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라는 말이 있죠.
그런 요지로 글을 (저 자신을 위해) 써보려고 합니다.
며칠전 새벽 두시쯤, 잠이 들어가는 여자친구 옆에서 잠이 들기 전, 서서히 가슴이 뛰고 공황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내 주변은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며, 내 자신과 내 주변이 서로 분리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즉시 신경안정제를 두알 입에 넣고 왼쪽 손바닥에 오른쪽 엄지를 문지르며 감각에 집중했더니
다행히 완전한 비현실감으로 치닫기 전에 잠이 들었고, 오전 8시쯤 눈이 떠지더군요.
신경안정제 두알을 먹었는데 오전 8시에 일어났다 - 이는 전날밤 뇌에 과다한 양의 신경활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겠죠.
위 영상은 일명 "히치콕 줌"이라고 불리는 Dolly Zoom이라는 촬영기법인데,
저의 경우 비현실감 에피소드에서 느껴지는 원근감의 왜곡과 거의 100% 동일합니다.
청각적 효과는 이명세씨가 감독한 영화 M(강동원 주연)에 나온 선풍기씬과 상당히 유사한데, 유투브에서 영상을 찾을 수가 없네요.
비현실감은 공황상태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인데,
무의식에 불안이 쌓이면 그것이 감각을 장악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불안이라는 단어는 너무 광범위 해서, 적대감이라고 표현하는게 제 체감상 더 와닿네요.
제 경험상 오른쪽 손가락으로 왼쪽 손바닥을 문지르면 양쪽 다 촉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극도로 무뎌집니다.
한동안 캐나다와 한국이라는 두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축적되어왔었고
일주일 전 중요한 시험으로부터 해방되니 학업스트레스로 가려졌던 두려움이 수면 위로 느껴지더군요.
그 와중에 최근 사귀게 된 외국인 여자친구가 캐나다로의 동화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작용하여
적대감과 두려움이 비현실감의 트리거가 된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어떤 식으로 경험을 전달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처음 경험했던 비현실감 에피소드 동안 제 손으로 만들었던 녀석 사진을 먼저 올립니다.

제 손에서 이 녀석이 만들어지는 동안,
저는 처음 비현실감을 겪었습니다.
학교에서 우연히 만나 가볍게 알게 된 사람과 맥주 한잔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순간 그가 "악마" 이외엔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에게 적대적이고 위험한 존재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황이 너무나 이상하고 무서워서 술값을 정신없이 계산하고 혼자 사는 집으로 뛰쳐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방안에 들어와서 침대에 누웠는데, 그 공포가 전혀 사라지질 않더군요.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바늘 소리가 갑자기 커지고 시야가 히치콕의 줌처럼 원근감이 왜곡되었죠.
난생 처음 겪는 이상한 경험으로 인해 공포에 휩싸여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하룻밤 응급실에서 머무른 뒤 밍밍한 병원밥을 먹고 의사들과 면담을 했습니다.
결론은 공황증과 비현실감 에피소드.
면담 후 집에 오니 그 또한 오묘하더군요.
위험하게 느껴졌던 내 방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 방이었으니까요.
묘한 사실은
마치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이 사건과 제 회복시기가 겹쳐졌다는 겁니다.
회복기라고 하니까, 뭔가 부연설명을 달아야겠는데 그러자면 너무 길어져서 이전에 썼던 글을 링크하겠습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5774853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비현실감 에피소드를 겪기 이전인지 이후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맘때쯤 어머니와 전화하며 "엄마, 나 이제 머리가 수면위로 올라온 것 같아"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말을 듣고 어머니가 엉엉 우셨던게 기억이 나네요.
학교를 휴학할때 어머니께서 "앞으로 10년을 내다본다면, 너는 지금과 확실히 다른 네 모습을 볼거라고, 난 단언할 수 있어." 라는 말을 하셨는데,
정말로 머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을때가 거의 10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비현실감은 "인생의 전환기에 발생하는 불안"에서 비롯된 "두려움의 감각화" 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도 중요한 전환기를 지나며 마주쳐야만 하는 불안감을 살아내고 있다고 믿습니다.

줄 끼우는 구멍이 삐뚤어졌네요 ㅎㅎ 만들다가도 윽, 하고 숨이 컥 막힐때마다 중간에 집에 가야만 했어서, 작업실 조교에게 신세 많이 졌었던... 그래도 만들다만 나무쪼가리들을 갖고 학기를 마치고 싶진 않아서 정신줄 부어잡았습니다!
이 글의 목적이 뭘까...
고민하다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나를 위해서. 입니다.
아무리 수정을 해봐도 위에 링크했던 것과 달리, 저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닌 것 같네요.
사실 링크한 글을 쓰고 제자신이 참 이기적이고 오만했다는 생각을 쭉 해왔습니다.
저는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주신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병을 맞서싸울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었던 가족이 있었습니다.
클리앙에 올라온 한 댓글을 읽으면서 어머니 하나만으로도 복이 넘쳐났던
내 경험을 말하면서 누군가에게 희망을 기원한다는 자체가 오만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냥, 이렇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지난 일주일간 진이 빠져서 생산적으로 보낸 시간이 하루에 채 몇시간 되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지극히 개인적인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마 정신적 고통이야말로 누군가에게 도움받기 힘든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잖아요?ㅠㅠ 저는 마치 독방 감옥에 갇힌 것처럼 홀로 멀리 떨어져있는것만 같은 생각이 많이 들곤 하거든요...
마지막 말씀이 저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해요. 언젠가 또 댓글로 소통할 수 있길 빌어봅니다 ^^ 좋은하루 되세요!
어릴 때는 꽤 자주 겪었고, 나이 들면서 조금씩 줄어들다가 마지막 경험이 아마 30대 초반, 결혼 직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밤에 잠을 자다가, 길을 걷다가, 책을 읽거나 밥을 먹다가... 즉, 어떤 상황에서든 아무런 전조 증상없이 겪는 느낌이었습니다.
갑자기 주변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눈 앞의 사물이 도저히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이 멀게 보이고, 심지어 내 손을 봐도 저게 얼마나 멀리 있는지 감이 안 올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면서 주변 모든 상황이 무섭습니다. 그럴 땐 아무 것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그런 상황이 오면 스스로 이건 착각이고 현실이 아니라고 타이르곤 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해만 떨어지면 저를 혼내지도 못하셨습니다. 그렇게 극한 감정적 변화를 겪은 날은 어김없이 자다 말고 그런 증상을 겪었으니까요.
어릴 적에는 증상이 심해서 한참 발작 비슷한 걸 하는 동안의 일은 아예 기억도 못하고 서서히 증상이 나아질 때부터 기억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럴 땐 어김없이 어머니께서 제 몸을 주무르고 땀을 닦아주고 계셨었죠.
그게 공황장애와 같은 증상의 일종이라는 걸 이곳 게시판에 쓰신 다른 분의 글을 보고 알았습니다.
워낙 어릴 적부터 그런 증상이 있었으니까, 내가 심약해서 그렇거나 남들도 그런 줄로 알았거든요.
쓰신 글을 읽으면서 첫번째 영상을 보니 제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어서 길게 댓글 남깁니다.
저는 그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지도 모르고 삼십여년 가까이 고생을 했습니다만, Poetic_Announcement님께서는 스스로 증상에 대해 알고 계시니 잘 이겨내시리라 생각합니다.^^
건강하세요~~~
소중한 경험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간 휴식기를 가지느라 정성어린 글에 답글이 늦었네요.
노랑 잠수함님의 경험을 읽으니
경험들을 공유하는 것이 그 자체로 얼마나 이로운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비슷한 경험을 겪을 때 자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각자마다 얼마나 다양한가를 또한번 느끼게 됩니다.
제가 듣기로는 정도 차이만 있지 제가 상담했던 의사를 포함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경험들을 가끔씩 겪으며 산다고 합니다.
노랑잠수함님은 마지막 경험 이후로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신것 같아서 참 다행입니다.
저에게도 위로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위에 썼던 것처럼 지금은 그런 증상이 전혀 없습니다. 왜 이런 증상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왜 사라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위에 제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원글 쓰신 회원님의 글처럼 이런 경험담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달구용사님께서도 혹시 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상담이라도 받아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사실 너무 어려서부터 겪었던지라 문제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갔지만, 참 힘들었거든요.
이전글까지 모두 위로가 되었습니다.
2년 전 어머니의 죽음 후 심하게 불안, 공황이 왔다가 일상이 바빠서 금방 회복되나 싶었는데 작년부터 일을 줄이고 코로나 등으로 한가해지며 일년간 고군분투 중입니다. 두 달 전부터 서서히 약을 줄이기를 하는데 쉽지 않네요. 오늘밤도 가슴이 답답해 검색하다 글을 보게되었습니다. 저도 의지를 갖고 잘 이겨내 보겠습니다.
말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이 경험을 겪으면서 코로나 시대가
보이지 않게 삶을 서서히 압박한다는 점에서 공황증세를 불러오기 딱 좋은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다른 어려움과 다르게
일상 생활에서 마치 점조직처럼 각자가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고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계가족의 죽음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저도 불안과 공황, 아니면 그 이상으로 괴로운 상황에 빠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이 위로가 되셨다는 말씀에 저도 많은 위로가 되네요.
오늘 아침엔 어젯밤보다 산뜻한 기분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