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찍던 존 다우닝.
존 다우닝 (John Downing).
英 데일리 익스프레스지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영국 국내는 물론, 전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을 돌아 다니면서
각종 보도 사진상을 휩쓸고 다녔던 유명 사진기자입니다.
현재 "폐암말기"라고 하더군요.
네. 그는 체르노빌에 처음으로 들어갔던 서방기자들중 한 명입니다.
아시다시피 유례가 없는 체르노빌 참사에 당황했던 소련 정부는
외부세계를 향해 진상은폐와 사태 축소에 급급했습니다.
서방언론에 현장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은 소련 정부가
사태수습이 어느 정도 일단락 됐다고 판단했던 4년 후인 1990년.
蘇연방이 해체되기 직전이었죠.
소련 정부는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개방(glasnost) 정책에 힘입어
현장공개의 결단을 내렸지만 여전히 자기부정 상태였다고 하더군요.
존 다우닝과 함께 처음으로,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차례 체르노빌을
찾았던 前 가디언지 기자 "킴 윌셔(Kim Willsher)"가 회고합니다.
"내 사진기자 친구인 존 다우닝은 지금 폐암말기다.
"종종 내 병이 체르노빌과 상관이 있지않겠냐고
궁금해 하고 있는 중이에요."
사태 이후 조기 단명했던 수많은 체르노빌 주민들처럼
그 또한 상관여부를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아시다시피 소련 정부는 폭발 직후 36시간 동안 시민들을 그대로 방치했었습니다.
인근 시가지 상공 위에 화재로 인한 방사능 연무가 가득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에 열린 노동절 축하 시가 퍼레이드와 야외행사를 그대로 강행했습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다 맞아가면서 행사를 계속했었답니다.
서방 기자들이 뒤늦게 현장을 찾았을 때부터 이미 시름시름 정체불명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늘기 시작했건만 동행한 정부 공무원들은 필사적으로
관련성을 극구 부인 하더랍니다.
"영양상태와 가난 때문이라니까요."
"존은 우리가 모스크바에서 함께 만났던 러시아 과학자를 상기시켰다.
과학자는 현장 조사를 위해 한때 체르노빌에 체류했었다.
"나는 그때 일을 잊지 못할 거에요.
그가 자기 책상에서 당시 사용했던 연구노트를 꺼내오더니
가이거 선량계(Geiger counter)를 위에 올려놓더군요.
선량계는 미친듯이 탁~탁~탁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4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 되어 있었던 겁니다 ."...
출처: 가디언 (2019-06-16)
"체르노빌의 진실? 나는 내 눈으로 목격했다."
(The truth about Chernobyl? I saw it with my own eyes…)
촌평)
4년의 시간이 지났어도 똑같이 오염이 심했던 연구노트.
후쿠시마는 이제 8년.
후쿠시마에서 쌀과 복숭아 농사를 짓고,
올림픽을 치를 정도로
뭐가 획기적으로 상황이 바뀌었습니까?
아래 유명한 美 이론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 관련 글이 있어서 저도 덧붙여봤습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3808868CLIEN
"당신이 후쿠시마 원전의 작업자라 세슘 137에 노출됐다고 해보자.
죽어서 땅에 묻힌 뒤에도 무덤에선 방사선이 뿜어져 나올 것이다.
당신의 증손자가 계수기를 들고 무덤에 갔을 때도
여전히 방사능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
관련 사이트)
존 다우닝 홈피
그의 보도 사진들
https://www.theguardian.com/media/gallery/2019/jun/15/the-photography-of-john-downing
이제라도 그만가야죠.
이제까지 하는 거 보면.. 일본인들이 외국 관광객에게 일부러 후꾸시마산 식품을 골라서(싸니까) 먹인다고 생각하고 맞다고 봅니다.
"바로 잡아야 할 건 바로 잡혀야 된다고 봅니다.
부끄럽다고, 내가 가진걸 잃을까 눈감으면
돌이킬 수 없는 날은 언젠가 옵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3809053CLIEN
체르노빌과의 실제 관련성 여부는 본인과 동료의 말처럼 모르는 일이죠.
일본은 비닐로 덮고 오염수를 뿌리고 개방할 생각뿐이죠
미친놈 같다는
올림픽 때문에 도쿄로 오는 선수들은 도대체 무슨 죄..
아베는 방사능 진상규명 전에 올림픽 꿈도 꾸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