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생존자라 생각합니다.
워낙에 좀 우울한 종자라 지금도 툭하면 기분이 심하게 가라앉아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제 삶에서 가장 밝은 때인 것 같습니다. 번아웃 이야기가 하루에 하나 이상은 꼭 올라오더군요.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제 생존기입니다.
저는 서울에 있는 회사에 다녔고, 당연히 박봉이었습니다. 업무량이 다른 직원들보다 많아 늦었죠. 또 때맞춰 외부 사람들 만나서 술도 사줘야 하고, 직원들(초짜 관리자였습니다) 밥도 먹여야 해서, 야근 아니면 술이었죠. 박봉에 매일 야근 혹은 술자리. 집에는 늘 아이들 잘 때 (행여 깰까) 몰래 들어와서 아이들 잘 때 (행여 깰까) 몰래 나갔습니다.
이 와중에 집안 문제까지 겹쳤습니다. 저도 저대로 지치고, 아내도 아내대로 지치고(우울증약을 복용했습니다). 수입은 적고 비전은 보이지 않았죠. 억지로 회사에 더 붙어 있어 봐야 그나마도 몇 년 남지 않은 것 같았고요.
출근길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면 뒤에서 누가 죽지 않을 만큼만 칼로 찔러줬으면, 생각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이러다가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타의든 자의든) 하는 생각도 많았습니다. 아내도 힘들어서, 당시 17층 아파트의 17층에 살았는데, 아내는 18층에 올라가봤다 하더군요.
한 1년 정도 시골시골 타령하면서 살다가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살던 집을 팔고 대출금 갚고 남은 돈 7000으로 바닷가 도시에 작은 아파트 전세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은 7살, 5살. 그 나이 때가 애들 키우면서 가장 돈이 안 드는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랬고요. 지방 도시라서 학교 병설유치원도 바로 빡!
“살아보지 않은 곳에서,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 속에서, 해보지 않은 일을 하며” 사는 게 목표였습니다. 농사를 짓고 싶었는데 그것도 돈이 많아야 하더라고요. 세탁편의점, 택배, 분식집, 마트 점원 등 뭐든 상관은 없었습니다. 아무 일이나 하려고 했죠. 그런데 일단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일단 해당 분야 프리랜서 일을 했습니다. 당연히 그 박봉보다 못한 수입을 벌었습니다. 일주일에 현금 10만 원을 찾고, 그 안에서 모든 생활을 해결했습니다. 아내는 학습지 교사 일을 했지만, 스트레스가 심해 1년을 채 못했습니다.
이듬해는 좀 나아졌습니다. 프리랜서 일로 예전의 그 박봉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제주로 이사했습니다. 아이들은 초1, 6살. 먼저 연세 700짜리 집에 들어갔고, 전세금은 그다음 해에, 소송 끝에, 간신히, 그것도 전액도 아니고, 받았습니다(이 사연만으로도 책 한 권 나옵니다).
심리적 거리감이 컸는지 프리랜서 일이 뚝 떨어졌습니다. 밭일, 노가다 골고루 다녔습니다. 동네 인심 좀 얻었습니다. 키도 작고 몸도 가늘어 누가 봐도 힘쓸 상은 아니지만, 밭일이든 노가다든 사실 체력이 그렇게 결정적인 건 아닙디다. 일머리와 성실성이 중요하죠.
이듬해에 또 큰 빚을 져(까먹은 것도 좀 있어서) 근처 동네에 1.1억짜리 집을 샀습니다. 동네 청년회에도 가입했습니다. 그래야 밭일도 구하고 노가다 일도 구하니까요. 미장이든 타일이든 돌쟁이든 기술을 배워볼까도 했고, 청소차나 분뇨차 운전 쪽도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동네 사람 소개로 어느 회사 시설관리원으로 취직했습니다. 막 바쁜 일이 아니라서 프리랜서 일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청년회에서 총무, 부회장 거쳐서 지금은 홍보이사입니다. 마을 뭐시기뭐시기 운영위원이기도 합니다. 텃세?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수입? 전보다 훨씬 좋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중3, 중1 들어갑니다.
더 일찍 회사를 그만두고 더 일찍 제주에 오지 않은 게 아쉽습니다. 중간에 다른 도시 들르지 말걸 하는 생각도 합니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때 왔다면 더 많이 놀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입니다. 이제 저랑 안 놀아주니까요.
“지금보다 나빠지기야 하겠어?”
회사를 그만두고 지방으로 갈 때, 제주에 올 때, 저도 아내도 딱히 대책은 없었습니다. 재산도 없었고, 반대도 많았죠. “지금보다 나빠지기야 하겠어?” 하나만 생각했습니다.
10년 뒤엔 뭐 할래? 20년 뒤엔 어떻게 하려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차피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하는 일을 해도 10년 뒤, 20년 뒤는 막막합니다.
번아웃에 빠진 사람도 완전히 다른 환경에 데려다 놓으면 또 쌩쌩해집니다. 가장 큰 조건 하나가 바뀌었기 때문이죠. 어쩌면 월급을 덜 받고 몸이 더 힘들어도 나아질 수 있습니다. 다른 환경에 있으니까요.
인생, 의외로 별일 안 생깁디다.
의지만 있으면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습니다. 대단한 의지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상상력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
힘들 때 방통대 청소년교육과 공부하면서 심리학 책을 많이 읽은 아내와 자주 대화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
긍정적인 생각을 위한 등대가 되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가족의 힘이 컸네요.
행복하세요.
저도 현재 견딜만한 지옥이였던 회사서 탈출한지
한달정도 되었네요
초1 초4 자녀둘과 최저시급아래로 콜센터 재택업무하는 와이프가
현재 가장입니다^^;
먼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박물관 및 여행 무한이죠^^
12년 다녀봐야 퇴직금 얼마 안되더군요
급한 빚해결하고 이래저래 재취업을 알아보곤 있으나..
했던일을 다시 한다는건 애써 탈출한 지옥에서 비웃을거 같아..
회의적이었어요
푸념이 길었네요~
의지만 있다면 산입에 거미줄 안친다!
39살 백수 아빠로써 부럽고 멋지시고 훌륭하십니다!
기운 받고 갑니다요!
P.S: 얼마전에 지난주 제주 2박3일 다녀왔답니다^^
새옹지마라고 좋은 기회가 올겁니다. 가족들과 많은 시간 지내시구요.
힘내세요~
/Vollago
; 뭔가 위안이 되네요^^
좋은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책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중한 경험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할께요~
가족분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좋은 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용기와 추진력을 배우고 싶습니다!
타성에 젖어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하진 않았는지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이네요.
본글님도 댓글님도, 평안과 행복을 기원드립니다~
갈수록 타협하는 능력?! 만 늘어가네요.
그것도 쉽지 않더라구요 ^^;;;
하나밖에 없는 집 날리면서 빚 정리하고나니 그래도 홀가분합니다. 허허허허~~~
같은 생존자로서 선생님 인생의 건투를 빕니다.
생략된 내용도 풀어주신다면 그 속에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애환이 닿아있어 더 공감되고 위안이 될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두가 토닥토닥할겁니다. .
자신이 속한 울타리를 벗어 나기가 쉽지 않죠~!! 앞으로 복 된 일들만 가득하길 기원해요^^
욕심을 버리고 행복하게 살면 어떨까요
어디서든 죽으란 법은 없고 산입에 거미줄 치겠냐는 생각으로 가는데
하다보면 잘되겠죠 ^^
평온을 찾으신게 부럽네요. 저도 언젠가 평온해지길 바랍니다.
화이팅 입니다.
님 글을 읽고 더욱 힘이 나네요.
인생 별거 아니라는데 격하게 동의합니다~
이러구러 살아집디다~
멋진 제주도 인생 응원합니다!
본전 생각 버리는 게 좀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이걸 배웠는데, 내가 이런 일을 했는데, 내가 이런 사람들하고 친한데,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얼만데, 같은 생각 버리고 그냥 잡부 1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시설관리원인데 사실 가장 직급 낮은 잡부 노릇입니다. 식구들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대접을 받죠.
사람은 돈을 벌 때 하는 일이 아니라 쉴 때 하는 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판검사 의사로 일하며 돈을 벌어도 쉴 떄 룸싸롱이나 다니면, 그 사람은 룸싸롱 다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거칠고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일을 해도 쉴 때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은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저 사람 누구야?"라고 할 때 직업으로 답합니다. "판사야/검사야/변호사야/의사야/사장이야/연봉이 얼마야" 그것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격지심이겠지만, 직업이 아니라 휴식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옳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부모와 건강한 정서적 관계를 유지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해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힘든 일을 해도 부모와 즐겁게 마주 보며 웃을 수 있습니다.
수워리정님의 오늘 글들로 인해, 그간 선택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불안함과 두려움에서 조금 벗어나, 오늘 저녁에 와이프와 진솔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경험담과 후기 부탁드립니다.
위안이 되네요.
저는 이민생활을 하면서 배웠거든요.
한국에서는 체면때문에 자존심때문에 꺼리던일들도 마다않고 뛰어들어 일해보니
건강하고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것을....
결국 남들 시선 신경쓰고 남들하는거 다 따라하려고하지않으면 소소한 본인의 행복을 찾을수 있다는것을 말이죠...
저도 우울감이 굉장히 많아서, 작은 스트레스만 받아도 몇일 / 몇주를 온통 그 스트레스로 몸살을 앓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힘든길을 선택하셨고, 멋지게 이겨내셔서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잘 살아 봐야죠.
저도 글쓴이님 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싶은데 문제는 그렇게 하면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고
어쨌든 지금 월급이 들어오니까 라는 생각때문에 시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번아웃과 함께 브레인 포그 현상도 겪었을 텐데....고생하셨습니다.
마음의 큰 울림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용기도 얻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응원하고 또 글 감사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꽤 고생했었는데, 환경 변화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말 잘 통하는, 잘 들어주는 배우자가 정말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전 아직 환경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어요..
응원합니다. ^^
이게 굉장히 용기있는 판단입니다. 훌륭하십니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발코니 확장까지 되어 있어서, 생각보다 여기서 조금만 힘쓰면 될건데... 였습니다.
정말 자다가 일어나서 발을 걸칠려고 하는 저 보고 제 스스로 경악해서 그날 제 뺨을 스스로 정말 피가 나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철썩철썩 때렸어요.
지금은 저도 일단 회사 때려치고 좋아졌습니다.
3주밖에 안되었는데, 놀랄만큼 좋아지고 있습니다.
거주지를 옮기거나 그러진 않을것 같은데, 여튼...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을거란 생각으로 저 역시도 하루하루 지내고 있습니다.
살아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또한 잘 살아가겠습니다. 힘냅시다~!
저도 비슷한 일(시설관리)을하고있습니다. ㅎ.
단순한 글 한줄이 엄청 와 닿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행복하시길 빌게요~!!
아무튼 살 길은 있더라 구요... 화이팅 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그 직업 관두고 생판 다른 직업으로 갈아탄 후라..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잘 풀리게 되었습니다.
욕심 조금 버리는게 왜그리 어렵나..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누군가 그걸 알려줬지만.. 관둔다는 두려움이 너무 컸던겄같네요.
님의 글을 200% 공감합니다.
올해부터 잘 될거라고 생각하고 살려고 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ㅠㅠㅠㅜ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가 굉장히 인상에 남네요.
'Failure of imagination' 이란 말이 있는데 (https://en.wikipedia.org/wiki/Failure_of_imagination) 상상력이야 말로 삶의 막다른 길에서 다른 기회의 문들을 보고 믿게 해줄 수 있는 근원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