱정은 안됩니다. 화이팅입니다!
조금더의 노력은 안하려하고 살았던것같아 약간 부끄럽네요. 그래도 인생을 후회하고싶지는 않습니다. 힘내세요.
저도 옵티멀한 선택을 평소에 선언하는 편이고 뭔가를 할 때 ROI를 따지는 편이었습니다.
이미 되돌이키기기엔 좀 늦은 감이 있어서 다른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이렇게 좋은 글을 만나서 정신이 버쩍납니다.
하루 시작이 좋습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님의 지난 글도 읽어봤는데 역시 깊이가 있더군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휴식의 의무를 효율적으로 방어하여 이용당하지 않는? 최적화된 군생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할 때 왜 아쉬움이 남었는지 이 감정에 대해 의문이 가시질 않았더랬죠.
누가 보기엔 뺀질이나 요령 피우는 얄미운 사람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고
뉴가 보기앤 겁나 군생활 잘 했다고 말해 주기도 하겠지만
마음 한 구석엔 편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하지만 군 장교나 하사관들의 노예질은 여전히 거부하고 싶네요.
노예질에 경험이 쌓이는 것과 나의 여유있는 휴식에 대한 의무 방어전은 과연 무엇이 더 내 삶에 도움이 됐을까요?
보통 사람은 최적화를 통해 에너지 소모를 최대한 줄이고,
그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려는 시도를 DNA가 피로감으로 막아버리죠.
그 피로감을 못느끼는 DNA를 가진 일부 사람들이 일중독이 되고,
생각보다 몇 안되는 그런 DNA를 가진 사람들만 성공하는 삶으로 포장되는게 현 세태이구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죠.
저도 직장인 20년차를 맞이하면서 많이 느끼는 부분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용꼬리보다 뱀머리로 만족합니다...
다른 이와의 비교는 대부분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다만 건전한 자극이 되어 더 열심히 살 원동력이 되면 좋겠지요
그냥 이렇게 살고 싶은데... 안될 꺼 같아서 걱정이 좀 됩니다.
50되니 그동안 편한 최적화된 삶을 살고있었네요
이제 10년 주기의 고난의 길을 가야할듯 한데
아직 그 에너지가 있을지 벌써 걱정이네요
회사에서 직군 및 담당 업무를 여기 저기 바꿔가면서 살아 오다 보니,
이제는 좀 최적화된(루틴화된) 삶을 살아 보고 싶습니다.
(물론 노력의 기준으로는 최적화도 아닌 최소 투입, 최대 아웃풋의 횡재수만 노리고 있습니다.. TT)
오늘 하루 나는 어떤지 돌아봅니다.
인구감소에 직격탄을 맞는 산업군이라..ㅠㅠ
생각이 정~~말 많습니다...ㅠㅠ
저는 3시까지 현상유지를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해야하는 일과 그 태도가 '적당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로 다 적을 수 없는 현실의 상황이 있을거고 또 그걸 누구보다 잘 아실거고요 뭣보다 잘 아시겠지만
남탓만 하는 것도 답은 아니고 내 탓을 하는 것부터 문제 해결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그게 꼭 그 원인 때문만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힘내시고요.
이 글을 친구단톡방에 공유하고,
또 이글을 두번 읽어봅니다.
직장생활, 가정생활, 내 삶에 비춰보고 생각해보게 해주셔셔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저마다 무게는 다르겠지만 남은 삶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저 하루하루 살았는데 여러생각이 듭니다
사학연금도 반토막 난 마당에 어차피 교수도 65세 만기가 끝나는 월급쟁이입니다.
20년 넘게 해오셨으니 연구에 대한 애착이 많은셨을 것고, 동기나 후배가 아이비리그 퍼머넌트잡 잡고, 유명저널에 에디터 되고 그럴수록 뒤숭숭할 수도 있는데요. 남은 20년 혹은 그 보다 짧은 시간 마무리하려면 운동하시면서 다른 취미를 가져보세요.
막상 그게 연구나 교육에 더 전념할 에너지를 줍니다. 원래 부교수-정교수 재임용 clear하고 번아웃 비슷하게 나이대도 그렇고 우울감이 오는 경우가 많더군요.
모교 갔다고 더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아시던 분도 학교 폐교되고, 그 전에 취미로 사진 찍으면서 에세이 내셨는데,
오히려 교수제자 만 30명 넘는 잘나갔던 한림원 정회원 명예교수님은 불러주는 데 없이 소일거리 하면서 지내시는데, 폐교 출신이 여러 곳에 강의 나가시면서 정년 없이 더 평온하게 잘 지내시더군요.
인생은 학교보다 더 길고, 지금 부터 학교 밖 시간을 준비하셔야 됩니다.
차범근 못되고, 손흥민 아버지로 남은 인생도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