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다들 미화하기 마련이고,
특히나 시기를 특정짓지않고 뭉틍그리다보면 시기를 통합해서 좋은것만 뽑아대니 문제가 많습니다.
다들 무슨 취직 이야기는 70년대, 80년대 이야기를 적으면서,
그걸 IMF직전이라고 적으시네요 ...
정확히 IMF직전을 현장에서 겪은 사람으로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1. IMF직전 나사만 돌릴 줄 알아도 취직이 막 되었다?
- 70년대, 80년대 이야기 입니다.
86년, 88년 전후로 아시안게임, 올림픽 특수가 짧게 호황이 온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전자산업이 발달하고, 노동집약형에서 임금이 현실화되면서 기술집약형으로 변경되는 과도기 시절, 90년대 초중반 이후부터 이미 기업들이 줄도산을 시작합니다.
IMF를 기점으로 꺽인게 아니라, 사실은 그 전에 꺽이기 시작해서
IMF도 온겁니다.
2. 대학졸업장만 있으면 취직이 쉬웠다.
- 헷갈려들 하는데...
80년도~ 90년도 초반 '졸업자'기준입니다.
(한마디로 80년대 학번들 이야기입니다.)
90년도 초반 입학자들은 졸업하자마자 IMF옵니다.
무슨 취직요?
80년대 학번 시절은, 대학은 커녕 형편 안되면 기술고,상업고 가던 시절입니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일찍 고등학교 졸업해서 돈벌라고요.
여자애들은 대놓고 공부 때려치우고 여상 다니라던 시절입니다.
대학도 애초에 대학 자체가 많지 않던 시절입니다.
그때 대학 졸업한 사람 수의 인구수 비중 따지면,
지금 박사급 사람 수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취직이 잘 된거죠
고졸도 대기업 갈 수 있었던건, 대학 졸업자가 적으니
고졸이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3. IMF이전 시절이 풍족했다?
흔한 과거 미화고 착각입니다.
길거리에 거지 만나는게 일상이었고,
그 거지 몰아내고 청소해대던게 88올림픽 시절입니다.
나사만 돌려도 취직되는데 왜 거지들이 그렇게 많았을까요?
왜 전국 각지마다 달동네, 불법 이주민들 철거반 돌아다니고
쌈나고 그랬을까요?
80년초중반 까지도 우리나라는 노동집약형산업 위주였고,
재봉틀 돌려서 옷공장 다니고, 운동화 만드는 운동화 공장
아니면 위험해서 선진국은 안하는 산업
이런 산업이 주축산업이었습니다.
당연히 선진국 안하는 일하니, 월급은 박약하고,
몸뚱이 굴려서 일하니 다치는 사람 투성이였었습니다.
없는 돈 털어서 내자식은 이 짓 안시킨다 악물던 시절이었구요.
이걸 죄다 무시하고
IMF직전이라며, 대학'만' 나오면 취직하던 시절이라하니...
당시는 좋은 대학 가면 동네에 플랭카드 써붙였었습니다.;;
그 시절 이야기일 뿐이지,
그 후면에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 다 빼고.
좋은 시절 타령은? 겪어보기나 하고 말하는겁니까?
그 시절에 해외여행 다닌집이 전체의 70프로 수준이라는데
할 말을 잃었습니다.
/Vollago
제가 첫출장을 95년에 갔는데 그때 출장가려면 무조건 동사무소에 신고하고 갔습니다.
그리고 배낭여행은 2000년대 들어 imf 여파가 어느정도 가라앉으며 가능했고요.시기를 잘 못 알고 계십니다.
90년대는 나가고 싶어도 쉽게 못나갔고 아무나 못나갔어요.제가 나갈때도 김포공항이 널널했었으니까요.
그러니깐 해외여행자유가
89년입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진짜 해외여행 풀린 극초반입니다.
그런데
90년대 초반에 이미 해외나가본 집이 열집중 일곱집이라고 주장하는 분이 있어서 적은겁니다.
제가 딱 그 시기인데 미국 대학마다 한국 어학연수생 정말 많았어요
/Vollago
그 시절 어학연수의 태동기는 맞습니다만,
90년대 중반이라하면, 97년 imf가 곧 있어서,
이건 저기서 미화하는 먹고살기 좋았다?
라는 것과 다른 차원으로 봐야합니다
그냥 이거는 그 시절 먹고살기가 좋아서 간게 아니라,
원래 묶여있던것이 그냥 풀리면서
형편 좋은 사람들이 돈을 쓰기 시작한거라 봐야죠.
Imf시절이라고 다 안좋은 시기였던건 아닙니다.
그때 똥값된 집들 몰아사던 사람들이 있었더랬죠.
"90년대 초반부터 유럽 배낭여행 붐이어서 대학생들 여름방학에 많이 나갔어요"
위에 직접 쓰신 댓글입니다.
"유럽배낭여행 붐","여름방학에 많이 나갔어요."라는 내용이 그당시를 살았던 제 경험과 다르기때문에 적은겁니다.
적으신 댓글은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해당되니다.
저도 나름 중간수준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님과 제가 살아온 삶이 많이 다른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보기 마련입니다.
본인이 배낭 여행에 관심이 많으셨다면,
배낭 여행책들이 많이 보이셨겠죠.
element님 말씀하신 2000년대는 너무 간걸 수도 있습니다.
서로 경험과 기준이 다 다르니 어느것이 맞다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93년, 94년 배낭 여행책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비중의 문제가 아닐까싶습니다.
개인 생각으로는 열에 하나 꼽기 어려웠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 차원이 문제가 아니라,
열에 일곱은 다녀왔단 분이 있으셔서 적은겁니다.
열에 일곱은 당시 대학다닌 같은 회사분들 꼽아도 비중이 너무 큽니다.
그걸 적은겁니다.
조금 스킬있는 배낭여행객들은 일단 홍콩으로 가서 그곳의 여행사들 통해 싼 항공권 구해 유럽으로 건너뛰는 팁을 알려주곤 했었죠. 그럼 100만원대 초중반에도 가능하다구요..
요즘은 중국남방항공 서울-파리 왕복권 50만원도 안하는게 나오더군요.
플릭스버스 이용하면 논스톱 10시간 거리도 3~4만원 남짓입니다.
베를린에서 비수기 호텔가격검색사이트 공실률 50% 미만으로 떨어지니 웬만한 도미토리 1박에 10유로도 안하더군요. 에어비앤비로 근사한 아파트나 교외주택 민박하면 1박에 20유로에도 그림같은 멋진곳 많죠.
제가 가본곳중 이스라엘 빼고는 한국보다 수퍼마켓 먹거리값 비싼나라는 아예 본적이 없었습니다. 어딜가든 한국보다는 싼값에 배불리 먹습니다. 난 꼭 쌀밥에 된장찌개를 먹어야해~ 하는 경우만 아니라면요.
90년대에는 대학생들도 알바비 열심히 모으고 특히 과외알바 되는 학생들은 금방 3~400만원정도 모아서 한달씩 유럽 다녀오곤 했었습니다. 물론 가서 유레일패스에 숙박과 교통을 의존하며 거지꼴로 다녀야 했지만 아무튼 가능하긴 했죠.
요즘은 진짜 국내여행보다 웬만한 동남아 해외여행이 더 싸게 먹히더군요. 제가 모 국가에서 한달간 여러도시 돌아보며 딩가딩가 보내고 출국한 다음 그 나라에서 쓴 총 비용을 계산해보니 한국에서 부모님 집에만 붙어살경우 지출하는 한달간의 최소생활비에도 채 못미치는 금액이 나왔으니...
(참고로 1993년 최저시급이 1,005원으로 천원을 넘어섭니다. 1999년에는 1525원으로 1,500원을 넘어섭니다만 당시에는 최저시급개념 자체가 옅어서 대부분 최저시급보다는 많이들 줬죠. 그리고 지금과 달리 근검절약과 저축이 당연시되던 시대였으니까요.. 부담은 되지만 부모님 부양해야되는 입장만 아니라면 알바비 독하게 모아서 한번정도 가는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94년도에 관련 동아리나 관련 서적들 별로 없었어요.
96년도부터 배낭여행 패키지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당시에 일본부터 붐이 일어서... 거지새끼처럼 전철만 타고 후쿠오카부터 동경까지 다녀오는 여행 붐이 있었죠. (청춘18열차 티켓 사서..)
유럽 여행은 언감생심 택도 없었고... 비자 받기도 쉽지 않았어요.
당시에 내가 미국 비자 10년짜리 받아봐서 압니다.
대학생 나부랭이에게 비자 안나왔어요.
94년도에 술집 알바 하면 알바비 시간당 700~1000원 받고 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호스텔이나 한인네트웍을 통한 민박같은 것 찾기도 불가능했어요.
알바해서 유럽 여행 다녀올 수 있는 방법은... 여대생이 술집가서 알바하거나 서울대생 쪽집게 고액 불법과외 하는거 아니면 불가능했고... 대부분 다 부모님 도움으로 여행 다녀왔습니다. 유럽을 다녀왔다는 사람의 대부분은 여행사를 통해서 패키지 형태로 다녀온거고... 배낭여행으로 다녀온 사람들은 대부분 2000년 초반의 유니텔 PC통신 배낭여행 커뮤니티의 지존급 레벨으로 추앙받았죠.
90년 1월 군번인데 군입대전인가 후인가 대학생 여자애가 유럽여행가는 여행기 책을 직접 읽었구요..돈이없어 해외입양아 2명을 데리고 가는..
Jxx님 말대로 해외여행 붐 있었어요..
요즘같은 붐은 아니었지만,
쩜쩌미님 있는집이 간다고..없는집이 어느정도 기준인지 모르지만 저희집이 잘 사는 편이 아닌데 91년도 군에 있을때 누나가 유럽 여행간다고 면회 왔었어요..그때 십 몇만원 경비에 보태라고 줬었어요..그후 유럽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내가 저기서 어쩌고저쩌고..아주 지겨웠음..즉 있건없건 정보가 있고 의지만 있음 갔을시기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93년즘인가 지금도 브랜드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브렌따노..를 비롯한 10개 정도 브랜드로 만든 지금의 이랜드 그룹..
그때 대학생들이 자주 보는곳?에 사원 모집광고를 엄청했어요..해외로 나가서 자신만의 뭘 보여달라는 식으로 ..그 시기에 사원모집시 해외여행결격사유라는말이 들어가는게 일반적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네요..근데 이랜드는 그걸 광고했었어요.
브잉공님
93~94년도.....
조흥은행 급여가 30만원이고
서울 아파트 값은... 대충 1500만원이라고 하셨는데 ..어디아파트가요?..96~7년도에 천안 아파트 23평 분양가가 5천만원이 넘었었어요..회사동료가 그때 결혼한다고 아파트 분양받는다고 돌아다닐때였었어요.
과거기억 소환해서 핸펀으로 글 쓰려니 힘드네..ㅠ
하나 펴보니 92년 구입했던거네요 ㅋ
당시 대학 들어가면 나도 여행가야겠다 꿈꿨었기에 구체적으로 금액과 일정과 루트를 궁리했었습니다. 돈 만들 방안과 기간도 잡았었는데 기간은 두달. 지역은 유럽. 대략 400만원가량 되는 예상비용이 당시 과외 아닌 일반 알바만으로도 충분히 조달 가능하다는 답이 나왔었습니다. 뭐 저야 부모님과 같이 살고있었으니 알바비 전액을 저축할 수 있었으니까요. 부모님 도움받아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 그것까지는 전제로 삼지 않았었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패키지로 가면 지금도 비쌉니다. 가령 지금 제가 당장 프랑스 파리로 가서 2주일을 놀고온다면 전 항공비 숙식까지 총비용 100만원 이내로 다녀옵니다.
https://www.tripair.kr/kr/AirticketsResults.html?arr=CDG&extendedDates=0&passengersAdult=1&ibDate=08%2F12%2F2018&class=Y&passengersInfant=0&isRoundtrip=1&passengersChild=0&mobile=0&obDate=21%2F11%2F2018&dep=ICN&filterTimeArr=06%3A40&filterTimeDep=16%3A15&filterPrice=501874.0&SearchID=TURoaVpHVXdaRGhqTUdJME5qbGhOVFZpWlRCall6WmtOREZpTURneU0yRT18MA%3D%3D&filterCurrency=KRW&filterTimeArrRet=22%3A20&filterTimeDepRet=14%3A30&skyscanner_redirectid=idkUlMECEei3IwJCrBEACg&country=KR&searchfrom=skyscanner
비행기는 파리까지 왕복 50만원짜리 이걸 탈거고
https://www.airbnb.co.kr/rooms/11910134?location=%ED%94%84%EB%9E%91%EC%8A%A4%20%ED%8C%8C%EB%A6%AC&adults=1&children=0&infants=0&guests=1&toddlers=0&check_in=2018-11-22&check_out=2018-12-07&s=g5A4bsB8
잠은 이런 민박방 하나 빌려서 자면 그만이니까요.
밥은 근처 수퍼마켓에서 이것저것 사다가 해먹으면 하루 1만원도 안듭니다. 유럽은 정말 먹거리값 싸거든요.
만약 굳이 박물관이나 근처 어디를 돌아다닌다거나 한다면 딱 그만큼 돈 더 들어가겠죠. 아마 그래봐야 +10~20만원 선일겁니다.
비슷한 스케쥴과 일정의 패키지여행이 현재 얼마정도 나오는지는 직접 검색해보시면 될테니 생략하죠.
지금도 어느정도 그렇지만 당시 주된 정보교류는 그런 백패커들이 모이는 게스트하우스 들이었습니다. 그런 게스트하우스나 요충지가 어딘지는 가이드북이나 경험자들의 여행기에 나왔었구요. 어느나라 사람들이건 간단한 영어는 통하는만큼 서로 잘 알려주니까요.
인터넷 없었던 시절에도 그런곳 가면 그런 고참들은 몇몇 있기마련이니 잘 샤바샤바해서 (참고로 모 국가에서 제가 한달 보내고 귀국하기전날.. 남은돈 그런 외국여행자 신참들한테 다 팔아넘기고 노하우 한보따리 전수해주니 밥사주겠다는 친구도 나오더군요 ) 정보를 얻는게 기본이었죠. 아무튼 홍콩 경유한다음 그런 노하우 캐치해서 유럽까지 항공권값 70만원 이상을 절약하라는 권유도 돌곤 했으니까요. 카메라같은걸 면세로 싸게 구입한뒤 귀국후 팔아 여행비 뽑아내라는건 덤이었구요.
(아예 그 보따리스킬로 몇년씩 여행만 하는 전설의 백패커 이야기는 이야기로만 돌다가 실제인물인 어느 일본인이 아예 책으로 내기도 했었습니다. 당시는 해외직구가 매우 어렵던때라..)
그때나 지금이나 많이 알고 많이 터득하면 뭘 하건 싸게 가능합니다. 당시에도 그런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패키지 여행이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가는거라고들 여기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터넷에 처음 접속했던것이 386 에 14400bps 모뎀달아 윈도 3.0 +트럼펫윈속+넷스케이프로 했던건데 그때가 95년 무렵이었고 당시 제한적인 무료접속 서비스를 어딘가에서 해줬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이 생기기 전이었으니 아무튼 95년 이전이었죠. 당시에는 하도 느려서 웹브라우징을 통해 인터넷이라는걸 쓰기 시작한건 56kbps 모뎀을 달게된 뒤의 일인데 텔넷은 그 이전에도 많이 썼습니다.
덧붙이면 1999년 C&C 타이베리안썬 온라인대회 예선전때는 56Kbps 모뎀만으로 제가 Westwood OnLine 세계랭킹 100위까지 갔었습니다. ㅋ
그전에는 수백만원 보증금 내고 수십장의 서류와 몇달 기다려야 단기여권 발급해주던 시절인데 말도안되죠
제가 1973년생, 1992학번인데,
울 회사에 저와 나이가 비슷해 경기여고 나와 서울 모 중위권 나온 강남 처자가 있습니다.
유럽 배낭 여행 이야기를 하더니,
"주변에 유럽 여행 안 간 사람도 있나요?" 라고 하더군요...ㅡㅡ;;
참고로 제 주위에 친구들이,
부장판사, 감평사 임원, 공군 중령, 대기업 부장, 광고회사 임원 등등 나름 공부했던,
그리고 저 포함 다들 중산층 자제들(!)인데
IMF전에 해외 여행 간 사람 자체가 없었습니다.
완벽한 일반화의 오류 맞습니다.
정말 개인경험에 의해 세상을 보시는군요.
90년대 초 과외는 아무나 합니까?
Sky나 지방국립대 정도 학생이 합니다.
정말 추억보정에 본인생각이신게
Sky에 지방국립대 학생들은 죄다 300~400을 모았을까요?
게 중에 그 돈으로 집안빚 갚던 애들이 많았습니다.
당시는 빚이 일상이던 시절이니까요.
그런데 300~400요?
당시 과외 한탕 뛰면 15~20만원 나왔습니다.
(제가 뛰었으니 압니다.)
다섯탕 뛰면 백 채웠습니다.
근데 다섯 탕 뛰긴 쉬울까요?
당시 피토하면서 벌었고,
주위 과외 박박 다 긁어모아서 다섯탕이었습니다.
끽해봐야 일반은 한 탕 구해서,
본인 용돈 벌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300~400은 쉽게 벌어요?
커피점 알바 붐 일었죠.
시급 천원치고, 하루 열시간씩 한달 쉬지않고 일하면 30만원입니다.
네 그 돈 쓰지않고, 먹지도않고
열달 일해서 모으면 300되네요.
그럴바엔 지금은 월급 200받아서 열달간 먹지도 쓰지도 않고 모으면 2000이니
풍족하단 소리와 뭐가 다르나요?
님의 이야기가 얼마나 황당한 개인일반화냐하면
과외가 가능한 대학생이 되려면
Sky에 지방국립대 정도고, 이 인원이면 넉넉잡아 10% 인원만으로 추려집니다.
(나머지 학교로는 과외 뛰어도, 이웃집 한집 그냥 용돈 주는셈이죠. 월급이 30만원하던 시절에, 15~20만원 주고과외시키는데 2류, 3류를 쓸까요?)
다시 그 추려진 인원 중,
과외 서너탕 뛰는 학생들로 추리면
다시 10%, 아니 5%도 안됩니다.
당시 과외하면 일주일에 두번, 세번 하루 두시간입니다.
서너탕 뛰면 저녁에 뛰어다니면서 샌드위치로 배채우고,
밤 12시 되면 집에 오고, 학교 공부나 과제는 꿈도 못꿉니다.
제가 그렇게 살아서 압니다. 그 미친짓 하는데...
솔직히 1%도 많이 쳐주는데 5%라 칩시다.
(그 이외에도 돈 벌어서 집안살림 안보태고, 몽땅 자기가 쓰는 비율은 생략할게요..
집에서 원조요? 아부지들 월급이 백만원이 안되던 시절입니다.)
이것만 해도 전체 대학생의 0.5%가 됩니다.
대학 못간 사람도 쳐야죠.
그러면 진짜 0.1%도 안됩니다.
이걸 두고..
'당시는 '다들' (과외비로 300~400씩 돈벌어서) 해외여행 다녔어요' 라면 말이 될까요?
(과외 이외의 알바는 가치없어 생략합니다.
당시 월급 수십만원입니다.
몇 달 일해 수백 모을 알바가 있으면 직장인들이 미쳤다고 회사다니나요?
당시 커피점 알바 월급해봐야 30될까말까 시절입니다.)
아버지 직업이 없이 살기도했는데,,
그때는 은행에서 빚내는 법도 몰라서
그냥 버티면서 살았던것 같습니다.90년대에 저희가
그랬었거든요
ㅋㅋㅋ
더 많이 간건 농활에 엄지척 올리고 갑니다.
집안이 부유하셨나보네요.
당시 가난하지 않은 수준 집안의
친척 어른들끼리 단체로 여행가던곳은 끽해야 제주도 입니다.
사실 그런건 있죠. 전 술도 담배도 안합니다. 또한 식도락 취미도 없죠. 또한 부모님께서 매우 검소한 습관을 남겨주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적은 돈을 벌어도 쉽게 잘 모으는 편입니다. 집에 빛은 없었고 이후에도 집안이 빛이나 돈 문제로 휘청거린적은 전혀 없었거든요. 지금도 샤오미 홍미노트에 알뜰폰 쓰는판이니까요.
당시에도 그런 알바비만으로 돈모아 컴 업글이나 노트북 구입에 백만원씩 지출하곤 했었습니다. 당시 전 한달 50~60만 되는 알바비 거의 전액을 저축하곤 했었는데 덕분에 부모님 도움없이도 400만원 드는 유럽여행쯤은 그리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냈었습니다.
덧붙이면 제가 작년 이맘때 두달반넘게 유럽에서만 한달넘게. 총 9개국 돌아다닌 여행에서 쓴 총비용이 350만원 미만입니다. 지출세부내역을 모두 리스트로 만들어서 1원단위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님은 모든걸 자꾸 본인 경험에 의한 일반화를 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니..본인 경험도 아니시네요? @.@
90년대 초반 당시 고등학생이었다면서요.
그런데 알바로 50~60만원씩 버는 알바를 어찌하시나요?
90년대 초반에 50~60만원이면 직장인 초봉월급입니다.
당시 커피점 알바도 30만원~40만원 받던 시절입니다.
ㅡㅡㅡㅡㅡ님이 작성하신 글
당시 주된 정보교류는 그런 백패커들이 모이는 게스트하우스 들이었습니다. 그런 게스트하우스나 요충지가 어딘지는 가이드북이나 경험자들의 여행기에 나왔었구요. 어느나라 사람들이건 간단한 영어는 통하는만큼 서로 잘 알려주니까요.
인터넷 없었던 시절에도 그런곳 가면 그런 고참들은 몇몇 있기마련이니 잘 샤바샤바해서
---------------
당시 고등학생때 배낭여행 다니셨나요?
본인이 다닌것처럼 적은 이건 뭡니까?
본인이 당시 게스트하우스가면 유럽 여행 다니신 경험담을 늘어놓으시더니
알고보니, 죄다 당시 책 이야기에,
이제와서는 당시 해외여행 즈음은 그리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요?
ㅡㅡㅡㅡㅡㅡㅡ 님이 작성하신 글
특히 과외알바 되는 학생들은 금방 3~400만원정도 모아서 한달씩 유럽 다녀오곤 했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제가 그랬죠. 당시 건당15~20만원 과외로 월 백 벌려면 피토하면서 다녀야한다고.
건당 일주일 최소 6시간(과외시간만) 입니다.
5탕 뛰면 30시간입니다.
대학 다니면서 이동시간 빼고 30시간 과외가 쉬운줄 아세요?
3~400백 금방요? 어처구니가 없네요
ㅡㅡㅡㅡㅡㅡㅡㅡ 님이 작성하신 글
돈 만들 방안과 기간도 잡았었는데 기간은 두달. 지역은 유럽. 대략 400만원가량 되는 예상비용이 당시 과외 아닌 일반 알바만으로도 충분히 조달 가능하다는 답이 나왔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젠 허망하기 까지 한 게
알바로 50~60버셨다면서요? (그것도 신뢰가 안되네요)
근데 두달만에 400을 모아요?
곱하기는 하실 수 있죠?
일본은 배타고 '많이' 갔다고 하시면,
대체 그 '많이'의 기준은 뭡니까?
이제는 같이 대화한 제가 바보같아 지네요
님 대체 누구십니까?
당시 전 하루에 8시간 이상 한적이 없었는데 같이 일하는 특히 방학기간 일하는 대학생들은 12시간 이상 일하는걸 쉽게 볼 수 있었죠. 덕분에 빡세게 하는 친구들은 그것만으로 2년 방학기간 쭈욱 돈모아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일하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많고 반면 지출은 없었고 그랬기에 400만원 정도는 월급 50~60 수준만으로 1년안에 쉽게 모을 수 있었습니다. 덧붙이면 95년에도 조금 빡센알바 하면 일당 5~6만원 수준은 벌었거든요. 노가다 뛰어들면 그때도 10만원은 나왔습니다. 물론 이거 매일은 못하지만요.
(커피숍같은 싼 알바는 당연히 안했습니다. 그리고 두달은 유럽 여행기간을 말합니다. 그에 필요한 자금 400만원을 마련하는데 제 기준으로는 1년 이내. 방학만 일하는 일반 대학생 기준으로는 2~3년 정도가 걸렸다는 뜻입니다.)
대학생들은 상대적으로 고정지출이 많아 번돈 전액을 저처럼 저축하지는 못하지만 빡세게 사는 친구들은 2년 안에도 만들더군요.
그리고 제가 95년 고등학교 졸업하고 96년 작은 컴퓨터회사 직장생활 초봉으로 받았던게 80만원 정도는 되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삼성노트북컴 좀 비싼게 300만원정도 했습니다. 회사일로 제가 딜러랑 쇼부쳐서 60만원정도 깍아 구매해오니 좋아라고들 해서 구매관련일은 제가 도맏아 하기도 했었습니다. 때문에 2달간 유럽여행에 필요한 자금 400만원도 당시 제 기준에서 꽤 여유있게 잡았던 금액이었죠.
저도 나이를 먹다보니 인생역전한 친구도 많고 제가 인생길 바꿔놓은 사람도 좀 되네요. 기업 컨설팅도 하구요..
일단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재정흐름을 기록화 시키질 않고 주먹구구로 하다보니 고정지출이 상당히 많다는 공통점이 있더군요. 돈 없다고 징징대는데 손에는 공통적으로 아이폰x 나 삼성의 고가 플래그쉽이 들려있는 경우가 많았구요. 자수성가로 백억대 쌓아놓은 사람들은 얄미울만큼 지금도 아끼고들 삽니다.
이것은 매우 단순한 계산입니다. 한달 50만원씩 알바비 전액을 저축하면 딱 8달만에 400만원이 만들어지고 전 이런 제 재정계획이 어긋나본적이 인생 통털어 없었습니다. 억대자금이 투자되어 들어간 사업에서도 거의 일치했죠. 저만 이렇게 살아온것도 아니구요.
(현재나이 40대 중후반. 90년대 덕력좀 발휘한 분들이라면 일본 정말 숟하게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녀올 때마다 용돈이 없어지는게 아니라 반대로 늘어났죠. 제가 아는것보다도 모든면에서 한술 더뜨는 집단이 있었습니다.)
90년대에 인터넷 한 사람이 없다는 얘기이고.... PC통신은 국내 1세대라서 내용을 잘 압니다.
더불어 스타크래프트는 컴퓨터 짊어지고 가서 프린터 포트로 서로 연결해서 1:1 게임을 했죠.
안철수씨가 80년대 후반 당시 1세대 네임드 유저들중 한명이었습니다.
ㅋㅋㅋㅋ
님..수업 제대로 들으신 적 없죠?
님이 얼마나 말도안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 상상도 안되죠?
이제는 차라리 님이 중2병 걸린 중학생이란 말이 더 신뢰가 갑니다.
하루 12시간동안 과외하는 대학생을 '쉽게' 봤다구요?
얼마나 웃기는 소리인지 님이 상상 못하는게 더 웃깁니다.
님 댓글을 보신분이 적은걸 감사하세요.
제가 과외 5탕 뛰면서 피토하면서 과외했단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 못했죠? 크크
학교선생이 많으면 하루 6시간 수업하고,
학원선생이 많으면 하루 8시간 수업합니다.
더는 사람이 못해요. 목이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프로급 강사는 더 하기도 합니다.
그 분들 사례 대지마세요. 그분들 목에 엄청 투자합니다.
목쉬고 수업할 수 있을것 같나요?)
설령 하루는 해도 일주일 연속은 인체구조상 못해요.
하물며 마이크 대거나, 정해진 말만해도 되는 학교, 학원이 그런데, 더 많은 말을 하게되는 과외는
그게 안되요. 4시간 6시간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12시간요?
그뿐이 아닙니다.
내가 12시간 과외를 하고싶어도 학생이 그게 안되요?
본인도 이상한지 방학때라는데, 방학때도 안됩니다.
과외 8시부터 시작할 수 있을것 같나요?
방학때 애들이 8시 일어나지도 않을뿐더러
일어나도 밥먹어야죠.
집에서 과외시키는데 아침 굶기고 하는 부모는 없어요
그래서 과외 오전 빠른 타임이 10시나 11시입니다.
마찬가지로 점심, 저녁 식사시간 과외는 없습니다.
방학때 애 과외시킨다고 식구가 식사시간 안뺍니다.
이것도 그렇다칩시다. 이미 논리는 달나라 갔지만
이동시간은요?
90년대초반이 요즘처럼 아파트 세대로 아세요?
이 동에서 저 동 수준일까요?
하루 12시간 즉 6타임 할려면,
동네를 최소 두세군데 낍니다.
버스타고 10분 거리가 예사가 됩니다.
(님 사고력으론 10분씩 이동시간 빼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는데, 버스만 10분이라서,
걸어 이동하고 그러면 텀에 이동은 기본 30분 잡아야합니다.)
6타임동안 이동시간만 최소 한두시간 낍니다.
아 물론 본인식사시간 빼구 이동시간만요.
식사 걸러요? 식사 거르면 바로 목소리 안나옵니다. ㅋㅋ
더더구나 님의 지적수준이 상상이 되는게
과외하면 선생은 공부 하나도 안할것 같죠?
남에 돈 먹기가 장난인줄 아세요?
한시간 가르치려면, 30분은 공부해야합니다.
예습없이 가르치는게 될것 같죠?
님 PT조차도 해보신적 없죠?
아무런 준비없이 몇시간 떠드는게 생각으론 가능한거 같죠?
그 뿐이 아니라, 애들이 학교서 못 푼 문제 갖고 옵니다.
그거 못 풀면 바로 잘립니다.
이게 장난 같으세요?
다 좋다칩시다.
님 90년대초라면서요
95년에 졸업하시고 알바하신 경험을 왜 90년도 초반이라고 하세요?
초,중,후도 모르시는 겁니까?
초,중,후 왜 중요하냐고요?
90년도 중,후반부터 대한민국 경기가 나빠집니다.
IMF잖아요
대학생들이 취직이 안되니, 군대서 말뚝박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에 수백 버는게 쉬워요?
것두 그렇다칩시다.
방학이 1년에 8달즈음 됩니까?
과외로 두달이 답니다.
저 모든게 가능해도 두달이 고작이라구요.
휴학해요? 과외쌤이 휴학해도 애들은 학교를 다녀요
학교 다니는 애를 무슨 수로 12시간을 가르쳐요?
진짜 쌍욕이 다 나오도록 멍청한 소리를 하십니다.
진짜 중2 아닙니까?
다 좋다고 칩시다. 저게 다 된다고 칩시다.
그게 흔한 일인가요?
'쉽게' 볼 수 있었다구요?
장난하세요?
님 지적수준 충분히 알았구요.
신뢰는 안가지만 직장 다니신다니 진짜 행운이시네요.
물론 님 회사로서는 안된 일입니다.
이런 간단한 논리계산도 안되는 사고력으로..진짜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듭니다.
갑자기 난데없는 이야기를 하시니 당혹스럽군요. 술드셨다면 깨신뒤 수정하셔도 괜찮습니다. 내일 다시 읽어보도록 하죠.
님은 하루 '12시간'씩 과외하는 대학생들을 '쉽게'봤다는
희대의 망언하고도 이 정도에서 끝나는게 조상의 공덕으로 생각하세요.
지금 이시간, 보는 사람이 많았으면 단체로 욕먹고 허풍쟁이로 메모되었을 겁니다.
Ps) 캡쳐 이미 다 되어있으니.
지우거나 수정하실 생각은 치우시구요
Ps2) 한마디만 더 덧붙이기만 하시면,
님 쓰신 댓글을 본문으로 새글 파서 사람들에게 오픈해드리겠습니다.
후회할 일 만드시지 마시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세요
뭐래는건지.. 당췌.... -_-
86년도에 케텔 가입한 사람 본 적 있어요?... 내가 케텔에 아이디가 있었는데...
당시에 타이핑 하면.... 문자 캐릭터가 자음 모음 단위로 날아다니던 시절인데...그거 본적도 없을 법한 사람 같은데...
그걸 왜 나한테 설명을 하고 있냔?.... ㅍㅎㅎㅎ
그 이전때는 종종 광화문 KT전시장에 있던 단말기로 접속해보곤 했었죠.
ㅋㅋㅋ
저님 댓글 다시보니 가관이네요.
저님 위키 뒤져가며 대응하고 있나본데...
케텔, 코텔 시절은 진짜 소수가 알던 시절인데...ㅋㅋ
그냥 냅두세요.
저분 고졸인게 아니라,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 안한걸로 밖에 안보여요
님..
다 뽀록난 마당에 그만 댓글 달라고했죠?
IMF 때 전 젖병에 분유를 먹고 있었어요
양극화 지금보다 쩔었던시기였어요 그때 강남 병원장 중학생 아들용돈이 한달80만원이었어요 (100만원주면 애 버릇나빠진다고ㅋ) 6000원짜리 국산가요도 돈없어서 라디오나오는거 녹음해서 듣는 학생도 있었지만 한장에 3만원주고 일본음반시디 한달에 몇개씩사는 학생도 공존하던때라 강남아파트10배씩 폭등하던때라 지금보다 체감양극화는 그때가 더 심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득권입장에서 회고하면 그때가 가장 살기 좋았던 거죠.
(직전의 명퇴 이슈 같은 건 제외)
60년대 이야기 하시나요
90년대까지 거지 많았습니다.. 기억이 많이 나요. 그 당시 드라마 영화보면 거지들 많이 등장합니다..
88년도 올림픽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한게
외국인 보이는 길에 거지 제거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님 말씀대로라면 없는 거지를 왜 첫번째로 작업했을까요?
요즘엔 많이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 서울역 지하철에 노숙자들 많았죠. 본인의 동선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물론, 절대 수는 그 때가 많았겠지만 우글거리는 정도까지는...
그때는 인터넷도 sns 도 없었던만큼 언론을 제외하고는 정보의 유통이 극히 제한되었던 때입니다. 당시 극초창기의 pc통신.... 케텔과 천리안. 여러 사설 BBS 이용자들이 1200 bps 수준의 모뎀으로 통신을 하고있었는데 그때 그들은 정작 사회문제에는 관심이 없었죠.
(거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역앞에 많습니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그때 거지는 밥을 못먹어서 도시락 남은밥만 줘도 고마워했지만 지금 거지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주면 이런거 필요없다며 걍 잡아서 던져버린다는 차이죠.)
2000년대 중반까지... 지하철에 부랑자와 장애인들이 바구니 들고 노래 부르면서 적선을 하고 다녔는데....
거지를 못 봤다고요???
중학교갔으면 지방에선 반정도 사는집
상당수가 초등학교(국민학교) 졸업하고
농사짓거나 그후에 막노동 막공장 취직했죠...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
대학동기들 봐도 농촌출신쪽은 위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비슷한 얘기를 하긴 하더군
결국 이것도 정확한 시기를 안적으면 헷갈리는거죠
80년대 초반 고교진학하는 경우에는...
좀 그런경우가 있긴했죠
제가 그렇게 애들 안가져간 우유 꼼쳐다가 뽂기 아저씨한테 달려가 그거 바꿔먹곤 했죠 ㅋ
큰집이 시골이고 여러 친척들집이 지방에 흩어져있어 초딩때도 다른도시 애들과 놀아볼때 많았는데 80년대 초반만 해도 그렇게까지 못살진 않았습니다. 당시 농촌도 대부분의 집에 경운기 정도는 보급된 시기입니다.
그때 중고등학교 등록금이 좀 있었어요. 등록금 안내서 불려간학생들 한반에 한두명정도는 있던걸로 기억합니다.
우리 가족 한정인지 모르겠지만.. ㄷㄷ
근데 종합적으로 보면 지금이 낫죠 ㄷㄷ
그나마,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태동하면서,
일본 베낀 전자제품들이 내수용으로 싸게 풀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게 기억을 흐리고 있는거죠
울 집에 무슨 돈이 그렇게 있었는지 그게 다 일제였어요. imf + 개인사를 정빵으로 맞긴 했지만... ㄷㄷㄷ
그때가 부각되는건 그 이전이 엄청 힘들었기 때문이겠죠.. ㄷㄷ
예전에 용인되던게 안되는 것도 있고.... 새로 좋아지는 것도 있고...
다만 너무 복잡해서 머리가 아프네요... 신경쓸께 너무 많은게.. 단점인듯 합니다.
90초반 학번 imf직격 맞았는데 저 학원(유일 주산학원) 다닌적 없고 놀고 무협지 보고 했어도 1년 반정도 바짝해서 10위권 대학 갈 수 있는 정도 점수 나왔네요.
조카들 학습하는 시간을 따져보면서 기겁하고 있습니다. 그 저희때 노력이면 sky 좋은학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공부량이네요.
조선시대 영의정 좌의정들도 공자왈~ 맹자왈~ 그거 단순히 많이했다는 이유만으로 된것이 아닙니다.
90년대 초 반짝 좋았긴 했지만 바로 몇년만에 처참하게 주저앉아버렸죠.
하지만 2010년대가 2000년대보다 낫지는 않습니다. 절대풍요로 본다면 그때가 지금보다 훨씬 안좋았지만 계속 나아지고 발전하는 중이었기에 만족감은 높았었던건데 지금은 절대풍요로는 훨씬 더 높아도 반대로 그것이 퇴보하는 중이기에 만족감은 오히려 크게 떨어지는거죠.
돈 잘모으고 중상층으로 갈수있는 시절이었습니다 가족중에서 혼자만 일해도 온가족 식구 다 먹고살만했고요
많이 미화를 하십니다.
당시 월급이 얼마던 시절인지 아십니까?
몇십만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니깐 결국 집값이 착각을 유도하는겁니다.
집값이 싼건 맞아요.
그런데, 그 시절에 집살 엄두 못내고
먹을 끼니 걱정하던 사람들 또한 무시를 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적으셨습니까?
일할 '의지' 와 약간의 '능력'이라고 하셨죠?
그게 아니라구요
93~94년도.....
조흥은행 급여가 30만원이었습니다.
서울 아파트 값은... 대충 1500만원이었고요.
주택복권 1등이 1천만원이었습니다.
제가 서울은 안 살아봐서 모르겠는데
93년에 평촌신도시 입주할 때
37평 기준 약 8천 초중반이었던걸로 기억해요...
1500만원은 아닐듯 해요....
요 근래에도 서울 중계동 아파트 중에는 매매 15평형 1억8천에 나옵니다.
정확히 8년 전에 그 15평형 아파트가 8천만원이었고요.
그 보다 2년 전에 6천만원이었습니다. (여윳돈으로 당시에 하나 구입하려다가... 선대인이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해서 안샀죠)
그 아파트가 지어진지 지금 35년쯤 됐습니다.
90년초에 1500만원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상호 이름이 경제..
갑자기 왠 IMF직전이 살기좋던 시절이라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들이 일제히 쏟아지는지 모르겠네요.
90년도 중반부터,
일반 병 입대했다가 군대에라도 있겠다는 사람들이
기사화되고 그럽니다.
그때 이미 급격히 취업환경은 나빠집니다.
/Vollago
진지하게 옛날이 어땠다고 설명할 가치도 없습니다.
상계동으로 밀려나서산동네 삼일만에 지어진 슬라브 집에서 사는 친구들도 있었고
출석을 안해 찾아간 친구집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친구도 봤는데 다들 나사만 돌려도 되는 시대를 산건 아니에요
1990년에 상계동 중계동.... 여름에 중랑천 넘쳐서.... 돼지 떠내려 가는걸 봤습니다...
도봉동 판자집 공동 똥통이 범람해서.....
공중변소 똥물이 솟구쳐서... 그 일대 집 안방에 똥물이 다 쏟아져 들어가서... 사람들 장티푸스 걸리고....
집이 없으니... 애들 학교도 못나오고....
그렇게 살던 애들이... 대학교에 들어가서 IMF를 쳐 맞고...
취업도 못하고... 빌빌 거리고...
제가 대학재학중이자 군 입대 전 이었던 91년에 비엔나에서 UN관련 회의가 있어 옵저버로 참석하느라 해외에 처음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원래 일정이 일주일이었으나 추가 30일정도 유럽 배낭여행을 준비하고 나갔습니다.
나가기전 군 입대 전이라서 대학 총장님 직인 받고(심지어 면담까지) 지도교수 보증 사인 받아서("혹시 북에 가려는건 아니지" 라는 당황스런 질문을 들으며) 병무청에 제출하고 군입대전 해외여행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해외에 나가서 30일정도 배낭여행을 할 때 유럽 도시 곳곳마다 한국인들을 만났는데 그 숫자가 얼마되지 않아 만나는 사람과 금방 친해지고 일부 여정도 함께하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엔 한국인들을 피해다닌다더군요.
당시에도 남녀 비율은 8:2 정도로 여성의 숫자가 압도적이었고 그 이유는 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젊은이는 해외에 나올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체코 프라하를 갈때도 비자없이는 방문이 어려워 부다페스트 체코 대사관에 들러서 비자를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튼 90년대초 군미필자의 해외여행은 쉽지 않은 것이었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군대 전역을 마치고 2년이 지나지 않은... 20대 남자는...
해외로 나가는 사유를 적어서 검사 받아야 했어요.
내 경우는...
첫 여행지가 일본이라서.... 일본 비자까지 받았음에도....
담당하는 분이 외항선원이라고 빨리 처리해 주라고 해 줘서...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일본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군필자였음에도.....
현재가 그 때보다 더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분단이 되어 있는 등 특수한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사실 한반도 역사상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장 잘나가고 있는 시기이지 않을까요?
IMF 운운하며 대졸이면 전부 취직하던 시절이라느니 살기 좋았다느니 하는 사람들 보면 보통 90년대 후반이나 00년대생 같은 어린친구들이 많더군요..이 애들이 언론에서 왜곡한 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말이죠.
아님 경제 전반에 관해 관심가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족했던 사람이거나요.
다만 imf이후 가장 큰 변화는 비정규직의 등장과 평생직장이 사라졌다는것이 아닐까합니다 느껴지는 불안감이 다르겠죠
아 그리고 착각하시는게 지금도 극빈층 많습니다 조금 더 풍요로운 가난일뿐이죠
그때나 지금이나 양극화가 있다는것 인정합니다 그래도 당시만해도 이렇게 많은 불로소득자는 없었을겁니다 댓글들에 언급된대로 좋은 직장이 있어야 돈 벌던 시대입니다 지금은 말 안해도 아시죠ㅎㅎ 과거는 돈이 많은 사람이 존경 받던 사회입니다 똑똑하거나 열심히거나 그만큼 능력있구나 지금은 돈 많다고 존경받는 사회는 아니죠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만 다시 말해 가난한 사람이 좋은 직장 구해서 열심히 일한다고 여유있게 살 수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의 본격적인 시작이 imf라는걸 부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뭐 쫌 밝은 시절이 있던것같기도 아니기도한 그 어렴풋한 시절을 미화해서 내 때는 말이야~ 같은 소리를
해대니 그냥 전 세대가 다 그저 측은합니다.
1. 80년대말 90년대 초 대학생들, 많이들 가난했지만 그게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습니다.
1000원짜리 오징어 덮밥, 커피 1500원, 당구장 10분당 500~800원, 호프 500에 600~700원선,
어지간하면 돈만원 가지고 다니다가 후배만나면 술먹고 놀만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도 선배들 다니던 회사에서 원서 들고 와서 등심사주던 분위기는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취업이 안될거라고 생각한 대학생은 정말 많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래서인지 Vocabulary 책이라도 방학때 보던 문화 있었습니다.
2. 요새 대학서 일하면서 보니, 요새 대학생은 일단 휴대폰에 많은 비용을 쓰더군요.. 제 입장에서는 돈없다면서..
솔찍히 뭐 저리 자주 바꾸나 싶기도 합니다.
술도 잘 안먹습니다. 게임방, 당구장, 만화가게, 술집 대부분 다 접고 살더군요.
취업은 아예 포기한 학생이 너무 많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라고 하더군요.
영어 공부 아예 포기하는 학생 너무 많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느끼는 빈곤은 예전보다 크다고 봅니다. 제 주변 선후배 대부분 애들 대학보내며 허덕입니다만, 예전 생각들 해보면 대학때 지금처럼 우울하진 않았습니다.
모두가 많이 가난해서 딱히 꿀릴것도 덜한 시대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 압구정에서 떡볶이 7천원을 보고 너무 놀랐던 생각이 나던 시절이긴 하지만,
학교에 요새처럼 차끌고 오는 학생도 거의 없었죠. 누구는 수업료 내기도 바쁜데 말이죠..
상대적 박탈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게 요새 분위기라 봅니다.
거기다 장학금도 공부 안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조금만 해도 받기 쉬웠어요. 따라서 과외를 1주일에 2번씩 2개씩 하면 시골에서 올라와도 서울 살이가 큰 부담이 없었네요.
해외 배낭여행은 군대 가기 전에 과 학생 100명 중 2명이 방학때 갔다와서 다들 우와 그랬고요. 94-95년 경에 군대 갔다와서 미국 어학연수 붐이 있어서 많이 어학연수 3-6개월 다녀왔죠. 96년만 해도 과방에 가면 대기업 쿼터가 넘쳐났지만 다들 고시1-2년 해보고 안되면 간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막상 대기업이나 가야겠다 할 때 imf 터져서 난리가 났네요.
92년에 유럽 배낭여행을 40일 조금 넘게 나갔습니다. 비행기 값 포함해서 총액 약 200만원 가량으로 기억하는데 비행기 값 빼고 유레일 패스 빼고 하니 남은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식빵 한봉지 사면 삼시세끼를 물과 빵만 먹으며 여행했었죠. 시중에 여행책자도 일본 여행책 번안본인 '세계를 간다'정도가 거의 전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표지 도안부터 노란색 표지 색깔까지 그대로 썻기에 해외에서 일본인들이 언듯 책만보고 일본사람으로 착각해서 접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국 배낭 여행객이 없지는 않았지만 많지도 않았던 시기라서 프로스펙스 신고 다니던 덕분에 교민들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만난 일반 사람들은 코리아라는 나라 이름을 들어본적도 없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코리아는 아는 사람 조차도 정확한 위치가 어딘지 모르는게 대부분이죠.
IMF 이전에는 많은 대학생들이 취직을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 부분은 지금과는 확실하게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예전"을 겪어본 사람들이 예전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진짜 예전이 좋았다기 보다는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음에 대한 부러움, 그런 날로 돌아가지 못하는 아쉬움등이 섞여서 생기는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이제와서야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꿈 마져도 강탈당한 세대들 인걸요.
지금 먹고살기 힘들다는 여행 못다니고, 그럴듯한 취미생활 못하고 산다는거죠.
말씀대로 조금만 노력하면 부를 일구고 외제차를 탄다는데,
그 사람들은 그냥 거지가 좋아서 거지를 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 시절은 차라리 다같이 가난하던 시절에 가까웠고,
자본주의가 강세인 나라는 세월이 지나면 빈부격차는 더 커지는게 당연지사입니다.
2. 일부 분들이 착각이 나오는게 과외비 때문인듯 합니다. 네 당시 대학생들이 풍족할 수 있었던건
상대적으로 싼 등록금에, 직장인 월급만큼 비싼가치이던 과외비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외 몇탕 뛰고나면 내 아버지 월급은 가뿐히 넘겼더랬습니다.
그런데요. 그걸로 일반화 시키면 안됩니다.
그렇게 과외 뛰던 학교들이 서울은 스카이
지방은 지방 국립대 정도였어요.
일부를 기준으로 당시 시대를 풍족하다 치부하는게 문제입니다.
3. 막노동, 화물차운전.
네 맞습니다. 그 때는 그런 노동집약적 일거리가 그나마 남아있었습니다.
과외하던 대학생들조차 짭짤하다고, 경험이라며 노가다를 나갔습니다.
하지만, 진짜 일용직이 그랬던거죠. 건설붐이 있었으니까요.
노가다자리 많다 그게 미화될 부러운(?)시절이라고 봐야할까요?
그때 노가다하다 다치면 일용직은 보상도 없었습니다.
그게 풍족(?)이라고 이름 붙여지는게 추억보정이고, 미화입니다.
그리고 과외비 얘기는 제 댓글 읽어보시면 한마디도 얘기한 적없습니다. 막노동이나 화물차 운전을 얘기했지.. 20~30대 몸뚱아리하고 별다른 학력 없이 일머리 갖고 할 수 있는 일이고요. 맞아요 그당시 건설붐으로 즐거웠던 시절을 얘기하는 겁니다. 건설분야 부동산(?) 경기를 안좋게만 볼게 아니고 일부러 필요 없어도 만드는게 바로 케인즈주의고.. 이른바 대공항 격파한 뉴딜정책.. 그당시는 그런정책을 만든게 아니고 정말 필요했다는 점에서 아주 더 좋았죠. 그 좋았던 시절을 향유한 그 세대들이 지금 20~30대한테 노오력(?)을 해라는게 문제라는 거죠. 지금은 그시절보다 더 유복하긴 하죠. 하지만 빈부격차 크고 계층간 사다리 그런 거 없어요가 요점.
그리고 노가다 같은 자리 많았다가 무시할 꺼리가 아닙니다. 노가다 자리 없어지면 경제지표 막장되는데 일순간이고 조금만 더 투자하면 지표를 예쁘게 나오게 할수도 있습니다. 지표가 바뀌는데 평균 대한민국사람들이 느끼는 경기체감은 엄청나게 큽니다. 문재인 정부 일자리정책 할필요도 없어요. 그 당시처럼 막노동 일자리가 짭짤하고 자리도 많으면..
결국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게 아닙니다.
저는 당시를 절대적으로 잘 살던 시절 마냥 미화하는걸 비판하는겁니다.
경제가 좋다, 나쁘다를 표현할 땐 비교의 기준이,
시대와 시대이지,
빈부격차가 아니거든요.
당시는 다같이 가난에서 막 벗어난 시절이니
(사실 박정희가 우리나라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다는데...사람들이 월급이란건 제대로 받은건,
올림픽 특수가 불 때 였죠.)
노가다 관련은
노가다 자리가 많고, 적음이 지표가 아니라는겁니다.
건설경기 좋았지만, 금새 꺼지고,
뉴스를 틀면 한겨울 새벽시장에 모닥불 주변으로
사람들 발동동 거리는 뉴스가 곧잘 나옵니다.
그런 상황들은 다 빼고, 월급 잘 받은 달 기준으로
머릿속에 남겨두고..
그 시대가 살기좋은(?) 풍족한 시절이라하면 어쩌냔 겁니다.
지금 이 글은...
당시가 '풍족'하여..
다수가 '해외여행' 한번씩은 다녀왔다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생각하시는 게 아니시라면,
님께서 잘못 들어오신겁니다.;;
요즘 애들이 imf 시절을 잘 이해 못하듯이 기성세대들이 요즘 대학생의 문제를 잘 이해 못하고...
서로 이해하면서 살아야죠. 확실한건 80-90년대 학생들도 나름 고민 많이하고 쉬운 삶을 살았던간 아니랍니다.
제가 일일이 답변 달다 이제는 지쳤습니다. ㅡㅡ;;
어르신들이 박정희때가 더 살기 좋았다고 하는 거랑 별반 차이 없는 것 같아요.
같은 분인지 다른 분인지 같은 이미지파일을 올렸군요
왜 갑자기 이런 추억보정된 미화 글들이 일제히 올라오는지...
문통 정부, 경제 망했단 프레임 효과가 MB, 박근혜 정부랑 비교되어 안먹히니...
결국 IMF이전, 군사독재 시절, 김영삼 시절하고 비교하려나 보네요
지금이 물질풍요는 비교할 나위 없이 좋고 상대적인 희망은 적은 것은 인정합니다. 먼가 꿈을 덜꾸고 현실에 안주해야할거 같은 시대상이죠.
우선, 자살자 수가 지금이 훨씬 압도적이에요. 80~90년대에는 10만명당 10명을 채 못 넘기던 자살자수가, IMF를 기점으로 살짝 10명대를 넘어가더니, 09년에 30명을 찍고 지금도 25명대 입니다. 저는 이게 시대적 분위기, 사회의 희망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다고 보거든요. 길거리로 내몰릴 정도로 사회의 최 끝단에 떨어진 사람들이 예전에는 그래도 목숨이라도 부지하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구걸이라도 했다면, 이제는 그냥 희망 자체를 보지 못하고 바로 자살하는 것이죠.
그리고 요즘은 사회 복지가 훨씬 더 존재합니다. 예전엔 그냥 무조건 길에서 구걸하는 것 말고는 살아갈 방도가 없었지만, 이젠 아주 기초적인건 제공하는 쉼터나 복지센터들이 존재하지요. 그런 시설 덕에 거지들이 격리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눈에는 본인 동선에 보이질 않으니 마치 거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극빈층이 아예 없어진건 아닙니다.
물론, 그시절이 완벽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솔직히 몇몇 분들 얘기는... ‘노오력이 부족하다’의 일련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그 당시 25~30% 정도면 대학(2년재 포함)이라는데 갔죠.
지금도 25~30%면 취업은 그럭저럭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대학갈 형편(집안 사정 등)으로 기술을 배우러 공고나 상고 간
성적 우수자들이 많았습니다.
상고 나와서 은행간 사람들이 당연히 많았구요.
4년재 대학교 나와서 공무원한다면 웃었던 시절이였죠.
성적이 안되서 공고나 상고도 못가는 학생들은...
인문계에 와서 2학년 3학년때 자동차 정비나 중장비 배우러 다니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 공장에 가라고 하면
위험하고 월급이 적다고 안가겠지만... 그때는 그런거 가릴때가 아니여서...
지금하고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안맞는 것 같아요.
길거리에서 행패부리는 깡패같은 놈들한테 나쁜 짓 당하는 경우도 많았고, 서울 시내 영화를 보러가면 지하철 출구에서 하루 두세번씩 전경한테 가방 검사를 당하면서도 어디 항의하지도 못하던 때 입니다. (지금와서 되돌아 보면 소수의 잘사는 사람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지금 처럼 인터넷이 없어서 다들 그러려니 하면서 참고 살았던 시대입니다.
지금 세대 젊은이들이 힘든것도 이해하나 꽃길만 걸었다고 하는 그 시대가 결코 만만하지 않았어요.
였던것 같습니다.
전 어렸었지만 어렴풋 나던 기억은
집값이 쌋죠.. 그래서 제집장만하기 어렵지 않던 시절..이었고..
환율이 대단했습니다. 1달라 800원대 까지 갔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이 글이 길어지니 오해가 커지는 것 같아 다시 정리하면
본 글은 IMF이전 시기에
(일본이 아닌) 한국이 '헤븐' 조선이었다는 글에 대한 피드백입니다.
일어나보니..이 글이...
이 글에 공감찍을 '노인'들이 이리 많으십니까?;;
하나 분명한건 미필 남자들은 주변에 재산세 내는 (부모포함) 보증인 두명이 없으면 출국이 불가했죠.
현재 베트남 보면 딱 지금 얘기하시는 옛날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빈부격차는 제외하구요.(여기 빈부격차는 정말 헬이라..)
주6일제에, 젊은 애들 돈벌려고 시골에서 올라와서 원룸에 서너명이 겹쳐자듯이 생활하고,
밥은 늘 맨밥에 덮밥처럼 간단한 반찬 올려 먹거나 그마저도 못 먹어서 노점에서 떡 같은거 사먹고,
이 더운 나라에도 돈이 없어서 에어컨 없는 집에서 사는 애들도 흔하고.
그렇게 돈 벌어서 시골에 있는 자기 집 생활비로 부치고
자기는 또 거지처럼 생활하고.
그런데도 보고 있으면 다들 우리나라보다 행복한 것 같습니다.
대학도 못가고(여기 학비가 몹시 싼데도), 20살짜리가 일하는 걸 보면
한국 사람들은 너 참 안됐다..라고 하는데
저한테 짜증난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는 자기가 돈 벌어서 집에 생활비 대고 하는 생활이 당연하고 보람찬데
한국 사람들 와서 자꾸 불쌍하다, 안됐다고 하니 싫다고.
막상 그렇게 불쌍하다 말 하면서 팁이라도 더 주는건 없다고..ㅋ
그렇게 생활하다가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원룸에서 살림 시작하고들 합니다.
여기 현재 은행 예금 이율은 5~9% 정도.
우리나라 20~30년전과 비슷한 수준이죠.
지금 세대가 불행한건 결국 상대적인 박탈감인 것 같습니다.
먹는걸로 비교하면 좀 우습지만
치킨도 자주 먹고, 고기도 자주 먹고(저보다 더 윗세대 분들은 회식이 반가웠다고 하더군요. 고기 먹을 기회라)
주 5일제가 당연하고, 직장내 갑질문화, 성희롱 같은 악습도 훨씬 줄어들었으며
생활수준 자체가 몹시 올라갔지만 미디어로 보고 듣는 생활 수준에 내가 못 미치니 힘든거죠.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20대, 10대가 어떤 부분에서 힘든지는 알겠지만
그 사람들을 과거로 보낸다면,
아니면 베트남 국적을 주고 현재 베트남에서 노동자로 살게 한다면 행복할까요?
취업도 쉽고, 은행 이율도 높고, 집 사는 것도 지금보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아니면 직장 내의 수직적인 문화(말 그대로 까라면 까던 시절이죠), 만연한 성차별과 성희롱,
주 6일제(주 5일제는 정말 축복입니다),
에어컨 없어서 한여름에 선풍기 돌아가던 너구리굴 사무실(실내 흡연이 당연했죠..) 뭐 이런거에 끔찍할까요.
저는 2000년대에 직장 생활을 시작해서
80년대 돌아가서 직장 생활 하라고 한다면 끔찍할 것 같은데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98년 군대갔다 졸업하려니 갈데는 없고, 참 힘들었죠. 4학년의 6개월을 독서실 총무하면서 월 20만원 받다가
개고생해서 들어간 회사 초봉 80만원, 그 2년후 00년도쯤 월 200정도...
아무튼 90년대는 누군가에게 참 힘든 시절이 맞긴 합니다.
77년생 96학번 서울 모처의 공대 나왔습니다.
91학번 선배는 대기업 원서 골라서 넣었고.
92학번 학점 2점대 선배도 지방 대기업 잘들어 갔습니다.
93 선배가 졸업하면서 IMF 크리 맞고 힘들었네요.
뭐 어느정도 이름 들어본 대학생이면 과외 어렵지 않게 구했던것 같고. 통상 30정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걸로 배낭 여행을 가려거나 학비 대려면 꽤 열심히 벌어야 했을겁니다.
그냥. 그시절에는 경쟁이 그리 치열하게 하지 않아도 살만해서 좋았던 시절로 기억되는것 같아요.
80년대 후반 이야기 같습니다.
물론 80년도 후반서부터
90년대 초반에 월급들이 급등합니다만,
94년도면 백만원 가까이는 갔을겁니다.
월급이 30만원대 인건 맞는것 같네요.
80년대 90년대까지
노동조합 활동이 활성화되어 월급이 폭발적으로 올랐죠.
10프로 이상 오른년도가 꽤 있었죠.
월급을 올리려면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사장이 미치지 않고서야 노조가 없는데 월급을 올려주지는 않죠. 쥐꼬리만큼만.. 그 쥐시끼가 생각나네요
왜들 비교하고 타세대를 평가절하하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중요한 건 그 때나 지금이나 재벌이 서민들 등골 빼먹는 사회구조가 그대로라는 점인데, 그건 빼놓고 그냥 살만했냐 아니냐로 싸움을 붙이고 있네요.