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졸림주의 오타주의 수정주의
펌글을 읽고 너무 놀라서 쓰는 글입니다. 행여 저 글 읽고 진짜 그렇게 길러서 데리고 오면... 그 선생님 누가 될진 몰라도 완전 불똥 튄 격이 돼버리거든요. 제발 젊은 부모님들. 저 글에 끄덕일 거면 제 글도 읽고 중립적으로 판단해주세요.
1. 예의바른것보다 절대적으로 중요한건
자기 할말을 할 줄 아는것이예요
ㅡ 0살 아기들도 본능적으로 제가 바라는 바를 말할 줄 압니다. 쿠잉과 울음으로요. 아이들은 원래 자기주장을 할 줄 알아요. 오히려 이를 사회화된 표현으로 바꿔 주는 게 부모 역할이에요. 발동동 구르며 우는 것 대신 맘마라고 말하며 손벌려 보는 것, 장난감 사달라고 드러눕는 대신 조율하는 것 모두 아이들의 정서와 사고의 폭을 늘려갑니다. 이 과정에서 ㅡ 예시에 나오든이 ㅡ 자연스레 예의범절이 들어가게 됩니다.
ㅡ 아이들의 성장발달 지표는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더 우월하거나 절대적이거나 반대급부 적이지 않습니다. 최근 연구결과는 발달지표들끼리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에 오히려 골고루 발달 시켜야 한다고 해요. (직업교육 말고 중등 이전의 초기교육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특히 아직 아이들의 재능이 완벽히 발굴되기 어려운 초기교육에서는 모든 발달영역의 고른 성장이 중요해요. 고로 예의바름과 연관된 사회성과 자기조절, 자기 할 말을 하기위한 언어능력 및 주체성 모두 중요하죠. 특히 아직 자기중심적 사고를 주로 하는 아이들이 곧 나아갈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타자를 조망할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라면요.
2. 그리고 이의 출발은
자기부모한테 할말 하느냐..이겁니다.
ㅡ 자기할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은 주체성을 언어로 적극적으로 표현함을 의미하는 듯 하네요. 그런데 주체적 사고능력이건 언어능력이건 적극성이건 제 부모에게 할말 다 하게 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의 성장발달 과정을 보면요. 주로 만 2세 때부터 적극성과 주체성이 모든 영역에서 드러나죠. (괜히 미운 네 살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배변훈련 및 일상생활 능력 ㅡ 자조능력의 향상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의존하던 많은 기능들을 스스로 하게 되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기능에 능동적으로 도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모에게 주체적으로 자신이 주도하겠노라 주장하죠.
즉, 자기부모에게 할 말 다해야 남들에게 할 말 다하는 게 아닙니다.
자조능력이 충분히 길러져야 부모와 남들에게 할 말 다하는 겁니다.
(실제로 부모에게 온갖 말 다하면서 남들에겐 아무말 못하는 어른들 대다수가 여러가지 면에서 자조능력이 많이 결여돼있죠.)
그리고 여기까지가 진정한 주체성 기르기 프로젝트 1단계죠.
3. 즉 집에서 시키는 가정교육이라는게 바로 이런거죠
감히 부모한테 눈 똑바로 뜨고 할말 다하냐고.. 야단치고 다그칠게 아니라
부모라도 겁내지 않고 자기할말 할수있는 그 자체를 볼 줄 알아야 해요.
ㅡ 일단 "눈 똑바로 뜨고 할말 다하냐고"라는 문장의 의미를 분명히 해야겠죠. 부모들은 언제 어떤 뜻으로 저 말을 쓸까요? 물론 미성숙한 부모가 아이의 주체성 성장과 그에 따른 도전에 대해 위협을 느낄 때 이를 권위로 억누르려는 뜻으로 저 문장을 쓰기도 하겠죠. 하지만 평범한 부모가 아이의 올바르지 못한 대화 태도와 적절치 못한 표현을 직설적으로 지적할 때 나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아주 성숙한 부모가 아닌 이상, 내 아이가 굉장히 무례한 표현과 태도를 보이면 얼른 고쳐야겠단 본능이 울컥 나오기도 하는데요. 더욱 나은 대응방법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부모는 그렇게까지 성숙해있긴 어려워요. 특히 요즘은 하나나 둘만 낳잖아요.
ㅡ 그렇다고 야단치고 다그치는 것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부모에게 눈 똑바로 뜨고 할말 다하지 않아도 충분히 대화할 수 있으니 그런 태도와 표현은 지양하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거죠. 부모라도 겁내지 않고(왜 겁낸다고 생각하시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만... 아이들이 부모에게 할 말 다 안하는 데에는 굉장히 다양한 이유가 있어요...) 자기 할 말 할 수 있는 그 자체는 그 다음에 평가할 부분입니다. 왜냐고요? 훈육의 기본이 그렇기 때문이에요. (기분알아주기 ㅡ 잘못 얘기하기 ㅡ 같이 대안 생각하기 ㅡ 잘한 부분 칭찬하기) 태도와 표현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면 당연히 훈육을 해야지, 자기 할 말 잘하는 구나 하고 있으면 어쩝니까. 칸트식 자연주의 교육도 아니고... 때론 이끌고 때론 관찰하고 때론 격려하고 때론 혼자하게도 하고 때론 같이 하고 때론 선보이고 때론 가로막는 등 굉장히 다양한 역할이 부모가 할 일 ㅡ 즉, 가정교육이지... 괜찮아 보이는 것 입맛에 맞는 역할 몇가지만 한다고 아이가 크는 게 아니에요.
ㅡ 그리고 보통 어른들이 할말 다하냐 라고 말할 땐,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다한다는 뜻으로 쓰지 내 의견을 알맞게 주장한단 뜻으로 안 써요. 그런 부분을 감안할 때, 부모를 무서워하지 않고 예의없는 태도로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다 말해버리는 것 자체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합니까?
4. 내 자식이 그런상태가 되면
아 내 자식이 이제 좀 컸구나..
혹은 아 이제 사회로 내보내도 되겠구나.. 하며
기뻐해도 되는 그런 상태에 이르렀다는걸 아셔야 해요
ㅡ 아직 멀었습니다. 그 상황을 좋게 해석해도, 아이는 이제 겨우 자신의 생각을 근거를 갖춰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능력밖에 없습니다. 그 생각이 보편타당하며 효과적인지, 근거는 상대방이 받아들일만 하면서도 사실 그대로인지, 상대가 들을 만한 상황인지 살펴 적극성을 보였는지 ㅡ 국어 화법시간에 배우는 대화의 격률 일부입니다 ㅡ 는 완전 미지수입니다. 아이가 이걸 가지고 사회로 나가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가 할말 다할 줄 알게 되면, 자동으로 아이가 스스로 일상을 돌볼 수 있나요? 직업을 가질 수 있나요? 공동체를 꾸리거나 이끌거나 참여할 능력이 되나요? 스스로 목표를 세워 자기계발을 할 수 있나요? 목적을 위해 자기조절을 할 수 있나요? 할말 하는 능력과 무관계한, 그러나 아이의 삶을 위해 갖춰야할 기능은 아주 많습니다. 기뻐하기에는 엄청 이릅니다.
5. 부모 무서워하고 할말못하는 상태에서
그저 양순하게 예의바르게만 키웠다가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바로 도태됩니다.
ㅡ 아까부터 부모를 무서워한단 말이 자꾸 나오네요. 그러니까 쓰니는 특수한 상황을 가정하고 자꾸 주장하고 있는 건가요? 강압적이고 권위적이며 폭력적인 부모가 예의범절을 핑계로 아이와의 대화를 끊어버린 채 인형처럼 키우는 상황인가요? 일반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가 무서워서 할말 못하는 게 아니라 좀더 다양한 이유에서 자기검열을 해요. 특히 사회화가 잘된 아이들이 그런 양상을 보입니다. 그게 나쁜 건가요? 어떤 아이는 엄마가 셋째를 낳아서 힘들다는 걸 알고 김밥 싸달란 말을 안하고 그냥 왔다고 선생님께 자랑하기도 해요. 어떤 아이는 엄마가 어린이집 데려다 줬으면 좋겠는데 아빠가 속상해할까봐 말못하고 어린이집 와서 얘기하기도 해요. 이렇게 양순하고 예의바른 아이들이 사회에서 정말 도태됩니까? 그렇지 않죠. 상급기관에서 칭찬하는 전화 많이 받았습니다. 쓰니가 말하는 도태되는 아이들은 그들이 양순하고 예의바르고 할말 못해서가 아닙니다. 학대 트라우마 때문이죠.
6.그게 계속되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울증 공황장애 홧병 등등 각종 심리적 장애로
자기삶을 충만하게 살수없어요.
ㅡ 학대가 계속되면 그렇죠. 그렇지만 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양순하고 예의바르게 할말 못할 말 가려서 할 줄 알게끔 큰 아이들은 안 그래요. 할말 다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기능들을 향상시키고 그걸 바탕으로 세상과 자신을 조율하고 자기조절하며 살아나가고 있습니다만.
7. 결국 그 상태로 사회에 나갔다가는..
얼핏 한순간은 첫인상은
어른들한테 상사한테 무척 예의바른 사람으로 보일수도 있어요
하지만 대인관계에서 보면
사랑받고 기 살은 자신감 있게 자란
그런 사람들을 당해내지 못합니다.
무서울 것 없이 자기할말 자기표현 당당하게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을 보면 자연스럽게 위축되거든요
토끼가 사자를 만난것처럼요.
ㅡ 아까부터 쓰니는 자기할말 다하는 당당한 사람의 반대말에 예의바르고 양순한 사람을 놓고 있어요. 여기부터 오류인 게, 그럼 자기할 말 다하는 당당한 사람은 예의도 없고 사회화도 덜 된 공격적이고 거친 사람이란 말이 됩니다. 예의바르고 양순한 사람은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비굴한 사람으로 말씀하신 게 되고요. 더 나아가 전자를 사회에서 잘 나간다는 기이한 근거를 대며 무조건 긍정하고 있고요. 후자는 가정교육 잘못받은 사람 쯤으로 폄하합니다. 더 기가 막힌 걸 이 모든 것의 원인을 부모에게 자기주장을 할 능력 유무 혹은 그런 능력을 못길러준 부모탓을 하고 있네요. 아, 그 부모를 자식들이 무서워 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기도 하고요
ㅡ 그럼 전 세계의 예의바르고 양순하며 토끼같고 할말 참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부모는, 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하고 자식들에게 무섭다고 평가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인가요?
8. 가정교육이라는 것이요
예의범절, 부모한테 고개숙이는거..
그거라고 생각하고 키웠다가는
몇십년후에 큰코 다칩니다.
그때가서야 막연히 아시게될거예요
알면 다행이고 미궁에 빠질수도 있어요
분명 얘는 어릴때부터 공부도 잘하고 예의도바르고 똑똑했는데
내가 분명 잘키웠는데..
얘는 왜 커서는 이렇게 안풀리지?
이게 얘의 팔자인가봐.. 하며
엄한 팔자니 운명이니 하시게 될거예요
ㅡ 마마보이 파파걸의 문제점을 말씀하시나보네요. 그런데 마마보이 파파걸들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건 보통 헬리콥터파파 인생플래너마마인데요. 아이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아이가 원하건 안 원하건 아이의 말은 듣지도 않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며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주는. 결국 그 아이들은 어려서는 뛰어나도 커서는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하죠.
ㅡ 근데요. 이게 예의범절, 양순함과 뭔 상관입니까? 부모앞에서 할 말 다하게 해주는 거랑 무슨 필연적인 관계가 있습니까? 어떻게는 대략 유추해서 이해해보긴 합니다만, 글 내용상 너무 비약과 일반화, 이미지에 의한 논리전개, 정확하지 않은 용어가 많아서 읽기도 힘듭니다.
ㅡ 쓰니에게 어떻게든 이입해보자면... 쓰니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핑계로 자기주장을 못하게 하면 주체성과 적극성을 잃어서 사회에서 도태된다는 말을 하고 싶나봅니다. 그런데요. 그 주장에서 쓴 예의범절의 개념은 진짜 예의범절이 아니잖습니까. 그냥 학대부모 혹은 인생플래너 부모의 핑계죠. 사회화 수단과 올바른 대화 태도로서의 예의범절에는 부모에게 반론을 금지한단 항목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쓰니는 쓰니 주장 안에서만 쓰이는 왜곡된 이미지의 예의범절을 일반화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또한 학대부모 인생플래너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쓰니가 말하는 현상을 겪기는 합니다만, 그걸 할말 못해서라고 하기엔 너무 피상적이고, 좀더 근본적으로 파고든다면 자조능력의 저하와 자아정체감 형성에 문제가 있어서겠습니다.
9. 정신 똑바로 차리시고요
내부모 무서워하지 않고
내부모 앞에서 자기할말은 할 수 있게 키워주세요
ㅡ 불쾌한 표현은 넘어가고요. 단순히 부모 안 무섭게 하고 할 말 다하게 하고예의범절 강조를 때려치면 자조능력이 올라가고 자아정체감이 긍정적으로 안정되며 대인관을 포함한 세계관이 올바르게 확립되고 주체성이 강화되어, 그 결과 남에게 할 말 다하게 됩니까? 그냥 읽어봐도 아니죠?
10. 말하는 스킬, 방법, 예의범절..
이런건 나중에도 바로잡을 수있어요
제발 감히 어른앞에서 또박또박 말하냐며
면박주고 기죽이진 마세요
ㅡ 화법과 예의범절을 얼마나 나중에 누가 어떻게 바로잡습니까? 존댓말 안 쓰는 아이는 커서도 존댓말 안 씁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샌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교육계에서 왜 자주 조명받는지는 아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른 앞에서 또박또박 말한다, 즉 때와 장소를 못가리고 적절하지 못한 내용과 표현을 남발한다면 당연히 수정해야하는 겁니다. 다만 면박성으로 트라우마를 주는(기죽인다는 표현은 아주 부적합해요.) 표현이 아니라 단호하면서도 아이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표현과 태도를 써야겠죠. 예의범절, 화법, 주체감, 자신감 등은 상보적인 성격이 있으니 당연히 같이 배워야 하는 겁니다.
11. 기 한번 죽으면
그 열배 백배 이상 사랑과 노력을 기울여도 되돌리기 힘들어요
사람이란게.. 강자와 약자의 역학관계에서 한번 약자로 눌리는 위치가 되면
그 관계를 변화시키긴 무척 어렵거든요
ㅡ 아무리 생각해도 쓰니는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부모자식 관계에서 쓸ㅈ법한 부모교육의 의미로 이 글을 쓴 것같지 않고... 정상적인 부모자식 관계에서 강자약자의 역학관계를 상정하다니 뭔... 그리고 부모가 한두 번 실수하더라도 평소 사랑하고 친밀했으면 아이와의 관계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뒤틀리지 않거든요? 아이는 키워봤냐고 하고 싶네요. 결국 이분은 굉장히 특수한 부모자식관계를 상정한 상태에서 그닥 근본적이지 않은 해결방법을 주고 있는 거네요. 기죽이지 않는 방법이 예의범절 때려치고 할말 다하게 하는 거라니요...... 그리고 기죽이지 말란 표현 자체도 요즘 안좋은 뜻으로 많이 쓰이는데... 음, 표현 자체가 썩 제대로 썼다기엔....
12. 자식에게 감히 어른앞에서 또박또박 말하냐며
면박주고 기죽이는 그 현장.
그 현장이 바로
어디가서 내자식이 남들한테 쩔쩔매고 말못하고
면박당하고 기죽는 연습을
집에서부터 시키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한번 부모앞에서 기죽고
부모와 다른 내 의견 말하는게 무서운 마음이 들면
회복되기 어려워요
한마디로 기가 팍 죽어버린겁니다.
ㅡ 위에서 몇번 말했다시피 부모가 자식에게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할 수 있죠. 물론 포용적인 태도로요. 부모역할 중 하나가 원래 언어수정 및언어습득의 본이 되어주는 건데요. 어린이집에서도 가끔 선생님에게 거친 말로 이거 할 거라고 하는 애들 있어요. 그 자기주장, 기죽이지 않는답시고 넘어가야 합니까? (전 일단 둘이서 물부터 마시고 네가 갖고 싶은 맘은 알겠다 하지만 선생님이 가장자리가 날카로워 위험하니까 조금 있다가 주겠다고 했는데 네가 그렇게 왜요 왜요 하면 네 생각 주머니가 작아진다 선생님이 왜그랬겠냐 그래 잘라서 주려던 거다 네가 생각할 수 있다면 다음에는 생각해보고 이러저러하게 예쁘게 말해라. )
13. 예의바르면 뭐합니까
학벌좋고 스펙좋으면 뭐해요
ㅡ 학벌스펙은 그렇다치고, 예의범절은 익혀놓으면 두루 쓸데가 많아요. 대여적으로는 인간구실 하는 거고, 대내적으로는 인성이 되는 거죠. 공자가 왜 예를 강조하게요? 하도 당시 사람들이 인을 모르니, 예라는 행동을 통해 인이 무엇인지 가르치려던 거거든요?
14. 매순간 빠르게 스치는 상황상황에서
자기 할말 제때 잘 표현못하면
보이지 않게 병신되는겁니다. (강하게 말하고 싶네요)
ㅡ 자기 할말 제때 잘 표현해도 예의범절 없으면 보이게 싸가지 취급 받는ㅈ겁니다.
15.하고픈말이 있는데 주눅들어 못하고
계속 겁내고 망설이고 그러다보면
남이하는 말들을 놓쳐요
ㅡ 그니까 그 소심함과 내성적인 성향이 다 부모가 할말 못하게 기죽이고 면박줘서다? 정상적인 부모를 가진, 느린 성향의 아이들도 있는데요.
16.매순간 하고싶은데 못다한말이 에너지를 잡고있으니
즉, 마음속을 장악하고있는 무언가가있으니
상황파악도 유연하게 잘 못합니다.
당연히 의사소통에서도 한박자 늦고요
말귀도 늦게 알아채고
농담도 한박자 늦게 접수하게 되어요
ㅡ 보통은 눈치없는 사람들이 상황파악 못하고 헛소리 하지 않아요?
17. 사회생활에서 보면요
아무리 학벌 화려해도
한두번만 겪으면 사람들은 빨리 알아차립니다.
저사람 좀 헛똑똑이인가..
겉만 화려하지 덜 떨어졌구나
알게 모르게 그렇게 느끼죠
ㅡ 사회생활하면서 말 잘하는 사람이 유리하긴 합니다만은, 부모에게 할말 다하고 예의범절은 비교적 모자른 사람만 언변이 좋은 건 아닐텐데요? 문재인 대통령 보세요. 예의범절도 기막히고 할말 못할 말 가려서 하고 때론 할말도 참고 적극적이기 보단 인내심 많은 스타일인데도 많은 이에게 인정받고 연설도 말짱하게 잘하네요.
18.거친사람 만나면
대놓고 은따당하거나 대놓고 공격도 받습니다.
ㅡ 개차반들은 사람 가려가며 물지 않아요. 적극적이고 당당하고 할말다하면 재수없어서 더 물고뜯지ㅈ않을까요?
19.그런 느낌으로 하는 사회생활이
충만하고 잘되기는 어렵겠죠
ㅡ 그런 느낌말고도 다른 느낌으로도 사회생활은 어려울 수 있어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줄정리 ㅡ 부모는 아이에게 포용적인 태도로 예의범절을 포함한 여러 기능들을 가르쳐야 하며, 그럴 때에 아이는 자조능력과 자신감을 갖추고 주체적인 자기주장을 적절한 화법으로 할 수 있다. 끝.
자신감있고 당당한 건 좋은데, 오만함, 진상, TOP 등 안좋은 평이 많이 붙죠.
번호달린 항목으로만 보면,
오히려 사회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아이를 키우는 방식인 것 같은데.
추가 :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4510961CLIEN
이글이군요.
요즘 애들 보면 (저는 고딩을 다룹니다), 집에서 대체 무엇을 가르쳤을까... 마냥 학교, 학원이 알아서 다 하게 냅두고 지들 돈벌고 한번뿐인 인생 즐기고 살았나 생각밖에 안드는 학생이 학년에 절반이 그냥 넘는듯..
애초에 "할 말 못할 말" 이라는 기준 자체가 듣는 사람인 '손윗사람'이 자기 기분에 맞느냐 안맞느냐라는 선이거든요.
즉, 논리적인 근거와 이유를 가지고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는 예의바른 태도로 이야기를 하더라도 '손아랫사람'으로 인식되는 누군가가 본인의 기분을 거슬리는 이야기를 할 때 충분히 쓰는 표현이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는다' 입니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을 할 때 하는 표현이죠.
이 이야기를 하는 시점에서 화자가 청자에게 갖춰야 하는것은 '예의범절'이 아니라 '눈치'죠. 만약 청자의 기분을 거슬리지 않게 하는 것 혹은, 상대방이 듣기 싫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예의범절의 정의로 생각하고 말씀하신 거면 그건 이미 예의범절이 아니라 '눈치를 보는 행위' 혹은 '비위를 맞추는 행위'에 가까운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서움'과 '예의범절'이 무슨 관계이고, '눈치를 봐서 행동하는 것'과 '예의범절'의 상관관계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미 '부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와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는다' 라는 표현을 쓰는 시점에서, 글쓴 분이 원하는 '손아랫사람'이라는게, '예의바른 표현의 하고자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인지 '권위적인 상대방의 비위를 잘 맞추는 눈치가 빠른 사람'을 원하는 것인지 모호해짐을 느끼네요.
"예의를 갖춰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여 의논하고 협의하는것"
이건 말이 쉽지 굉장히 고도의 사고력이 필요한거거든요.
옛날 세대분들이 애들 기죽이지 말라고 하는데
어른들 단톡방에 도는 글인가 싶을정도네요
갑갑합니다.....
지 하고 싶은대로 사는 자유형 인간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자유형 인간입니다.
제가 노예형에 기깝다 보니, 자유형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네요.
남의 의견에, 그게 대세일지라도, 반대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용기있는 인생이 더 윤택해 보입니다.
50년 가까이 살아보니, 실력보다 기세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결과는 행동이 받는 것이죠. 당당하게 말 잘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전혀 사회생활에 도움이 안됩니다.
말만 앞서고 뒷감당 안하는 사람이 많아서...
제가 "지 하고 싶은데로 사는 자유형 인간" 에 가깝게 한평생을 살아왔는데요..
엄청 후회합니다.
제 하고 싶은데로는 맘껏 했지만 결국 제 주변엔 사람이 없습니다.
(아, 물론 제 가족은 있습니다.ㅎㅎ)
왜냐면 제 하고싶은데로 맘껏 하고 살았거든요. 그러다보면 주변이 다치는걸 잘 못봅니다.
남의 말 잘듣는 노예형 인간 -> 이게 왜 노예형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남의 말 잘듣는사람이 저는 세상 제일 부럽습니다.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안다는 소리고, 남의 감정에 공감할 줄 안다는 소리니까요.
사회는 혼자 살아가는게 아닙니다. 함께 살아가는거죠.
때론 자유로움 보다는 공감과 배려가 더욱 중요할때가 많습니다.
결국, 자유형이던 노예형이던 성공하지 못한 자들은 후회하는 군요. ㅠ ㅠ
갈등은 풀어야 하는데, 회피하는게 최선이라 안타까운 상황이네요.
본인 주장만 앞세우다가는 큰코 다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글님의 의도도 상당히 이해가 가요. 내가 존중을 받으면 아이도 상대방을 존중할수 있는 인의예지는 갖춰 나가도록 부모가 지도 해야죠.
검색 오래 못했는데, 말대꾸가 표준어 같습니다. 저도 말대꾸가 비표준어라 들은것 같아 말댓구로 쓴 것인데, 거꾸로네요. 요샌 뫼산을 메산이라고 가르치더라고요. 말대꾸로 저도 바꿀게요.
국어사전
말댓구오픈사전도움말
말대꾸.(명사) 남의 말을 듣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서 제 의사를 나타냄.
말대꾸 [말ː대꾸] 듣기 단어장 저장
명사 남의 말을 듣고 그대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서 제 의사를 나타냄. 또는 그 말.
유의어
대꾸1 대척1 말대답
표준국어대사전
말대꾸하다
그런말은 당연히 아이에게하면 안되는데요.
그게 안된다고 예의범절을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라느나건 틀린 논리전개라고봅니다.
예의범절은 내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알고 상대를 배려하는걸 배우는 거에요.
어른한테 말대꾸하면 안된다는게 아니구요.
용어에대한 정의가 잘못되면 굉장히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고봅니다. 예의범절 가르치면 할말 못하는 아이가된다는 말도 안되는 말씀을 하고계시는거에요.
예의범절은 할말 못하게만드는게 아니라 할말을 어떻게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면서 잘 할수있는지에 대한 배움입니다.
내성적인 아이일 수록 부모와 대화 하는 연습을 해야 할거 같아요.
저도 첫째 아이가 요즘 한창 까부는 시기라 하면 안되는 행동 혼냈더니 눈도 못처다보네요.
꿍하고 말도 안하고 삐친 이유를 말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같은 또래인 조카는 외향적인 성격이라 혼나도 자기가 원하는게 뭔지 다 이야기하는데.
물론 감정기복은 더 커서 조금만 서운해도 펑펑우는데.. 울어도 자기가 왜우는지 뭘원하는지 바로 이야기합니다.
둘째는 어리지만 자기 의사 표현이 확실해서 좀 나은데..
아이 성향에 따라 부모가 꾸준히 노력해야 겠지요.
표현하기, 예의 갖추기가 대립되기만 하는 개념은 아니잖아요. 아이에게 다 필요한 요소구요.
또, 아이의 성향에 맞게 균형을 맞춰 줄 필요가 있습니다. (쉽지 않죠.)
하나를 더 강조하면 잘못된 부모고, 다른 쪽을 강조하면 옳바른 부모는 아닌 거죠.
한쪽이 부족한 아이는 그 부족한 쪽을 더 강조해서 이끌어줄 필요가 있는거죠.
제 관점으로는, 애 키워본 사람들은 이게 맞다 저게 맞다가 아니란 걸 잘 알거라고 봅니다.
두 가지 다 필요하니, 아이의 성향에 맞춰서 둘 다 키워줘라가 답인거죠.
이런거 보면 아이 주면에는 여러사람이 있어야 발달이 잘될거 같네요
이 밸런스가 깨졌을 때 문제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자신보다 연령이 많고, 힘이 쎄고, 권위가 높고 그런 걸 떠나서 사람 같지 않은 일에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게 필요한거 같지만..그게 쉽지 않죠.
걍 아무때나 할 말 다하면 보통 진상이나 싸가지 없는 놈이 되쥬...
사실 반항이라는 게, 제가 제 글에도 썼지만, 성장의 결과물 중 하나거든요. 근데 어떤 결과물이든 피드백과 마감작업이 필요하잖아요. 아가들의 반항도 그런 식으로 매만져 줘야 하는 거죠.
이 관점의 차이는 한국 교육 (유교 문화의 영향을 여전히 받는상황에서)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온유함"이라는 가치와 "겸손함" 도 큰 가치지요. 자기 표현과 자존감, 자신감도 중요하고요.
필요한 상황에 따라 예의를 지키면서 자기표현을 분명하게 할 수 있게 가르치는게 이상적인 골 이겠지요
진짜 자기 애 키워보면 생각이 달라질겁니다. 육아는 왕도가 없어요. 이 방법이 맞는 아이가 있다면 안 맞는 방법도 있는겁나다. 저희 집도 첫째랑 둘째랑 아롱이 다롱이라서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피드백을 줍니다.
제가 생각하는 육아의 유일한 왕도는 가능한 애정을 듬뿍 주고, 적절한 훈육으로 선을 넘지 않도록 하고, 한 인간으로서 존중해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나머지는 아이의 성향과 기질 반응 이런 것들을 부모가 잘 캐치해서 그에 맞는 피드백을 주어야 합니다.
아, 육아의 왕도에 대한 조언은 동감이에요. 매년 보는 아가들인데도 어쩜 똑같은 구석이ㅈ없고, 내 아가는 또 어쩜 그리 신세계인지. 사랑하되 흔들리지 말라는 어무니의 말씀이 사무칩니다...
네 당연히 배고파요님 이야기가 아니고 저 원글 쓴 사람 말하는겁니다...;;
예의 교육 빙자하여 아이 억압하는 부모 많습니다. 저도 그 피해자들 많이 보고 있고요. 그래서 그런 글이 나온 거 같은데...
이 글은 또 예의 없는 애들 염두에 두고 쓴 거 같은데...
놀라서 이런 글 쓸 것까지야
그리고 제 글은요. 예의없는 아이들을 문제시한 게 아니라, 예의범절은 단순히 윗사람 보기좋으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회화와 자기조절과 정서순화와 사고능력과 언어적 기술향상을 위해, 즉 아이의 행복한 삶을 위한 다양한 능력 향상을 위해 가르치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도대체 예의범절을 부모에게 어떤 식으로 교육받았길래 ㅡ버릇없다는 뜻이 아닌, 어떤 원인이 있을까의 뜻입니다 ㅡ 저렇게 왜곡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걱정스럽네요...
이런 글이라... 별뜻없이 쓰신 표현이시겠죠. 제가 정말 고민하며 시간 쪼개어 썼다는 걸 아실테니... 사실 오랫동안 교편을 놨어도 그 기질이 안 죽어서 참견이 툭 튀어나온 것도 같아요. 어쩌면 학부모들에게 덴 것이 많아서일수도...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단편적인 이미지, 어디서 본 것 같지만 결국 편향적인 사연들, 참신하기만 한 찌라시 조언에 현혹되어 예쁜 아가들 혼란하게 하지 말았으면 해서 써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