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집과 거리가 꽤 있는 곳에 출장을 갔었습니다. 오후 4시부터 회의를 시작해서 6시에 마치고 즐거운 저녁식사(+술)을 하고는 출장지 인근에 살고 있는 후배 집에서 잠을 잤네요.
한참 자다가 눈을 떠보니 5시 50분. 집으로 가는 기차표를 검색해보니 6시 17분. 지금 갈까? 말까? 약간의 피곤함과 나태함이 얽히며 약 10분 동안 폰으로 인터넷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옷입고 바로 나왔어요. 비가 오는데 우산은 없고, 그냥 다시 들어가려고 보니 비번을 모르고... 거기서 약 3분 고민. 다시 들어갈 방법이 없어 그냥 큰 길로 나와서 택시를 타고는 '기사님, XX역인데 6시 17분 기차 탈 수 있을까요?'했더니 가능하다 하시네요.
6시 15분 역에 도착. 내리자마자 뛰었는데... 플랫폼에 발을 내딛자마자 눈 앞에 있던 문이 '푸쉬식~'하며 문이 닫히네요. 다시 열어줄까 싶어 기관사든 누구든 보라고 손을 크게 흔들었는데 야속하게 기차는 출발해버렸습니다. 5초만 더 일찍 왔어도....
다음 기차를 검색해보니, 7시 42분... 무려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나' 이외의 곳에서 원인을 찾기 시작했어요. 아까 그 주황불에 엑셀 좀 밟아주셨으면 기차 탔을텐데... 비만 안 왔어도 문 앞에서 들어갈까 올라갈까 고민 안 했을텐데... 그래도 그렇게 막 되먹은 놈은 아니어서,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애초에 10분의 나태함이 이 결과를 만들었다는 걸 인정하게 됩니다.
딱 오늘의 '그 5초' 부족하게 한 '그 10분'의 나태함이 아니었더라면 9시에 집에 도착했을텐데, 기차 내려서 집에 오는 길도 출근시간에 맞물려서 평소보다 1시간이 더 걸렸고 결국 11시 반에 집에 도착했네요.
'난 항상이랬지... 막판에 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초기의 호기로운 여유부림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상황이 지연되었던가...'
평소에도 알고 있던 문제점이 이렇게나 짧은 시간에 이렇게 극명하게 드러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스스로 너무 좋은 교훈거리를 만들어버렸네요. '지금 당장'을 못해서 '내일'로 일을 미루었던 수 많은 일들. '여유로울 것이라 예상되었던 그 내일'에 다른 급한 일이 생기면서, 어제 일이 또 하루 밀리던 상황.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대~~충' 마무리해버렸던 것들... 제 삶이 여유롭지 못한 이유는, 진짜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괜한 여유부리다 시간에 쫓기게 되는 것이구나하는 걸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나이는 시간이 흘러 저절로 먹게 되는게 아니고, 이런 사건들을 통해 과거의 나에 대한 성찰과, 지금의 나에 대한 직시, 그리고 그것들을 통한 미래의 나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철이 들고 나이에 맞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꼴랑 2시간 30분으로 철이 조금 더 들었다고 하면 이득인걸까요? ㅎㅎ
쓰디 쓰게 배웠던, 눈 앞에서 사라지는,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일종의 기회들에 대한 타이밍의 경각심이 새삼 생각나네요.
이런 건 그동안 아무리 들어온 잔소리 조언에도 이해할 수 없고 경험에 녹여야 먹을 수 있는 약들 중 하나더라구요.
이런 경험을 통해 일상 속에서 생활 패턴이 아주 조금만 변해도 호흡 하듯 자연스럽게 다음에는 실수를 안하게 되더군요.
(그 조금의 변화라는 게 참 어려워서 아직도 대충 비스무리하게 살곤 합니다만)
알맞게 생긴 면역이 오래 가시고 다음에 더 좋은 타이밍에 더 좋은 기회를 잡게 되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가끔 '어? 이거 지금 안하면 내일 분명 후회할텐데' 라는 생각이 번뜩 들지만
여러가지 이유와 핑계로 뭉게고 있을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어떤 일은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밀려 올때가 있어요.
그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일부터 마무리 합니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 '아.. 어제(그때) 해서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을 얻죠.
이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이라는게
곰곰히 생각해보니 과거에 늦거나, 안했거나, 못했거나, 놓쳤거나
하는 일들의 아쉬움과 후회 또는 실망의 경험들이 어떤 기분의 형태로 남아있는것 같아요.
훌륭한 판단은 경험에서 비롯되며
경험은 그릇된 판단에서 얻어진다는 말처럼
오늘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으셨으니 그것이 모여 자신을 좋은 길로 이끌어 줄겁니다.
저한테는 계몽주의 성격의 글 입니다!
느끼는 게 많네요~
그래도 남은 삶은 5초 덕분에 더 나은 모습되실거라 생각됩니다.
소중한 경험 공유 감사합니다.
저도 항상 닥치면 서두르는 편이라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ㅎㅎ
기억의 데이터는 손실이 있기 때문에 누적이라고 보긴 힘들고,
대신 이런 기억에 의한 뇌리 속에 남아 습관을 조금씩 바꾸죠.
말씀하신대로 철이 드는 거죠 ㅎㅎ
나무 자괴감 느끼지 마시고 나아가는 나에게 감사하고 살아봅시다 ㅎㅎ
그 경험에서 성찰과 반성을 이끌어 낼 수 있으신 것이 부럽습니다.
저는 아직도 똑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네요...
전 뭐든지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타입입니다. 단적인 예로 처음 가보는 해외여행지도 도착해서 보면 늘 몇번 와본 듯합니다.^^ 약속시간에 늦은 기억도 거의 없고 조금이라도 미리 출발하고 미리 준비해놔서 나중에 여유를 찾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찾게 되는 여유는 이상하게도 그리 달콤하지도 한가롭지도 못하더라구.
혹시나 나중에 결국 번잡해지고, 시간도 많이 걸리게 됐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에 부렸던 10분이 여유가 더 달콤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가슴에 와 닿는 글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